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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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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시스템(Ford System)은 포드 자동차를 창립한 헨리 포드가 마련한 생산 시스템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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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포드시스템의 사전적 의미로는 디트로이트에서 완성되었다고 하여 디트로이트 오토메이션(Detroit automation), 또한 대량생산의 획기적 계기가 되었다고 하여 대량생산 시스템(mass production system)이라고도 한다. 생산표준화이동조립컨베이어시스템을 내용으로 하는 생산 시스템이다. 전자는 제품의 표준화, 부품의 규격화(호환성), 전용기계의 이용으로 이루어지며, 후자의 실시를 위한 전제를 제공하였다.

역사[편집]

  • 1863년 - 포드는 미국 미시간주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부터 학과 공부보다는 기계에 흥미를 느꼈다.
  • 1879년 - 학교 졸업 후 디트로이트의 거대한 미시간 차량 회사에서 근무한다. 견습공이던 그는 직장(職長)이 고치지 못한 기계를 단 한 번에 고쳐낸 데 대한 괘씸죄로 6일 만에 해고를 당한다. 단 6일간의 경험이었지만 여기서 익힌 일관 작업 개념이 훗날 포드의 컨베이어시스템을 구축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 1891년 - 가솔린 엔진에 관심이 많던 포드는 디트로이트로 옮겨 에디슨 전동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가솔린 엔진에 대해서 연구를 하게 된다.
  • 1893년 - 디트로이트로 옮겨 온 지 6년째 되던 날 시속 30km의 자동차 개발에 성공한다. 이 무렵 포드는 발전소지배인의 자리를 마다하고 회사를 그만둔다.
  • 1902년 - 포드가 개발한 자동차가 미국 선수권을 가지고 있던 알렉산더 윈튼(Alexander Winton)과의 자동차 경주에서 72km의 신기록으로 승리하게 되는데 이는 포드사 설립의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 1903년 - 이를 계기로 부자인 맬컴슨의 제의를 받아들여 포드 자동차 회사가 발족되었다. 당시 포드의 나이 40세. 기계 광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 1907년 - 포드는 고가격 고이윤을 추구하는 맬컴슨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고 결국 그의 주식을 초기 투자의 25배에 달하는 거금을 지불하고 인수함으로써 포드 자동차 회사의 사장이 된다. 당시 자동차의 판매 가격은 600달러였다.
  • 1908년 - 포드는 부품의 표준화를 실현하여 싸고 쓰기 편한 자동차를 구상하여 드디어 유명한 모델T 자동차를 내놓게 된다. 당시 850달러에 판매되던 T형 자동차는 19년 동안, 즉 1928년까지 계속 판매되었다.
  • 1912년 - 포드는 도축장을 시찰하던 중 작업자들이 작업을 마친 후 모노레일을 이용하여 갈고리에 매달려 있는 고깃덩어리를 다음 작업자에게 이동시키는 광경을 목격하고 이로부터 불과 6개월 후, 세계 최초의 조립라인인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공장에서 자기 발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도축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이동조립 방식을 채택하여 포드는 근대 제조와 자동차의 역사를 바꾸었던 것이다.
  • 1913년 - 포드의 컨베이어시스템으로 대량생산의 혁신을 가져오며 대당 조립 시간을 5시간 50분에서 1시가 33분으로 단축한다. 이 시스템은 작업 속도를 컨베이어의 이동 속도에 맞추어 종합적인 생산성 향상을 실현한 공장혁신의 걸 작품이었다. 이해에 포드는 (wealth)와 (power), 그리고 창조성(creativity)에 있어서 절정에 이르렀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로서의 영광을 받게 된다.
  • 1914년 - 포드는 '5불 선언'을 통해서 획기적으로 임금을 인상하였으며 여러 가지 복지 경영의 인적자원관리를 도입하였다. 또한 셀던 소송에서 극적으로 승소하여 자동차 업계의 지도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 1916년 - 포드는 T형 자동차의 가격을 1914년에는 440달러에서 1916년에는 345달러까지 인하한다. 품질에 비해 턱없이 싼 가격으로 판매된 T형 자동차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와 같인 우수한 자동차를 현대의 아반떼엑센트의 가격으로 판매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포드의 성공 요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혁신적이고 우수한 품질
  2. 이동조립법을 창안함으로써 대량생산에 성공한 생산혁신
  3.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새롭고 근대적인 인적자원의 경영

