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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웨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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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웨이웨이 (胡玮炜) 모바이크(Mobike) 공동 설립자
모바이크(Mobike)

후웨이웨이(胡玮炜, hú wěi wěi, 1982년 ~ )는 중국의 언론인이자 사업가이다. 그녀는 자전거 공유 회사인 모바이크(Mobike)의 공동 설립자이다. 모바이크가 2018년 4월에 중국 인터넷 회사이자 중국 최대 음식 플랫폼인 메이퇀(美团)에 27억 달러에 인수합병되어 후웨이웨이는 15억 달러의 부자가 되었다고 중국언론들이 보도했다.

중국어로 모바이단처(摩拜单车, mó bài dān chē)라고도 한다. 현재 중국 인터넷 회사인 메이퇀(美团)에 인수되어 브랜드명도 메이퇀바이크(Meituanbike)로 변경되었다. 중국어로 메이퇀단처(美团单车, měi tuán dān chē)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메이퇀이 인수한 후 2018년 4월 4일부터 2018년 4월 30일 까지 순 적자만 4억700만 위안이다. 하루에 1500만 위안을 쏟아 부은 셈, 일년으로 따지만 모바이크 한대 당 순 적자는 54억 위안이다. 2018년 12월 후웨이웨이는 개인적인 이유로 최고경영자(CEO)직을 사임하고 회사를 떠났다.

결국 모바이단처는 2020년 12월 14일을 마지막으로 모바이APP 사용과 운영이 중지된다고 발표했으며 메이퇀App과 연동시켜 남은 잔액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인물 소개[편집]

후웨이웨이는 1982년 저장성 동양(东阳)에서 태어나 저장대학(浙江大学) 도시학원(城市学院)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여느 대학졸업생과 마찬가지로 베이징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베이징에 입성하여 매일경제신문(每日经济新闻) 경제부에 취직하여 자동차분야 기자가 되었다. 그 당시 월급은 3,000위안 베이징에서 생활하기도 어려웠다. 그 후로도 '신경보'(新京報) '상업가치'(商业价值)와 '지커공원'(极客公园)는 과학기술 기자로 일하면서 많은 인맥을 쌓았다. 2014년 그녀는 10여년 동안 모았던 13만 위안으로 개인 회사를 차렸다. 바로 '지커자동차뉴미디어(极客汽车新媒体)'이다. 그동안 기자 경력으로 자동차업계의 많은 큰손들과 인맥을 쌓아온 그는 이 회사를 차린 목적이 마로 자동차계의 큰손들과 교류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베이징 스허왠(四合院)의 정원의 한 술집을 빌려 밤에는 주인이 장사를 하고 그녀는 낮에 사무용으로 썼다. 매주 그녀는 이 곳에서 자동차 애호가, 엔지니어, 투자자 등 여러 사람을 만나며 '자동차의 미래'에 대해 연구했다. 첨음에는 독특한 뉴스 커뮤니케이션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많은 큰손들이 몰려들면서 인생의 최대 핵심 인물인 엔젤투자자 리빈(李斌)을 만나게 된다.

그녀가 10여년 동안 사무실을 출근하면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또 지하철에서 내려서 두발로 걸어야 했던 그 '1Km'의 거리는 '출근족'에게 있어서는 고통이었다. 만약 이 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흥 분야뿐만 아니라 많은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그녀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14년 당시 공유경제도 어느 정도의 규모를 형성하였고 모바일 결재도 성숙한 시기였다. 만약 두 가지를 결합하면 자전거가 밝은 미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담하게 리빈을 찾아가 생각을 털어 놓았고 그도 '공용자전거'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2015년 1월 리빈은 148만 위안을 투자해 후웨이웨이 '모바이크'회사가 정식으로 설립되었으며 그녀는 그해 32살이었다.

시작은 담대하였으나 자전거 사업이 유치하다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른 많은 도시에 이미 공용자전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입도 이상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승객의 안전을 최대 관심사로 좋은 자전거를 만들기로 했다.

그녀는 자전거에 펑크난 타이어나 체인, 페인트가 없어야 한다고 프로젝트팀에 조언했다. 시트와 벨은 품질이 최상이어야 하며 또 스마트 자물쇠를 달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고 했다. 후웨이웨이의 이런 요구는 당시 디자이너에게는 어려웠다.

