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대성전 편집하기

이동: 둘러보기, 검색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아이디(ID)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편집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저장해주세요.
최신판 당신의 편집
1번째 줄: 1번째 줄:
{{서유럽 위치 지도}}
+
 
[[파일:성 베드로 대성전 정면사진.png|썸네일|300픽셀|성 베드로 대성전 정면사진]]
 
[[파일:성 베드로 대성전 전경.png|썸네일|300픽셀|성 베드로 대성전 전경]]
 
[[파일:성 베드로 대성전 실내 전경.png|썸네일|300픽셀|성 베드로 대성전 실내 전경]]
 
[[파일:TV ES PETRVS(Tu es Petrus, 너는 베드로다).png|썸네일|300픽셀|TV ES PETRVS(Tu es Petrus, 너는 베드로다)]]
 
  
 
'''성 베드로 대성전'''(St. Peter's Basilica, Basilica di San Pietro, 라틴어: Basilica Sancti Petri, 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 혹은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대성전'''(Basilica Vaticana)은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대성전을 말한다.
 
'''성 베드로 대성전'''(St. Peter's Basilica, Basilica di San Pietro, 라틴어: Basilica Sancti Petri, 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 혹은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대성전'''(Basilica Vaticana)은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대성전을 말한다.
24번째 줄: 20번째 줄:
  
 
== 역사 ==
 
== 역사 ==
[[파일:옛 성 베드로 대성당의 상상도, H.W.브루워, 1891.jpg|썸네일|300픽셀|옛 성 베드로 대성당의 상상도, H.W.브루워]]
 
 
세계 최대의 단일 종교의 본산에 걸맞게 장대한 역사를 자랑한다. 베드로의 무덤 위에 옛 대성당이 지어진 이후 그것을 철거하며 새 대성당이 다 지어지기까지 100년이 넘는 세월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비롯한 르네상스 및 바로크의 대표 예술가, 건축가들이 다수 투입되었다. 교회가 이렇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당대의 가톨릭이 고대 로마와 같은 고전적 권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며, 그 근원인 로마라는 도시와 그 곳의 성지인 베드로의 무덤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 성당이 막 지어질 즈음의 시기는 옛 대성당은 물론이고 도시 로마 자체가 상당히 쇠잔한 시점이었는데, 도시 재개발까지 병행하는 것을 각오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새 대성당을 지어야만 했다.
 
세계 최대의 단일 종교의 본산에 걸맞게 장대한 역사를 자랑한다. 베드로의 무덤 위에 옛 대성당이 지어진 이후 그것을 철거하며 새 대성당이 다 지어지기까지 100년이 넘는 세월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비롯한 르네상스 및 바로크의 대표 예술가, 건축가들이 다수 투입되었다. 교회가 이렇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당대의 가톨릭이 고대 로마와 같은 고전적 권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며, 그 근원인 로마라는 도시와 그 곳의 성지인 베드로의 무덤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 성당이 막 지어질 즈음의 시기는 옛 대성당은 물론이고 도시 로마 자체가 상당히 쇠잔한 시점이었는데, 도시 재개발까지 병행하는 것을 각오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새 대성당을 지어야만 했다.
  
35번째 줄: 30번째 줄:
 
== 건축 ==
 
== 건축 ==
 
=== 계획 ===
 
=== 계획 ===
[[파일:브라만테의 계획.jpg|썸네일|300픽셀|브라만테의 계획]]
 
[[파일:라파엘로의 계획.jpg|썸네일|300픽셀|라파엘로의 계획]]
 
