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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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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선을 운행했던 객차형 비둘기호
경원선을 운행했던 동차형 비둘기호

비둘기호는 1967년부터 2000년 11월 14일까지 한국에서 운행된 완행열차로서 모든 역에서 정차하는 열차였다. 1997년부터는 안전 문제가 발생하여 비둘기호 노선을 없애기 시작하여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운행이 중단되었다.

개요[편집]

비둘기호는 열차 등급의 하나로 열차 등급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보통열차에 상당하는 열차의 명칭이다. 실질적으로 수도권 전철 운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구간에서 가장 기본적인 열차로 운행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여객 영업을 실시하던 철도 노선에서는 반드시 1왕복이라도 정기 운행을 실시하였던 열차였다.

비둘기호라는 명칭 자체는 1967년 9월 1일 최초 운행하였던, 서울~부산진 간에 설정되었던 특급열차의 이름이 기원이다. 비둘기호라는 이름은 당시 특급열차 명명의 관행에 따라 월남에 파병되었던 한국군사원조단인 비둘기 부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으로, 최초 운행을 기념하는 행사에 초대 비둘기부대장이 참석하고, 명명패를 주월 비둘기부대에 기증하는 등의 행사를 했었다.

역사[편집]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1964년에 생겼던 서울-부산진 간 특급이었던 비둘기호가 맨 먼저이다. 다만 그 당시 비둘기호는 이름만 같았고 객차는 "3등 열차"라고 하여 구한말, 일제 강점기 이래로 써오던 비둘기호 보다 더 오래된 객차 편성이었다. 그러다가 1967년 8월 경부선에 여객열차의 명칭으로 쓰이면서, 서울-부산 구간부터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의외로 당시에는 등급상 완행이 아닌 특급열차였다고 하며 1967년까지 한국 철도 객차들은 통일된 이름이 없이 노선에 따라 통일호, 풍년호, 증산호, 협동호, 부흥호, 약진호, 갈매기호, 비둘기호 등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중구난방 불리어오다가 1984년에 새마을, 우등, 특급, 보급, 보통(=완행)의 열차등급을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비둘기호로 정리하면서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되며 등급이 최하위로 고정되었다. 이때 도색도 새로 제정되어서 수도권 전철 1호선 전동차와 동일한 파란색과 우유색으로 재도색되었다.

최하위 등급답게 일단 지나가는 길에 역 비슷하게 생긴 게 있으면 모두 다 정차했다. 운행하던 시절에는 한국에 저런 열차가 있었나라고 할 정도의 열악한 시설을 가진 구형 열차들을 사용했다. 교외선이나 군산선 같은 일부 노선에 디젤동차가 돌아다닌 적도 있지만, 주로 기관차+객차 견인 형태였다. 참고로 이 디젤동차는 한때 내구연한이 끝나기 직전에 고상홈 대응 개조를 거쳐 경원선의 전철화된 구간(용산-왕십리-성북)을 운행했던 적도 있었다.

1993년에는 삼천리호로 개명될 뻔한 적이 있었다.

과거 1992년 8월부터 9월까지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열차 이름 공모가 있었다. 아마 이 명칭이 제작된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바꾸기 위해서였을 듯. 1993년 상반기에 모두 바뀔 예정이었으나, 가뜩이나 원래 이름도 너무 촌티나는 마당에 너무 촌티나는 이름 때문인지 모두 무산됐다.

운영[편집]

기본적으로 액압 디젤 동차를 사용한 동차형 열차와 객차 편성으로 구성된 열차가 존재하였다. 어지간한 노선에는 전부 열차가 설정되어 있었으나 보통열차라는 이름과 달리 주요 노선에서의 운행 빈도는 그리 빈번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등급이 낮기 때문에 대피가 매우 잦았으며, 덕분에 운행시간은 그야말로 답이 없는 수준에 이를 지경이었다. 또한, 최하위의 열차다 보니 우편차나 소화물차를 연결해서 운행하는 경우도 잦았으며, 때문에 운행시간대가 심야나 새벽시간대에 몰려있는 경향까지 있었다.

