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래리 페이지

해시넷
이동: 둘러보기, 검색
래리 페이지(Larry Page)
구글(Google)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미국 구글(Google)의 공동 창업자 겸 CEO이다. 1998년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함께 구글을 창립했다. 2015년 8월 새로운 지주회사인 알파벳(Alphabet Inc.)을 설립하여 2015년 10월부터 현재 알파벳의 CEO로 활동 중이다. 래리 페이지는 미시간 대학교 명예 박사 학위, 스탠퍼드 대학교 컴퓨터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타고 월렌트 대형 가로 배너.jpg
이 그림에 대한 정보
[타고] 1개월 단위로 전기차가 필요할 때! 타고 월렌트 서비스

약력[편집]

  • 1991년 이스트 랜싱 고등학교 졸업
  • 1996년 8월 구글 초기 버전 발표
  • 1998년 구글 설립
  • 2009년 미시간 대학교 명예 박사 학위[1]
  • 2011년 4월 구글 CEO
  • 2015년 7월 알파벳(Alphabet) CEO

수상[편집]

  • 1998년 PC Magazine Top 100 웹 사이트 및 검색 엔진으로 선정
  • 1999년 웹 응용 프로그램 개발 분야 혁신 기술 우수상
  • 2000년 People's Voice Award "Webby Award" 수상
  • 2002년 세계경제포럼 내일을 위한 글로벌 리더
  • 2002년 메사추세츠 공과 대학(MIT) "35세 이하 세계 100대 혁신가 중 한 명"
  • 2003년 IE 비지니스스쿨 경영학 석사(MBA)
  • 2004년 마르코니 상 수상 및 콜롬비아대학의 마르코니 펠로우로 선출
  • 2004년 X Prize 이사회의 수탁자로 선정 및 National Engineering Academy에 선출
  • 2005년 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펠로우로 선출
  • 2008년 the Princess of Asturias Awards "Communication Award" 수상
  • 2009년 미시간대학 명예 박사 학위
  • 2015년 포브스 '미국의 가장 인기 있는 최고 경영자' 1위
  • 2017년 Italy Agrigento 명예 시민권 수여

생애[편집]

1973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시간주립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였고, 어머니는 같은 대학교 컴퓨터 강사였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6살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미시간대학교에 진학하여 컴퓨터를 전공했다.[2]

교수가 되고자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대학원에 진학하여 같은 유대인이자 동갑인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을 만났다. 대학원 친구였던 페이지와 브린은 당시 막 태동한 월드와이드웹(WWW)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고, 방대한 웹사이트에서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알고리즘에 대해 페이지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페이지 랭크(Page Rank)라고 이름을 붙였으며, 이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검색엔진에 대해 백럽(BackRub)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이후 10100, 즉 10의 100승을 의미하는 구골(Googol)과 발음이 비슷한 구글(Google)로 이름을 변경했다.

당시 23세의 젊은이들이었던 두 사람은 회사 경영에 부담을 느끼고, 구글 검색엔진을 야후(Yahoo)와 알타비스타(Altavista) 등에 매각하려고 하였으나 협상이 결렬되었다. 다행히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창업자인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의 투자를 받아 독자 회사를 세우기로 하였다.

1998년 9월 구글 회사를 설립하고, 래리 페이지가 대표이사(CEO)를 맡고, 세르게이 브린이 사장(President)을 맡았다. 이후 구글은 아마존(Amazon)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 등 3명으로부터 엔젤투자를 받았으며, 뛰어난 검색 기능과 광고를 통한 수익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당시 28세의 청년이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경영에 부담을 느끼고, 전문 경영인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2001년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를 구글의 대표이사(CEO)로 영입했다. 2004년 8월 구글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미국 나스닥(NASDAQ)에 상장하면서, 구글의 주식 지분 약 16%를 소유한 래리 페이지는 세계적인 부호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래리 페이지는 신경 손상으로 인한 성대 마비가 있어서, 대중 앞에서 오랫동안 말을 하기 어려웠다. 그로 인해 회사의 공식 발표는 대부분 CEO인 에릭 슈미트가 진행했으며, 래리 페이지는 은둔형 경영자로 불리게 되었다.

2005년 래리 페이지는 앤디 루빈(Andy Rubin)을 만나 안드로이드(Android) 운영체제를 개발한 안드로이드사를 인수했고, 2006년 주식교환 방식으로 유튜브(YouTube)를 인수했다.

