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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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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Calculator)

계산기(Calculator)는 어떠한 사칙 연산을 포함한 계산이나 여러 공학적 계산을 수행하는 장치이자 정보처리시스템(Electronic Data Processing System; EDPS)이다. 기계적인 방식이나 간단한 장치로만 되어 있는 것에서부터 컴퓨터와 같은 복잡한 것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주판, 계산자 같은 아날로그식 계산기나 톱니바퀴를 사용한 기계식 계산기도 계산기에 속하지만, 현재는 주로 전자계산기를 의미한다.[1]

개요[편집]

계산기는 사칙 연산을 포함하여 각종의 수 계산을 신속히 실용적으로 할 수 있는 기구나 기계의 총칭이다. 간단한 것으로는 수판, 계산자, 계산도표가 있고, 복잡한 것으로는 통계기계전자계산기 등이 있다. 계산기는 실제로 계산을 실행하는 원리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길이·회전각 등의 물리량으로 수량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상사형(相似型) 또는 아날로그형(analogue type)이라고 부른다. 계산자, 플래니미터(planimeter), 미분해석기 등이 이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수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량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0~9의 숫자, A, B, C 등의 문자를 계산 또는 인쇄하는 등, 그 동작에 확연한 고정 위치의 임의선택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수판, 탁상계산기, 통계기계, 컴퓨터 등이 이에 속한다. 이것은 숫자식 또는 디지털형(digital type)이라고 한다. 계산기는 구조상으로 보아 기어식·전자식·계전기식 등으로 나뉘고, 조작면으로 보아 수동식과 전동식으로 나눌 수 있다.[2] 계산기의 원리는 곱셈은 덧셈의 반복이고 나눗셈은 뺄셈의 반복이다. 뺀 나머지가 생길 때는 한 자리를 낮춰서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3]

종류[편집]

주판
네이피어 막대
파스칼린
라이프니츠 계산기
차분기관
해석기관
가산기
볼레 머신
밀리어네어 계산기

아날로그 계산기[편집]

산가지[편집]

산가지는 산목으로 수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자릿수를 번갈아 가며 가로놓기와 세로놓기로 구분하여 숫자를 표기하였다. 즉, 세로놓기로는 일, 백, 만 등의 자릿수의 숫자를 나타내었고, 가로놓기로는 십, 천, 십만 등의 자릿수의 수치를 나타내었다. 때에 따라 가로놓기와 세로놓기의 자릿수를 서로 바꾸어놓기도 하였다. 그리고 13세기 송나라 말까지는 0을 나타내는 부호가 없었으므로 0에 해당하는 자릿수의 수치는 비우고 표기하였다. 동양 수학에서 일찍부터 발견되어 사용된 음수를 표기하기 위해 양수는 붉은색, 음수는 검은색으로 구분하였다. 때에 따라서는 음수의 경우 마지막 산목을 비뚤어지게 놓아 구분하기도 하였다. 산목은 산학이 체계화되는 고대로부터 비교적 근래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는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주판이 보급되면서 사라졌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산학의 기본적인 계산 방법으로 조선 말기까지 사용되었다.[4]

주판[편집]

주판은 기원전 2700~2300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에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를 경유하여 명나라 이후에 중국으로 전래하였고 개량되었는데, 우리가 아는 주판의 모습은 그러한 과정의 산물이다. 한반도에는 조선 초기에 들어왔지만, 일부 거상들 외에 그다지 널리 쓰이지는 못했다. 조선에서는 훨씬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산가지를 사용한 계산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정작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부터 상업에 필요한 실용 수학 계산 위주로 수학이 발전했다. 주판이 알려지고 개량되어 보급된 이후 산가지가 사라졌으나,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산가지를 사용한 수학 계산을 선호하였다. 더불어 방정식과 제곱근풀이 역시 중국에보다 한반도에서 더욱 깊이 연구되었다. 1970년대에 전자계산기가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계산을 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 사무용품이었고, 보급 초기에는 계산기가 맞는지 틀리는지 주판으로 검산하거나 보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판을 접하지 않고 자란 요즘 세대들에게도 원리 자체는 익숙한 물건이다. 당구장에서 점수 계산하는 보드와 주산의 원리는 사실 똑같다. 그리고 덧셈, 뺄셈만 가능할 거로 생각하기 쉽지만, 곱셈과 나눗셈도 할 수 있다.[5]

