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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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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南山)
남산케이블카
N서울타워의 자물쇠
남산오르미
팔각정
봉수대

남산(南山)은 서울특별시 중구용산구에 걸쳐 있는 이다. 높이는 해발 270.85m로서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서울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정상에는 N서울타워가 있으며, 그 부근까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고 남산 1·2·3호 터널이 뚫려 있다.

개요[편집]

남산은 앞산을 뜻하는 것으로 유래는 조선시대의 궁궐인 경복궁에서 바라보면 바로 앞이 남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한양 시가지는 사대문 안만 포함되었다. 현재 위치가 서울의 남쪽이 아닌데도 남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옛 이름으로 목멱산(木覓山), 인경산(引慶山)이 있다. 아무튼 남산은 옛 한성부의 안산(案山)이기도 하다.

남산에 올라가 보면 송신타워인 남산서울타워(舊 서울타워)가 있으며 팔각정, 남산 봉화대 등 몇몇 볼거리가 있다. 그 외엔 그다지 볼 것도 없고 뭐. 일단 정상에 올라가 보면 서울의 모든 풍경이 다 보이는 건 맞는다. 그러나 서울타워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서울타워에서 보는 광경과 남산 봉화대에서 보는 광경 둘 다 다르다. (봉화대에선 경복궁과 저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야경이 대단하다고 한다.

정상에서는 매일 오후 3시부터 사물놀이, 무예 시범 등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 공연이 열린다. 개화 시기에는 야외식물원 또는 산책로를 따라 꽃구경 하기에도 좋은 곳인데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엄연히 산이지만 험한 코스가 없고 야간에는 가로등이 곳곳에서 밝혀주기에 24시간 아무런 제재 없이 출입이 가능하다.

뉴스(특히 YTN)에서 서울의 대기 상태를 보여줄 때 단골로 선정되는 장소다. 산 위의 탑 같은 게 보이면 십중팔구 여기라고 보면 된다. 서울의 중심이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쉽게 눈에 띄는 데다가, 여기서 주변을 찍어도 시가지의 모습이 잘 담기기 때문. 또한, 추석, 설날, 대보름 등 명절에도 방송국에서 심심찮게 다녀간다.

서울 토박이는 남산이 대한민국에서 서울에만 있는 걸로 아는 사람도 있는데, 위에서 언급된 대로 남산이란 한자 지명이 '남쪽의 산'이라는 흔한 뜻이기 때문에 남산으로 불리는 산은 한둘이 아니다. 서울 밖의 유명한 남산으로는 경주의 남산이 있다.

역사[편집]

역사가 굉장히 파란만장한 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재위 4년(1395년) 음력 12월 29일 백악을 진국백(鎭國伯)으로,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삼아 일반인이 제사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 태조실록 태조 4년 12월 29일 기사 왕의 등 뒤에 있는 북악산은 백작으로 대우한 반면 왕이 남면(南面)하는 남산은 왕과 동격으로 대우했다.

원래 남산의 북면 일대는 조선시대 때 도성을 수비하는 군대가 무예를 닦던 '무예장'이 있던 곳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무예장 터에 일본군이 성을 지어 '왜성대(倭城臺)' 또는 '왜장대(倭將臺)'라고 불렸다. 구한말 시기부터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건립되기 전까지 왜성대 일대에 통감부 건물과 통감 관저(구 주한일본공사관)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경성에서 사는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를 이루어 살았다.

왜성대에 사는 일본인들은 광무 2년(1898) 오늘날 리라아트고등학교 자리에 경성신사(京城神社)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남산대신궁'이라는 명칭이었으나 1916년 조선총독부로부터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경성신사'라고 개칭했다. 1929년에는 경성신사가 서쪽으로 약간 이전해서 숭의여자대학 터에 자리를 잡았다.

경성신사는 조선신궁 창건 이전까지는 식민지 조선의 일본 신사들을 대표하는 역할도 하였다. 경성신사의 동쪽 근처, 오늘날 사회복지시설 남산원 근처에는 노기 마레스케를 위한 노기신사도 세웠는데, 경성신사의 부속시설로 취급받았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 현 남산도서관,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백범광장, 분수대 위치에 조선신궁을 세웠다. 대단한 규모였다. 조선신궁 건설과정에서 남산은 크게 훼손되었다. 역사책에서 등장하는 '조선인에게 일년에 두 차례씩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곳'으로 상징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심지어 남산 꼭대기에 있었던 국사당이 조선신궁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인왕산으로 강제 이전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조선신궁은 없어졌고 그 자리에 만들어진 것이 남산식물원, 분수대, 백범공원 등의 시설이다.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일본을 극복하겠다는 뜻으로 조선신궁 터에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을 세우려고 했으나 1960년 4.19 혁명으로 백지화되었다.