2011년 38세가 된 래리 페이지는 구글 대표이사(CEO)를 맡아 직접 회사를 이끌었다. 회장으로 물러난 에릭 슈미트는 래리 페이지에 대해 “더 이상 보호자가 필요 없다”라고 썼다. 2015년 알파벳(Alphabet)이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구글 등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구글[편집]

래리 페이지(Larry Page)

1998–2001[편집]

창립[편집]

1998년 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은 초기 도메인 이름이 "Googol"에서 파생된 구글(Google Inc.)을 창립했다.[3] 처음에 래리 페이지는 CEO로 임명되었으며,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의 사장을 역임하였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사명은 "전 세계 정보를 체계화하여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빌려 2000년 초 Mountain View 사무실로 창단했다. 1999년에 래리 페이지는 구글이 서버를 위해 빌렸던 제 3자 창고의 각 제곱미터에 더 많은 것을 넣을 수 있도록 작은 서버들로 실험을 했다. 이것은 결국 그 당시 구글의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빠른 검색엔진으로 이어졌다. 2000년 6월까지 구글은 약 10억 개의 인터넷 URL을 색인화하여 그 당시 웹상에서 가장 포괄적인 검색엔진이 되었다.

구글이 발견한 10가지 진실[4]

  1.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추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2.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3. 느린 것보다 빠른 것이 낫다.
  4. 인터넷은 민주주의가 통하는 세상이다.
  5. 책상 앞에서만 검색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6.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
  7. 세상에는 무한한 정보가 존재한다.
  8. 정보의 필요성에는 국경이 없다.
  9. 정장을 입지 않아도 업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
  10. 최고라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초기 관리 스타일[편집]

래리 페이지는 상당히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 비엔지니어가 엔지니어를 관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매니저를 전부 해고하려 시도가 있었다. 구글의 고유한 기업문화 상당 부분은 래리 페이지의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래리 페이지는 심지어 그의 팀이 경영학 교리를 참고 자료로 사용하는 것을 문서화했다.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추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 위임하지 마라. 직접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라.
  • 가치가 없다면 방해하지 마라. 당신이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사람들이 실제로 일을 하면서 서로 이야기하게 해라.
  • 꼰대가 되지 마라.
  • 아이디어는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중학생이라고 해서 그것이 존중과 협력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누군가가 "아니오."라고 말함으로써 무언가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아니오라고 말하면, 당신은 그들이 그것을 끝내는 더 좋은 방법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래리 페이지의 새로운 모델은 지속적이지 않았으며 영향을 받은 직원들 사이에 불만을 갖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엔지니어가 엔지니어를 관리하는 문제는 더욱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엔지니어 팀의 관리 역할에 엔지니어만 배치하는 관행이 실리콘 밸리 전역의 표준으로 확립되다.

2001-2011[편집]

관리 및 확장의 변화[편집]

실리콘 밸리의 저명한 투자자인 클라이너 펄킨스 코필드 & 바이너(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와 세쿼이아 캐피탈(Sequoia Capital)이 구글에 총 5,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하기 전, 래리 페이지는 투자자들이 보기에 한 기업을 이끌기엔 너무 어렸고, 경험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구글의 외적 성장을 내부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적 기틀을 잡고 대외 활동을 지휘할 경험 많은 최고 경영자가 필요했다. 마침내 2001년 8월 노벨(Novel)의 CEO를 역임했던 에릭 슈미트(Eric Schmidt)에게 구글의 최고 경영자 자리를 승계하고 자신은 창업자로서 에릭 슈미트에게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5] 에릭 슈미트의 리더십 아래, 구글이 주요 성장과 포함 확장의 기간 시행 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리고 2005년 앤디 루빈과 만나 그의 아이디어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5,000만 달러에 인수를 이끌어 2010년까지 휴대전화 시장의 17.2%가 안드로이드 판매로 구성되어 처음으로 애플을 추월하였다. 안드로이드는 곧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바일 운영체제가 될 수 있었다.