[[파일:미켈란젤로의 계획, 마데르나의 중랑과 외관 확장.jpg|썸네일|300픽셀|:미켈란젤로의 계획]]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던 [[율리오 2세]]는 설계 공모를 시행했는데, 이 공모의 출품작들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아직도 남아 있다. 최종적으로 브라만테의 설계안이 선정되어 1506년에 공사를 시작했다. 이는 그리스 십자가 형태의 설계안으로 건물의 돔은 로마의 신전인 판테온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브라만테의 설계안과 [[판테온]]의 큰 차이점은 연속적으로 벽이 지지하는 판테온의 돔에 반해, 새 대성당은 네 개의 커다란 기둥으로만 지지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최종 설계안까지 유지되었다. 브라만테의 돔 위에는 작은 돔이 있는 정탑(頂塔)이 놓였는데, 이 정탑은 초기 르네상스 건물인 피렌체 대성당의 브루넬레스키의 돔 위에 미켈로초가 설계한 정탑과 그 형태가 매우 비슷하다.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던 [[율리오 2세]]는 설계 공모를 시행했는데, 이 공모의 출품작들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아직도 남아 있다. 최종적으로 브라만테의 설계안이 선정되어 1506년에 공사를 시작했다. 이는 그리스 십자가 형태의 설계안으로 건물의 돔은 로마의 신전인 판테온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브라만테의 설계안과 [[판테온]]의 큰 차이점은 연속적으로 벽이 지지하는 판테온의 돔에 반해, 새 대성당은 네 개의 커다란 기둥으로만 지지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최종 설계안까지 유지되었다. 브라만테의 돔 위에는 작은 돔이 있는 정탑(頂塔)이 놓였는데, 이 정탑은 초기 르네상스 건물인 피렌체 대성당의 브루넬레스키의 돔 위에 미켈로초가 설계한 정탑과 그 형태가 매우 비슷하다.
  
59번째 줄: 51번째 줄:
 
=== 돔- 성공적인 도안과 최종 해결책 ===
 
=== 돔- 성공적인 도안과 최종 해결책 ===
 
성 베드로 대성당 돔의 총 높이는 대성당의 바닥에서 바깥에 있는 십자가의 끝까지 136.57m에 이른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돔이다.[24] 돔의 안쪽 지름은 41.47m로 앞서 만들어진 두 개의 거대한 돔들(고대 로마의 판테온, 초기 르네상스의 피렌체 대성당의 돔)보다 조금 작다. 이 돔은 537년 완공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보다 지름이 약 9.1m 정도 더 크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가들은 어떻게 이 건물이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돔으로 보이게 할지 해결책을 찾으려고 [[판테온]]과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참고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 돔의 총 높이는 대성당의 바닥에서 바깥에 있는 십자가의 끝까지 136.57m에 이른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돔이다.[24] 돔의 안쪽 지름은 41.47m로 앞서 만들어진 두 개의 거대한 돔들(고대 로마의 판테온, 초기 르네상스의 피렌체 대성당의 돔)보다 조금 작다. 이 돔은 537년 완공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보다 지름이 약 9.1m 정도 더 크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가들은 어떻게 이 건물이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돔으로 보이게 할지 해결책을 찾으려고 [[판테온]]과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참고했다.
[[파일:돔에서 내려다 본 브라만테가 세운 거대한 교각과 미켈란젤로가 세운 후진 끝..jpg|썸네일|300픽셀|left|돔에서 내려다 본 브라만테가 세운 거대한 교각과 미켈란젤로가 세운 후진 끝.]]
+
 
 
==== 브라만테와 상갈로 ====
 
==== 브라만테와 상갈로 ====
 
지름이 43.3m인 판테온의 돔(19세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돔이었음)은 단 하나의 문을 제외한 어떤 출입구나 창문도 없는 원통형의 벽 위에 지지가 되어 있다. 판테온의 높이는 판테온의 지름과 같다. 판테온의 돔은 콘크리트로 된 한 겹의 외피로 건설되었는데, 콘크리트에는 화산암과 석회화, 부석을 많은 비율로 함유하여 무게를 줄였다. 돔 내부의 표면은 깊은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수직·수평으로 살을 만드는 효과를 내어, 전체 하중을 줄이는 효과를 낳았다. 돔의 최고점에는 지름 8m의 눈 모양의 개구부가 있어 건물 내부로 빛을 끌어들인다.
 
