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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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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차(國民車)는 경제적으로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국민 대다수를 위하여 만든 자동차이다. 차량 크기가 작아서, 국민차는 경차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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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국민차는 나라에서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고 전국민에게 값싸게 보급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지정한 자동차이다. 국민차 사업은 신흥개발국가인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1] 국민차로 선별되는 기준은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무난한 가격, 디자인, 성능 등이다.[2] 국민차의 개념은 독일의 히틀러가 창안한 것으로 '모든 국민이 누구나 부담 없이 가질 수 있는 차'이다. 이 계획에 의해 생산된 세계 첫 국민차가 폭스바겐 비틀(Volkswagen Beetle)이다.[3] 또한 국민차는 가장 대중적인 자동차를 의미하기도 한다.[4]

역사[편집]

포니(Pony)
티코(Tico)
쏘나타(Sonata Y1)
쏘나타 2(Sonata Y3)
아반떼(AVANTE J2)
그랜저 HG(Grandeur HG)
그랜저 IG(Grandeur IG)

1974년, 기아산업에서 마쓰다(Mazda Motor Corporation) 패밀리아(Familia) 2세대의 차체엔진을 바탕으로 개량하여 브리사를 출시했다.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이 막 형성될 시기였기 때문에 출시 첫해 전체 승용차 시장 판매량의 58.4%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가격은 출시 당시 249만 원이었고,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500만 원 정도 되었다.

1975년 12월, 막강한 인기를 끌던 브리사 앞에 경쟁 모델로써 현대자동차㈜(Hyundai Motor Company)의 첫 독자 생산 모델인 포니(Pony)가 출시되었다. 브리사와 달리 포니는 4도어 패스트백 세단3도어, 5도어 해치백으로 출시되었다. 출시 이듬해 1만 대를 판매했으며, 국내 자동차 전체 판매량 중 40%를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출시 가격도 228만 9200원으로 브리사보다 저렴했던 가격도 인기 비결이었다. 국민차 지위를 위협받은 브리사는 1977년에 패밀리아 중 가장 크기가 큰 그랜드 패밀리아를 베이스로 브리사 2를 출시했고, 이듬해 왜건 모델인 K-303을 출시했다. 엔진 배기량 1.0 리터에서 1.3 리터로 변경해 포니와 동등한 성능을 내세웠다. 포니와 브리사 모두 국산화율이 80%를 넘었다. 이 두 모델 덕분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산업은 자동차 기술 개발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차를 출시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1983년 당시 대한민국 상공부가 에너지 절감의 일환으로 국민차 보급 추진 계획을 세워 국내 첫 경차가 생산되었다. 이 계획에 따라 작지만 실용적이면서도 저렴하게 보급할 수 있는 국민차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며 점차 그 윤곽을 잡아 나갔다. 그리고 수년간의 논의 끝에 1980년대 말에 이르러 국민차 보급 추진 계획은 '국민차 사업'으로 한층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사업자로는 대우조선공업(現 대우조선해양)을 사업자로 선정하여 본격적으로 국민차 개발에 착수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국내 첫 번째 경차가 대우자동차㈜(Daewoo Motors)의 국민차 티코(Tico)이다.[5]

1981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인해 기아자동차㈜(KIA Motors Corporation)는 1~5톤 트럭소형버스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게 되어 브리사가 단종되었다. 반면 이 조치로 인해 승용차 생산을 담당하는 현대자동차와 새한자동차는 각각 엑셀르망이라는 새로운 소형차를 출시했다. 엑셀은 1985년 해치백이었던 포니의 후속작으로 나온 모델이며, 포니를 능가한다는 의미로 초반에는 '포니엑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반년 후 세단 모델을 출시하는데 '프레스토'라는 별도의 이름을 붙이게 된다. 1986에는 해치백 모델명을 포니엑셀에서 엑셀로 변경했다. 1980년 후반에는 3저 호황에 힘입어 국내 역사상 최고의 성장률을 보이던 시기였고, 이를 바탕으로 마이카 붐이 일어나 1세대 엑셀과 프레스토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세단 모델인 프레스토의 인기가 상당했고, 자신감을 얻은 현대자동차는 미국에 엑셀과 프레스토를 수출해 점점 성장하게 된다.