두 달 만에 13명의 디자이너가 모바이크를 떠났다. 몇 달 동안 지나도 디자인은 후웨이웨이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좀 과장한다면 후웨이웨이는 혼자남은 빈 지휘관일 때도 있었지만 후웨이웨이는 버텼다. 공유자전거는 품질과 안전이 최우선이다. 사합원 파티에 참가했던 자동차 디자이너가 그녀를 도와 모바이크에 3명의 모토로라 디자이너를 소개하였다. 그리하여 6개월 만에 설계 및 개발을 거쳐 첫번째 자전거가 탄생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 자전거의 가격이 2,000위안에 달했다. 그녀의 예상가격 600위안을 훨씬 초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리빈한테 손을 내밀었고 리빈은 자신의 능력으로 조이캐피탈(愉悦资本) A라운드 투자 300만 달러를 유치하게 된다.

드디어 2016년 4월 모바이크의 공용 자전거는 상하이와 베이징에 투입되기 시작한다. "마지막 1Km의 고통을 확식하게 해결하는 저탄소 환경보호 컨셉"으로 모바이크는 대박을 이끌어 냈다. 1라운드 투입이 성공하면서 그녀는 또 자전가 원가를 낮추는데 성공한다. 자전거 단가를 200위안 이내로 통제하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했다고 본격적으로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6개월 만에 모바이크는 100여 개 도시에 투입되었으며 당시 공용자전거는 299위안의 보증금으 지불하면 사용이 가능했다. 148만 위안의 엔젤투자로 시작해 시가총액 100억을 창조한 모바이크는 후웨이웨이가 딱 회사를 설립한지 3년 만이다. 그녀는 젊은 청년사업가의 신화로 많은 명예를 얻게 되었다. 2017년 3월 11일 문화·감정 프로그램 '낭독자' 녹화에 참여했으며, 5월 4일 전국 혁신창업 좋은 청년으로 선정, 5월 26일 중국 전자상거래 혁신발전 서밋에서 올해의 신예 인물상을 수상했다. 2018년 5월 포브스지 아시아 '아시아 신예 여성 25인'에 선정됐다.

하지만 돈과 명예가 찾아 온지 얼마 안되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모바이크가 출시된지 1년도 안되어 투자자들은 후웨이웨이가 혼자 독식하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았고 투자를 회수하려고 했다.

2017년 중국의 전국 거리에는 20여 종의 공유자전거가 즐비해 각종 공유자전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도시 환경을 해치는 도시 쓰레기로 전락했다.

자전거 공유는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의 자질"을 시험하는 차가 되었다. 도로에 버려져 교통에 지장을 주었으며 고의적으로 파괴하거나 어린이 사용 등등 갖가지 문제를 야기했다. 많은 공유 자전거가 이로 인해 도산하여, 가입자의 보증금은 지금까지 환불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장 먼저 시장에 뛰어든 모바이크도 초기 과도적인 확장, 후기 유지비 상승, 회사의 수익성 악화, 대량 해고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동시에 중국정부가 급기야 공유자전거의 주차, 보증금 수금 등에 대한 일부 관리정책을 제정하기 시작하며 공유자전거 시장을 통제하기 시작해 그야말로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였다. 이미 난장판이 된 회사를 후웨이웨이는 일찍 손을 쓸수록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면 그녀를 기다리는건 부도밖에 없다.

그때 모바이크를 인수할 수 있는 사람은 메이퇀의 왕싱(王兴)밖에 없었다. 왕싱은 메이퇀 주식상장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모바이크를 인수하면 메이퇀의 가치총액은 올라 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로 왕싱을 찾아가 자기 생각을 말했고 왕싱은 즉시 인수절차를 진행하자고 답복했다.

2018년 4월 4일, 후웨이웨이는 185억에 모바이크를 왕싱에 넘겼으며 5억의 채무도 함께 메이퇀에 넘겼다. 후웨이웨이는 9%의 지분으로 15억위안을 보유하게 되는데 성공했다. 그해 그녀는 36세였다.

2018년 12월 23일 개인 사정으로 그녀는 모바이크 CEO에서 물러났다. 12월 29일 'WKUP 사이클' 이사로 취임한다. 2019년 5월 13일에는 후웨이웨이는 상하이커루이 과학기술발전유한공사 감사(上海考瑞科技发展有限公司)로 취임하였다.[1]

각주[편집]

  1. 小雨雨说故事, 〈胡玮炜:从月薪三千到摩拜CEO,148万创建摩拜,3年套现15亿〉, 《网易》, 2022-06-04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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