지름이 43.3m인 판테온의 돔(19세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돔이었음)은 단 하나의 문을 제외한 어떤 출입구나 창문도 없는 원통형의 벽 위에 지지가 되어 있다. 판테온의 높이는 판테온의 지름과 같다. 판테온의 돔은 콘크리트로 된 한 겹의 외피로 건설되었는데, 콘크리트에는 화산암과 석회화, 부석을 많은 비율로 함유하여 무게를 줄였다. 돔 내부의 표면은 깊은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수직·수평으로 살을 만드는 효과를 내어, 전체 하중을 줄이는 효과를 낳았다. 돔의 최고점에는 지름 8m의 눈 모양의 개구부가 있어 건물 내부로 빛을 끌어들인다.
70번째 줄: 62번째 줄:
  
 
==== 미켈란젤로와 자코모 델라 포르타 ====
 
==== 미켈란젤로와 자코모 델라 포르타 ====
[[파일:산탄젤로 성에서 바라본 성 베드로 대성당. 정면 뒤로 둥근 돔이 보인다.jpg|썸네일|300픽셀|산탄젤로 성에서 바라본 성 베드로 대성당. 정면 뒤로 둥근 돔이 보인다.]]
 
 
미켈란젤로는 이전에 계획되었던 여러 가지 설계안들을 모두 참고하여 돔을 재설계했다. 미켈란젤로의 돔은 피렌체의 것처럼 벽돌로 된 두 겹의 외피로 건설되었으며, 바깥쪽의 것은 16개의 석조 서까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피렌체의 것보다 두 배나 많았으나 상갈로의 설계안보다는 적은 숫자였다. 브라만테와 상갈로의 설계안에서처럼 돔은 원통형 부분 위에 있는 기둥들에 의해 들어 올려졌다. 브라만테가 계획한 원형으로 둘러싼 기둥들이나 상갈로가 계획한 아케이드는 각각 높이가 15m인 16쌍의 코린트 양식의 기둥들로 바뀌었으며 이 기둥들은 아치로 연결되었다. 시각적으로 이 기둥들은 각각의 서까래에 대한 버팀 벽으로 보이지만, 구조적으로 그것은 과도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돔이 피렌체 대성당의 것과 같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달걀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판테온의 것과 같은 반구형 돔보다 바깥으로 향하는 힘을 덜 가할 수 있었다. 판테온은 비록 버팀 벽에 의해 지지가 되지 않았으나 둥근 벽 위에 뻗치는 무거운 구조 때문에 아래로 향한 힘에 직면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이전에 계획되었던 여러 가지 설계안들을 모두 참고하여 돔을 재설계했다. 미켈란젤로의 돔은 피렌체의 것처럼 벽돌로 된 두 겹의 외피로 건설되었으며, 바깥쪽의 것은 16개의 석조 서까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피렌체의 것보다 두 배나 많았으나 상갈로의 설계안보다는 적은 숫자였다. 브라만테와 상갈로의 설계안에서처럼 돔은 원통형 부분 위에 있는 기둥들에 의해 들어 올려졌다. 브라만테가 계획한 원형으로 둘러싼 기둥들이나 상갈로가 계획한 아케이드는 각각 높이가 15m인 16쌍의 코린트 양식의 기둥들로 바뀌었으며 이 기둥들은 아치로 연결되었다. 시각적으로 이 기둥들은 각각의 서까래에 대한 버팀 벽으로 보이지만, 구조적으로 그것은 과도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돔이 피렌체 대성당의 것과 같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달걀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판테온의 것과 같은 반구형 돔보다 바깥으로 향하는 힘을 덜 가할 수 있었다. 판테온은 비록 버팀 벽에 의해 지지가 되지 않았으나 둥근 벽 위에 뻗치는 무거운 구조 때문에 아래로 향한 힘에 직면하고 있었다.
  