포드를 유명한 기업가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포드식 경영으로 해석되는 포디즘, 즉 뛰어난 인재들의 팀 정신과 컨베이어시스템을 이용한 이동조립 작업, 그리고 혁신적 인적자원경영을 맨 먼저 실천한 진보적인 정신에 있다. 이것이 바로 생산성 향상이며, 기업의 성패를 가름하는 요소였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비추어볼 때 포드의 이른바 '일당 5달러' 임금제도, 소수민족의 고용, 산업안전 및 위생관리, 노동시간 단축 등은 당시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혁신적인 창안이었다. 이러한 기업가의 특질이 포드를 성공시킨 기본 요소들이었지만, 이후에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포드를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한 간접요인이 되기도 한다.

포드시스템[편집]

포드는 테일러가 주창한 과학적 관리법을 도입하면서 동시에 컨베이어시스템(Conveyer system)을 도입함으로 인해 생산성의 극대화를 꾀했다.

포드의 경영 신념은 "최저 생산비로 사회에 봉사한다."라는 것으로 그는 최저생산비를 실현하여 고객들에게는 튼튼하고 좋은 자동차를 싼 가격으로 제공하고 종업원에게는 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경영 이념에 입각하여 그는 T형 자동차의 이동조립 방식과 생산의 표준화로서 자동차의 판매가 격을 계속적으로 인하하였으며, 1914년에는 '5불 선언'을 통해서 임금을 2배 이상으로 지급하였다.

포드시스템의 3대 핵심 요소는 표준화, 이동조립, 컨베이어시스템이다.

표준화[편집]

표준화란 각각의 작업을 분석해 표준적인 작업 내용을 정하고, 이것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제품을 단일화하고 규격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요즘 ISO와 같은 표준들을 이 포드가 먼저 기틀을 마련한 거라고 볼 수 있다.

포드는 최저생산비를 달성하기 위해서 제품의 단순화와 부품의 호환성을 근간으로 하는 생산의 표준화와 이동조립법을 주축으로 하는 대량생산방식을 도입하였다. 그에 의해서 실시된 생산 표준화는 다음과 같으며 오늘날 '대량생산의 일반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제품의 단순화[편집]

대량생산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단순화가 필수적인 요소로서 포드는 최저생산비를 실현하기 위해서 단일 제품의 원리에 입각하여 1908년 T형 자동차를 산한 이래 1927년까지 오로지 이것만을 생산한다.

작업의 단순화[편집]

컨베이어에 의한 이동조립 작업에 있어서 단일 목적의 단순한 기계 작업은 작업 자체를 단순화하므로 기계적인 작업이 되기 쉽다. 이 경우 작업자는 한 가지 작업에 익숙해져 동일 작업의 연속 실시가 가능해지므로 생산능률이 향상된다고 보고 작업을 단순화하였던 것이다. 당시에 높은 숙련도를 요하는 작업은 15% 미만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시각으로는 작업의 단순화는 단조로운 반복 작업이 불가피함으로써 작업자로 하여금 권태감을 느끼게 하고 작업능률을 오히려 저해한다고 보고 있다.

부품의 표준화[편집]

앞서 설명한 제품의 단순화는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표준화로써 능한 것이다. 포드는 제품의 단순화에 노력하고 또한 표준화된 제품을 개선하기 위해서 부품을 표준화하는데 노력하여 호환성(互換性)을 가진 부품을 제조하였다.

이렇게 호환성을 지닌 부품은 항상 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제조원가를 절감시키며 만족스러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 표준화의 원리에 따라서 그가 활용한 제품의 단순화와 부품의 표준화는 컨베이어에 의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였고 합리적인 생산으로 결국 고임금과 낮은 생산비를 실현할 수 있었다.

기계 및 공구의 전문화[편집]

제품의 단위당 생산원가를 낮추고 부품의 표준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일 목적의 기계, 공구를 필요로 한다. 포드는 제품의 종류를 T형 하나로 단순화하였으며, 5,000여 종의 표준화된 부품을 생산함에 있어서 기계 및 공구의 전문화 즉 단일 목적의 기계, 공구에 의한 생산을 시도하였다.

이동조립[편집]

이동조립은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장치를 적용하여 라인을 구성하며 작업자는 이동하지 않고 부품이나 조립품이 작업 위치로 이동되어 계속 연결되면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즉 이동조립의 핵심은 사람, 작업자가 아닌 부품이 이동한다.

