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타강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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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라플라타강 지리.jpg|썸네일|300픽셀|'''라플라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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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타강'''(영어: La Plata River, 스페인어: Río de la Plata)은 [[남아메리카]]에서 [[우루과이강]]과 [[파라나강]]이 합류하여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남아메리카]]의 [[삼각강]]이다. 라플라타강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사이 [[파라나강]]과 [[우루과이강]]이 [[합류]]하는 [[하구]] 부분이다. 라플라타강의 [[어귀]] 너비가 가장 큰 곳이 220km, 길이 300km, 유역면적 310만 4000km²에 이른다. 라플라타강은 [[아마존강]] 다음으로 세계에서 큰 [[강 (자연)|강]]이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국경]]을 이루며, 강 남측에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북측엔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가 있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B%9D%BC%ED%94%8C%EB%9D%BC%ED%83%80%EA%B0%95 라플라타강]〉,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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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타강'''(영어: La Plata River, 스페인어: Río de la Plata)은 [[남아메리카]]에서 [[우루과이강]]과 [[파라나강]]이 합류하여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남아메리카]]의 [[삼각강]]이다. 라플라타강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사이 [[파라나강]]과 [[우루과이강]]이 [[합류]]하는 [[하구]] 부분이다. 라플라타강의 [어귀]] 너비가 가장 큰 곳이 220km, 길이 300km, 유역면적 310만 4000km²에 이른다. 라플라타강은 [[아마존강]] 다음으로 세계에서 큰 [[강 (자연)|강]]이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국경]]을 이루며, 강 남측에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북측엔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가 있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B%9D%BC%ED%94%8C%EB%9D%BC%ED%83%80%EA%B0%95 라플라타강]〉, 《위키백과》</ref>
  
 
==개요==
 
==개요==
라플라타강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파라나강]]과 [[우루과이강]]이 [[합류]]하는 [[대하천]]의 하류 구간이며, 다른 하나는 [[파라나강 삼각주]]에 이어진 거대한 [[하구]]를 의미한다. 대하천의 하류로 해석할 경우, 라플라타강은 [[아마존강]], [[오리노코강]]과 함께 남아메리카의 3대 하천에 속하며 유역 분지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에 걸쳐 있다. 하지만 라플라타강은 엄밀히 말해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의 만(灣)에 더 가깝다고 해석될 수 있다. 라플라타강은 우루과이강 하구의 거대한 [[삼각강]](三角江)이자 [[파라나강]]의 넓은 [[삼각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서양과 만나는 부분에서는 하구의 폭이 220km로서 대단히 넓지만 내륙으로 가면 2km로 크게 줄어든다. 라플라타강 주변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최대 인구 밀집 지역이며 [[몬테비데오항]]과 [[부에노스아이레스항]]은 두 나라의 대표적인 [[항구]]이자 관문이다. 하구에는 상류로부터 흘러 내려온 [[토사]]로 그 수심이 더 얕아져, 몬테비데오항과 부에노스아이레스항에 이르는 [[항로]]는 항상 [[준설]]하지 않으면 [[운항]]할 수 없다.<ref>〈[https://namu.wiki/w/%EB%9D%BC%ED%94%8C%EB%9D%BC%ED%83%80%20%EA%B0%95 라플라타 강]〉, 《나무위키》</ref><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467128&cid=51778&categoryId=51778 라플라타강]〉, 《네이버 지식백과》</ref><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96286&cid=51736&categoryId=51736 라플라타 강]〉, 《네이버 지식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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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타강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파라나강과 우루과이강이 합류하는 대하천의 하류 구간이며, 다른 하나는 파라나강 삼각주에 이어진 거대한 하구를 의미한다. 대하천의 하류로 해석할 경우, 라플라타 강은 아마존강, 오리노코강과 함께 남아메리카의 3대 하천에 속하며 유역 분지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에 걸쳐 있다. 하지만 라플라타강은 엄밀히 말해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의 만(灣)에 더 가깝다고 해석될 수 있다. 라플라타강은 우루과이강 하구의 거대한 삼각강(三角江)이자 파라나강의 넓은 삼각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서양과 만나는 부분에서는 하구의 폭이 220km로서 대단히 넓지만 내륙으로 가면 2km로 크게 줄어든다. 라플라타강 주변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최대 인구 밀집 지역이며 몬테비데오 항과 부에노스아이레스 항은 두 나라의 대표적인 항구이자 관문이다. 하구에는 상류로부터 흘러 내려온 토사로 그 수심이 더 얕아져, 몬테비데오 항과 부에노스아이레스 항에 이르는 항로는 항상 준설하지 않으면 운항할 수 없다.<ref>〈[https://namu.wiki/w/%EB%9D%BC%ED%94%8C%EB%9D%BC%ED%83%80%20%EA%B0%95 라플라타 강]〉, 《나무위키》</ref><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467128&cid=51778&categoryId=51778 라플라타강]〉, 《네이버 지식백과》</ref><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96286&cid=51736&categoryId=51736 라플라타 강]〉, 《네이버 지식백과》</ref>
  