다만 보통열차로서 구간 운행을 주로 하는 편이었지만, 경부선 등의 간선을 거의 전구간 운행하는 열차들도 존재했다. 물론 운행시간은 그야말로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 일례로 1984년 9월 시각표 상의 용산발 부산진행 비둘기호 제421열차의 경우 21시 25분에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 6시 35분에 도착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는데, 도중 통과역이 일부 설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 9시간 10분이 소요되는 느림보 열차였다. 그나마도 심야운행에 따른 승하차 지연이나 대피취급, 도중입환, 그리고 보선작업 등의 영향으로 지연이 일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열차라도 영업이 잘 되면 다행이겠지만 적자의 주범으로 비난받았으며, 설비가 노후화된데다 횟수나 소요시간, 시간대 조차 편리하지 않아 싼맛에 타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용객의 외면을 받았다. 심지어 비둘기호 승차권은 전산발매의 대상이 되지도 않아 운행구간 역에서의 발매로만 이용할 수 있었다.

차량[편집]

고정의자 객차[편집]

1957년 2월 27일 서울공작창에서 12001~12002호를 생산해 1959년 8월 20일 운행식을 했다. 이 차량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객차이다. 계속해서 1960년에 12003~12016호를, 1961년에 12017~12023호를 생산했다. 인천공작창에서 비둘기호 객차로 1962년에 154량, 1963년에 115량, 1964년에 40량, 1965년에 114량, 1966년에 30량, 1968년에 50량, 1969년에 41량, 1970년에 90량, 1971년에 10량을 제작했다.

좌석은 총 108명분이 있으며, 직각으로 고정되어 등받이를 전환할 수 없는 크로스 시트(박스 시트)가 설치되었다. 문은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으며, 내부에는 백열등 및 선풍기 정도의 냉방 장치가 설비되어 있었다. 차량 하부에는 간단한 조명이나 냉방을 위한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으며, 대차의 옆에는 배터리에 충전을 목적으로 하는 발전기가 차륜 안쪽에 별도로 붙어 있는 벨트 회전 바퀴로 구동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대차는 초창기의 축스프링 및 판스프링 대차를 적용하였으며, 제동 방식은 답면 양압식 패드 제동 방식이었다.

차량 종류나 연식별로 객실 창문의 배열이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이것으로 객차를 더욱 세부적으로 구별한다. 창문이 日 모양으로 된 차량, 정사각형 모양의 창문이 일정 간격으로 떨어진 차량, 정사각형 모양의 창문이 두 개마다 넓은 간격으로 떨어지고 두 개 사이는 좁은 간격으로 떨어진 차량 등으로 나뉜다. 또한 별도의 세면실과 화장실 창은 불투명 유리를 썼으며, 하부는 환기를 목적으로 하는 나무 그릴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좌석은 앞의 1번부터 10번 좌석 뒤의 나머지 10개 좌석 등은 좌석 배정이 안되어 있어서 선착순으로 입석 승객들이 사용할 수 있다.

장의자 객차[편집]

이 차량은 전국 대도시에서 운행하고 있는 지하철 차량과 동일하게 롱 시트를 좌석 배치로 삼았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객차는 주로 단거리 지선 비둘기호 열차로 운행하였다. 1965년부터 1970년까지 인천공작창에서 제작했다. 최고 속력은 110km/h이며, 차량 중량은 34톤이다. 116명분의 좌석이 설치되었으며, 천장에 6개의 선풍기가 취부되었다. 발전차 없이 차축의 회전에 의해 전력을 생산해 난방했다.

객차의 출입문은 수동식 미닫이문이었고, 화장실은 설치되었으나 세면장은 없었다. 다만 일부 차량의 경우 화장실 맞은편에 방송실이 설치된 차량도 존재하였다. 객실 창문은 日 모양으로 된 1:1 분할로 상부 창문을 내리거나 하부 창문을 끌어올리는 식으로 개폐가 가능하였다. 대차는 축스프링 및 판스프링 대차를, 조명은 백열등을, 발전 방식은 차량 바퀴가 회전하면서 전기를 얻는 차축 발전을 채택하였다.

