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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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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시기
창원시 위치
창원시청

창원시(昌原市)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중남부에 있는 특례시이자 경상남도청 소재지이다. 경상남도 최대의 도시로, 해상무역과 공업이 발달하였다. [1]

개요[편집]

창원시는 동경 128°21′∼128°50′, 북위 35°02′∼35°23′에 위치한다. 동경 128°21′∼128°50′, 북위 35°02′∼35°23′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김해시·부산광역시, 북쪽으로는 밀양시·창녕군·함안군, 서쪽으로는 진주시·고성군, 남쪽으로는 마산만·진해만과 접하고 거제시를 마주보고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늘어서 있는 무학산·천주산·불모산 등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동강 남쪽을 가로질러 김해시 분성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일부를 이룬다.

기존의 창원시와 마산시·진해시가 통합하여 면적은 748.03㎢이고, 인구는 2023년 6월을 기준하여 1,013,603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5개 , 2개 , 6개 , 54개 행정동(194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은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에 있다.

창원시는 비수도권에서 유일한 특례시다. 한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창원시는 경상남도의 중심 도시로 경상남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다. 경상남도청, 경상남도의회, 창원지방법원, 창원지방검찰청, 경남지방경찰청, 경상남도교육청, 정부경남지방합동청사, 그 외 정부 부처 및 관계 기관들의 경상남도 청사가 상당 부분 창원시에 몰려 있다.

현재의 창원시 영역은 일제강점기 이전의 창원부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1989년 부산에 편입된 천가면(현 가덕도동)이 사라진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같다. '창원'이란 명칭은 조선 태종 때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쳐 부를 신설한 것에 기원하며 이후 조선 시대까지는 줄곧 한동네였다. 이 두 지명은 현재도 일반구의 명칭인 의창구와 마산회원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1914년 마산부 분리, 1955년 진해시가 분리된 이후 2010년 7월 1일 다시 통합하기 전까지는 근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여러 개의 지자체로 나뉘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 지역은 통합 이전부터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곳이다. 기존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 3개 시는 시내버스를 통합해서 운영했고, 오늘날 창원시의 주요 관문인 동마산 IC를 비롯한 고속도로 출입구, 시외버스터미널 노선 또한 공유하는 등 교통, 문화, 인프라 부분에서 뿌리 깊게 연계, 협력하였고 지금도 인프라 상당 부분을 변함없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인구수 대비 상당히 큰 편이다. 2019년 기준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약 39조 86백 만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5위,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1위에 해당되며 대전광역시(약 43조 9백 만), 광주광역시(약 41조 51백 만)와도 비견되는 수준이다. 그만큼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 공장들이 많이 상주해 있는 곳으로, 외국계 글로벌 기업 사업장도 다량 위치해 있다.[2][3]

자연환경[편집]

지형은 대체로 경상남도 남부 지역을 특징짓는 해안 산맥이 고성쪽으로부터 마산·함안을 거쳐 본 시역의 중부와 남부지역을 지나 동쪽으로 달려 김해시 지역까지 연속되고 있다. 서북쪽으로는 천주산(656m), 동쪽으로는 봉림산(567m), 남동쪽으로는 불모산(802m), 남쪽으로는 각각 장복산(566m)과 팔용산(328m)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북부는 대체로 저평한 평야지대와 저습지대로 되어 있는데, 이는 북부의 시계를 동류하고 있는 낙동강의 퇴적작용에 의해 하안평야가 북면·동면·대산면지구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시의 지세는 북반부의 저지대, 중앙의 저평지, 그리고 중앙 동부와 남부의 산악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서부지구는 북쪽은 대체로 표고 200m이하의 저평지가 전개되어 함안군과 연결이 자유로운 편이다. 동부와 남부는 산악의 준령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김해시와의 시계를 형성하고 있고 서남쪽의 일부는 내륙 깊숙히 들어온 마산만의 만구에 해당된다.