반면 레코드와 로얄 살롱 등 고급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새한자동차가 1983년에 대우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하고 1986년에 소형승용차인 르망을 출시했다. 오펠(Opel)이 개발하고 대우자동차가 생산했으며 폰티악(Pontiac)이 판매한 월드카이다. 르망은 4도어 세단 기준으로 485만 원부터 시작했으며 부족하지 않은 동력 성능, 실용성으로 데뷔 첫해 1만 6천 대를 판매했으며, 이듬해 1987년에는 4만 2천 대가 판매되면서 프레스토 판매량을 거의 따라잡아 국민차 반열에 오르게 된다. 3도어 해치백인 르망 레이서는 4100대를 판매해 포니엑셀 3도어보다 8배 더 많이 팔았다. 르망은 오랜 기간 생산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1986년부터 1997년까지 11년간 무려 105만 대를 생산했다.

1990년대에는 패밀리카의 개념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이때에는 가족들과 타기 편한 차들이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소형차가 인기 있었다면, 1990년대에는 중형차가 인기를 끌었다. 국민 중형차로 꼽히는 쏘나타(Sonata)도 이 시기부터 국민차로 등극하기 시작했다. 쏘나타는 1985년에 처음 출시되었지만 현재의 이미지와 달리 고급차에 속했다. 가격도 2.0 리터 자동변속기 사양이 1298만 원으로 대우자동차의 플래그십 모델 로얄 살롱보다 작으면서도 더 비싸 판매량이 적었다. 1993년 3세대 모델인 쏘나타 II가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국민차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다. 곡선을 대거 도입한 익스테리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에어백, 전동 조절식 미러, 전자 제어 서스펜션 등 당시에는 최첨단 사양이었던 옵션들을 대거 탑재한 덕분에 출시 후 3년간 60만 대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아서 오늘날까지도 역대 쏘나타 시리즈 중 최고의 디자인으로 쏘나타 II를 지목할 정도이다. 또한 일반 택시렌터카로도 많이 팔려 국민차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흔히 구아방이라고 불리는 아반떼(Avante)도 크게 성공한 모델로 손꼽힌다. 1995년, 엘란트라(Elantra)의 후속 모델로 출시한 아반떼는 국산화율 99.9%로 엑센트(Hyundai Accent)에 이어 두 번째 완전 국산화 모델이다. 우수한 성능과 넓은 실내공간, 안정된 주행감으로 당시 세피아와 에스페로가 경쟁하고 있는 준중형급 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고려청자를 모티브로 한 유려한 디자인, 부식이 거의 없고 고장이 적었던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받아 5년 동안 총 123만 대가 판매되었다. 특히 출시 25년이 지난 지금도 도로에서 아반떼를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품질이 좋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현대자동차㈜ 최고의 모델로 평가하고 있다. 2000년대에도 여전히 쏘나타가 강세였다. 2004년에 출시된 NF 쏘나타는 자체 플랫폼을 적용한 첫 번째 쏘나타이며 그동안 사용했던 시리우스 엔진을 버리고 자체 개발한 세타 엔진을 적용한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현대자동차 디자인 능력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국산차 중 패밀리룩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모델이다. 이듬해 나온 그랜저 TG가 쏘나타랑 유사한 디자인을 가지고 출시했다. NF 쏘나타는 매년 10만 대 이상 팔렸다. 이후 2009년에는 6세대 모델 YF 쏘나타가 출시되었다. 패밀리 세단에서 이런 파격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사례를 전 세계적으로 봐도 거의 없다. 그렇기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충격을 가져왔다. 특히 일본 내에서는 '쏘나타 쇼크'라는 말이 종종 회자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파격적인 디자인은 쏘나타의 구매 연령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그동안 쏘나타는 40대 중년을 구매 타깃으로 했으나 YF 쏘나타는 30대로 타깃을 내렸다. 또한 20대에게도 호평을 받아 쏘나타를 첫차로 구매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디자인에 관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여전히 한 해에 10만 대가량 인기가 많았다.