라플라타강은 에스파냐어로 'Río de la Plata', 즉 '은(銀)의 강'이라는 뜻이다. 영어권에서는 'River Plate' 혹은 'La Plata River'로 혼용해 쓰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세바스티안 카보토(Sebastián Caboto)가 1526~1529년에 파라나 강과 우루과이 강을 탐험하면서 지금의 아순시온(Asunción)까지 거슬러 올라가 파라과이 강(Río Paraguay)에 다다랐는데, 토착민과의 거래를 통해 은장신구를 얻게 되자 이에 착안하여 이 강을 '라플라타'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98254&cid=43966&categoryId=43966 라플라타강(Río de la Plata)]〉, 《네이버 지식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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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타 강은 에스파냐어로 'Río de la Plata', 즉 '은(銀)의 강'이라는 뜻이다. 영어권에서는 'River Plate' 혹은 'La Plata River'로 혼용해 쓰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세바스티안 카보토(Sebastián Caboto)가 1526~1529년에 파라나 강과 우루과이 강을 탐험하면서 지금의 아순시온(Asunción)까지 거슬러 올라가 파라과이 강(Río Paraguay)에 다다랐는데, 토착민과의 거래를 통해 은장신구를 얻게 되자 이에 착안하여 이 강을 '라플라타'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98254&cid=43966&categoryId=43966 라플라타강(Río de la Plata)]〉, 《네이버 지식백과》</ref>
  
 
==지리==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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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식생==
 
==기후와 식생==
상류에 해당하는 알토파라나와 파라과이 유역분지는 일 년 내내 더운 열대기후이다. 4월부터 9월까지 겨울은 건조하고, 10월부터 3월까지 여름은 비가 내린다. 연평균 기온은 20℃ 내외이며, 연 최고기온은 40~42℃나 되지만, 연 최저기온은 3℃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동부지역이 2,000mm이며 서쪽으로 갈수록 줄어들어 서부지역에서는 1,000mm가량 된다. 여름철 강수량이 전체 강수량의 80%가량 되는데 7월부터 8월 사이가 최대 건기이다. 중하류로 갈수록 기후는 아열대에서 온대로 바뀐다. 연평균 기온은 13℃이며, 월평균 기온은 항상 10℃를 넘는다. 서리는 겨울철 남쪽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파라과이의 아순시온(Asunción)이나 브라질의 파라나주에서도 간혹 나타난다. 라플라타강 연안 하류는 평균 습도가 70%에 달할 정도로 아주 습하다. 특히 상류 열대지역의 홍수가 하류에 도달하는 여름에는 습도가 높이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이다. 하류의 강수량은 상류에 비해 많지 않다. 하지만 일 년 내내 비가 오며, 라플라타강 연안의 평균 강수량은 1,100mm 가량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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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에 해당하는 알토파라나와 파라과이 유역분지는 일 년 내내 더운 열대기후이다. 4월부터 9월까지 겨울은 건조하고, 10월부터 3월까지 여름은 비가 내린다. 연평균 기온은 20℃ 내외이며, 연 최고기온은 40~42℃나 되지만, 연 최저기온은 3℃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동부지역이 2,000mm이며 서쪽으로 갈수록 줄어들어 서부지역에서는 1,000mm가량 된다. 여름철 강수량이 전체 강수량의 80%가량 되는데 7월부터 8월 사이가 최대 건기이다. 중하류로 갈수록 기후는 아열대에서 온대로 바뀐다. 연평균 기온은 13℃이며, 월평균 기온은 항상 10℃를 넘는다. 서리는 겨울철 남쪽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파라과이의 아순시온(Asunción)이나 브라질의 파라나주에서도 간혹 나타난다. 라플라타강 연안 하류는 평균 습도가 70%에 달할 정도로 아주 습하다. 특히 상류 열대지역의 홍수가 하류에 도달하는 여름에는 습도가 높이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이다. 하류의 강수량은 상류에 비해 많지 않다. 하지만 일 년 내내 비가 오며, 라플라타 강 연안의 평균 강수량은 1,100mm가량 된다.
  
