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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칼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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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칼스톤(Gary Carlston)
브로더번드(Broderbund)

게리 칼스톤(Gary Carlston)은 형제인 더그 칼스톤(Doug Carlston)과 함께 90년대 초반 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를 개발한 인물이다. 게임 회사인 브로더번드(Brøderbund) 공동 창시자이다.

개요[편집]

게리 칼스톤은 미국 중서부에 있는 아이오와시티에서 자랐고,[1] 형제자매로 더그 칼스톤, 에린 칼스톤, 돈 칼스톤이 있다. 1975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스칸디나비아 언어 및 문학 학사 학위를 땄으며, 사우스 스톡홀롬 와이엠씨에이(YMCA)에서 몇 년 동안 농구 코치로 일했다. 미국에 돌아와서 워싱턴주에서 스웨덴어를 가르치고 오리건 주 유진에서 일하기 위해 소아마비 구제 모금 운동(March of Dimes) 협회에 모집되었다. 형제 더그 칼스톤과 캘랙틱 사가를 판매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노바 토에서 브로더번드 소프트웨어를 설립하였다.[1][2][3] 이는 TRS-80 게임을 애플(Apple) 게임으로 변환하기 위함이었다. 캘래틱 사가는 잘 나가지 않았고, 자본금도 떨어져 갔으며, 결국 게리의 신용 카드로 운영해 나아갔다. 형제 더그 칼스톤이 컴퓨터 상점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게임을 보여주었고, 프로그램에 대한 장점을 설명하여 계약을 따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나아져 갔다. 1980년 컴퓨터 박람회에서 칼스톤 형제는 돈을 모아 저렴한 '마이크로부스'에서 캘래틱 사가를 선보였다. 일본 사업가가 칼스톤 형제를 마음에 들어 하여, 자신이 거래하던 일본 프로그래머들의 작품을 배포하도록 허용하였다. 그 사업가는 칼스톤 형제에게 오락실 게임인 갤럭시안의 모방품인 애플 프로그램이었고, 이를 애플 갤럭시안이라고 이름 붙여 수만 장을 팔았다.[2] 1985년, 게리 칼스톤은 부인 낸시와 결혼 하였으며, 1991년 콜로라도의 볼더에 정착하였다. 그곳에서 많은 이사회에서 일하였고, 콜로라도 볼더에 새로운 와이엠씨에이 건물을 이끌었다. 2007년, 칼스톤 부부와 4명의 자녀들은 뉴질랜드에서 농지를 구입하고 포도원을 심어 타 라스 포도원을 설립하였으며, 2008년 6명의 가족은 베이 지역으로 돌아왔다.[1]

한편 미국의 비즈니스 및 기술 뉴스 웹사이트인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가 소개한 컴퓨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21명에 칼스톤 형제를 포함하였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들의 등장은 컴퓨터 게임에 있어 혁명", "이들이 있기에 컴퓨터 게임 마케팅이 발전할 수 있게 됐다"라며 게리 칼스톤을 포함한 21명의 인물들에 대해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컴퓨터의 발달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4]

경력[편집]

약력
  • 1972년 ~ 1976년 : 스웨덴 스톡홀롬의 와이엠씨에이 농구 코치
  • 1977년 : 워싱턴 대학교 스웨덴어 선생님
  • 1980년 : 브로더번드 소프트웨어 공동 창립
  • 1980년 ~ 1989년 : 브로더번드 소프트웨어 대표이사
  • 1978년 ~ 1980년 : 노던라이츠트레이딩(Northern Lights Trading) 파트너
  • 2003년 : 뉴질랜드 테라스 포도주 농장 사업
학력
  • 1969년 ~ 1975년 : 하버드 대학교 스칸디나비아 언어 및 문학 학사 학위

주요 업적[편집]

브로더번드[편집]

