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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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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尙州市)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서부에 있는 시이다. 동쪽으로 구미시·의성군, 서쪽으로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 남쪽으로 김천시, 북쪽으로 문경시·예천군과 접한다. 조선 초기에는 경상감영의 소재지로서 경상도의 수부역할을 하였으며, 경주시와 함께 경상도의 어원이 된 유서 깊은 도시이다. 농특산물은 곶감, 명주, 쌀이고, 자전거도시로 유명하다. [1]

개요[편집]

상주시는 동경 127°47′∼128°21′, 북위 36°14′∼36°39′에 위치한다. 면적은 1,254.78㎢이고, 동서간 거리 48.3㎞, 남북간 거리 49㎞이다. 인구는 2023년 7월을 기준하여 94,523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7개 면, 6개 행정동(36개 법정동), 362개 행정리(200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상주시 남성동에 있다. 시를 상징하는 꽃은 장미이며, 나무는 감나무, 새는 까치이다.

전국 시군구 중 6위, 경상북도에서도 안동시, 경주시 다음으로 큰 3위다. 하지만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수는 9만 대에 불과할 정도로 적어 인구밀도는 상당히 낮다. 2021년 12월 기준 경상북도 시 중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 자전거와 곶감의 도시로 유명하다.

상주시는 경주시의 ‘경’과 함께 경'상'도란 이름의 어원이 된 유서 깊은 도시로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 때까지 오늘날의 도청에 해당되는 경상감영이 있었던 경상도의 중심지였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인구 27만 명이나 됐다. 그러나 경제성장기에 경상북도는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통하는 남부가 집중적으로 개발되면서, 상주시가 속한 경북 북부의 인구가 경부축의 중심 도시인 대구, 구미나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이촌 현상이 일어나면서 크게 쇠퇴하게 되었다.

한때 한 끗발 날리던 지역이라서 자부심이 대단히 강한 편인데 이건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교통망에서 소외되어 쇠퇴해온 지역민들의 자존심인 탓이 크다. 특히 구미에 대해서는 박정희 대통령 고향만 아니었으면 크지도 못했을 선산 촌동네라고 까는 노인분들이 꽤 있다. 교통이 좋아서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청주시 모두 1시간이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생활을 누리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다.

대부분 낙동강 수계에 속하지만 화령 서쪽 지역은 금강 수계다. 심지어 화북면 일부는 한강 수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산경표 상의 백두대간의 동과 서를 넘나드는 특이한 지역이다.[2][3]

자연환경[편집]

이 지역의 지질구조는 소백산괴(小白山塊)에 속한다. 이 산괴는 개마산괴·경기산괴와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육괴(陸塊)로 캄브리아기 이전에 형성되었다. 암석은 화강편마암과 변성퇴적암이 주체를 이루나,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조산운동 때 이를 관입한 대보 화강암이 퇴적변성암 중에 분포하여 화강암 및 화강편마암계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동부는 주로 화강암층, 북서부는 편마암 및 화강편마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동부는 침식분지를 형성하나, 북서부는 침식에 저항하여 산맥이나 을 형성하였다. 서쪽 경계에는 속리산(1,058m)·팔음산(762m)·포성봉(933m), 남쪽에는 국수봉(793m), 북쪽에는 작약산(763m)·도장산(828m) 등의 높은 들이 솟아 소백산맥의 줄기를 이룬다. 이러한 산지로부터 이안천과 북천·남천이 동류(東流)하여 낙동강에 합류함으로써 이 하천 유역에는 도내 굴지의 비옥한 함창 평야와 상주 평야가 발달하였다.

소백산맥 동쪽 사면과 낙동강 중상류 지역에 나타나는 남부 내륙형 기후구에 속한다. 연평균기온 12.3℃, 1월 평균기온 -3.4℃, 8월 평균기온 26.4℃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156mm이다.[4]

역사[편집]

낙동면 낙동리와 화북면 등지에서 마제석검 · 세형동검 · 동과 · 동령 등 청동기유물이 발굴되었다. 서기전 7세기경부터는 이 지역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청동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소국(小國) 단계로 들어섰는데, 그 뒤의 군현개편으로 미루어보면 이 지역에 여러 국가가 성립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곧, 『삼국사기』에 보이는 사벌국(沙伐國) 이외에 변진 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 ·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 · 변진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 · 변진접도국(弁辰接塗國) · 호로국(戶路國) 등을 이 지역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사벌국은 3세기 후반 신라에 복속되었으며, 여타 소국도 비슷한 시기에 신라에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524년(법흥왕 11) 이 지역에 상주(上州)가 설치되고 군주가 파견되었다. 이는 신라의 영토를 상하로 양분한 한 영역의 통치 중심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군현체제가 성립되면서부터 상주에는 음리화현(音里火縣) · 달이현(達已縣) · 지내미지현(知乃彌知縣) 등이 영속되었다. 그리고 고동람군(古冬攬郡)이 함창지역의 가해현(加害縣) · 관현(冠縣) · 호측현(虎側縣) 등을 관할하였다.