네이피어 막대[편집]

네이피어의 막대 또는 네이피어의 뼈는 네이피어(John Napier of Merchiston)가 고안한 셈을 쉽게 할 수 있는 막대이다. 네이피어의 막대는 아홉 개의 긴 막대로 구성이 되어 있고 각 막대에는 1부터 9까지 숫자들의 곱셈표가 그려져 있다. 첫 번째 막대에는 1의 배수 1부터 9까지, 두 번째 막대에는 2의 배수인 2, 4, 6으로 시작해 마지막 18까지 쓰여 있고, 세 번째 막대에는 3의 배수인 3, 6, 9에서 27까지 쓰여 있다. 이런 식으로 네 번째에서 아홉 번째 막대에도 각각 4의 배수부터 9의 배수까지가 차례대로 쓰여 있다. 여기서 두 자리 이상의 숫자는 각각 따로 쓰였는데, 예를 들면 16은 1을 위쪽에 6을 아래쪽에 분리하여 적었다. 357과 7의 곱셈을 구하려면 각 막대의 첫 번째 숫자가 3, 5, 7로 시작되는 막대를 나란히 놓고 각 막대의 일곱 번째 줄에 적혀있는 숫자들을 더하면 답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3의 막대의 첫 번째 숫자가 첫째 자리, 3의 두 번째 숫자와 5의 첫 번째 숫자를 더한 값이 둘째 자리, 5의 두 번째 숫자와 7의 첫 번째 숫자를 더한 값이 셋째 자리, 7의 두 번째 숫자가 마지막 자리가 되는 것이다.[6]

기계식 계산기[편집]

파스칼린[편집]

파스칼린(Pascaline)는 1642년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계산기다. 블레즈 파스칼은 1642년 세계 최초의 기계식 수동 계산기를 발명하였다. 그는 프랑스 오트노르망디의 세금액을 재분배하는 일을 도맡았던 아버지를 도우면서 이와 같은 발상을 고안하게 되었다. 이 기계는 처음에는 산술기계 또는 파스칼의 계산기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파스칼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기계는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었고, 반복을 통해서 곱셈과 나눗셈도 할 수 있었다. 파스칼은 1645년에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기계를 대중에 공개하기 전까지 50개의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완성품을 당시 프랑스 총재였던 피에르 세귀에(Pierre Seguier)에게 헌정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파스칼은 기계를 계속 개선해나가면서 약 20여 개를 더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 아홉 개는 300년 동안 보존되어 왔으며, 대부분 유럽의 박물관들에 전시되어 있다. 1649년 프랑스의 루이 14세 국왕의 칙령에 따라 파스칼은 프랑스에서 계산기의 설계 및 생산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갖게 되었다.[7]

라이프니츠 계산기[편집]

라이프니츠 계산기는 1671년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가 발명한 사칙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계산기이다. 이후 수년에 걸쳐 발전시켜 나갔다. 계단 계산기라고 불린 이 발명품은 상당한 관심을 끌었고 라이프니츠가 1673년 왕립 협회에 선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받아 올림과 받아내림을 완벽하게 자동화시키지는 못했으므로 큰 성공은 아니였다. 라이프니츠는 하노버에 몇 년간 머무르면서 많은 수의 유사한 기계를 만들었다.[8]

차분기관[편집]

차분기관(Difference Engine)은 근사 다항식을 유한 차분법을 통해 계산하여 로그와 삼각 함수를 표로 만드는 특수 목적용 계산기이다. 1820년대 당시, 수학용 표의 계산은 계산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맡아 손으로 계산하였다. 이런 방식은 계산 과정에서나 결과를 옮겨 쓰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였다. 찰리 배비지는 계산 진행에 기계를 도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하게 되었다.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가 시도했던 첫 번째 기계적 계산 장치는 차분기관이다. 그 시대 다른 이들의 시도와는 달리 배비지의 차분기관은 여러 개의 수를 자동계산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톱니바퀴와 기어를 이용하여 기억과 계산을 수행하며, 핸들을 돌려 동력을 얻었다. 계산 결과는 인쇄기로 출력된다. 다항함수를 계산할 수 있었으며 7개의 숫자를 31자리까지 기억시킬 수 있었다. 유한 차분의 방법으로 계산과정에서 곱셈, 나눗셈을 배제할 수 있었다. 처음 제작된 차분기관은 25,000개의 부속에, 자그마치 15t이었고, 높이는 8피트나 되었다. 충분한 지원자금이 주어졌지만 배비지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끝을 못 내고 막을 내렸다.[9]

