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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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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치
마카오 위치

마카오(Macau, 澳门)는 중국 남부에 위치한 특별행정구이다. 가까운 도시로는 주하이가 있다. 마카오는 1888년에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99년 12월 20일 중화인민공화국에 주권이 이양되었다. [1]

개요[편집]

마카오의 면적은 27.3 ㎢이며 인구는 642,500명(2019 추산)이다. 마카오는 난하이 연안, 주장하구 서쪽에 있으며, 주하이와 인접해 있다. 마카오반도타이파섬 중국어 표기는 당쯔섬(氹仔岛)·콜로아네섬 중국어 표기는 루환섬(路环岛)을 포함한다.

이름의 유래는 처음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 당도했을 때 현지인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주위에 있던 '아마 사원'이라는 대답인 '아마 까오(사원)'라는 말을 착각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경우에 따라 '마조각(媽祖閣)'을 잘못 들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마조(媽祖)'는 중국 푸젠성을 중심으로 하는 바닷가 지역에 거주하며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들 사이에서 신앙했던 바다의 여신이다.

수백 년 전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지어온 남유럽풍 고건축과 문화가 남아있어 이색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여러모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관광 산업이 발달해 있다. 이베리아 반도와 중국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마카오는 중국 영토이지만 일국양제가 시행되어 많은 부분에서 본토인 중국 대륙과 분리되어 있다. 마카오는 몇몇 국가 대표팀도 중국과는 별도로 가지고 있고 국제기구에도 중국과는 별도로 가입할 자격이 주어진다.

면적이 상당히 작고 인구가 적은 지역이지만 이 지역이 유명한 이유는 역시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박과 유흥의 메카로 2007년 이미 라스베이거스를 도박 매출에서 추월했고 그 격차는 해마다 크게 벌어지고 있다. 다만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이는 라스베이거스가 쇠락한 게 아니고 마카오가 2000년대 이후 매출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딱히 놀랄만한 일도 아니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중국의 개방과 더불어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마카오의 매출도 라스베이거스를 빠르게 앞지르게 된 것이다. 본토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비행기 타고 라스베이거스까지 가서 도박하는 것보다 자국령인 마카오로 가서 도박하는 게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싸고 마카오도 라스베이거스 못지 않게 화려하니까 굳이 라스베이거스로 도박하러 가지는 않는 편이다.

라스베이거스의 도박 산업 자본들이 죄다 마카오로 몰려간 것도 한몫했다. 당장 마카오 내 카지노의 모회사들은 대부분 미국 기업들이다.

마카오 카지노 라이센스는 2002년 6월에 받아서 2022년 6월까지로 되어 있다. 항간에서 시진핑의 공동부유 정책 덕에 그 전망이 어둡다고 하지만 민간인들과는 무관하고 고위공직자들을 주로 단속해 온 게 시진핑인 데다 동남아시아 내 화교들을 상대로 카지노 사업을 확장하면 되기에 딱히 상관은 없는 문제이다. 중국 정부도 마카오의 주 산업이 오락 관광임을 뻔히 알고 있는지라 카지노를 무조건 죄악시하기는 힘들다.[2][3]

자연환경[편집]

남중국해에 접하는 마카오는 중심지가 되는 반도부와 타이파섬콜로아느섬 사이를 매립해 연결한 섬으로 되어 있다. 반도부 동쪽에는 주강(珠江, 주장)이 있고 서쪽에는 시 강(西江)이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본토의 주하이(珠海) 경제특구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인구밀도가 워낙 높은 탓에, 마카오는 타이파와 콜로아느 두 섬 사이의 바다를 메우는 등, 땅을 넓히기 위해 간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1970년대 이후에 대규모 매립을 했기 때문에 마카오의 지형은 대체로 평탄하지만, 많은 언덕이 지형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마카오반도는 원래 이었지만 서서히 사주가 성장해 좁은 지협이 되었다.

마카오는 고도로 밀집된 도시이며, 경작지, 목장, 삼림이나 은 없고,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기 힘들다. 이 때문에 마카오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어업이나 수산업 등 바다와 관련된 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이 때문에 광둥 요리가 발달되어 있다.