1961년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남산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붙었다. 이후 남산 외인아파트, 숭의초/숭의여중/숭의여고/숭의여대, 남산아파트, 리라초등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남산은 거의 인간의 놀이터가 되어갔고, 이에 따라 경관 파괴라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시는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갖추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남산 살리기를 본격화한다. 그 성과로 1994년 남산 외인아파트가 철거됐고 남산의 이미지를 어둡게 만들었던 국가안전기획부 본청을 1995년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기고 별관 건물도 1996년 철거했으며 필동에 있던 수도방위사령부를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전해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하는 등 남산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남산공원[편집]

1940년 3월 12일 남산 일대가 공원으로 지정되어 1968년 9월 2일에 개원하였으며 1991년부터 8년간 '남산제모습가꾸기' 사업으로 공원 내 부정적 시설 89동을 이전하고 중구 예장동, 회현동, 용산구 한남동 일대를 대대적으로 복원 정비하여 시민의 공원이 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에 소재한 공원 중에서 가장 넓은 규모의 공원이다.

남산공원은 크게 장충지구, 예장지구, 회현지구, 한남지구의 네 개의 지구로 나뉜다. 먼저 장충지구는 장충단이 있는 장충단공원 일대를, 예장지구는 와룡묘가 남아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 일대를, 회현지구는 과학교육원과 남산도서관, 안중근의사기념관 일대가 들어선 지역을, 한남지구는 남산 제모습 찾기 운동으로 주택 철거 후 야외식물원을 조성한 지역을 말한다. 이밖에도 분수대 2개소, 야생화공원, 남산전시관, 팔각정, 서울타워, 케이블카, 놀이터, 주차장 등의 시설이 포함된다.

남산공원의 식물로는 85과 552종, 초본 42과 187속 361종, 목본 43과 93속 191종이 있으며 주요 식물로는 신갈나무, 아까시나무, 팥배나무, 산벚나무, 소나무, 잣나무, 단풍나무 등이 있다. 남산공원의 야생동물도 7목26과61종에 달한다.

서울타워 전망대에서는 맑은 날에는 인천 앞바다까지 볼 수 있으며, 각종 시설들은 자연탐구와 운동, 생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휴식 등 도심 속의 정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남산의 명소[편집]

남산서울타워[편집]

철따라 그 자태가 다르게 보이고 새롭게 느껴지며 독특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90만평의 넓고 쾌적한 남산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서울타워는 그 높이가 해발 480미터에 달해 서울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가기.png 남산서울타워에 대해 자세히 보기

남산케이블카[편집]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케이블카 시설 중 최초로 지어졌으며. 1962년 5월 12일에 처음 개통해 하루도 쉬지 않고 운행하는 국내 최장수 케이블카로 서울의 명물이다. 낮에는 사계절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으며 밤에는 대형 빌딩들이 내뿜는 환상적인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남산골한옥마을[편집]

남산골한옥마을은 1990년 남산제모습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훼손된 24,180평의 지형을 복원하고 전통정원으로 꾸미면서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한옥 5개동을 이전 복원하였다.

서울 1000년 타임캡슐[편집]

1994년 서울정도 600년을 맞이하여 시민생활과 서울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는 문물 600점을 서울 1000년 타임캡슐에 담아 남산 산자락에 묻었다.4백년후 서울 1000년에 용기 속에 든 이 시대의 문화유산을 펼쳐보게 될 것이다. 1994년 11월 29일 매설하였으며 2394년 11월 29일 개봉할 예정이다. 캡슐 안에는 '94 서울의 인간과 도시를 대표할 수 있는 문물 600점 실물 축소 모형 마이크로 필름 Video-CD 형태로 수장하였다.