84번째 줄: 75번째 줄:
  
 
==== 완성 ====
 
==== 완성 ====
[[파일:돔 공사는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폰타나가 시작해 끝마쳤다..jpg|썸네일|300픽셀|돔 공사는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폰타나가 시작해 끝마쳤다.]]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폰타나는 교황 식스토 5세의 치세 마지막인 1590년에 대성당의 중앙 돔을 완공하였다. 새 교황 그레고리오 14세는 폰타나가 채광창을 완성한 것을 보고 식스토 5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명각을 돔 안쪽 틈에 새기도록 하였다. 다음 교황 클레멘스 8세는 대성당 안에 십자가를 세운 날을 기념하고자 온종일 축제를 벌이고, 모든 도시의 성당들에게 종을 울리라고 명령하였다. 십자가의 양팔 부분은 두 개의 납 용기로, 한쪽에는 성십자가의 파편과 성 안드레아의 유골이 들어 있으며, 다른 한쪽에는 거룩한 양의 원형 초상화를 담고 있다.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폰타나는 교황 식스토 5세의 치세 마지막인 1590년에 대성당의 중앙 돔을 완공하였다. 새 교황 그레고리오 14세는 폰타나가 채광창을 완성한 것을 보고 식스토 5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명각을 돔 안쪽 틈에 새기도록 하였다. 다음 교황 클레멘스 8세는 대성당 안에 십자가를 세운 날을 기념하고자 온종일 축제를 벌이고, 모든 도시의 성당들에게 종을 울리라고 명령하였다. 십자가의 양팔 부분은 두 개의 납 용기로, 한쪽에는 성십자가의 파편과 성 안드레아의 유골이 들어 있으며, 다른 한쪽에는 거룩한 양의 원형 초상화를 담고 있다.
  
101번째 줄: 91번째 줄:
  
 
=== 계획 변경 ===
 
=== 계획 변경 ===
[[파일:입구 쪽 방향으로 바라본 네이브.jpg|썸네일|300픽셀|left|입구 쪽 방향으로 바라본 네이브]]
 
 
교황 바오로 5세의 치세인 1606년 2월 18일 사순시기 첫 주간, 콘스탄티노 대성당의 남은 건물을 파괴하였다.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 의해 박공벽 꼭대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상이 끌어 내려지고, 대신 대리석 십자가가 놓였다. 재목은 보르게세 궁전의 지붕을 보수하는 데 썼으며, 옛 대성당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던 귀한 검은빛의 대리석 기둥 둘은 정성 들여서 보관하다가 나중에 나르텍스를 지을 때 사용하였다. 새로 지은 대성당에 다시 묻는다는 계획에 따라 수많은 교황의 무덤들을 발굴하여 금은보석과 함께 옮겨 놓았다.
 
교황 바오로 5세의 치세인 1606년 2월 18일 사순시기 첫 주간, 콘스탄티노 대성당의 남은 건물을 파괴하였다.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 의해 박공벽 꼭대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상이 끌어 내려지고, 대신 대리석 십자가가 놓였다. 재목은 보르게세 궁전의 지붕을 보수하는 데 썼으며, 옛 대성당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던 귀한 검은빛의 대리석 기둥 둘은 정성 들여서 보관하다가 나중에 나르텍스를 지을 때 사용하였다. 새로 지은 대성당에 다시 묻는다는 계획에 따라 수많은 교황의 무덤들을 발굴하여 금은보석과 함께 옮겨 놓았다.
  
113번째 줄: 102번째 줄:
  
 
대성당 외관에는 중앙 난간을 위시해 모두 세 개의 옥외난간이 있다. 중앙 난간에서는 일명 콘클라베라고 불리는 교황 선거에서 새로 선출된 새 교황이 군중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연설하는 공식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또 이 장소에서 매년 성탄절과 부활절 정오에 전 세계에 보내는 교황의 축하 메시지를 낭독하고 있는데, 교황의 이러한 행사를 우르비 엣 오르비라고 부른다.
 
대성당 외관에는 중앙 난간을 위시해 모두 세 개의 옥외난간이 있다. 중앙 난간에서는 일명 콘클라베라고 불리는 교황 선거에서 새로 선출된 새 교황이 군중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연설하는 공식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또 이 장소에서 매년 성탄절과 부활절 정오에 전 세계에 보내는 교황의 축하 메시지를 낭독하고 있는데, 교황의 이러한 행사를 우르비 엣 오르비라고 부른다.
==== 나르텍스와 입구 ====
+
==== 나르텍스와 입구 ===
 