마카오는 덥고 습한 아열대 기후로 평균 습도는 75% ~ 90% 정도이다. 계절별 날씨는 몬순에 크게 좌우되며,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급격하다. 연간 평균 기온은 22.3 °C로, 7월은 가장 더운 달이고, 평균 28.6 °C를 기록한다. 가장 추운 달은 1월이며, 평균 14.5 °C이다. 중국 남부의 해안부에 위치하여, 연간 2,030mm의 많은 강수량을 가진다. 그러나 1월에서 3월까지의 겨울은 대부분 대륙성 몬순의 영향으로 건조하며, 10월에서 12월까지의 가을은 화창하며 따뜻하고 습도가 낮다. 겨울은 비교적 춥지만 화창하고, 4월에서 6월까지 봄에는 무덥고 습한 기운이 여름까지 이어진다. 여름은 가장 덥고 습하며, 때로는 비와 태풍을 동반한다.

역사[편집]

마카오는 본래 광둥성 샹산현(香山縣, 현 중산 시 부분)이였다. 1553년(명나라 가정(嘉靖) 31년), 포르투갈은 현지 관리에게 화물이 젖어서 육지에서 말리고 싶다는 구실로 뇌물을 주고 마카오 체류를 인정받았고, 4년 뒤부터는 뇌물을 매년 건네면서 본격적으로 마카오에 눌러앉게 되었다. 1572년부터는 명나라 조정도 매년 500냥의 지대(地代)를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거주권을 인정하였다. 해적 정벌을 원조한 공적으로 포르투갈인에게 마카오 거주권을 주었다는 설(說)은 18세기에 포르투갈인이 창작한 이야기이다. 처음 정착할 당시 포르투갈인이 도교 사원인 마쭈거(媽祖閣) 근처에 살았는데, 현지인에게 그곳의 지명을 물으니 현지인은 사원의 이름을 묻는 것으로 착각하여 "마쭈거"라고 알려주었는데, 이를 잘못 알아들어 마카오라고 부른 것이 현재 이름이 되었다.

그 후 마카오는 금, 은, 도자기, 아편 등의 중개 무역과 기독교 포교의 기지로서 번영했다. 포르투갈과 청나라가 체결한 1887년 리스본 의정서, 1888년 청-포르투갈 통상 우호 조약에 따라 마카오는 정식으로 포르투갈령이 되었지만,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로 경영하면서 무역항은 쇠퇴하게 된다.

1966년 폭동을 계기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다. 1986년부터 중화인민공화국에 마카오를 이양하는 교섭이 시작되어, 이양 시기를 1999년 12월 20일로 하는 협정이 1987년 중화인민공화국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되었다. 1993년 3월 "마카오 특별행정구 기본법(澳門特别行政區基本法)"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에서 채택되어, 1999년 12월 20일에 포르투갈로부터 이양되었다. 1999년까지는 총독이 최고의 통치 관직이었다.

현재의 마카오는 일국양제를 정한 기본법에 의해 2049년까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경제 체제 지속이 약정되어 있다.

산업[편집]

면적이 작은 데다가 그 중 절반 가량은 10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바다를 메워서 만든 땅이다. 따라서 경작지도 매우 부족하여 50ha에 지나지 않는다. 동식물 자원은 용나무와 유칼립투스 등 열대성 식물이 대부분이며, 약용식물도 적지 않게 생산된다. 나비의 품종은 100종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편이다. 주변 천해(淺海)의 어업 자원은 풍부하여 바다새우와 조개 등 150종 이상이 있다. 경작지가 미미하기 때문에 소량의 채소를 재배하고 소수의 가축을 사육할 뿐 본격적인 농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식량과 부식품은 모두 대륙에 의존한다. 이에 비하여 어업은 전통 업종으로 50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종전에는 수출가공업과 관광도박업, 건축부동산업 그리고 금융보험업이 산업의 네 기둥을 이루었으나, 1990년대 이래로는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거리 풍경과 명승 사적, 해안의 리조트 등 풍부한 관광 자원을 기반으로 한 관광업과 카지노업이 주요 산업을 이루고 있다. 1992년 이래로 관광업과 관련 서비스업으로 인한 소득이 대외 수출액을 초과하였으며, 2003년 중국과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을 체결한 뒤 본토 중국인의 마카오 자유 관광이 허용되면서 관광업이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카지노업의 비중도 갈수록 커져서 1990년대에 카지노업으로 인한 세수(稅收)가 마카오 정부 재정수입의 50% 이상을 충당하던 것이 2007년에는 70% 이상을 충당하게 되었다. 관광업과 관련하여 건설업과 부동산도 활성화되어 있으며, 제조업은 노동집약적이고 수출 지향적인 섬유 및 의류 업종이 주류를 이룬다.

