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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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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교(幸州大橋)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과 서울 강서구 상사동을 연결하는 다리.1978년 8월에 준공, 개통된 열번째 한강 횡단 교량이다. 길이 1,400m.
한강의 다리

행주대교(幸州大橋)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을 연결하는 한강의 다리이다. 39번 국도 및 78번 지방도 상의 다리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최서단에 있는 다리이다. 행주대교 남단은 올림픽대로와 김포한강로의 기종점이기도 하다. 총 연장은 1.460km이다.

교량의 명칭은 북단 인근에 위치한 행주산성에서 유례하였다. 행주대교라는 명칭은 정확히는 1978년 개통한 왕복 2차로의 구교를 의미하며, 1996년 개통한 신행주대교와 2000년 개통한 제2신행주대교로 구분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2022년 현재 통행이 가능한 2개의 신행주대교를 묶어서 행주대교라 칭하며, 남쪽에서 북쪽 방향을 기준으로 좌측에 신행주대교, 중앙은 제2신행주대교, 오른쪽은 구 행주대교가 각각 존재하는 형태로 3개의 다리가 하나의 세트를 이루고 있다.

개요[편집]

구행주대교[편집]

최초의 행주대교는 경인고속도로와 통일로를 연결하기 위한 도로 공사 (지금의 국도 제39호선)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1978년 7월 22일에 준공되었으며, 이후 11월 21일에 국도 제39호선이 완공되었다. 이 다리와 도로가 개통됨으로써 경인고속도로에서 통일로로 가는 데 거리가 20km로 줄어들었고 당시 기준으로 소요 시간도 약 1시간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다리는 교량 폭이 10m 정도 인데다, 왕복 2차선의 비좁고 초라한 다리에 그쳤다. 행주대교의 남북단으로 일산신도시와 중동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교통량이 증가하여 교통난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행주대교를 사장교 형태로 건설하였다.(사업비 170억원) 본래 198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2년 말에 개통할 예정이었으나, 1992년 여름에 건설 중이던 신행주대교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재건설에 3년이 더 걸림으로써 결국 1995년 5월에 개통하였다. 2000년 12월에 제2신행주대교까지 완공되면서 구 행주대교는 벽돌 등의 칸막이로 폐쇄되었고, 2011년 일부 구간은 철거한 상태다.

신행주대교[편집]

구 행주대교는 폭 10m (왕복 2차선)에 불과했는데, 행주대교 개통 이후 서울 서부 외곽지역의 교통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1987년 10월 착공하였다. 당시 개설 당시 명칭은 제2행주대교였으며 총 사업비 460억원을 투입해 폭 14.5m (3차선)에 총길이 1,460m로 건설하여 1992년에 개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92년 7월 31일에 신행주대교 붕괴로 개통이 지연됨에 따라, 일산·중동 신도시 개발에 따른 수도권 교통망 확충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후 다시 복구하여 1995년 5월 19일 개통되었다. 개통 당시에는 구 행주대교와 병용하여 고양 방면으로 1차선, 서울 방면으로 2차선을 배정하고 구 행주대교는 고양방면 승용차 전용으로 일방통행으로 변경하여 운영되었다.

이후 1996년에 신행주대교와 구 행주대교 사이 공간에 제2신행주대교 (또는 제3행주대교) 건설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비 691억원을 투입하여 1996년 9월에 착공하여 2000년 12월 16일에 통행 개시를 하여 12월 28일에 정식 개통되었다. 이 다리가 완공되면서 신행주대교는 서울 방면으로만, 제2신행주대교는 고양 방면으로만 이용하게 되었으며, 구 행주대교는 이 다리 개통과 함께 폐쇄되었다.

교통 연계[편집]

행주대교 자체가 39번 국도의 일부분으로 지정되어 있다. 북단으로 나오면 곧바로 행주고가사거리로 연결되는데, 여기서 고가차도로 진입하면 그대로 호국로를 따라 우회해 화정동으로 진입하고, 고가차도 하단으로 빠진 후 직진하면 행신로로 진입해 능곡동으로 이어진다. 우회전하면 舊 행주내리 마을과 KTX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그리고 행주산성으로 이어지며, 자유로와 재접속하는 교차로도 있기 때문에 실수로 행주대교IC를 지나쳤다면 이 교차로를 이용해도 된다.