과거의 조립 작업은 정지 조립법이었는데 이는 작업 대상물이 정지하여 있고 작업자가 이동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정지 조립법의 문제점은 부품재료운반과 공구의 준비 및 처리에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정지 조립법의 불필요한 노동량을 줄이고 불필요한 노동력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이동조립법을 고안하였는데 이 방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각 작업 간의 작업 대상물의 이동을 기계화하였다.
  • 작업자들의 활동이 자동적, 기계적으로 통제된다.
  • 작업공정 상호 간의 합리적인 결합에 의해서 개별 작업의 총괄적 조직화가 이루어진다.

컨베이어 벨트는 이동조립의 전제 조건이며 현대의 제조업에서 기본으로 많이 쓰이고 있지만 이 당시에는 획기적인 생산 방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덕분에 대량생산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노동자가 벨트가 돌아가는 동안 쉼 없이 단순노동을 반복하다 보니 노동자들의 창의성이 많이 떨어지는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컨베이어시스템[편집]

1908년 생산된 T형 자동차는 다른 자동차들과 같은 기존의 생산방식으로 생산되었다. 각 작업자들은 조립한 반제품 자동차를 다음 공정으로 보내기 전에 많은 부품을 조립하였다. 예를 들면 작업자 한 명이 바퀴, 스프링, 엔진, 변속기, 발전기와 같은 모든 기계부품을 차대장착했는데, 이러한 작업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었다. 즉 고정된 자동차 작업대에서 작업을 해야만 했다. 또한 부품의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품을 가공한 후에 조립이 가능했다.

포드는 부품의 호환성과 표준화를 실현하였고 그 무렵 작업의 세분화와 분업화를 시행한다. 아담 스미스의 "생산력 최대의 진보는 분업이 가져온 성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그는 조립 작업자들이 단일 작업만을 수행하고 작업대 사이를 이동하며 작업하는 이동식 조립공정을 생각한 것이다.

T형 자동차의 판촉 활동의 성공에 힘입어 이 모델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자 기존의 생산방식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포드는 새로운 공장과 더불어 새로운 시스템 도입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초기의 4층짜리 하이랜드 파크 공장은 작업이 맨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었다. 4층에서는 차체가 만들어지고, 3층에서는 바퀴타이어를 부착하면서 동시에 차체페인트를 칠했다. 2층에서 모든 조립이 끝난 자동차는 경사면을 따라 1층으로 내려와 최종 검사를 받았다.

처음 3년 동안 이 공장에서의 생산량은 기존 생산량의 100%가 증가했다. 생산대수가 1910년 1만 9,000대에서 1911년에는 3만 4,500대, 1912에는 7만 8,440대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생산력 증가는 시작에 불과했다.

1910년, 포드는 하이랜드 파크에서 공장 자동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 후 이 실험은 17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실시되었다. 포드와 그의 기술자들은 조립라인의 모든 과정을 관찰했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도입했다. 포드는 시카고로 여행하던 중 당시로서는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움직이는 조립 라인'방식을 착안했다. 포드는 도축장 주인이 레일을 이용해서 이동시키면서 부위별로 고기를 발라내는 광경을 목격하고 자동차 조립공정에 이것을 반대로 적용한다. 아울러 생산부문 엔지니어들이 이송장치와 컨베이어 벨트 등의 아이디어를 실험하면서 더욱 조립 속도는 향상되었다.

1913년 포드는 8시간 근무에 일당 5달러의 약속을 지키면서 직공들의 능률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생각하여 공장의 모든 일을 과학적으로 분류하고 작업에 필요한 표준 시간을 책정하였다. 표준 시간에 따라 능률급제를 실시하였으나 생산성에는 한계에 부딪쳤다. 포드는 자기 발전기의 조립 작업 중 작업자가 재료나 공구를 필요로 할 때 왔다 갔다 하며 막대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보고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 작업자는 가능한 한 한발이라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 작업자는 허리를 굽힐 필요가 없다.

이러한 작업 원칙에 따라서 자기 발전기의 조립 라인을 8인치 높이자 작업 능률은 2.5배 증대되었으며, 1914년 초에 채택한 차대 조립 작업 라인의 높이를 작업자의 키에 맞춘 결과 작업능률이 향상되어 대당 조립 시간이 5시간 50분에서 1시간 33분으로 단축되었다.