대표적 산지는 중앙부에 정병산(精兵山, 567m)·봉림산(鳳林山, 290m)·구룡산(九龍山, 434m), 서쪽에 천주산(天柱山, 656m), 시가지의 동쪽에 비음산(飛陰山)·대암산(大巖山, 669m)·불모산(佛母山, 802m)·웅산(熊山, 703m)·태산(台山, 703m), 남쪽에 장복산(長福山, 566m)·산성산(山城山, 400m) 등이 솟아 있다. 이 외에도 백월산(白月山, 400m)·춘산(春山, 298m) 등이 있다.

하천으로는 천주산과 정병산에서 각각 발원한 내동천(5.20㎞)과 창원천(7.5㎞), 그리고 불모산과 장복산에서 흘러 내린 남천(9.5㎞)이 시가지 중심을 서류하여 각각 마산만으로 유입한다. 시가지 내에는 그 밖에도 가음정천(加音丁川)·완암천(完巖川) 등이 남천에 합류된다.

시의 북부에는 낙동강의 본류가 인접한 의령군의 지정부근에서 남강과 합수하여 유로를 동쪽으로 돌려 본 시 관내의 북부를 동류하는 관계로 북부지역에 상류쪽의 퇴적물을 운반, 충적평야를 형성하였다. 곳곳에 저습지를 형성하였다.

창원시는 북반구 중위도와 유라시아 대륙의 동안에 위치하므로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대륙 지방보다 비교적 한서의 차가 작고 계절풍의 영향을 많아 온대 기후 지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난대성 해안기후의 특색이 더 강하다. 연평균기온 13.8℃, 1월 평균기온 0.1℃, 8월 평균기온 25.5℃이며, 연강수량은 1,572㎜이다.

지질은 대체로 중생대 경상계 지층으로 덮여 있다. 산지는 화강암으로 중앙의 분지는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졌다. 식생은 온대남동부형의 유형에 속하는 편백·해송·리기다소나무·오동나무 등이 자란다.[4]

역사[편집]

마산만을 향해 넓게 펼쳐진 해안평야의 언덕진 대지에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도처에 산재, 마치 선사시대 유적의 전시장 같은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유적인 반계동 유적, 외동 지석묘, 성산패총 하층유구 등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와 지석묘 유적을 통해 이 시기에 사람이 살았음이 증명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외동 성산패총은 서기전 3세기 경부터 형성된 유적으로 야철지(冶鐵地)를 포함한 성곽의 유구와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이미 농경문화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여 그 사회가 성읍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창원시 서상동 남산 유적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환호는 현재까지 발굴된 것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청동기 시대 환호로서 이 시기 이 지방의 청동기 문화를 가름할 수 있게 하는 유적이 되고 있다.

삼한 시대 이 고장은 『삼국사기』 내해왕(奈解王 209) 조와 『삼국사기』 물계자(勿稽子) 전에 나오는 포상팔국 중 골포국(骨浦國)이었으나, 뒤에 가야 세력권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에 이 지방은 굴자군(屈自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의안군(義安郡)으로 개칭되었고 마산지방의 골포현은 합포현으로 개칭되어 의안군에 영속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의안군과 합포현이 금주(金州 : 지금의 김해)에 소속되었다. 그러다가 뒤에 각각 감무가 파견되었다. 충렬왕 때 고려와 몽고 연합군의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원정 중에 이 지방이 병참기지가 되어 1280년(충렬왕 6)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이 합포에 설치되었다. 1282년 두 차례의 원정에 이바지한 공이 크다 하여 의안군은 의창현(義昌縣)으로, 합포는 회원현(會原縣)으로 개칭되어 각각 현령이 파견되었다. 고려 말 왜구의 노략이 심해지면서 이 지방은 그 침입로가 되어 피해가 심해졌다.