 
파라과이강 상류의 판타나우 습지는 마투그로수 대지의 식생과 습지 식생으로 이루어져 있어 ‘판타나우 식생 복합체(Complexo do Pantanal)’라 불린다. 습지 식생으로는 부레옥잠과 수련이 대표적이며 범람원 지역에는 팔손이뽕나무와 구아마(guama)와 같은 친수성 수종이 자라고 있다. 홍수가 물러난 사바나 지역에는 참새피(Paspalum)나 뿌리마디가 있는 거친 풀들이 다시 나타난다. 온대기후에서 자라는 보다 진화된 식생은 물에 잠기지 않는 고지대에서 자라는데, 야자나무와 월계수나무가 대표적이다. 하천변에는 상록수가 밀생해 있으며, 이 지역의 산지에는 각종 야자나무와 옻나무가 자라고 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파라나강 연안을 따라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Misiones) 주로부터 서쪽으로 그리고 파라과이의 동부 대부분의 지역을 아열대 삼림과 낙엽수림이 덮고 있다. 이곳에 자라는 라파초(lapacho)와 같은 경목은 장식용 가구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며, 아일렉스(ilex) 잎은 마테 차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파라과이강 상류의 판타나우 습지는 마투그로수 대지의 식생과 습지 식생으로 이루어져 있어 ‘판타나우 식생 복합체(Complexo do Pantanal)’라 불린다. 습지 식생으로는 부레옥잠과 수련이 대표적이며 범람원 지역에는 팔손이뽕나무와 구아마(guama)와 같은 친수성 수종이 자라고 있다. 홍수가 물러난 사바나 지역에는 참새피(Paspalum)나 뿌리마디가 있는 거친 풀들이 다시 나타난다. 온대기후에서 자라는 보다 진화된 식생은 물에 잠기지 않는 고지대에서 자라는데, 야자나무와 월계수나무가 대표적이다. 하천변에는 상록수가 밀생해 있으며, 이 지역의 산지에는 각종 야자나무와 옻나무가 자라고 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파라나강 연안을 따라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Misiones) 주로부터 서쪽으로 그리고 파라과이의 동부 대부분의 지역을 아열대 삼림과 낙엽수림이 덮고 있다. 이곳에 자라는 라파초(lapacho)와 같은 경목은 장식용 가구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며, 아일렉스(ilex) 잎은 마테 차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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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분쟁==
 
