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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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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들판은 들을 이룬 지역이다.

개요[편집]

  • 들판은 들을 이룬 벌판이다. 즉 풀이나 곡식들이 자라는 평평하고 넓게 확 트인 벌판을 가리킨다. '들판에 누렇게 익은 곡식',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이라고들 한다. 벼를 재배하는 논을 들판이라 이르는 듯하지만, 굳이 ‘논’을 들판이라 부르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편평하고 넓게 트인 땅이 '들'이고 들을 이룬 벌판을 따로 '들판'이라 풀이해 놓았다. 편평하고 넓게 펼쳐진 논이 곧 들판인 셈이다.

들판과 벌판[편집]

  • '들', '들판', '벌판'은 모두 산이나 언덕이 없이 사방이 탁 트이고 평평한 땅을 가리키지만 차이를 간직한 말들이다. '산에 들에 피는 꽃'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들'은 평지이면서 초목을 품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손쉽게 왕래할 수 있다. 토양도 식물이 자라기에 알맞아서 논밭으로 일궈내기가 쉽다.
  • '벌판'은 식물이 살지 못하는 황무지나 초목이 드문드문 자라는 척박한 땅을 가리킨다. 인가에서 사뭇 멀어 사람의 발길이 뜸하거나 아예 인적이 닿지 않는 곳이다. '들'에 핀 꽃은 다른 벗들이 있어 외롭지 않겠지만, '벌판'에 핀 꽃이라면 필시 고적감을 견디어낼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하다. '벌판'은 불모지가 주는 황량한 느낌이 있어서 쉬이 '허허 벌판'이나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벌판' 같은 표현으로 이어진다.
  • '들'은 마을과 가까우면서도 그 한복판에 인가가 들어서 있는 광경을 상상하기 힘든 반면, '벌판'은 마을에서 멀기는 해도 혹여 집칸이 들어서 있을 수 있다. 식물만으로 채워져야 하는 '들’에 건축물이 하나라도 들어섰다면 이미 '들'이 아니다. 하지만 '벌판'은 인가가 한두 채 들어섰다 해도 주변 땅이 모두 황무지로 남아 있는 한 여전히 '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서 '허허 벌판에 외로이 서 있는 집' 같은 표현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다.
  • '들판'은 '들'의 한 종류다. '들'이 웬만큼 넓어지면 '들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별로 넓지도 않은 가을 논을 두고 '황금 들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곡이 무르익는' 곳으로 '들'보다 '들판'이 더 어울리는 이유도, 여러 가지 곡식이 자라기 위해서는 너른 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벌'도 '벌판'을 포함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갯벌', '황산벌'처럼 합성어를 이루거나 옛 지명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정도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나 '읍 중심부에서 훤한 벌을 질러 시오 리 밖, 유동이란 낙동강변의 칠십여 호 마을이 그의 고향이었다' 같은 문학적 쓰임새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는 '벌판'보다 '들'이나 '들판'을 만나기가 훨씬 쉽다. 산지가 태반인 땅덩이에서 나머지 평지가 대부분 '벌판'이었다면, 봄여름의 푸른 '들'이나 가을바람에 솨솨거리는 누른 '들판'을 바라보는 행복감은 맛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 '들'과 '벌'은 둘 다 '아주 넓고 평평하게 생긴 땅'을 가리키는 말인데, '들'은 논이나 밭을 포함하고 있는 넓은 땅이란 점에서, 그렇지 않은 '벌'과 조금 차이가 있다. 농경국가인 우리나라는 예부터 들판을 갈아 곡식을 키웠기 때문에, 우리의 들판은 대개 논밭을 포함한 넓은 땅이다. 반면 만주 지방의 편평하고 넓게 트인 땅은 기후가 척박하고 습지가 많아 논밭을 일구기 어려우니, 그저 벌판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황금빛 들판'은 빛깔만을 뜻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쌀이 곧 생명인 농민들에게 있어서 벼가 누렇게 익은 넓은 논은 그야말로 황금을 품고 있는 들판이다. 황금만큼이나 귀한 벼가 가득 자라 있는 들판이니 '황금빛 들판'이라 말했을 것이다. 누렇게 변한 갈대가 가득 자라 있는 넓은 땅은 누런 벌판일 뿐이다.

관련 기사[편집]

  • 하늘에서 보는 우리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원주의 자연마을들을 드론으로 촬영해 각 마을들이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살펴보고, 마을 이름에 담긴 역사적 유래와 마을 역사들을 소개한다. 무실동 이마트 원주점과 육민관고교 사이, 그리고 동쪽의 거장아파트와 서쪽의 남여(藍輿)산 사이둔전들과 개사리들에 농토가 사라지고 가로세로 기다란 도로가 놓이더니 들판 북쪽으로는 '원주역(原州驛)'이 들어섰다. 역세권개발 사업으로 토지가 구획되더니 건물이 하나 둘 건립되기 시작한다. 들판 한쪽에 수북이 연꽃이 피던 조그만 연못도 이제는 사라져 볼 수 없다. 무실동 마장동(馬場洞)의 요즘 모습이다. 들판 북서쪽 배부른산을 휘돌아 나온 철로가 마장동 위쪽을 가로질러 백운산 터널을 빠져 제천으로 이어진다. 예전에 둔전들과 개사리 들판에 말을 놓아먹이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말마(馬)에 마당장(場)을 써 마장동(馬場洞)이라 했던 마을이 이제는 철마(鐵馬)가 오가며 쉬는 곳이 되었다. 원주 중심 남쪽의 가장 너른 들판 마장동은 동쪽은 서곡, 19번 국도를 따라 흥업면 소재지 울업들이 있고, 끝에는 연세대 미래 캠퍼스까지 이어진다. 서쪽으로는 배부른산 남쪽을 도는 들판은 사재울들을 거쳐 만종과 문막으로 연결된다. [1]
  •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종시의 도시개발지 바로 옆에 '장남들'이라는 이름의 들판이 있다. 공공기관 청사나 주택·상가 등에 공간을 내주고 논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13만 5,000㎡ 규모의 이 공간에서는 현재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사람들은 원래 이곳을 '장남평야'로 불렀으나 지금은 '장남들'로 부른다. 공간이 너무 작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2015년부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천연기념물 228호이며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흑두루미 부부가 매년 이곳을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흑두루미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지정한 새이기도 하다. 2022년에는 반가운 소식이 예년보다 빨리 전해졌다. 매년 11월 13일 전후에 모습을 드러내던 흑두루미 부부가 2022년에는 10월 28일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흑두루미가 2주나 빨리 찾아오자 시민모임 관계자들은 이를 크게 반겼다. 흑두루미 부부가 빨리 찾아오자 시민모임 회원들은 신이 났다. 모니터링단을 구성해 서식환경을 살펴보는 것은 물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보내준 후원금으로 구입한 모이를 주는 등의 보전 활동에 들어갔다. 이 모이는 흑두루미 이외에 장남들을 찾는 큰고니·큰기러기·잿빛개구리매·참매·매·큰말똥가리 등의 먹이도 된다.[2]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이동진 시민기자, 〈하늘에서 본 우리마을 (22) 무실동 마장동〉, 《원주투데이》, 2022-11-14
  2. 윤희일 선임기자, 〈세종시내 작은 들판에서 벌어진 기적 같은 일…흑두루미 부부 8년째 찾아와〉, 《경향신문》, 2022-11-01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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