포드는 이러한 작업 원칙을 공장에 적용하여 작업자를 작업순서에 따라서 일렬로 배열하고 공구를 고정 배치하며 작업 대상물을 컨베이어 시스템에 실어서 운반함으로써 작업자의 물류시간을 절대적으로 줄이도록 하였다. 이것은 곧 현대의 TV, 냉장고 등 각종 전자 조립품의 생산에서 절대적 우위를 자랑하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컨베이어 시스템을 창안한 것이었다.

포드는 앞서 설명한 작업에 관한 두 가지 일반 원칙을 보완하여 자동차의 조립 작업 원칙을 제시하였다.

  • 작업공정의 순서에 따라 작업자를 배열하고 각 작업의 사이클 타임을 균등히 한다.
  • 각 작업자 사이를 컨베이어나 운반 장치로 연결하여 작업물을 운반하게 한다.
  • 컨베이어를 시간적 규칙성에 따라 운전하여 작업 흐름을 원활히 한다.

이러한 원칙으로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은 생산의 표준화로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였고, 작업자들의 작업 속도를 컨베이어의 이동 속도에 맞춤으로서 종합적인 생산성 향상을 실현한 공장 혁신의 걸 작품이었다.

포드시스템의 단점[편집]

포드시스템은 오늘날 대량생산의 일반적인 원칙으로 승화된 생산 표준화의 3S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량생산의 원동력이 되었던 생산 표준화의 3S가 포드시스템 실패의 결정적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작업 조직을 유동화하여 작업 속도를 강제한다. 이동조립 작업은 작업자에 대해서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시 하는 것으로 작업자의 인간성이 무시되는 결과로서 작업자의 비인간화를 의미하여 비난을 받게 된다.
  • 공정정지가 전 공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한 공정에서 사고고장 등의 정지 원인이 있을 때 컨베이어는 정지하게 되어 작업은 중단되고 연쇄적으로 다음 공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설비투자로 인한 고정비가 크므로 조업도가 저하될 때는 제조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컨베이어나 단일 목적의 특수기계설비는 그 투자액이 클 뿐만 아니라 거대한 고정비를 요한다. 따라서 일정 조업도 이상을 유지하면서 대량생산이 지속되어야만 제조 원가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 제품의 단순화는 단위당 생산원가가 낮아진다는 대량생산의 이점이 있는 반면, 시장 구조의 변화 내지는 다양한 수요에 대한 유연성이 떨어진다. 자동차 생산에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하고 저가격 주의에 의해서 제품의 수요를 확대시켜 나간 포드의 기업 전략은 일단 성공을 본 셈이다. 1923년에는 연간 생산대수가 170만대에 달했으며 시장 점유율은 1921년에 최고 55.7%까지 상승했다. 당시 GM는 12.7%에 불과했다. 그러나 포드는 T형 만을 고집한 나머지 시장점유율은 점차 떨어지게 되고, 반대로 제품 차별화와 시장 세분화 전략으로 시장 수요의 구조적 변화에 적응한 GM는 점차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 제품 및 생산 설계의 변경, 개량이 곤란하다. 표준화의 특성인 고정성으로 말미암아 표준화된 제품이나 생산설비의 변경이 곤란하다. 대량생산에서 고도의 생산능률을 올릴 수 있지만 신제품이나 부품 개량에 따른 생산방법 내지 생산시설의 변경은 심히 곤란하다. 예로 포드는 1927년 5월 T형 자동차의 생산을 중지하고 약 반년 동안 신형 생산을 위해서 전 공정의 생산 시스템을 바꾸어 신형인 A형 자동차가 시장에 나오도록 하기 까지는 무려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노동자들의 과업 방식을 연구하여 과업 단위로 파악하고 시스템적으로 관리하는 경영이론을 주창한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과 이를 토대로 하여 생산 극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포드의 포드시스템, 분명히 이들은 산업혁명이 끝나고 근현대적인 공장제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방법은 곧 엄청난 문제점을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인간(노동자)을 기계부품처럼 여기는 풍조가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근대에도 나타났지만 지금 현대에도 그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1][2][3][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온달장군, 〈포드의 대량생산시스템〉, 《네이버 블로그》, 2004-05-18
  2. 창랑, 〈포드 시스템 (Ford system)〉, 《네이버 블로그》, 2012-11-28
  3. kingkangcucu, 〈포디즘의 개념과 의의〉, 《네이버 블로그》, 2013-12-22
  4. 포드(Henry Ford) 시스템〉, 《한울》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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