남단으로 내려오면 곧바로 개화IC를 통해 올림픽대로와 연결되는데, 개화IC 램프에 78번 국가지원지방도 방향 진출램프도 합쳐져 있는데다 개화IC 램프를 지나서 얼마 가지도 않고는 곧바로 39번 국도, 48번 국도와 연결되는 고촌IC 연결램프가 등장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행선지가 꼬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4] 여튼 이 구간에서 올림픽대로로 진입하지 않을 경우 개화IC 램프와 연결된 78번 국지도 방향 램프로 나가면 아라김포 여객터미널 방향으로 이어져 전호IC를 통해 김포한강로로 들어갈 수 있으며, 고촌IC 연결램프를 통해 39번 국도로 진입하면 부천/인천 방향으로, 고촌IC 연결램프를 통해 48번 국도로 진입하면 김포 방향으로, 어디로도 들어가지 않으면 김포국제공항 방면으로 이어진다.

다리 북쪽의 덕양산에 행주산성이 있다. 자전거 동호인들이 한강을 달리다 행주대교를 건너 행주산성 근방에서 국수를 먹고 오는 것을 하나의 코스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행주대교 북단에서 행주산성 주변에서 자전거 동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가양대교의 정체를 피하기 위해서 이 다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자유로를 거쳐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자유로IC와 서울문산고속도로 남고양IC 및 북로JC - 흥도IC 경로를 이용하려고 하거나 진출한 차량들로 인해 정체가 발생한다.

신행주대교 붕괴 사고[편집]

새로 건설 중이던 신행주대교가 1992년 7월 31일에 붕괴한 사고이다.

사고 원인[편집]

원인은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주탑 주변에 교각이 견디기 힘들 정도의 콘크리트 사장재 4개를 세워 놓고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해오다 하중을 못이긴 상판과 교각이 무너지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이 공사에 쓰인 사장재는 하나 당 무게가 무려 110t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후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교량 상판의 이음새 부분에 대한 설계및 시공이 허술한 데서 비롯된 사소한 잘못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신행주대교는 연속압출공법과 콘크리트 사장재공법을 함께 적용하면서 건설되었는데 이 공법을 함께 적용하면서도 설계 또는 시공과정에서 이음면의 전단내하력(외부하중에 견딜 수있는 힘)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붕괴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4번째 임시교각 남쪽 상판은 가장 큰 하중이 걸리기 때문에 상판을 요철형태로 연결해야 하는 데도 설계를 맡은 한국종합기술이나 시공업체인 벽산건설이 이를 무시하는 바람에 사장재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결국 8백m구간의 상판과 교각, 주탑이 연속적으로 붕괴된 것으로 분석했다.

사고 경과[편집]

1992년 7월 31일 오후 6시 59분경, 2개의 주탑 중 하나가 부러지고 두 주탑 사이의 상판이 약 800m 정도 내려앉으면서 주탑 양 바깥쪽의 상부 구조물 전체가 주탑 방향으로 일시에 연쇄적으로 밀렸고 결국 교각과 함께 붕괴하였다. 다행히도 사고 당시 작업이 끝나 인부들이 현장에서 철수를 한 시간이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등 3명이 직위해제되었다. 사고 이후 복구공사에서는 당초 설계에 미비하였던 많은 점을 보완토록 하였고, 특히 콘크리트 사장재를 케이블 사장재로 변경하여 시공성을 높이고 사하중을 경감시켰다. 또한 사장교 구간을 연속 PSC 박스거더에서 강합성 교량으로 변경하여 재사용하는 주탑의 부담을 줄였고, 기초 파일도 복구 부분에서는 All Casting 공법 현장타설 말뚝을 사용토록 했으며 교각에 격벽을 추가하고 단면도 증가시켰다. 한편 이 교량 건설과 함께 추진해오던 구 행주대교의 확장 공사는 무기한 보류되었다.

또한 당시 건설을 맡았던 벽산건설은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다. 현재 벽산건설은 과징금 등을 다 낸 상태이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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