1408년(태종 8) 의창(義昌)의 ‘昌’과 회원(會原)의 ‘原’을 합해 창원(昌原)이라 이름하고 창원부(昌原府)로 승격되었다. 1415년에는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창원성은 진주로 향하는 왜군 주력부대에 포위되어 3일 만에 함락되었으나, 이 곳 군민이 합심, 성을 사수하였다. 전란 중 적에게 항복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1601년 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03년 이곳에 있던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을 진주로 옮겼다. 1661년(현종 2) 문묘의 전패(殿牌)를 투실한 불상사로 현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다가 1670년 대도호부로 환원되었다. 1895년에 진주부 창원군으로, 1896년에 경상남도 창원군으로 개편되었다. 1899년 마산포가 개항되었고, 창원감리서(昌原監理署)가 개설되어 군수가 감리를 서리하였다.

1906년 진양군 양전면을 편입하여 창원부로 승격하였다. 1908년 웅천군, 진해군과 김해군 대산면, 칠원군 구산면을 편입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 중 일본이 군용철도로 마산선(마산∼삼랑진)을 부설했고 1926년 진해선(진해∼창원)을 개통하였다. 1910년 이래 일본은 웅천군과 거제군 일부 지역에 그들의 군항을 설치할 목적으로 도시계획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그 후 규모를 축소하여 1916년 지금의 진해시에 해군요항부(海軍要港府)를 설치함으로써 진해현은 자기 고을의 이름을 웅천현 옥포에 이양하게 되고 삼진(즉 진동·진북·진전)면으로 개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원군으로 개칭하고 외내면을 마산부에 편입하였다. 1931년에는 진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5년 시로 승격됨으로써 창원군이 분리되었다. 1973년 창원공업기지 조성에 따라 창원면·웅남면·상남면 일원과 내서면·구산면 일부를 마산시로, 웅천면 일원을 진해시로 붙여 줌으로써 창원군은 10개 면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1976년 이 지역을 관할하는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0년 창원 지구출장소 관할구역에 마산시 의창동을 편입하면서 창원공업기지가 창원시로 승격되었으며, 이때 창원군은 옛 이름인 의창군으로 개칭되었다. 1983년 경상남도 도청이 이전, 기계공업과 행정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창원군의 북면·동면·대산면과 창원시가 통합되었다. 1997년 대동제 시행으로 27개 읍면동이 15개 읍면동으로 개편되었다. 2010년 옛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가 합쳐져 통합 창원시가 되었다.

산업[편집]

대한민국 경제 성장사에서 울산광역시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며, 현재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 힘입어 기계 공업, 수출 산업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다. 특히 외환 위기 당시 외화가 부족했던 국내에 많은 달러를 벌어다 준 마산자유무역지역과 창원국가산업단지, 마산항은 한때 한국 수출 산업의 메카였으며, 거제 조선소들에게 전달되는 선박 관련 엔진, 기계 설비 상당 부분이 창원시에서 생산된다.

옛 창원 지역의 창원국가 산업단지, 마산 지역의 마산자유무역지역, 진해 지역의 진해국가산업단지 등이 자리를 잡아 경상남도 중부 지역 산업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3개 시의 통합에 따라 지역 내 총생산(GRDP)은 36조 원에 이르는데, 이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광역자치단체인 광주광역시와 대전광역시를 넘어서는 수치이다.

현대자동차그룹(현대위아, 현대로템, 현대모비스, 현대비앤지스틸), LG 그룹(LG전자), 한화그룹(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그룹(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효성 그룹(효성중공업)등 많은 재벌기업들이 창원에 공장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육군에서도 초대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교통[편집]

경남의 중심 도시인 만큼 교통이 전반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지만 도로 교통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창원시 시내 버스는 시내를 오가는 핵심적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매김 중이며, 광역철도는 부전-마산 광역철도가 개통되면 들어오고, 그 이전엔 창원 도시철도가 계획되었다가 무산되었으나 2021년 들어 재추진되고 있다. 전국에서 최초로 고급간선급행버스체계(S-BRT)를 2023년 말 준공을 목표로 착공에 들어갔는데 추후 트램 전환을 염두에 두고 건설된다.