구글 CEO 직책 인수[편집]

2011년 1월 에릭 슈미트가 공식적으로 구글 CEO에서 회장으로 직책을 바꾸면서 2011년 4월 래리 페이지는 구글의 CEO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되었다. 당시 구글은 시가 총액 180억 달러 이상이고 직원은 24,000명 이상이었다. 2011년 1월 20일 에릭 슈미트는 임기의 마지막을 발표하고 트위터로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더 이상의 감시는 필요 없다!(Day-to-day adult supervision no longer needed!)"[6] 이는 곧 래리 페이지의 경영 능력이 훌륭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래리 페이지는 2001년 CEO를 에릭 슈미트에게 넘겨주고 철저히 구글의 뒤에서 묵묵히 구글의 미래와 인류의 미래를 설계했다. 그러면서도 구글의 모든 직원, 엔지니어들과 교감하며 '소통과 실천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7]

2011-2013[편집]

새로 구글의 CEO가 된 래리 페이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실패는, 대담하게, 담대하게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회사가 실패하는 이유는 야망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경영 철학을 가지고 운영을 하기 시작했다.[7] 그의 주요 목표는 가장 중요한 사업부를 감독하는 경영진에 대한 더 큰 자율성 개발과 팀 간의 공동 작업, 커뮤니케이션 및 단일성 향상이다. 또한 "래리 팀(L-Team)" 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운영위원회를 관리했다.[8] 또한, 그는 회사의 고위 경영진을 재편성하여 유튜브, 애드워즈(Adswords), 구글 검색 등 구글의 가장 중요한 제품 부서의 맨 위에 CEO와 같은 매니저를 배치했다. 보다 응집력이 강한 팀 환경에 따라 래리 페이지는 세르게이 브린과의 거칠고 격렬한 논쟁을 고위 경영진의 모범 사례로 삼으려 했던 구글 초기 그의 접근 방식과 대비되는 새로운 "전투에 대한 무관용" 정책을 선언했다. 페이지는 CEO 역할에서 벗어나 있는 동안 생각을 바꾸었는데, 결국 그의 야심찬 목표가 조화로운 팀이라는 변화를 요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변경 및 통합 프로세스[편집]

2013년 3월까지 구글의 제품, 기능, 서비스 중 적어도 70개가 결국 폐쇄되고, 나머지 제품들의 외관과 성격이 통일되었다. 당시 구글 검색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존 와일리(John Wiley)는 2013년 1월 유선 인터뷰에서 래리 페이지의 재설계 검토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묘사하기 위해 "Moon shots"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바탕으로 2011년 4월 4일에 공식적으로 "프로젝트 케네디(Project Kennedy)"를 시작했다. "칸나(Kanna)"라는 이름으로 구글의 제품군에 대해 획일화된 디자인을 창조하려고 시도했지만, 한 팀이 그러한 변화를 추진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프로젝트 케네디가 시작된 2013년 안드로이드 사용자 경험 책임자인 마티아스 두아르트(Matias Duarte) 수석 이사는 구글이 디자인에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1년 6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점진적으로 출시된 "케네디"의 최종 결과는 "명확성, 공백, 청결, 탄력성, 유용성 및 대부분의 단순성"에 초점을 맞춘 The Verge 기술 자료에 기술되었다. 최종 제품은 래리 페이지의 목표와 일치하여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일관된 제품군을 목표로 하였으며, "케네디"는 Duarte부터 "디자인 혁명"이라고 불렸다. 구글의 "UXA"(사용자/그래픽 인터페이스) 디자인 팀은 프로젝트 "케네디"를 구글의 응용 프로그램 소프트웨어를 아름답고 성숙하며 접근하기 쉽고 일관된 플랫폼으로 변형시키는 진정한 UI 프레임워크를 설계하고 개발하는 임무를 맡았다. "UXA"라는 작은 팀은 점차 프로젝트 "케네디"가 "제도화" 되게 하였다.[9]

인수 전략 및 신제품[편집]

래리 페이지는 새로운 제품과 회사를 인수할 때, "하루에 한두 번 사용할 물건이며, 그것이 당신의 삶을 더 좋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업 인수가 초기 자격요건으로 "칫솔 테스트"를 통과했는지를 물었다.[10] 이 접근법은 수익성보다 유용성과 비즈니스 취득 프로세스에서 드문 것으로 알려진 단기간의 금전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잠재력을 추구했다.

래리 페이지의 두 번째 임기와 함께 페이스북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그는 마침내 2011년 중반 구글의 자체 소셜 네트워크인 구글 플러스로 치열한 경쟁에 대응했다. 몇 차례 지연된 후, 이 소셜 네트워크는 매우 제한된 현장 테스트를 통해 공개되었고, 당시 구글의 사회 수석 부사장인 빅 군도트라(Vic Gundotra)가 이끌게 되었다.