557년(진흥왕 18) 상주의 주치(州治)가 청주(靑州)로 옮겨진 뒤 상락군(上洛郡)이 되었다. 그 뒤 687년(신문왕 7) 9주제도가 시행되면서 다시 주치로 되어 사벌주가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사벌주는 상주(尙州)로,음리화현은 청효현(靑驍縣)으로, 달이현은 다인현(多仁縣)으로, 지내미지현은 화창현(化昌縣)으로 개명되었다.

또한, 고동람군은 고령군(古寧郡)으로 되었다. 그러나 776년(혜공왕 12) 상주가 사벌주로 환원되었고, 889년(진성여왕 3) 원종(元宗) · 애노(哀奴)의 농민반란이 일어나 신라의 붕괴를 촉진하였다.

신라 말 상주 일대는 유력한 호족이던 아자개(阿慈介)의 지배 아래 있었다. 가은현(加恩縣 : 가해현에서 개명) 출신인 견훤이 후백제를 일으켜 세력을 떨치기도 하였다.

940년(태조 23) 다시 상주로 개칭되었으며, 이어 안동도독부로 고쳐졌다. 그 뒤 983년(성종 2) 12목을 설치할 때 상주목으로 되었다.

1012년(현종 3)에는 안동 대도호부로, 1018년에는 다시 상주목이 되었다. 그런 다음 계수관(界首官)으로서 7군 17현이 소속되었다. 함창지역은 고령군이 되었다가 964년(광종 15) 함녕군(咸寧郡)으로 고쳐졌다. 그 뒤 1018년(현종 9) 함창군(咸昌郡)으로 바뀐 뒤 1172년(명종 2) 감무가 파견되었다.

조선 시대 때 8도 체제가 확립되면서 1408년(태종 8) 상주에 경상도 감영을 두어 경상도 감사가 상주목사를 겸하였다. 1457년(세조 3) 진이 설치되어 군사적 요지가 되었으며, 함창에는 1413년(태종 13) 현감이 파견되었다.

조선 시대의 상주는 화령현 · 중모현 · 산양현 · 단밀현 등을 속읍으로 거느린, 도 이름에 그 이름이 차용될 정도로 큰 영남의 읍이었다. 게다가, 물산이 풍부하고 농경지가 넓으며,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권민수(權敏手) · 표연말(表沿沫) 등 사림파 인물 들과, 영남 학파의 중심인물인 정경세(鄭經世)도 이 곳 출신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당시, 정기룡(鄭起龍)은 용화동전투에서 왜군을 대파한 뒤 상주성을 화공법으로 수복하였다.

함창에서는 정경세 등 의병장이 왜군을 대파해 상주지역에는 왜병이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영남학파의 학문이 더욱 번성해 이준(李埈) · 홍여하(洪如河) 등의 학자가 배출되었다. 그래서 도남서원(道南書院)을 비롯한 많은 원사(院祠)가 건립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시에 상주목은 상주군으로, 함창현은 함창군으로 되었다. 또한, 개화운동이 전개되면서 군수 이인용(李寅用)과 유지들에 의해 광흥학교(廣興學校)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일제 침략이 노골화되자 문경에서 일어난 이강년(李康秊)의 의병부대에 상주출신 의병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주군과 함창군이 통합되어, 18개 면을 관할하는 상주군이 되었다. 그 뒤 1931년 상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19년 3 · 1독립만세운동 당시, 3월 23일 상주읍 장날을 기회로 한암회(韓岩回) 등이 주도해 독립만세시위를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이후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의 한 갈래인 청년운동도 매우 활발히 전개되었다.

1945년 이후 상주는 정치 · 경제 · 군사의 중심지에서 벗어나 경제력이 쇠퇴하게 되었다. 1980년 함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6년 상주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시 · 군이 분리되었다. 1989년에는 화북면 남부출장소가 화남면으로 승격했으며, 1995년 도농통합에 따라 상주시와 상주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상주시가 탄생 되었다. 1998년에 행정구역 통 · 폐합에 따라 중앙동이 동문동으로 편입되어 1읍 17면 6동이 되었다.

2020년 현재 함창읍 및 사벌국면, 중동면, 낙동면, 청리면, 공성면, 외남면, 내서면, 모동면, 모서면, 화동면, 화서면, 화북면, 외서면, 은척면, 공검면, 이안면, 화남면과 남원동·북문동·계림동·동문동·동성동·신흥동의 1 17 6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대부분 1차산업 중심의 농촌 지역이다. 상주의 특산물로 감과 곶감으로 유명하며, 상주쌀(일명 아자개), 배, 사과, 포도, 오이, 복숭아 등도 재배한다. 한우와 명주도 유명하다. 상주시의 인구는 9만 명 정도인데 면적은 기초자치단체 중 전국에서 6번째로 넓으며, 서울특별시의 약 2배에 달하다 보니, 특히 상주 북쪽으로 이안~화북지역과 같이 심각하게 벽촌인 지역도 있다. 특이사항으로는 농업 때문에 고도제한이 걸려있다. 2차산업 유치에 사활을 걸었던 이정백 시장과 달리, 성백영 시장은 상주를 1차산업 중심으로 키우고자 했다. 농업수도 선언이라든가, 여러 가지 농업가치에 대한 중점적 투자를 했다.

