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선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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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선'''(兵船)은 [[전쟁]]에 필요한 [[장비]]를 갖춘 [[배]]를 말한다. [[조선시대]] 전선(戰船)의 한 가지로 수영에 딸린 작은 싸움배를 뜻하며 수군(水軍) 30명을 태울 수 있는 배인데, '''소맹선'''(小猛船)이라고도 불렀다. | '''병선'''(兵船)은 [[전쟁]]에 필요한 [[장비]]를 갖춘 [[배]]를 말한다. [[조선시대]] 전선(戰船)의 한 가지로 수영에 딸린 작은 싸움배를 뜻하며 수군(水軍) 30명을 태울 수 있는 배인데, '''소맹선'''(小猛船)이라고도 불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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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 == | == 소재 == | ||
− | 조선은 2, 3차 대마도원정을 통해 왜구를 선제 제압하기도 했지만, 삼포왜란, 을묘왜변 등을 겪으며 왜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이어갔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거북선을 앞세운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게 돌아갔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일본과의 '군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거북선 등 전함의 재료로 | + | 조선은 2, 3차 대마도원정을 통해 왜구를 선제 제압하기도 했지만, 삼포왜란, 을묘왜변 등을 겪으며 왜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이어갔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거북선을 앞세운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게 돌아갔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일본과의 '군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거북선 등 전함의 재료로 소나무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조선 수군의 거북선과 맞섰던 왜군의 안택선은, 구조상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 장점을 지녀 주력 함선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 배는 조선 수군의 거북선과 충돌 시 쉽게 부서졌다. 거북선이 소나무로 만들어진 반면, 안택선은 상대적으로 재질이 무른 삼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병선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조선 수군은, 이처럼 소나무라는 우수한 재료와 이순신이 발휘한 지략의 화학작용을 통해, 막강한 병력의 일본 수군에게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
이순신은 1593년(선조 26) 11월까지 자신의 관할인 전라좌도에서 60척, 전라우도에서 90척, 충청도에서 60척, 경상도에서 40척 등 총 250척의 전선을 만들고 동수의 사후선도 건조하였다. | 이순신은 1593년(선조 26) 11월까지 자신의 관할인 전라좌도에서 60척, 전라우도에서 90척, 충청도에서 60척, 경상도에서 40척 등 총 250척의 전선을 만들고 동수의 사후선도 건조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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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도의 수영에는 전선·방선·병선 등의 배들이 소속되었는데, 수영에 따라 각기 선박을 개조해야 할 시기가 정해져 있었다. 병선 건조에 가장 알맞은 목재는 소나무였으므로 일정한 지역에 채벌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그것을 감시 관리하는 일들도 수군진영들에서 맡아하도록 하였다. 수영소속 고을들에서는 자기 힘으로 건조하지 못할 때 쌀·천·돈을 양인들에게서 거두어 수영소속 장공인들 또는 선박건조업자들에게 위임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 각 도의 수영에는 전선·방선·병선 등의 배들이 소속되었는데, 수영에 따라 각기 선박을 개조해야 할 시기가 정해져 있었다. 병선 건조에 가장 알맞은 목재는 소나무였으므로 일정한 지역에 채벌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그것을 감시 관리하는 일들도 수군진영들에서 맡아하도록 하였다. 수영소속 고을들에서는 자기 힘으로 건조하지 못할 때 쌀·천·돈을 양인들에게서 거두어 수영소속 장공인들 또는 선박건조업자들에게 위임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 ||
− | 배를 만들 수 있는 소나무가 없었다면 이순신 장군의 빛나는 승리도 없을 것이란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보면 소나무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된다. | + | 배를 만들 수 있는 소나무가 없었다면 이순신 장군의 빛나는 승리도 없을 것이란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보면 소나무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소나무가 군사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사회현상과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인지가 여기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소나무는 한반도의 수호신이었다는 글쓴이의 지적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조선 사회, 나아가 한반도의 지나온 날들을 이해하는 데 소나무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인데도, 아직까지 이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저자의 일성은 큰 울림을 자아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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