남산오르미[편집]

남산 끝자락과 케이블카를 이어주는 경사형 엘리베이터로, 운영 개시 2달 만에 13만 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맹세의 열쇠 철망[편집]

남산에 올라가고도 솔로 내지 마법사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풍경인 바로 커플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는 의미를 담아 철망에 매단 자물쇠가 빽빽히 박혀있는 모습이다. 어느 정도냐면 더 이상 자물쇠를 끼워둘 곳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다. 게다가 주요 방문자들도 주로 가족이거나 연인들이다. 그나마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있기에 다행이지만 솔로로 가면 답답 그 자체인 곳이다. 또한 잘 보면 가려져서 잘 안보이지만 몇년~10년전 자물쇠는 녹슬어서 글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녹슬어가는 자물쇠 위에 계속해서 쌓여가자 케이블카 근처에 2차 분지가 생겼다.

어느 정도 공간이 차면 자물쇠를 싹 잘라 폐기한다는 설이 있는데 그건 와전된 것이고, 실제로는 서울시가 주기적으로 자물쇠를 수거하고 있다. 주말 저녁 등에 단 한 번이라도 가본 위키러라면 알겠지만 남산에 몰려들어 자물쇠를 거는 인원수는 하루에도 수천명 단위여서 당연히 주기적으로 수거하지 않았으면 이미 10년 전, 드라마로 인기를 끈 이후 몇 달 정도만에 자물쇠를 달 공간따윈 전혀 없었을 것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남산도서관[편집]

서울특별시교육청남산도서관은 원래 '경성부립도서관' 을 옮겨온 것으로 상당히 유서 깊은 도서관이다. 건물 자체도 1964년에 완공했으니 이쯤 되면 등록문화재 수준. 남산공원이 근처에 있다. 많은 이용객이 이용하고 있다.

중근 의사 기념관[편집]

남산도서관 뒤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다.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가 관리/운영하고 있으며 1970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와 국민의 모금으로 설립되었다. 2010년 10월 26일 이전에 있었던 한옥모습의 구관(舊館)을 철거하고 현재의 자리에 신관을 설립하여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1주년을 기념하여 개장하였다.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편집]

백범공원 방면 남산공원 산책로 입구 직전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나온다. 남산 자락에서 N서울타워 빼고는 이만한 높이의 건물이 없기 때문에 아주 멀리서도 눈에 띈다. 1970년에 세워진 건물로 원래는 어린이회관이었지만 건물 안팎의 여러 사정에 의해 어린이 회관으로 실제 활용된 역사는 5년이 채 못된다. 특이하게 건물 최상단층은 원형으로 회전 기믹이 있었다. 어린이회관 운영 당시에는 식당으로 사용되었던 터라 꼭대기 층에서 식사하면 서울의 모든 풍광을 다 보는 것이 가능. 이후 소공동에 있던 국립중앙도서관이 이곳으로 와서 자리 잡았다가 1988년에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사들여 1989년부터 서울특별시 과학교육원이 입주했으나 1999년에 과학교육원이 신문로에 있던 교육연구원에 합쳐져 통합 청사가 되었다.

또 이 건물 양옆에는 꽤 낡아 보이는 계단들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5년 조선총독부가 완공한 조선신궁의 정식 참배 계단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며, 이승만 정권 시대에 이렇게 높은 조선신궁 터에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을 지으려 하였고 의사당의 지반을 닦기 위해 허물고 깎고 대공사를 하였는데, 결국 이곳에 국회의사당 건립은 취소되었고 이 과정에서 없애버린 조선신궁 정식 참배로의 계단 자재를 재활용하여 이승만, 윤보선 혹은 박정희 정권 때에 만든 계단으로 추측된다. 그중 한 계단이 바로 2005년 MBC 수목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와서 유명해진 삼순이 계단이다. 실제로 계단 자재를 자세히 보면 매우 낡은 석판으로 되어있어서 오래전 조선신궁의 계단으로 착각할만하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편집]

교육연구정보원으로부터 남동쪽, 남산 서울타워가 보이는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있다. 과거 남산분수대가 있던 자리였는데 2013년부터 한양도성 발굴작업을 한다고 가림벽으로 둘러싸 폐쇄하였다가 야외전시관으로 2020년 11월 개장했다.

발굴작업으로 드러난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성벽과 각자성석을 전시하였다. 발굴한 성벽 유적의 바깥쪽을 따라 걸으면서 시대에 따라 성벽 축조양식이 달라지는 것, 그리고 성벽을 만들 때 사용한 나무 기둥을 박은 흔적을 볼 수 있다. 전시한 성벽 유적으로부터 남산타워 쪽으로 더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각자성석이 나온다. 관람객이 성벽을 관찰하는데 용이하도록 성벽을 아크릴로 감싸 보존하는 대신 가림막을 세워 비로 인한 풍화를 막도록 했다.