2011년 8월 래리 페이지는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Motorola Mobility)를 인수하기 위해 125억 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은 구글이 안드로이드애플 등 기업의 소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허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래리 페이지는 2011년 8월 15일 구글의 공식 블로그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포함한 기업들이 안드로이드에 대한 반경쟁적 특허 공격에 협력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커뮤니티의 경쟁과 혁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근 특허 경매 결과에 개입해야만 했다. 모토로라 인수는 구글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강화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일 것이며, 이는 우리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다른 회사들의 반경쟁적 위협으로부터 안드로이드를 더 잘 보호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라고 공표했다.

구글은 2012년 5월 "크롬북(Chromebook)"을 공개했다. 이 하드웨어 제품은 구글 운영체제인 Chrome OS에서 실행되는 노트북이다.

2013-2015[편집]

2013년 1월 래리 페이지는 와이어드(Wired)와의 드문 인터뷰에 참여했는데, 이 인터뷰에서는 작가 스티븐 레비가 래리 페이지의 "10X" 철학에 대해 논했다. 구글 직원들은 경쟁 업체의 제품보다 10배 이상 뛰어난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할 것이다. 구글 X의 아스트로 텔러(Astro Teller) 대표는 스티븐 레비에게 ""10X"는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핵심일 뿐"이라고 설명했고 래리 페이지는 ""10X"는 다음 "10X"가 어디서 나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11] 래리 페이지는 스티븐 레비와의 인터뷰에서 유튜브와 안드로이드의 성공을 투자자들이 처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미친' 아이디어의 예로 언급하면서 "미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래리 페이지는 구글 플러스의 위상에 대해 "매우 기쁘다"고 밝혔으며, 최근 도입된 SOPA 법안과 국제전기통신연합(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의 제안과 관련하여 인터넷에 대한 우려를 논의하였다.

"나는 인터넷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큰 공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이제 중동 문제 때문에 인터넷을 두려워하고 있고, 그들은 내가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단지 돈을 벌기를 원하는 많은 상업적 이익으로 보는 것에 조금 더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SOPA에 대한 반발과 같은 엄청난 사용자 반응을 보았다. 나는 정부가 사용자들의 자유에 대해 그들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운다고 생각한다."

페이지는 2013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I/O 개발자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는 가능한 것 중 1%에 불과하다. 더 빠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가진 기회들에 비해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그중 많은 부분이 부정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읽는 모든 이야기는 구글 대 다른 사람이다. 그건 지루하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그는 그것의 원인으로 기술 분야의 일부들 사이에서 부정성과 제로섬 게임에 대한 인식의 초점을 인용하면서 "웹이 빨리 발전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중의 질문에 대해, 래리 페이지는 구글이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경험해 온 문제에 주목했다. 그 이슈는 구글이 아웃룩 프로그램을 구글과 상호 운용하게 했지만, 이전 버전과 호환이 되지 않았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관행을 "밀어내기(milking off)"라고 언급했다.

2013년 9월 래리 페이지는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개발 프로젝트인 칼리코(Calico)를 독자적으로 시작했다. 구글은 칼리코가 인간 건강 분야에서 혁신과 발전을 추구한다고 발표했고, 아서 레빈슨(Art Levinson) 애플 이사회 의장이자 전 Genentech CEO를 새로운 부서의 최고 경영자로 임명했다. 래리 페이지의 공식 성명은 다음과 같다. "고령화와 노화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건과 생명공학에 대해 생각해보면 수백만 명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래리 페이지는 2014년 3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밴쿠버에서 열린 TedX 학회에 참가했다. 프리젠테이션은 래리 페이지 홍보 담당 최고책임자인 레이첼 웨트스톤(Rachel Whetstone)과 구글의 마케팅 최고 관리자(CMO) 로레인 투힐(Lorraine Twohill)이 각본을 작성했고, 인공 지능 컴퓨터 프로그램의 시연회가 대형 화면에 펼쳐졌다. 래리 페이지는 기업들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기업들이 대체로 "부당한 비난"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50년 또는 20년 전"과 같은 점진적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높은 속도로 기술 혁신을 추진함으로써 석회화에 대응하려는 구글의 비전에 대한 일종의 점진적 접근법을 비교했다. 래리 페이지는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스페이스엑스(SpaceX)를 언급했다.