2017년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유치에 성공하였고, 2018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 시도를 대상으로 공모, 선정하는 ‘스마트팜 혁신밸리’에 지정되어 농업 도시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 인구 전국 4위, 경북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반도체 제조 등에 사용하는 특수 가스를 생산하는 SK 머티리얼즈가 8,500억원 규모의 배터리 음극재 공장을 청리면에 있는 청리일반산업단지에 짓기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닭고기 가공업체 올품은 2,200억 규모의 시설투자 증설을 위한 투자협정을 맺었다.

교통[편집]

경북선(김천∼영주) 철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옛 상주시를 중심으로 국도·지방도와 무수한 시·군도가 사통 오달하여 지역 내외로의 연결이 양호하다. 중부 내륙 고속도로가 2004년에 완공되었고,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가 2007년 11월 28일 개통되었다.

관광[편집]

삼백의 고장으로서 낙동 강변에 접하고 천혜의 자연경관인 속리산 등이 있어 관광 개발의 잠재력을 가진 시이다.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1985년 속리산 문장대와 용화지구 온천개발과 함께 16만 평을 관광지로 지정해 야영장과 위락시설 등을 건설하였다.

화북 쪽에서 속리산 등반을 시작하면 높이 10m의 오송폭포(五松瀑布)와 화양동계곡(華陽洞溪谷),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군사를 양성한 곳이라는 길이 약 650m, 높이 7∼15m의 견훤산성과 대궐터, 성불사와 문장대를 볼 수 있다.

문장대는 세종대왕과 문무시중이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는 데서 연유된 이름이다. 그리고 문장대를 세 번 갔다 와야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는 전설도 깃들여 있는 곳이다. 낙동강 칠백리 가운데 자연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경천대(擎天臺)는 198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고, 특히, 백사장이 아름답다.

주위에 높은 산봉우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들 산의 송림은 천태만상의 소나무 모양으로 절벽 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또한, 경천대 아래는 강물이 굽이쳐 돌고,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게다가, 수영장을 비롯한 전망대, 어린이 놀이시설, 야영장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이 일대는 임란공신 정기룡의 유적지인 충의사가 있다. 그리고 병자호란 당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 볼모로 끌려갈 때 따라갔던 우담 채득기 선생이 후일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했다는 무우정이 있다.

그 밖에 사벌왕릉 · 삼층석탑 · 가야왕릉 등 문화재가 많다. 도심지에서 7㎞쯤 떨어진 곳에 노음산(露陰山, 725m)을 등지고 운음산(725m) 동편 계곡에 남장동의 남장사(南長寺)가 있다. 이는 신라 흥덕왕 7년(830년) 진감국사가 창건했는데, 경북팔경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다.

극락전 뒤편의 보광전(普光殿)에 남장사 비로자나철불좌상과 이 불상 뒤에 새겨진 목각탱이 있다. 또한, 보광전 앞뜰에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등과 괘불정이 있다. 그리고 도심지에서 서남쪽 8㎞ 떨어진 곳에 갑장산(甲帳山, 806m)이 있다.

이 곳은 장엄하고 기암괴석이 수려하며, 계곡 물은 수질이 좋아 피서객이 많이 찾는 지역으로, 야생조수애호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산기슭의 용흥사(龍興寺)는 그 아래 폭포가 있어 사찰 경관이 더욱 돋보이며, 절 뒤의 골짜기에는 약수가 있다. 도심지 한가운데 자리잡아 시민공원으로 이용되는 왕산(王山)은 상주복룡리석불좌상과 상주복룡리당간지주가 있다.

울창한 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아름다운 경관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주시 은척면 남곡리 성주봉(해발606m)기슭에 412㏊규모의 성주봉자연휴양림은 산림내 휴양과 휴식에 필요한 최소한 기본시설만을 설치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으며, 깊은 계곡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휴식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상주 예술촌은 문화창작공간이 부족한 상주시에서 폐교를 활용하여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을 조성하여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학생 및 시민들의 예술체험과 작품제작 실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매년 10월에 상주 문화제가 열리는데, 경상감사 도임순력행차를 재현하고, 정기룡 장군 임란전쟁 승첩놀이와 삼백(三白) 미인선발대회도 개최한다. 매년 4월 말에는 꿀배 꽃 축제가 열리며, 1999년부터 매년 전국 자전거 축제를 열고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상주시〉, 《위키백과》
  2. 상주시〉, 《네이버 지식백과》
  3. 상주시〉, 《나무위키》
  4. 상주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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