==영토 분쟁==
19세기 후반 이래 라플라타강 유역에서는 인접 국가들 간에 여러 번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삼국동맹전쟁, 차코 전쟁, 라플라타강 전투가 그것이다. 삼국동맹전쟁(Guerra de la Triple Alianza, 1864~1870)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동맹군과 파라과이와의 전쟁으로, 파라과이는 패전과 함께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14만km²에 달하는 파라과이 영토를 합병했다. 아르헨티나는 미시오네스 지역의 상당 부분과 베르메호 강과 필코마요 강 사이 차코센트럴(Chaco Central)의 일부를 얻었고, 브라질은 마투그로수 주를 확장했다. 한편 [[아타카마사막]](Desierto de Atacama)에 있는 초석 산지의 경제적 이권을 둘러싸고 칠레와 볼리비아 간에 벌어진 전쟁이 태평양전쟁(Guerra del Pacífico, 1879~1884)이다. 이 전쟁으로 칠레가 볼리비아의 해안 지방을 합병함으로써 볼리비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 되었다. 이후 볼리비아는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라플라타강을 통해 대서양에 이르는 진로를 확보하고자 했는데 이 경로에는 [[석유]] 매장이 예상되는 열대 사바나 초원지대 그란차코(Gran Chaco)가 있었다. 결국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두 나라는 1928년 차코보레알(Chaco Boreal)에서 충돌했으며, 이것이 차코 전쟁(Guerra del Chaco, 1932~193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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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이래 라플라타강 유역에서는 인접 국가들 간에 여러 번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삼국동맹전쟁, 차코 전쟁, 라플라타 강 전투가 그것이다. 삼국동맹전쟁(Guerra de la Triple Alianza, 1864~1870)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동맹군과 파라과이와의 전쟁으로, 파라과이는 패전과 함께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14만km²에 달하는 파라과이 영토를 합병했다. 아르헨티나는 미시오네스 지역의 상당 부분과 베르메호 강과 필코마요 강 사이 차코센트럴(Chaco Central)의 일부를 얻었고, 브라질은 마투그로수 주를 확장했다. 한편 [[아타카마사막]](Desierto de Atacama)에 있는 초석 산지의 경제적 이권을 둘러싸고 칠레와 볼리비아 간에 벌어진 전쟁이 태평양전쟁(Guerra del Pacífico, 1879~1884)이다. 이 전쟁으로 칠레가 볼리비아의 해안 지방을 합병함으로써 볼리비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 되었다. 이후 볼리비아는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라플라타강을 통해 대서양에 이르는 진로를 확보하고자 했는데 이 경로에는 [[석유]] 매장이 예상되는 열대 사바나 초원지대 그란차코(Gran Chaco)가 있었다. 결국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두 나라는 1928년 차코보레알(Chaco Boreal)에서 충돌했으며, 이것이 차코 전쟁(Guerra del Chaco, 1932~1935)이다.
  
 
전장인 차코보레알은 그란차코의 일부로 필코마요 강 북쪽과 파라과이 강 서쪽에 위치한 25.9만km2의 광활한 지역이었다. 볼리비아는 많은 인구와 잘 훈련된 군대, 충분한 무기 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원주민 병사들의 낮은 사기와 늪지와 정글에서의 총격전, 질병, 독사 등에 의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전쟁은 파라과이의 우세로 끝났으며, 휴전이 이루어진 1935년 6월까지 약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차코 평화회의를 통해 파라과이는 차코보레알 대부분에 대한 소유권을 얻었고, 아르헨티나의 투자가들은 이득을 보았다. 대신 볼리비아도 파라과이 강에 이르는 좁은 회랑지대와 함께 파라과이의 푸에르토카사도(Puerto Casado, 예전 이름은 Puerto La Victoria)에 그들의 항구를 건설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볼리비아의 경제는 붕괴되었다.
 
전장인 차코보레알은 그란차코의 일부로 필코마요 강 북쪽과 파라과이 강 서쪽에 위치한 25.9만km2의 광활한 지역이었다. 볼리비아는 많은 인구와 잘 훈련된 군대, 충분한 무기 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원주민 병사들의 낮은 사기와 늪지와 정글에서의 총격전, 질병, 독사 등에 의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전쟁은 파라과이의 우세로 끝났으며, 휴전이 이루어진 1935년 6월까지 약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차코 평화회의를 통해 파라과이는 차코보레알 대부분에 대한 소유권을 얻었고, 아르헨티나의 투자가들은 이득을 보았다. 대신 볼리비아도 파라과이 강에 이르는 좁은 회랑지대와 함께 파라과이의 푸에르토카사도(Puerto Casado, 예전 이름은 Puerto La Victoria)에 그들의 항구를 건설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볼리비아의 경제는 붕괴되었다.
  