조선시대에 성벽을 쌓으면서 인부 집단마다 담당구역을 나누어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이름을 매기고, 성벽의 어느 돌 위에 '○字△△尺'이라고 새겼다. 이렇게 글자를 새긴 성벽의 돌을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고 부른다. '글자를 새긴 성벽 돌'이라고 한자로 지은 명칭.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구역에는 내자육백척(奈字六百尺)이라고 새긴 각자성석이 있다. 천자문 순서에 따르면 60번째 '내'자에 해당하는 600척 구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안내문과 함께 실물 돌을 자세히 보아도 어디에 명문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야말로 덩그라니 성벽에 박힌 각자성석 하나만 안내판과 함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일부러 올라가지도 않고 올라간다 하더라도 실망한다. 다만 반대쪽으로 돌아보면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다.

성벽 흔적의 안쪽, 유적전시관의 입구 가까운 쪽에는 구 남산식물원 시절의 명물이었던 분수대가 가동을 멈추고 물도 빠진 채로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분수대는 추억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남겨두었다고 한다. 분수대로부터 조금 더 위쪽으로 가면 콘크리트로 만든 옛 조선신궁의 배전(拜殿) 터가 나온다. 일본의 신사에서는 신령의 일부가 깃들어 사람들에게 경배대상이 되는 물건(신체神体)을 안치한 건물을 신전(神殿)이라 부르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대신 신전 앞에 사람들이 참배하는 자리를 만드는데 그것이 '배전'이다.

배전 터를 지나 더 안쪽에는 1930년대쯤에 일제가 만든 듯한 방공호가 나온다. 방공호 입구에 철문을 걸어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는데, 안내판에 따르면 방공호 내부의 통로 일부가 무너졌다고 한다. 그리고 설명에는 없지만, 방공호와 배전 터 사이 어딘가에 조선신궁의 신전이 있었다.

주한독일문화원[편집]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독일문화원(괴테인스티투트)의 서울 지부이자, 주한독일문화원의 하위 분원들을 총괄하는 본원이다. 독일어를 공부하거나 독일 관련 자료를 찾고자 할 때 유용하다. 남산도서관과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남산과학관[편집]

정확한 명칭은 서울특별시과학전시관 남산분관이지만 흔히 남산과학관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남산공원 근처에 있는 과학교육 체험 전시관으로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정보연구원 건물의 일부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각종 과학 체험 시설들이 있으며, 지하1층에는 플라네타리움이 있다. 과학 체험 시설은 대체로 낡은 편이지만 그래도 쓸만하며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는 기초적인 과학 원리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입장료는 무료.

사실 이 건물은 원래 서울 어린이회관으로 1970년 대한민국 최초의 어린이회관으로 개관돼 한동안 어린이회관으로 쓰여졌다. 그러다 어린이회관의 공간이 너무 좁다는 의견이 많아 어린이회관의 운영 주체인 육영재단이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새 회관을 지어서 이사를 갔고 그 자리에 국립중앙도서관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1988년 국립중앙도서관이 현재의 서초동 부지로 이사를 간 이후부터 시교육청의 교육정보연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 통감관저 터[편집]

1885년 이후에 일본공사관으로 세워져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통감부가 들어서면서 통감 관저로 바뀌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맺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석호정[편집]

국궁장이다. 위치는 국립극장방면 입구에서 우측 둘레길로 10분 정도. 공원 외부에서는 눈에 띄지 않아 인지도는 낮다. 인근 주민이 아니라면 서울사람이라도 일년에 한두번 케이블카 또는 버스타고 타고 N서울타워 올라가는 정도.

2018년 9월에는 인근에 맨발로 걷는 황톳길이 조성되어 석호정에서 마치고 발을 씻을 수 있게 되었다.

예장공원[편집]

2021년 6월에 개장하였다.

백범공원[편집]

백범 김구선생의 호를 따서 명명한 넓고 한적한 공원. 백범광장이라고도 부른다. 이름에 걸맞게 김구 선생의 동상을 비롯해 김유신 장군 동상과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있다. 근처에서 이만한 공원을 찾기도 힘든데, 위치가 애매한지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면 대개 한산하다. 공원 내에 옛 서울성벽이 남아있는게 특징. 힐튼호텔 방향이나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찍기도 좋다. 작정하고 걷는다면 N서울타워에서 남산순환로를 따라 걷고, 백범공원을 지나 언덕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서울로7017을 통해 서울역까지 도보여행을 할 수 있다.

