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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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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왕국 국기
예멘 아랍 공화국 국기
북예멘 지도

북예멘예멘 아랍 공화국(1962–1990)과 그 이전의 예멘 왕국(1918–1962)을 가리킨다.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 있는 현재의 예멘 북부 지역에 있던 나라이다.

두 나라 모두 "북예멘"이라는 이름을 공식 국호에 쓰지는 않았으나, 1967년 남아라비아 연방이 남예멘 인민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구분을 위해 쓰이기 시작했다. 1967년 이전엔 북예멘을 가리켜 "예멘"이라고 불렀다. 1970년 남예멘은 이름을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으로 바꾸면서 두 예멘을 북예멘과 남예멘으로 구분해서 부르게 되었다. 두 예멘은 1990년 통일 정부를 구성하여 한 나라가 되었다.

개요[편집]

  • 주도: 사나
  • 면적: 195,000km²
  • 인구: 7,160,981명(1990년)
  • 공용어: 아랍어

역사[편집]

예멘 왕국[편집]

1918년 11월 1일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였으며,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드파의 세습 이맘이 통치하는 신정국가 형태의 왕국이 성립되었다. 이 때는 남예멘이 없었으므로 그냥 예멘이라고 통칭되었다.

1945년 아랍 연맹, 1947년 국제연합(UN)에 가입하였고, 1948년에 수도를 타이즈로 옮겼다. 예멘 왕국의 초대 국왕인 야햐 무함마드 하미드 앗딘은 근대화에 나름대로 신경을 썼지만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통치자였기 때문에 이 시기 예멘은 폐쇄적인 성격을 지닌 국가였다 1948년에 쿠데타 시도가 벌어지면서 암살되었고, 5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끝에 쿠데타가 진압된 이후로 국왕에 취임한 2대 국왕 아마드 빈 야히아도 하미드 앗딘보다는 개혁적이기는 했지만 쿠데타 진압 이후의 공화주의자들에 대한 화끈한 탄압과 보복으로 인해 악마 아마드라는 별칭을 얻었다. 쿠데타가 진압된 이후로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국왕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독재정치를 대대적으로 펼쳐나갔다.

1955년에 가말 압델 나세르의 영향을 받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신속하게 진압되었지만 이후로 이집트와 관계를 강화하면서 1958년에 왕국이었음에도 공화국을 자처하던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도하는 아랍연합공화국에 준 가맹했으나(어디까지나 준가맹한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의 나라로 통합된 것은 아니다.) 1961년에 탈퇴했다.

1962년 9월 19일, 아마드 빈 야히아가 사망하고 1962년 9월 26일 새 군주인 무함마드 알 바드르가 왕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이집트 나세르 정권의 영향을 받은 군인들이 사나를 점령했다. 이들은 '아랍연합공화국'을 선포, 왕당파와 내전을 치르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 왕당파를 지원하였고 이집트군이 공화국 편에서 개입했으나 1967년에 철군하였고, 1968년에 휴전협정이 맺어졌고, 1970년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아랍 공화국을 인정한다.

예멘 아랍 공화국[편집]

시아파 군주국이던 예멘 왕국에서 1962년 9월 26일 새 군주인 무하마드 알 바드르가 왕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이집트 가말 압델 나세르 정권의 영향을 받은 소장파 장교를 중심으로 한 자유 장교단이 사나를 점령했다. 이들은 '아랍 연합 공화국'을 선포, 압둘라 알 사랄 대령을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왕당파와 내전을 치르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 모로코, 팔라비 2세이란, 영국이 왕당파를 지원하였고 이집트군이 1962년부터 1968년까지 공화국 편에서 개입했으며 소련, 시리아가 공화파를 지원하였다. 미국은 공화정부를 승인하였으나 사우디와의 외교관계를 고려하여 공화정부를 지원하진 않았다.

사나에서 축출된 왕당파는 북부 고원지대를 점령하고 사나에 대한 탈환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공화정부와 왕당파의 실력이 비등하여 1965년부터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계속된 내전에 지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파이살과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1967년 8월, 예멘 내전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병력을 철수시켰다. 이에 대해 사랄 정권은 격렬히 반발했으나 공화정부의 군부도 계속된 내전에 염증을 내고 있었다. 결국 1967년, 압드 알 라흐만 이리야니를 중심으로 한 온건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사랄을 축출하였는데 이틈을 타서 12월, 왕당파가 총공세를 가해 사나를 포위하여 1968년 2월까지 무려 70일간 공세를 퍼붓는 상황이 되었다. 공화정부는 붕괴 직전으로 몰렸으나 소련, 시리아, 남예멘의 지원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결국 지칠대로 지친 왕당파도 온건파가 중심이 되면서 1968년 휴전협정을 체결하게 되었고 1970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가 공화정부로부터 왕당파를 정부에 포함시켜주겠다는 합의를 받아냄에 따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예멘 아랍 공화국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멘 내전에서 총 15만명의 예멘인이 사망하였다.