마카오는 본래 무역이 번성한 곳이었으나, 홍콩이 국제적 무역 거점으로서 발전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쇠퇴했다. 그로 인해 산업의 다각화를 목표로 하여 노력한 결과 현재는 직물(織物)을 비롯한 의료 관련 제품, 섬유, 장난감, 전자기기 등의 경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또 전통적으로 불꽃의 생산이 유명하다. 이들 경공업 제품의 90% 전후는 미국이나 홍콩 등에 수출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마카오 경제는 관광업에 치우쳐 있고, 또한 관광객이 도박으로 지출한 돈이 마카오 총 GDP의 94%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며, 여기에서 얻은 세금이 정부 세수입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교통[편집]

교통은 마카오 사회경제 발전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중국에서 대외교통이 가장 발달한 문호(門戶)였으나 뒷날 홍콩이 번성하면서 그 역할이 이양되었다. 1960년대 이후 다시 홍콩의 영향하에 대외교통이 부흥하기 시작하였고, 마카오 시가의 교통발전도 속도를 더하여 초고속 보잉 쾌속정과 호버크래프트 등이 등장하였다. 자동차 밀도는 1㎢당 358대로 도로가 매우 혼잡한 편이다. 심수항(深水港)은 없으며 연안 및 내륙항해 노선이 운항된다. 1995년 11월 마카오국제공항이 개항되어 타이완을 비롯한 국내외 20여 개 도시를 연결하는 노선이 운항된다.

문화[편집]

마카오는 중국포르투갈의 문화가 섞여 있으며 가장 가까운 데서 라틴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실제로 포르투갈어 사용기구 회원국으로도 가맹된 곳이 마카오이며 포르투갈어 어학연수 기관들 역시 훌륭한 기관들이 꽤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 풍인 세나두 광장(largo de senado)도 있는데 이 광장은 포르투갈이 조성하였으며, 보도블록 하나하나까지 포르투갈에서 직접 만들어 마카오까지 운송해 조성한 광장이다. 그리고 마카오 주민 중 토박이 마카오인은 가톨릭을 믿고 포르투갈어 이름과 중국어 이름을 섞어 쓰며 중국 출신들은 불교나 도교를 믿고 전통을 그대로 지킨다.[4]

관광[편집]

대표적 명승지인 마가오묘(妈阁庙)는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식 사찰로서 명나라 때인 1488년 창건되었다. 관인당(观音堂)이라고도 부르는 푸지선원(普济禅院)은 명나라 말기에 건립되었으며, 석가모니불·장수불·관음삼전 등이 있다. 바이거(白鸽) 공원은 마카오 최대의 공원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고목들과 구불구불한 길들이 인상적이다. 공원 안에는 포르투갈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카몽이스의 체류를 기념하여 건립한 박물관이 있고, 명·청 시대의 광둥 지역 예술품들과 도자기의 고장으로 유명한 스완(石湾)에서 제작된 자기들이 소장되어 있다. 다싼바파이팡(大三巴牌坊)은 1602년 건립된 세인트폴교회가 화재로 앞벽만 남고 모두 타버린 것을 기념하는 유적지이다. 모두 5개 층인 이 유적은 전체적 조각과 상감에 동서양 건축예술의 정수가 융화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 콜로안섬의 스파이완교외공원(石排灣郊野公園)은 각종 오락시설이 갖추어진 원림식(園林式) 대공원이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마카오〉, 《위키백과》
  2. 마카오〉, 《나무위키》
  3. 마카오〉, 《네이버 지식백과》
  4. 마카오의 문화〉,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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