라플라타강의 전투(Battle of the River Plate)는 1939년 12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인근 라플라타강에서 영국의 순양함대와 독일 전함 사이에 벌어졌다. 이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아메리카에서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에 벌어진 유일한 전투이다. 영국 순양함대를 피해 몬테비데오 항에 기항한 독일 전함 그라프 슈페(Graf Spee) 호를 공격하기 위해 영국 순양함대는 몬테비데오 항 인근 공해를 포위하였다. 이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한스 랑스도르프(Hans Langsdorff) 함장은 승조원 모두를 내리게 하고는 배를 자침시키고 자살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억류된 승조원들의 상당수는 남아메리카에 잔류하였다. 이 전투는 1956년 영국에서 ‘라플라타강의 전투(The Battle of the River Plate)’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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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타강의 전투(Battle of the River Plate)는 1939년 12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인근 라플라타강에서 영국의 순양함대와 독일 전함 사이에 벌어졌다. 이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아메리카에서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에 벌어진 유일한 전투이다. 영국 순양함대를 피해 몬테비데오 항에 기항한 독일 전함 그라프 슈페(Graf Spee) 호를 공격하기 위해 영국 순양함대는 몬테비데오 항 인근 공해를 포위하였다. 이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한스 랑스도르프(Hans Langsdorff) 함장은 승조원 모두를 내리게 하고는 배를 자침시키고 자살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억류된 승조원들의 상당수는 남아메리카에 잔류하였다. 이 전투는 1956년 영국에서 ‘라플라타 강의 전투(The Battle of the River Plate)’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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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라플라타강 유역에 사는 원주민 가운데는 [[파라과이]]의 [[과라니족]]이 있다. 14~15세기에 [[투피어]](Tupi)쓰는 사람들의 일부가 파라과이 동부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국경 부근에서 라플라타강 일대로 옮겨가서 과라니(Guarani) 족이 되었다. 이들은 열대우림에 살며 5~6년마다 옮겨 다니면서 남자는 사냥과 낚시를 하고 여자는 화전에서 옥수수, 카사바, 고구마를 재배하였다. 부계 친족 60명 정도가 함께 사는 커다란 집 4~6채가 모여 마을을 이루었던 과라니 족은 호전적이고 포로를 제물로 바친 후에 잡아먹는 풍습을 지니고 있었다. 에스파냐 인들은 남아메리카 정복 과정에서 과라니 족과 혼혈 후손을 남겼는데 이들이 오늘날 파라과이 농민의 조상이다. 예수회는 17세기에 파라과이 동부 파라나 강 일대 과라니 족 마을에 전도구(傳道區, reduccione)를 세웠다. 그러나 1767년 예수회가 쫓겨나고 원주민도 흩어지거나 노예가 되었다. 오늘날 파라과이에는 과라니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수도 아순시온 주변의 파라과이 강 유역에 거주하는 주민 100만 명은 대부분 과라니 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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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타 강 유역에 사는 원주민 가운데는 파라과이의 과라니 족이 있다. 14~15세기에 투피(Tupi) 어를 쓰는 사람들의 일부가 파라과이 동부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국경 부근에서 라플라타 강 일대로 옮겨가서 과라니(Guarani) 족이 되었다. 이들은 열대우림에 살며 5~6년마다 옮겨 다니면서 남자는 사냥과 낚시를 하고 여자는 화전에서 옥수수, 카사바, 고구마를 재배하였다. 부계 친족 60명 정도가 함께 사는 커다란 집 4~6채가 모여 마을을 이루었던 과라니 족은 호전적이고 포로를 제물로 바친 후에 잡아먹는 풍습을 지니고 있었다. 에스파냐 인들은 남아메리카 정복 과정에서 과라니 족과 혼혈 후손을 남겼는데 이들이 오늘날 파라과이 농민의 조상이다. 예수회는 17세기에 파라과이 동부 파라나 강 일대 과라니 족 마을에 전도구(傳道區, reduccione)를 세웠다. 그러나 1767년 예수회가 쫓겨나고 원주민도 흩어지거나 노예가 되었다. 오늘날 파라과이에는 과라니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수도 아순시온 주변의 파라과이 강 유역에 거주하는 주민 100만 명은 대부분 과라니 어를 사용한다.
  
 
16세기 남아메리카를 탐험하는 유럽인 사이에서는 은광이 있다고 전해지는 산 시에라 데 라 플라타에 대한 전설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세바스티아노 카보토가 파라과이강을 따라 과라니족과 은 거래를 한 뒤에 그 하류 강에 ‘은’이라는 뜻의 ‘라플라타(la Plata)’라는 이름을 붙였다.
 
16세기 남아메리카를 탐험하는 유럽인 사이에서는 은광이 있다고 전해지는 산 시에라 데 라 플라타에 대한 전설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세바스티아노 카보토가 파라과이강을 따라 과라니족과 은 거래를 한 뒤에 그 하류 강에 ‘은’이라는 뜻의 ‘라플라타(la Plata)’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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