해석기관[편집]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은 찰스 배비지가 고안한 기계적 범용 컴퓨터의 설계이다. 찰리 배비지는 설계를 좀 더 범용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해석기관의 설계를 시작하였다. 해석기관의 동력은 증기기관이며, 톱니바퀴와 기어를 움직여서 계산을 수행한다. 보통 톱니바퀴 계산기가 손으로 핸들을 움직여서 계산하는데 이 물건은 너무 톱니바퀴가 많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가 없어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쓰는 것이다.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천공 카드로 입력받았고 프린터와 곡선 플로터, 종으로 출력했다. 또한 확인을 위해 천공카드 입력기를 장착할 예정이었다. 숫자는 고정 소수점을 갖는 10진수를 사용하였다. 50자리의 숫자 1,000개를 저장할 수 있는 저장소가 있으며, 산술 논리 장치(mil)는 사칙 연산과 비교 연산, 그리고 선택적으로 제곱근 계산 기능을 제공하였다. 초기에는 차분기관의 출력이 다시 입력되는 순환적인 구조에 한쪽에 긴 저장소가 있는 형태로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그려진 그림에서는 격자 형태로 조정되었다. 그러나 1878년 영국과학진흥협회의 한 위원회는 정부 기금을 위해 해석기관의 제작을 중단할 것을 권고하였다. 만약 해석기관이 제작되었다면 여러 면에서 1940년대에 출현한 최초의 컴퓨터들보다 훨씬 진보적이었을 것이다.[10] 기계식 계산기를 최초로 개발한 인물은 찰스 배비지이다. 그의 개발 이후 더욱 복잡한 형태의 기계식 컴퓨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찰리 배비지가 생전에 남긴 수많은 업적은 당대 최고의 박식가로 인정받게 하기에 충분했다.[9]

상업용 계산기[편집]

가산기[편집]

가산기(Adding/Listing Machine)는 1884년 윌리엄 버로스(William Seward Burroughs) 개발한 첫 상업적인 성공을 거든 계산기이다. 부기 계원이었던 버로스는 크랭크를 이용한 키세트가산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자 이 기계를 생산할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 기계는 현대의 가산기가 갖추고 있는 대부분의 모형을 다 갖추고 있다. 이 기계가 도입됨에 따라 파스칼 이후 시작되었던 기계적 연산기가 실현화되었다.[11]

컴프토미터[편집]

컴프토미터(Comptometer)는 도어 펠트(Door Felt)가 발명한 키 구동 방식의 계산기이다. 펠트는 실험적으로 여러 순서에 의한 키 구동 방식의 계산기를 설계했다. 1877년 펠트는 컴프토미터를 만들기 위해 로버트 타란트(Robert Tarrant)와 합작 관계를 맺었다. 이 계산기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1902년까지 이 기계에 필적할 만한 어떠한 기계도 나오지 않았다.[12]

볼레 머신[편집]

볼레머신(Bolee Machine)은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업자이자 발명가인 레옹 볼레(Leon Bollee)가 개발한 계산기이다. 그가 만든 계산기는 라몬 베레아(Ramon Verea)의 것에 이어 두 번째로 곱셈을 할 때, 덧셈을 반복적으로 하지 않고 직접 연산이 가능한 새로운 기계이다. 이 기계는 도출한 사각판 형태의 곱셈 부분을 가지는데 이 부분들은 109까지의 정상적인 곱셈 기능을 가진다. 그는 볼레 머신을 통해 1889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13]

밀리어네어[편집]

밀리어네어(millionaire)는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기계식 계산기였다. 1893년부터 1935년까지 약 5,000대의 기계가 생산되었다. 스위스 엔지니어인 오토 스타이거(Otto Steiger)가 설계하여 1892년에 독일에서 처음으로 특허를 받았고, 1893년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미국에서 특허가 발행되었다.[14]

전자계산기[편집]

마크원
ABC 컴퓨터
에니악
에드삭
에드박
유니박

마크원[편집]