브로더번드는 1980년 게리 더그 칼스톤과 게리 칼스톤 두 형제가 설립한 북미 게임 회사이다. 이는 미국의 오리건 주 유진에서 시작했으며, 더그 칼스톤이 1979년 제작한 게임 갤럭틱 엠파이어의 배급 및 홍보를 위해 설립한 회사이다. 설립 1년 뒤 1981년에는 두 형제의 여동생 캐시 칼스톤(Cathy Carlstron)도 함께 하며 칼스톤 가족이 경영하는 회사로 시작하였다. 회사의 이름이 브로더번드인 이유는 'Band of Brothers' 에 변형을 주어'Brøderbund' 라는 이름으로 만든 것이다.[5] 로고에 잘 보면 알파벳 'o' 자가 아닌, ‘ø’ 라는 글자로 되어 있다. 당시 컴퓨터에서 1과 0 이진법을 표현할 때 0에 슬래시를 그어 ‘Ø’으로 표기한 것을 차용한 것이다. Ø, ø이라는 글자는 덴마크어, 페로어, 노르웨이어에서 쓰이는 모음이며, 그 발음을 기록할 때 쓰는 글자이기도 했다.[6] 이 명칭은 1998년 러닝 컴퍼니에 매각되기 전까지 계속 유지하였다. 브로더번드는 게임 외에 교육용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프린터 관련 소프트웨어도 내놓았으며, 게임 외에도 북미에서 손꼽히는 IT 회사로 성장하였다. 게임 분야 역시 게임 역사에 남을 명작 게임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게임을 발매하고 유통하였다.[5] 원래는 교육 소프트웨어 회사로 두지만, 재미있는 내용으로 구성해보고자 하여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하여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는 말이 있기도 전에 실현한 회사이다.[6] 1984년 브로더번드는 시냅스 소프트웨어(Synapse Software)회사를 인수하였다. 같은 해 그들은 유명한 응용 프로그램 '더 프린트샵(The Print Shop)'을 출판하였고, 1년 후 그들은 회사의 수익성이 떨어져, 시냅스 소프트웨어를 닫았다.[7]

브로더번드의 대표적인 게임에는 스펠렁커(Spelunker), 로드러너(Lode Runner), 카라테카(Karateka), 카르멘 샌디에고(Carmen Sandiego) 시리즈, 줌비니(Zoombini) 수학논리여행 그리고 제일 대표작인 페르시아의 왕자 등이 있다. 첫 번째, 스펠렁커는 1983년에 마이크로그래픽 이미지가 제작했지만 같은 해에 회사가 실패하여 브로더번드가 판권을 구매해서 다시 내놓은 게임이다. 북미, 일본 두 곳 모두에서 사랑을 받고, 스펠렁커를 뒤잇는 후속작들이 비슷하게 많이 나왔다. 스펠렁커는 브로더번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브로더번드의 개발은 아니지만 인수하여 성공한 게임인 것이다. 두 번째로 로드러너이다. 1983년, 스펠렁커와 같은 해에 발매된 플랫포머 게임으로, 지금도 후속작이 나올 만큼 명작인 게임이다. 세 번째로는 카라테카 이다. 1984년에 출시된 카라테카는 조던 메크너(Jordan Mechner)가 브로더번드에 입사하고 처음 내놓은 게임으로, 액션 게임이다. 네 번째로는 1985년 출시된 교육용 게임 카르멘 샌디에고 시리즈이다. 카르멘 샌디에고는 많은 리메이크 버전과 후속작이 있다. 이 게임은 그래픽 및 조작법이 뛰어난 게임은 아니었지만, 텍스트와 어느 정도 일러스트와 유저들의 상상력을 더해 완성되는 게임으로 여겨졌다. 제한된 시간에 답에 가까운 추리를 해야 하는 게임으로, 실제 지식에 도움도 되는 교육용 게임으로 우수한 게임이라는 평이 있는 게임이다. 또한 이 시리즈를 통한 애니메이션 '카르멘 산디에고'가 2019년 넷플릭스(Netflix)에서 방영하였다. 다음으로는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교육용 게임 줌비니의 수학논리여행이 있다. 이 게임은 1996년, 북미에서 발매되었고, 국내에서는 1999년 한글화를 거쳐 정식 발매되었다. 교육용 게임에 더불어 게임 자체가 재미있는 퍼즐게임으로 국내 교육용 게임 분야에서 1위를 꽤 차지하고 있던 게임이다. 마지막으로는 가장 인기가 많았던 페르시아의 왕자이다. 1984년 카라테카를 내놓았던 조던 메크너는 6년 만에 내놓은 게임이며, 1989년 애플2로 출시한 플랫포머 게임이다. 처음 발매됐을 때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뒤에 나온 디오스(DOS)판이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많은 기기로 이식되었다. 후에 브로더번드에서 유비소프트로 판권이 넘어간 후 다양한 후속작들이 발매되었다.