와룡묘[편집]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 '목멱산 호랭이(구 목멱산방)'에서 5~10 분 정도 산책로를 더 들어가면 나온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도록 지어져서 그런지 한겨울에는 안전상의 이유로 주로 폐쇄해둔다. 고종 시절에 엄귀비가 만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역사는 모른다. 1974년에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나름대로 역사도 있고 문화적으로도 가치 있는 시설. 서울에 사는 무속인들이 즐겨 찾는 기도터이다.

이름은 와룡묘지만 안에는 높이에 따라 건물 3채가 있다. 제일 아래 건물에는 제갈공명의 상뿐만이 아니라 관우의 상도 함께 있다. 중간건물은 단군의 좌상을 모신 '단군성전'이고, 제일 위에는 삼성각이 있다. 단군 좌상은 1970년대쯤에 새로 모신 것이라고 한다.

야외식물원[편집]

야외 정원이다. 공원관리인들이 연못이나 각종 식물들을 잘 가꿔서 산책하기 좋다. 남산공원 내에서 가을단풍을 즐기기에도 가장 좋은 곳. 정상부근을 제외하면 그나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놀러오는 장소. 하얏트호텔이 바로 앞이라 그런지 강아지 산책이나 운동 나온 외국인들도 자주 보이는 편. 운이 나쁘다면 외국인들로 구성된 운동 모임을 마주칠 수 있는데 거의 PT체조 수준으로 소리질러가며 뛰어다닌다. 파티장 같은 요란한 음악소리는 덤.

유아숲 체험장[편집]

어린이들을 위해 이것저것 체험할 수 있게 꾸며놓은 체험장. 야외식물원을 지나다 보면 나온다.

고유 소나무림 탐방로[편집]

야외식물원 방면 등산로에서 인접한 곳에 위치한 짧은 코스. 일광욕을 위한 썬베드도 비치되어 있다.

소나무힐링숲[편집]

2017년 6월부터 개방된 곳으로 북측구역에 위치해있다. 사전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 한적하게 걸어갈 수 있는 소나무길이며 앉아서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등을 조성해 놓았다.

전망대[편집]

N서울타워 부근을 제외하면 높은 위치의 전망대가 2군데 있다. 하나는 '남산공원 중간 전망대'라고도 불리우며, 버스를 타고 왔던 도로를 10~20분 정도 거슬러 내려가면 나온다. 이곳에서는 용산구 일대, 한강 건너편과 N서울타워가 보인다. 의자가 있고, 조용하고 시야가 넓어 천천히 느긋하게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뉴스에서 서울의 대기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방송사에서 단골로 다녀가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위에서 말한 도로를 3분 정도 가다 보면 왼쪽에 체육시설이 보이는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가다가 오른쪽으로 빠지는 샛길로 가면 등산코스의 전망대답게 생긴 곳이 나온다. N서울타워 인근을 제외하면 전망대 중 가장 높은 위치다. 아래로 목멱산 성벽도 보이고, 멀리로는 서울의 북쪽을 조망할 수 있다.

북서쪽에서 N서울타워로 접근하는 계단길 중간에는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전망대도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관저를 한남동으로 이전하면서 포토존 일부 구역에서 관저가 관측됨에 따라 대통령경호처 경호원들이 그 구역에 대기하며 사진 촬영을 제한하고 있다.

삼순이계단[편집]

남산공원 북측 순환로에서 가까운 소파로 서쪽 부분에 있는 계단으로 서울특별시 교육연구정보원(옛 어린이회관)의 옆에 있다. 소파로와 남산 자락을 이어주던 그저 평범한 돌계단이었지만 지난 2005년에 방송된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이 계단이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과거 남산의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바로 이 삼순이계단이라는 설이 언제부터인가 널리 퍼져 있었다. 실제로 2017년에는 tvN에서 송출한 "동네의 사생활"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계단에 대해 소개하면서 이것에 대해 언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정보로, 조선신궁 일대의 지리를 나타낸 1927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관폐대사조선신궁궁역지도(官幤大社朝鮮神宮宮域地圖)' 라는 지도가 있는데, 이 지도를 통해 현재의 남산과 당시를 비교하면 삼순이계단은 조선신궁 계단과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봉수대[편집]

남산 정상 팔각정 앞에 있는 봉수대이다.