마크원(MARK-1)은 1944년에 미국의 하워드 에이킨(Howard Aiken)과 IBM에 의하여 완성된 자동 순서적 제어 계산기(ASCC: Autimatic Sequence Control Calculator)라고 하는 세계 최초의 전기 자동 계산기이다. 릴레이(Relay) 3,000개 및 4마력의 전동기를 사용한 72개의 치차식 계산 기구를 가지고 길이 17m, 높이 2.4m이며 제작 기간이 5년이나 걸렸다. 2차 대전 중 미국 해군에서 사용되었으며, 가감산은 매초 3회, 승산은 3초에 계산할 수 있었다. 수치 입력은 전공 카드시스템(PCS)의 카드를 이용하고, 계산 순서의 제어는 천공된 종이테이프를 이용한 자동 순서적 제어 방식을 이용하였다.[15]

ABC컴퓨터[편집]

ABC컴퓨터는 아타나소프-베리 컴퓨터(Atanasoff–Berry Computer)의 약자로,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이다. 1937년부터 1942년까지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존 빈센트 아타나소프(John Vincent Atanasoff)와 클리포드 베리(Clifford Berry)가 개발하였다. 이진수의 연산, 병렬 컴퓨팅, 재생식 메모리, 메모리와 연산 기능의 분리 등의 컴퓨터 발명에 기여하였다. 아타나소프는 1990년 11월 13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로부터 미국 기술상을 받았다. ABC컴퓨터는 2진 구조를 가진 진공관 컴퓨터로 약 300개의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논리회로와 입력장치인 천공카드 판독기, 이진 비트(bit)를 저장하기 위한 자기드럼 메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ABC컴퓨터는 전자공학, 재생식 메모리, 논리작용에 의한 계산, 이진수 체계 등 오늘날의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네 가지의 기본 개념을 구현한 최초의 컴퓨터이다. 하지만 ABC 컴퓨터의 실제 처리 속도나 계산 능력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16]

에니악[편집]

에니악(ENIAC)은 1943년에서 3년에 걸쳐서 1946년 2월 15일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존 모클리(John William Mauchly)와 프레스퍼 에커트(John Presper Eckert Jr.)가 제작한 10진수 체계를 이용한 전자식 자동계산기이다. 부호 첨부 10자리 수의 연산이 가능해 매초 5,000회 덧셈에 14회 곱셈을 실행할 수 있었으며, 이는 십진수 10자리의 곱셈을 0.0028(28,000분의 1초)초, 나눗셈을 0.006초(6,000분의 1초) 이내에 처리할 수 있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컴퓨터였다. 에니악은 개발 당시 무게 약 30t, 길이 25m, 높이 2.5m, 폭 1m의 크기에 사용 진공관의 수 1만8,800개, 저항기 7,000개, 소요 전력 120kW의 거대한 기계 덩어리였다. 계산 속도는 종래의 계전기 식에 비해 1,000배 이상이나 된다. 현재와 같은 프로그램 기억식이 아니라, 계산 순서를 지시하는 프로그램을 배선반에 일일이 배선하여 놓고 부착된 스위치를 조작하여 계산을 수행시키는 방식으로, 마크원 에서는 계산기를 제어하는데 종이테이프가 쓰이는 데 비해 선판의 연결 때문에 계산을 수행했으므로 작업에 따라 선판을 교체해야만 했다. 또한, 릴레이 중 하나가 고장이 나면 작동이 아예 불가능하였다. 20개의 변수와 300개의 정수를 기억하는 메모리가 장착되었고, 플로피 디스크 등과 같은 외부 기억장치는 가지고 있지 않다. 탄도 계산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기억 용량이 적어서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는 단점이 있다.[17]

논쟁

후에 아타나소프(Atanasoff)가 자신들이 개발한 ABC컴퓨터가 최초의 컴퓨터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1973년 미국 법원에서 '인류 최초의 계산기는 ABC 컴퓨터'라고 판결하였고 아타나소프가 승소했다. 하지만 대영제국이 발명하고, 발명 사실을 비밀로 한 콜로서스라는 컴퓨터가 최초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직 대중 사이에서는 에니악이 최초의 컴퓨터라고 알려져 있다.[17]

에드삭[편집]