고속 철도KTX가 마산역, 창원역, 창원중앙역 3개 역에 정차할 정도로 정차 역사는 많지만, 문제는 경전선 KTX라 철도 이용 수요에 비해 운행 횟수가 현저히 적다. 수서 평택고속철도(SRT)는 6년 간의 기나긴 요구 끝에 국토교통부에서 2023년 9월 왕복 2회(일 4회) 개통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창원의 철도 수요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기에 국토교통부에서는 현재 경부고속선이 포화상태라 2027년 평택-오송 간 고속선로 복복선화 사업이 완료되면 증편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관광[편집]

대한민국 최초의 도시설계에 따라 건설된 인공산업도시로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찾는 산업관광명소이다. 기계 공업단지를 비롯하여 주거 및 상업·업무·교육지역이 완전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너비 40m의 간선도를 중심으로 격자상으로 벋은 가로망이 자동차, 인도는 물론 자전거 전용로까지 구분하여 기획 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마산 자유 수출지역에서 창원기계공단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웅장하게 서있는 정밀공업진흥탑은 관광객의 발길을 멎게 하는 관광명소이다. 이곳으로부터 곧게 뻗은 가로변에 서 있는 크고 작은 기계계열의 각종 공장은 한국공업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기계공단의 배후에 있는 중앙동의 중앙로타리는 방사상으로 뻗은 가로와 주변의 잘 정돈된 정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관광 휴양도시인 진해와 인접해 있어 관광객이 많다. 풍치가 빼어난 산과 강은 물론, 국내 굴지의 온천과 철새도래지 등 관광명소가 많아 공휴일에는 탐승유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북면 신촌리에 있는 마금산온천은 식염천으로 망간 라듐 유산칼리 탄산칼슘 등의 성분이 풍부하여 신경통과 피부질환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 온천은 경치가 수려한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어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동읍의 주남 저수지는 경상남도 최대의 철새도래지이다. 동읍 신방리에는 천연기념물인 엄나무군이 있고 북면 외감리의 달천구천은 경치가 아름답다.

사림동의 경남도립미술관은 2004년에 개관하였으며 4개의 대형 전시실, 다목적홀, 영상전시실, 그리고 옥외조각 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역시 사림동에 위치한 창원대학교박물관은 마산, 창원을 포함한 경남지역의 유물을 중심으로 주로 선사 및 고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서상동의 이원수문학관은 2003년에 개관하였으며 동요작가 이원수 선생의 단행본과 전집 등 총 2,800여 권의 도서 및 편지류 등을 전시하고 있다. 2000년 개관한 성산아트홀은 품격 높은 문화예술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이 고장 문화예술의 메카로서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이 외에 1997년에 개관한 늘푸른전당, 용지 야외무대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두대동의 창원종합운동장은 1993년에 준공되었으며 주요 국내외 체육행사가 이루어지는 창원시의 대표적인 채육 시설이다. 2004년에는 전국 최우수체육시설로 선정되었다. 역시 두대동에 있는 창원실내수영장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의 수영 경기 장소로서 활용 되었으며 1997년에 개관하였다. 1992년과 1997년에 각각 개관한 상남동의 시민생활 체육관과 심동동의 늘푸른전당은 시민들의 체력단련을 위한 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외에 토월동에 창원시립테니스장이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창원 예술제는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고취시키고 이 지역의 고유한 문화예술을 보여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열리는 순수예술제이다.

야철 축제는 삼한 시대부터 변한지역으로 찬란한 철기문화를 꽃피운 역사적인 전통을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기계공단으로 발돋움한 역사의 맥을 이어 옛 선인들의 지혜와 은덕을 제례형식으로 재현하는 창원시의 최대의 축제로 1991년부터 매년 개최하였으며 1997년부터는 시민의 날 주행사로 개최하고 있다.

진례산성 진달래축제는 비음산 진례산성에 대한 역사발굴을 시민의 축제로 승화시킨 것으로 1994년부터 매년 성내에 자생하는 진달래군의 개화기에 맞춰 개최하고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창원시〉, 《위키백과》
  2. 창원시〉, 《네이버 지식백과》
  3. 창원시〉, 《나무위키》
  4. 창원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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