성 베드로 대성당의 외관 뒤에는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긴 열주 현관 또는 “나르텍스”라는 것이 있다. 이는 마데르노가 스스로 크게 만족한 설계안 일부이다. 이곳의 반원통형 둥근 천장은 화려한 회칠과 도금이 되어 있고, 삼각 궁륭들 사이의 작은 창들로 빛이 들어오는데 화려한 대리석 바닥이 광장에서 들어온 빛들이 반사되어 빛을 발한다. 나르텍스의 각 끝 부분에는 이오니아식 기둥에 의해 틀이 짜인 다소 극적인 공간이 있으며, 각각의 공간 안에는 기마상들이 있는데 남쪽에는 코르나키니의 샤를마뉴(18세기경)가 있고 북쪽에는 베르니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외관 뒤에는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긴 열주 현관 또는 “나르텍스”라는 것이 있다. 이는 마데르노가 스스로 크게 만족한 설계안 일부이다. 이곳의 반원통형 둥근 천장은 화려한 회칠과 도금이 되어 있고, 삼각 궁륭들 사이의 작은 창들로 빛이 들어오는데 화려한 대리석 바닥이 광장에서 들어온 빛들이 반사되어 빛을 발한다. 나르텍스의 각 끝 부분에는 이오니아식 기둥에 의해 틀이 짜인 다소 극적인 공간이 있으며, 각각의 공간 안에는 기마상들이 있는데 남쪽에는 코르나키니의 샤를마뉴(18세기경)가 있고 북쪽에는 베르니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있다.
  
 
다섯 개의 입구들(그 가운데 셋은 거대한 고대의 기둥들로 틀이 짜여 있음)은 대성당으로 통하는 출입구이다. 가운데 입구는 안토니오 아베를리노가 1455년 옛 대성당을 위해 만든 청동 문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새로운 공간에 맞도록 어느 정도 확장된 것이다.
 
다섯 개의 입구들(그 가운데 셋은 거대한 고대의 기둥들로 틀이 짜여 있음)은 대성당으로 통하는 출입구이다. 가운데 입구는 안토니오 아베를리노가 1455년 옛 대성당을 위해 만든 청동 문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새로운 공간에 맞도록 어느 정도 확장된 것이다.
 
==== 마데르노의 중랑 ====
 
==== 마데르노의 중랑 ====
[[파일:마데르노의 중랑, 성단소 방향.jpg|썸네일|300픽셀|마데르노의 중랑, 성단소 방향]]
 
 
미켈란젤로의 그리스 십자가형 평면에는 베이가 하나만 있었지만, 마데르노에 의해 세 개로 더해졌다. 마데르노는 미켈란젤로의 베이와는 면적이 조금 차이가 나게 함으로써 두 건축 작업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또한, 그는 중랑(中廊)의 축을 약간 비스듬하게 하였다. 비평가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바깥의 광장에는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는데, 이 오벨리스크가 미켈란젤로의 건물과 일직선으로 맞지 않아 마데르노가 두 건물을 일직선으로 맞추려고 축을 바로잡은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그리스 십자가형 평면에는 베이가 하나만 있었지만, 마데르노에 의해 세 개로 더해졌다. 마데르노는 미켈란젤로의 베이와는 면적이 조금 차이가 나게 함으로써 두 건축 작업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또한, 그는 중랑(中廊)의 축을 약간 비스듬하게 하였다. 비평가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바깥의 광장에는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는데, 이 오벨리스크가 미켈란젤로의 건물과 일직선으로 맞지 않아 마데르노가 두 건물을 일직선으로 맞추려고 축을 바로잡은 것이다.
  
130번째 줄: 118번째 줄:
  
 
==== 발다키노와 벽감 ====
 
==== 발다키노와 벽감 ====
[[파일:베르니니의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제대와 발다키노(천개, 天蓋).png|썸네일|300픽셀|베르니니의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제대와 발다키노(천개, 天蓋)]]
 