비냉방 통일호 객차[편집]

좌석이 72인승인 점이 위의 것과 큰 차이이다. 1986년 이후로 통일호 객차를 냉방 시설을 갖추도록 개조하면서, 냉방화 개조를 진행하지 않은 차량을 비둘기호로 격하시켜 운용한 것이다. 따라서 통일호나 개조 전의 무궁화호 객차와 내부 구조가 유사하다. 화장실 및 세면대 설비가 있으며, 격하 당시의 화장실 및 세면설비 등은 개량 사업에서 제외됨으로써 초창기 통일호의 것과 동일하다. 냉방 개조도 되어 있지 않았으며, 대차는 통일호의 것과 동일한 양압 제동식 프레스강 용접대차(HHBT형)로 운행하였다.

디젤 동차형 비둘기호 차량[편집]

1961년부터 도입된 디젤 동력분산식 열차이다. 근거리 소단위 운행 용도로 도입되었다. 현업에서는 비둘기호형 동차를 RC동차, DC동차 혹은 초기 제조사 중 하나인 니가타 철공소에서 따와서 니가타 동차(新潟動車)라고 통틀어 불렀으며, 철도동호인들은 차번 401 ~ 405에 해당하는 차량은 가와사키중공업에서 제작했다 하여 가와사키 동차(川崎動車)로 따로 부르곤 한다. 또한 협궤용으로 도입한 협궤 디젤 액압 동차로도 서술한다.

특이점[편집]

  • 108인승 객차와 72인승 객차에는 세면장과 화장실(동양식)을 설비하였고,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오물이 철길 위로 바로 떨어지는 '비산식'을 적용하였다. 따라서 역 구내의 위생적인 관리 등을 사유로 비둘기호 객차의 화장실 출입문에는 '정차 중 사용을 금함'이라는 문구가 표시되어 있었다. 객차 출입문은 수동이며 여닫이형이 많이 쓰였고 미닫이형은 소수 있었다.
  • 역의 정차시간은 약1분이었으나 급행열차(통일호,무궁화호,새마을호)를 먼저 보내줄때에는 약5분간 정차하였다. 퇴역이 가까워지던 1990년대 중반에는 객차를 단 2칸만 달고 운행하기도 하였다.
  • 냉방장치는 회전선풍기였다.

보존[편집]

객차의 보존 현황으로, 동차형 비둘기호의 보존 현황은 니가타 디젤 동차 문서를 참고바람.

  • 의왕철도박물관 : 12061호.
  • 섬진강 기차마을 : 5량.
  • 대전철도차량정비단 : 19308호. 한국철도공사 선정 준철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국립대전현충원 : 2량.
  • 제주도 삼무공원 : 1량.
  • 정동진 조각공원 : 3량.
  • 삼성화재교통박물관 : 1량. 내부 좌석이 취거된 상태이다.

운임[편집]

시내버스 요금이 120원이었던 1987년 당시 구포역에서 22킬로미터 떨어진 원동역까지의 요금은 180원이었다. 1996년 당시 장거리 비둘기호 열차요금은 중앙선 전구간 부전역에서 서울 청량리역까지는 6500원이었고 운행시간은 12시간이었다. 부산 구포역에서 광주광역시까지의 요금은 4500원이었다.

최후[편집]

비둘기호 열차는 1980년대 이후 서서히 감축 추세가 이어졌으며, 특히 경부선의 수익원이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로 옮겨가고, 통일호가 서서히 정차역을 늘리면서 도태가 진행되게 된다. 이후 통일호가 비둘기호의 역할을 이어받고 해당 노선의 비둘기호가 전부 폐지되는 경우가 늘었다.

비둘기호의 실질적인 퇴출은 1998년 12월 1일자로 단행된 시각표 개정으로 이루어졌었다. 잔존 51개 열차 중 30개 열차를 통일호로 승격하고, 13개 열차는 폐지하여 다른 열차편으로 대체한 것으로, 이 개정에 의해 정선선 8개 열차만이 남겨지게 되었다. 이후 정선선에서 1량 편성으로 근근히 운행되어 오다가 2000년 11월 14일 구절리역을 오후 7시 15분 출발하여 증산역에 8시 26분에 도착하는 것으로 최후의 운행을 마치게 되었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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