에드삭(EDSAC)은 1949년 에드박 설계에 따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모리스 윌키스(Maurice Vincent Wilkes)와 그 동료들이 완성한 세계 최초로 프로그램을 메모리에 저장해서 사용하는 디지털 컴퓨터이다. 이 계산기의 기억 방식은 가늘고 긴 수은조의 한 끝에서 데이터를 초음파 펄스로 송출하고, 다른 한 끝에서 이것을 받아서 다시 처음의 끝으로 송출하여 펄스를 순환시키는 것에 의해 데이터를 기억하는 것이다. 대략 3,000개의 진공관을 사용하였고 20㎡의 공간을 차지하였으며 12kW의 전력을 소모하였다. 사용된 메모리는 에드삭과 같은 수은지연선이다. 에드삭에서는 프로그램 작성을 쉽게 하는 연구가 이루어져 초기명령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오늘날의 어셈블러 기능을 가진 서브루틴 등 프로그램에 있어서 중요한 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에드삭은 에니악과 같이 10진수 체계를 이용하였고, 그 후 2진수를 최초로 사용한 에드박으로 발전하였다.[18]

에드박[편집]

에드박(EDVAC)은 195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제작한 세계 최초의 전자식 내장 방식2진 연산 방식을 채용한 계산기이다. 2진수를 이용하여 컴퓨터의 연산 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 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소프트웨어'라고 불리는 신개념을 탄생시킨 컴퓨터이다. 아직도 이 설계는 모든 컴퓨터의 기본 설계에 이용되고 있다.[19]

유니박[편집]

유니박(UNIVAC)은 1951년에 개발된 영업용으로서 시판된 최초의 컴퓨터이다. 1951년에 미국 인구 통계국에 설치되었으며, 입력과 연산, 출력을 동시에 할 수 있고 자기테이프 시스템을 사용하였다.[20] 유니박은 1952년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상황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의 일방적인 승리를 일찌감치 예측했다. 겨우 5% 남짓 개표가 진행된 시점과 단 1%의 표본으로 결과를 맞힌 것이다. 사상 최초인 선거 예측은 컴퓨터의 효율성을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유니박은 에니악과 견주면 매우 작아지긴 했으나 아직도 진공관이 5,200개나 사용되고 길이 4.3m, 폭 2.4m, 높이 2.6m에 무게는 13t이나 나갔다. 설치하는데 필요한 면적도 35.5㎡나 됐다. 가격도 125만 달러가 넘었지만 1958년까지 46대가 팔렸다.[21]

현대 계산기[편집]

전자계산기가 초기에 발매된 시절에는,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첨단기술의 산물이라고 볼 정도로 엄청난 부품이 들어갔다. 지금은 웬만한 부속들이 한 개의 IC로 통합된 상태라 2진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약간의 전자공학 지식만 있으면 적은 부품으로도 금방 만들어낼 수도 있다.[22]

각주[편집]

  1. 계산기〉, 《위키백과》
  2. 계산기〉, 《네이버 지식백과》
  3. 계산기〉, 《네이버 지식백과》
  4. 산가지〉, 《나무위키》
  5. 주판〉, 《나무위키》
  6. 정영애 교수, 〈네이피어 막대〉, 《전국 과학관 길라잡이》
  7. 파스칼 계산기〉, 《위키백과》
  8.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위키백과》
  9. 9.0 9.1 찰스 배비지〉, 《위키백과》
  10. 해석기관〉, 《위키백과》
  11. 세계 최초로 등장한 상업용 계산기〉, 《넥스트데일리》, 2011-03-04
  12. 이승훈, 〈최초의 계산기〉, 《다음카페》, 2004-04-13
  13. 레옹 볼레〉, 《위키백과》, 2004-04-13
  14. The Millionaire Calculator〉, 《HistoryofInformation》
  15. 최초의 컴퓨터(마크-1, 에니악, 에드박, 유니박)〉, 《씨지링크》, 2006-09-14
  16. ABC컴퓨터〉, 《네이버 지식백과》
  17. 17.0 17.1 에니악〉, 《위키백과》
  18. 정영애 교수, 〈EDSAC〉, 《전국 과학관 길라잡이》
  19. 정영애 교수, 〈EDSVAC〉, 《전국 과학관 길라잡이》
  20. 유니박〉, 《네이버 지식백과》
  21. 이병규 기자, 〈유니박 (UNIVAC, UNIVersal Automatic Computer〉, 《동아닷컴》, 2006-06-14
  22. 계산기〉,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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