1998년, 쏘나타를 위협할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삼성자동차의 SM520이다. 당시 막 자동차 시장에 뛰어든 삼성자동차는 닛산(Nissan)과 기술 협력을 맺고 2세대 세피로를 바탕으로 하여 디자인과 편의 사양을 수정해서 출시했다. SM520은 삼성자동차에서 만든 첫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정숙성과 주행감, EF 쏘나타에 뒤지지 않는 상품성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부식에 강한 아연도금 강판과 신가교 도장을 적용해 차량 내구성을 크게 높였다. 그 결과 EF 쏘나타의 판매량을 무섭게 추격하며 국내 중형차 시장 2위로 뛰어올라 새로운 국민차로 등극하게 된다. SM520은 7년간 40만 대가 팔렸으며, 고장이 거의 없어 지금도 도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2011년 그랜저 HG가 출시되었다. 역대 그랜저 중 차체 크기 변화 폭이 가장 컸다. 동급 미국 세단 크기를 따라잡기 위해 전장 25mm, 휠베이스는 65mm를 키웠다. 그랜저보다 더 높은 급인 오피러스(Opirus)와 맞먹는 크기였다. 그랜저는 XG와 TG를 거치면서 부유층의 상징에서 대중적인 성격으로 자리 잡았지만 중년이 타는 차라는 이미지는 여전했다. HG는 플루이딕 스컬프처라는 젊은 디자인을 적용하면서 고객 평균 연령층이 많이 낮아졌다. 날렵한 눈매를 가진 헤드램프와 후면부 디자인으로 스포티한 분위기를 더했다. 젊어진 그랜저는 출시 첫해 10만 대를 시작으로 매년 8만 대씩 팔아 쏘나타의 판매량을 점점 위협하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그랜저 IG가 출시되었다. 점점 타깃층이 젊어지고 있는 그랜저의 브랜드 지향점을 반영하여 HG보다도 더 젊어지고 스포티한 인상으로 변화했다. IG 출시 이후 국산차 시장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바로 쏘나타와 아반떼의 판매량을 넘어 가장 잘 팔리는 세단이 된 것이다. 2017년 10만 대 이상 팔아 국산차 판매 1위를 기록했고, 2018년과 2019년에는 포터(Porter)와 싼타페(Santa Fe)에 밀려 3위를 차지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세단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했다. 가격대가 높은 준대형 세단이 판매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희소한 사례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과거에 비해 소득 수준이 올라 그랜저를 넘보는 소비자가 늘었다. 물론 그랜저 가격은 여전히 비싼 편에 속하지만 과거에 비해 중산층이 많이 늘어났다. 두 번째는 그랜저의 브랜드 가치다. 그랜저의 브랜드 가치는 1986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30년 이상 쌓아왔다. 현재는 제네시스 G80, G90, 기아자동차㈜ K9 등 더 윗급의 차도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랜저를 대표적인 고급 세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세 번째로 경쟁 모델의 약화를 들 수 있다. 임팔라(Chevrolet Impala)는 2019년 35대를 판매했을 만큼 판매량이 매우 낮고, SM7는 오랫동안 풀체인지가 없었기 때문에 상품성에서 그랜저에 밀린다. 그나마 K7이 그랜저의 대항마로 나서고 있으나 이제 막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에서 밀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랜저를 선택한다.[4]

각주[편집]

  1. 국민차〉, 《네이버 지식백과》
  2. 김흥식 기자, 〈신형 쏘나타가 '국민차' 타이틀에서 벗어나려는 속사정〉, 《오토헤럴드》, 2019-04-02
  3. Motors, 〈자동차의 정의와 종류〉, 《티스토리》, 2008-09-26
  4. 4.0 4.1 오토모빌코리아, 〈나 때는 쏘나타였는데... 시대별로 정리해본 대한민국 국민차 변천사〉, 《네이버 포스트》, 2019-08-29
  5. 박병하 기자, 〈(특별했던차)대우국민차 티코〉, 《모토야》, 2018-10-29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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