"일론 머스크는 인류를 후원하기 위해 화성에 가고 싶어 한다. 그것은 가치 있는 목표다. 우리는 구글에 꽤 부자가 된 많은 직원들이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고, 더 좋게 만들고 싶어서 일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돕고 싶다."

래리 페이지는 발명 및 상업화와 관련하여 니콜라 테슬라에 대해 언급했다.

"발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니콜라 테슬라는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를 발명했지만, 그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애썼다. 두 가지, 발명 및 혁신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물건을 정말로 상품화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회사를 합쳐야 한다."

래리 페이지는 더 이상 일상적인 제품 관련 의사결정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도록 2014년 10월에 대대적인 경영 구조 조정을 발표했다. 래리 페이지는 구글의 핵심 사업은 순식간에 전형적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구글 X 프로젝트, 구글 파이버를 포함한 엑세스와 에너지, 네스트 랩스(Nest Labs)를 통한 스마트홈 자동화, 칼리코(Calico) 산하의 생명공학 혁신 등 차세대 야심찬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래리 페이지는 비공식적인 "최고 상품 책임자"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표가 있고 난 뒤 구글의 핵심 제품 담당 임원들은 '선다 피차이((Sundar Pichai)' 당시 구글 수석 부사장에게 보고했다.

"알파벳(Alphabet)은 대부분 회사들의 모음집이다. 물론 그중 가장 큰 것은 구글이다. 이 새로운 구글은 다소 축소되었고, 대신에 알파벳에 포함된 우리의 주요 인터넷 제품들을 꽤 멀리 떨어져 있는 회사들이다. 근본적으로, 이것이 우리에게 별로 관련이 없는 것들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 더 큰 규모를 관리할 수 있게 한다고 믿고 있다.

  • 회사 이름의 유래
알파벳(Alphabet)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혁신 중 하나 인 언어를 나타내는 문자들의 집합 의미하며 구글 검색을 통해 색인을 생성하는 방법의 핵심이다. 우리는 알파 베팅(알파(Alpha)는 벤치 마크보다 투자 수익률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래리 페이지는 조직 재개편의 동기는 구글을 "더 깨끗하고 책임감 있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썼다. 또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투명성과 감독"을 개선하고 이전에 구글 생태계 내에서 관련이 없는 회사들에 대한 통제를 더 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래리 페이지는 2015년 이후 어떠한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으며 2013년 이후 제품 출시나 수익 신고도 하지 않았다.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Blomberg Businessweek)에서는 알파벳으로의 개편을 래리 페이지가 구글에 대한 모든 책임을 포기하는 동시에 구글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현명한 은퇴 계획이라고 표현했다. 알파벳의 간부들은 래리 페이지를 "퓨처리스트"로 묘사하고 있으며 일상적인 비즈니스 거래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으며, "문샷(Moon shot)"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일부 알파벳 회사 경영자들은 래리 페이지에 대해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드문 사무소 체크인이 "왕실 방문과 비슷하다"라고 말한다.

각주[편집]

  1. Googlepress, 〈Larry Page’s University of Michigan Commencement Address〉, 《구글》, 2009-05-02
  2. Will Smale, 〈Profile: The Google founders〉, 《BBC》, 2004-04-30
  3. 구글 공식 홈페이지 - https://about.google/our-story/
  4. 구글, 〈구글이 발견한 10가지 진실〉, 《구글》
  5. 강일용 기자, 〈(IT CEO 열전) 24살에 구글을 만들다, 래리 페이지〉, 《IT동아》, 2017-07-03
  6. 에릭 슈미트 트위터 - https://twitter.com/ericschmidt
  7. 7.0 7.1 박기종 칼럼니스트, 〈디지털 제국 구글의 리더 래리 페이지Larry Page 그의 첫 질문,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매일경제》, 2017-08-23
  8. Alexei Oreskovic, 〈Exclusive: Google CEO's inner circle: Meet the L Team〉, 《Reuters》, 2011-12-17
  9. 이서우 20기 학생기자, 〈Google 뉴욕지사의 비밀스러운 디자인그룹 UXA〉, 《LG Challengers》, 2014-12-19
  10. 배준호 기자, 〈구글 페이지 CEO, M&A에 ‘칫솔 테스트’ 실시하는 이유는?〉, 《이투데이》, 2014-08-20
  11. 김보라 기자, 〈(ICT혁신키워드)10배 더 혁신하라 '10X'〉, 《비즈니스워치》, 2017-05-08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래리 페이지 문서는 인터넷 기업가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