조선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1394년(태조 3년)부터 갑오개혁을 실시한 1895년(고종 32년)까지 500년 간 기능했다. 역할을 다한 후에도 봉수대 자체는 남아서 1930년대까지는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확실하지 않은 시기에 사라졌다.

지금 봉수대는 1993년에 복원한 것이다. 원래 남산에 4군데가 있었는데 팔각정 앞의 봉수대만 다시 지었다. 처음에는 개방했는데 관람객들이 하도 낙서를 심하게 해놔서 2005년에 폐쇄했다가 2년 뒤인 2007년에 다시 개방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낮 11시부터 12시 30분 사이에 조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봉화에 불을 올리는 의식을 재현하고 있다.

남산에 가능 방법[편집]

  • 걸어가는 방법: 남산 코스를 이용하면 걸어서도 올라갈 수 있다. 특히 남산의 계단 코스는 필히 가볼 것. TV에서 많이 나왔다. 무한도전 등 많은 대중매체에 소개되었던 장소이다. 심지어 일본 예능인 성우여행사에 어서오세요를 통해 일본 성우 노지마 켄지와 히로하시 료가 그걸 체험했다. 서울교육연구정보원을 지나 올라가는 계단길이 가장 붐비지만, 그 외에도 북측 계단길과 남측 계단길도 가볼 만하다.
  • 버스 이용: 순환버스인 서울 01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남산 정상으로 향하는 보행로 입구(대표적으로 백범공원, 남산도서관, 국립극장, 하얏트호텔)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버스는 국립극장 방향에서만 일방통행으로 운영된다.
  • 지하철+버스 이용: 충무로역이 가깝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외에 명동역이나 동대입구역, 회현역 정도. 서울역에서도 힐튼호텔 뒤편으로 가면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회현역에서도 남대문시장을 지나서 올라가는 길이 있다.
  • 케이블카 이용: 남산 케이블카는 엄청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름 명물 중에 명물로써 가격은 다른 곳보다 비싸지만 그래도 타볼 만하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 참고로 명동역 4번출구나 회현역 1번출구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남산3호터널 근처에는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이어지는 남산오르미가 있다.
  • 자전거 이용: 서울에 사는 자덕들이라면 반드시 올라간다. 1.9km의 짧은 코스로 경사도도 평균 6.6%, 가장 경사진 곳이 10% 가량이니 초보자 연습용으로 추천. 다만 서울시 측은 자전거 이용자들 때문에 일어나는 무수한 민원과 사고 때문에 자전거 이용자를 눈엣가시로 보고 있다. 주된 민원 사유는 자전거의 인도 침범과 역주행, 과속. 인도 침범은 남산 좁은 도로에서 관광버스를 보면 비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쳐도 일방통행 구간에서 잠시 돌아가는게 귀찮다고 역주행(남산 전망대→국립극장 방향)을 하다가, 과속은 내리막(전망대→남산도서관 방향)에서 제한속도(시속 20km/h) 이상으로 다니다가 패인 곳이나 물이 고인 곳, 요상한 과속방지턱 때문에 버스/보행자와 사고가 잦았다. 그러던 와중에 2013년 여름에 남산 내리막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중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환자가 발생하자 서울시 측에서 한동안 자전거 통행을 일절 금지시킨 적이 있었다. 그러다 자전거 단체들의 계속된 요청에 2014년 3월 1일부로 자전거 통행이 재개됐다. 단, 자전거 이용 등반 시 회현역 방향이 아닌 충무로, 동대입구 방향으로 가야 하며 일방통행이기 때문이다. 내려올 때는 회현역 방향으로 내려 오면 된다.
  • 자가용 이용: 안 된다. 남산은 2005년 5월 1일부터 환경 보호 명목으로 일반 개인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오직 업무용 차량만 통과 가능하다. 예외로 국가유공자와 장애인의 경우 중증 장애인이면 가능하다. 경증 장애인은 불가다. 동대입구에서 가는 길은 국립극장 주차장이 공사로 인해 폐쇄되었기 때문에 꼭 차량을 끌고 와야 한다면 용산동2가 행정복지센터, 남산도서관, 남산케이블카, 남산야외식물원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자.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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