이후 북예멘은 군인들이 통치하는 군사정권이 유지되었다. 1970년, 북예멘은 신헌법을 반포하고 북예멘을 이슬람 공화국으로 만들었으며 공화국 평의회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북예멘 헌법은 입법부를 구성하지 않았으며 정당 활동도 금지하는 등 자문회의라는 모호한 단체를 통해서 의견을 수렴하여 통치하는 독재를 유지하였다. 공화국평의회 의장 이리야니는 중도좌파 무스닌 알마드 알아이니를 총리에 임명하고 사우디와의 합의에 따라 3명의 왕당파를 장관에 임명하였다. 허나 지방의 통치권은 사실상 독자적인 군대를 유지하고 있는 부족장들에게 있었으며 하시드와 바킬 등 대부족들의 영향력이 매우 강력했다.

이리야니 정권은 1974년 6월 13일, 이브라힘 알 함디 중령의 쿠데타로 붕괴되었다. 함디는 공화국평의회를 해체하고 군사평의회를 설치하여 군정을 실시했으며 1974년 6월 19일, 임시 헌법을 반포하고 1년 이내에 새 헌법을 발표할 것을 약속했으나 이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함디는 부족들의 권력을 약화하기 위해 자문회의를 해체하고 남부의 부족들을 지원하고 예멘 내전 중에 몰락하였던 구 좌파들의 정치활동을 허용했다. 이에 1976년 민족민주전선이 결성되었다.

1977년에 이르러 부족들의 반발이 격심해져서 반란부족들을 향한 공습이 행해지는 등 예멘은 다시 내전에 치달았다. 함디는 이 상황에 남예멘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였으나 아덴으로 출발하기 전날인 1977년 10월 11일 암살당했다. 함디가 사망하고 함디를 죽인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는 아흐마드 후세인 알 가쉬미 중령이 군사평의회 의장에 취임하여 1978년 2월 헌법제정국민회의를 소집하였다. 헌법제정국민회의는 진보세력들을 달래기 위한 가쉬미의 의도에 따라 도시 출신들의 진보주의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헌법제정국민회의는 가쉬미를 임기 5년의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가쉬미는 대통령 취임 후 군사평의회를 해체했다.

가쉬미 정권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부족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좌파세력과 함디의 잔여세력을 탄압했는데 이에 사파이 부족을 중심으로 공수부대와 함디의 추종자들이 남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는 곧 진압되었으나 생존자들은 남예멘으로 피신하여 민족민주전선 산하의 무장단체로 재편되었다. 이로 인해 남북 예멘의 관계도 긴장추세로 돌아섰다. 허나 가쉬미도 오래 가지 못하고 1978년 6월, 남예멘 대통령 루바이 알리가 파견한 특사와 면담하던 중 특사의 가방에 든 폭탄이 터져서 암살당했다. 가쉬미가 죽은 후 예멘군 부참모총장을 맡던 알리 압둘라 살레 중령이 군의 지지를 등에 업고 1978년 7월, 헌법제정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살레는 1982년 대(大)국민회의(المؤتمر الشعبي العام)라는 아랍 민족주의 정당을 창당하여 북예멘은 일당제 국가가 된다. 살레는 예멘이 통일된 지 한참 후인 2012년까지 집권하다가 아랍의 봄으로 실각했다.

1967년 수립된 남예멘과는 애증의 관계 속에서 공존하였다. 1972년 처음으로 카이로에서 남북이 정상회담을 가지며 향후 통일을 하겠다는 선언까지 했었는데 남북의 내부 갈등 문제와 1977년에 발생한 북예멘 대통령 암살사건, 1979년에 발생한 국경 분쟁으로 통일 계획이 유보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소련의 개방정책과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인해 북예멘이 점점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남측과 남북국경 지역의 유전개발이라는 현실적인 이익이 맞물리면서 다시 통일 분위기가 조성되어 2년 뒤인 1990년 남북 합의에 의해 통일을 이룬다. 그러나 1994년 남예멘이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무력진압되었고, 2010년대 들어 북예멘을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남예멘을 수니파가 장악하는 형국이 이어지면서 예멘이 재분열될 가능성이 나타났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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