이렇게 브로더번드는 게임들을 유통하며, 교육용, 사무용 소프트웨어의 유통을 맡았던 IT 회사로 성장했지만, 1988년 협력 관계에 있던 러닝 컴퍼니가 브로더번드의 주식을 거의 전부 매입하면서 자회사로 인수되었다. 후에 브로더번드의 직원 약 500명 정도도 해고되었다. 1999년, 러닝 컴퍼니는 메텔에 합병되면서 브로더번드는 자회사의 자회사가 되어 결국, 2001년 브로더번드는 리버딥(Riverdeep)에 갔으며, 엔터테인먼트 판권은 유비소프트(Ubisoft)에 매각하여 브로더번드는 2001년 역사 속에 남겨지게 되었다. 창립자 더그 칼스톤은 2014년 브로더번드에서 내놓았던 게임들과 브로더번드의 사업 기록을 뉴욕 더 스트롱(The Strong) 박물관에 기증하였고, 기록의 보존을 위해 더 스토롱 박불관 내에 게임을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ICHEC(International Center for the History of Electronic Games)에 옮겨 놓았다. [5]

페르시아의 왕자[편집]

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

게리 칼스톤과 캐시 칼스톤은 1989년에 브로더밴드를 떠난 후, 그들은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유명한 모험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를 1990년에 출판하였다. 조던 메크너의 성공한 게임인 '카라테카'는 게임 유통업체인 브로더번드를 통해 퍼져 나갔다. 그는 성공한 '카라테카' 후속작을 브로더번드에게 넘겨주었고, 브로더번드는'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하기 시작했었다. 시나리오부터 음악, 비디오를 이용한 캐릭터의 움직임까지 조던 메크너는 혼자 다 만들어냈다. 브로더번드에게 넘겨 개발하였던 '페르시아의 왕자' 프로젝트는 일명 '바그다드 프로젝트'로 사람의 움직임을 직접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 컴퓨터 이미지로 옮기는 디지타이즈 방식을 사용하였다.[8] 그렇게 '페르시아의 왕자'는 1989년 조던 메크너가 애플Ⅱ용으로 설계한 시네마틱 플랫폼 게임으로 브로더번드가 개발한 게임이다. 북미에서 1989년, 일본에서 1990년, 유럽에서 1990년에 출시하였다.[9]

페르시아의 왕자는 여러 시리즈의 게임이 있는데, '페르시아의 왕자(1989년 비디오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2', '페르시아의 왕자 3D',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 '페르시아의 왕자:전사의 길', '페르시아의 왕자:두개의 왕자', '페르시아의 왕자:묵시록', '페르시아 왕자의 전쟁', '페르시아의 왕자:라이벌 소드', '페르시아의 왕자:폴론 킹', '에필로그', '페르시아의 왕자:망각의 모래' 가 있다. 페르시아의 왕자 3D 이후 시리즈는 대부분은 유비소프트가 담당하였다.[10] 브로더번드의 페르시아의 왕자는 일종의 퍼즐 게임이면서 액션 아케이드 게임으로, 한 번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는 상당한 난이도를 갖는 게임이다. 1시간 제한시간 이내에 공주를 구출하는 것으로, 곳곳이 미로이다. 게임이 길지 않고 어느정도 숙달하면 쉽게 할 수 있기에 인기가 많았던 게임이다.[11] 한편 게리 칼스톤은 그 이후 또 다른 유명한 컴퓨터 게임 미스트(Myst)를 1993년에, 리얼미스트(RealMyst)를 2000년에 출판하였다.

어록[편집]

"I believe that the company's formula for success is 'honesty, openness, frankness, and creating a context for luck; also staying flexible . . . and you've got to really look for programmers'." - 회사의 성공 공식은 '정직, 개방성, 솔직함, 행운을 위한 환경 조성, 유연성 유지 및 프로그래머 유지에 대한 요구'라고 믿는다.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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