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진 편집하기

이동: 둘러보기, 검색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아이디(ID)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편집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저장해주세요.
최신판 당신의 편집
17번째 줄: 17번째 줄:
  
 
== 생애 ==
 
== 생애 ==
김봉진 대표는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다. 원래 꿈은 화가가 꿈이었으나,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공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좋아하지 않아, 공부와는 담을 쌓으면서 살았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디자인학원을 다니면서 실기 비중이 높은 예술계 대학교에 지원하게 되었고 합격하여 서울예술대학교로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 후 [[이모션]]과 [[네오위즈]]에서 웹디자이너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김 대표는 처음으로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처음 도전한 사업은 인테리어 가구디자인 사업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다른 건 몰라도 디자인은 자신이있었던 그는 자신의 특기와 전공을 살려 가구관련 사업을 했지만 결국 사업이 잘풀리지 못하고 부도가 나면서 2억 원의 빚을 지게 된다. 사업 실패 이후 2008년 [[네이버㈜]]에 재취업한다. 그 당시에는 IT기술과 웹디자인 관련업계의 진입장벽이 낮았고 또한 그 업계 안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사업은 실패 했지만 디자인 업계에서 디자이너로 실력을 인정 받았기 때문에 네이버㈜에 재취업할 수 있었다. 네이버㈜를 다니면서 IT관련 사업을 꿈꿨다. 하지만 한 번 사업에 실패해봤던 경험이있어서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의 지원과 격려를 통해 다시 한 번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이후 IT분야 사업을 창업을 구상했지만,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기술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해줄 개발자가 필요했다. 마침 그의 셋째 형인 김광수가 IT업체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기에 사업을 제안했고 형인 [[김광수]](현재 우아한형제들 최고기술책임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2010년 지금의 국내 배달 서비스앱 1위인 배달의민족을 개발한 우아한형제들을 창업을 하게 된다. 창업 처음부터 배달 서비스를 구상했던 것은 아니였다. 처음에는 스마트폰용 114 서비스를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개인이 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한계점과 낮은 시장성으로 결국 실패했다. 그 다음으로 구상한 게 배달 서비스였다. 인터넷과 서울 강남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돌면서 배달 전단지를 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배달의민족이라는 앱을 만들게 된다. <ref> 유라준, 〈[https://yurajun.tistory.com/1715 김봉진 배달의민족 우아한형제-후발주자의 성공 이유]〉, 《티스토리》, 2014-12-08</ref>
+
김봉진 대표는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다. 김 대표의 원래 꿈은 화가가 꿈이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한 사정으로 공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와는 담을 쌓으면서 살았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디자인학원을 다니면서 실기 비중이 높은 예술계 대학교에 지원하게 되었고 합격하여 서울예술대학교로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 후 이모션과 네오위즈에서 웹디자이너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김 대표는 처음으로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처음 도전한 사업은 인테리어 가구디자인 사업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다른 건 몰라도 디자인은 자신이있었던 그는 자신의 특기와 전공을 살려 가구관련 사업을 했지만 결국 사업이 잘풀리지 못하고 부도가 나면서 2억 원의 빚을 지게 된다. 사업 실패 이후 2008년 네이버㈜에 재취업한다. 그 당시에는 IT기술과 웹디자인 관련업계의 진입장벽이 낮았고 또한 그 업계 안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사업은 실패했지만 디자인 업계에서 디자이너로 실력을 인정 받았기 때문에 네이버㈜에 재취업할 수 있었다. 네이버㈜를 다니면서 IT관련 사업을 꿈꿨다. 하지만 한 번 사업에 실패해봤던 경험이있어서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의 지원과 격려를 통해 다시 한 번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IT분야 사업을 창업을 구상했지만,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기술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해줄 개발자가 필요했다. 마침 그의 셋째 형인 김광수가 IT업체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기에 사업을 제안했고 형인 김광수(현재 우아한형제들 최고기술책임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2010년 지금의 국내 배달 서비스앱 1위인 배달의민족을 개발한 우아한형제들을 창업을 하게 된다. 창업 처음부터 배달 서비스를 구상했던 것은 아니였다. 처음에는 스마트폰용 114 서비스를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개인이 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한계점과 낮은 시장성으로 결국 실패했다. 그 다음으로 구상한 게 배달 서비스였다. 인터넷과 서울 강남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돌면서 배달 전단지를 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배달의민족이라는 앱을 만들게 된다. <ref> 유라준, 〈[https://yurajun.tistory.com/1715 김봉진 배달의민족 우아한형제-후발주자의 성공 이유]〉, 《티스토리》, 2014-12-08</ref>
  
 
현재 배달의민족은 거래매출액이 8조6,000억 원으로 집계되며,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전년도 3,145억 원보다 79.8% 증가해 5,654억 원을 기록했다. 2015년 495억 원에서 4년 만에 11배 이상 성장했다. 또한 배민라이더스, 배민찬, 배민오더, 배민커넥트 등 배달 서비스 관련 사업도 확장을 계속해나가고 있다.<ref> 이미경 기자,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003207758g ‘배민’ 거래매출 첫 8조 돌파...1년 새 3조4천억 ↑]〉, 《한국경제》, 2020-03-20</ref>
 
현재 배달의민족은 거래매출액이 8조6,000억 원으로 집계되며,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전년도 3,145억 원보다 79.8% 증가해 5,654억 원을 기록했다. 2015년 495억 원에서 4년 만에 11배 이상 성장했다. 또한 배민라이더스, 배민찬, 배민오더, 배민커넥트 등 배달 서비스 관련 사업도 확장을 계속해나가고 있다.<ref> 이미경 기자,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003207758g ‘배민’ 거래매출 첫 8조 돌파...1년 새 3조4천억 ↑]〉, 《한국경제》, 2020-03-20</ref>

위키원에서의 모든 기여는 다른 기여자가 편집, 수정, 삭제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위키원:저작권 문서를 보세요).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