 
대성당 한가운데에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곳인 중앙 제대가 있고 그 위를 닫집 모양의 발다키노가 덮고 있는데, 그 높이가 꼭대기의 황금 십자가 부분까지 29m나 되며 무게는 자그마치 37,000kg에 달한다. 베르니니의 작품인 이 발다키노는 1625년 우르바노 8세의 명령에 따라 1633년 6월 29일 성 베드로의 축일에 완성했다. 발다키노의 지붕을 받치는 네 개의 나선형 기둥은 마치 소용돌이치듯 감겨 있는 모양을 띠고 있는데 이는 사람의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내부 중앙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빛을 뿜어내는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고, 위쪽으로 네 명의 천사가 화관을 하늘로 끌어올리고 있다. 또 다른 작은 천사들은 삼중관과 열쇠, 칼과 복음서를 들고 있다. 삼중관과 열쇠는 성 베드로를, 칼과 복음서는 성 바오로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다키노는 높은 예술성에도 제작 당시에는 과다한 청동 사용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판테온 내부 천장에서 수십 톤의 청동을 떼어와야 할 정도였다 한다.[30] 이 제대에 오르도록 설치된 일곱 개의 계단은 한 개의 대형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이다. 중앙 제대 아래쪽의 작은 벽감 안에 은으로 장식된 작은 상자가 있다. 이는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봉헌한 것인데, 그 안에는 교황 리노가 사용했다고 전해오는 팔리움이 들어 있다. 이 팔리움은 성녀 아녜스 축일에 봉헌된 하얀 양털을 축성하여 그 실로 다시 짜서 만들었다. 한편 이곳은 전통적으로 새로 임명된 주교 또는 로마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세계 각국의 주교단들이 자신들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아울러 교계제도에 순종하겠다는 서약이나 갱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통은 6세기경부터 생겼다. 중앙 제대 밑에는 성 베드로를 포함한 역대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지하 묘지가 있다.
 
대성당 한가운데에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곳인 중앙 제대가 있고 그 위를 닫집 모양의 발다키노가 덮고 있는데, 그 높이가 꼭대기의 황금 십자가 부분까지 29m나 되며 무게는 자그마치 37,000kg에 달한다. 베르니니의 작품인 이 발다키노는 1625년 우르바노 8세의 명령에 따라 1633년 6월 29일 성 베드로의 축일에 완성했다. 발다키노의 지붕을 받치는 네 개의 나선형 기둥은 마치 소용돌이치듯 감겨 있는 모양을 띠고 있는데 이는 사람의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내부 중앙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빛을 뿜어내는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고, 위쪽으로 네 명의 천사가 화관을 하늘로 끌어올리고 있다. 또 다른 작은 천사들은 삼중관과 열쇠, 칼과 복음서를 들고 있다. 삼중관과 열쇠는 성 베드로를, 칼과 복음서는 성 바오로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다키노는 높은 예술성에도 제작 당시에는 과다한 청동 사용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판테온 내부 천장에서 수십 톤의 청동을 떼어와야 할 정도였다 한다.[30] 이 제대에 오르도록 설치된 일곱 개의 계단은 한 개의 대형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이다. 중앙 제대 아래쪽의 작은 벽감 안에 은으로 장식된 작은 상자가 있다. 이는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봉헌한 것인데, 그 안에는 교황 리노가 사용했다고 전해오는 팔리움이 들어 있다. 이 팔리움은 성녀 아녜스 축일에 봉헌된 하얀 양털을 축성하여 그 실로 다시 짜서 만들었다. 한편 이곳은 전통적으로 새로 임명된 주교 또는 로마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세계 각국의 주교단들이 자신들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아울러 교계제도에 순종하겠다는 서약이나 갱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통은 6세기경부터 생겼다. 중앙 제대 밑에는 성 베드로를 포함한 역대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지하 묘지가 있다.
  
136번째 줄: 123번째 줄:
  
 
==== 베드로의 의자와 성체 경당 ===
 
==== 베드로의 의자와 성체 경당 ===
[[파일:베르니니의 "베드로의 의자"와 "영광".jpg|썸네일|300픽셀|베르니니의 "베드로의 의자"와 "영광"]]
 
 
베드로의 의자(Cathedra Petri)는 중앙 제대 뒤쪽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 베드로가 로마에서 선교 활동을 할 때 앉았던 나무 의자의 조각들을 모아 5세기경 상아로 장식된 의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교황 알렉산데르 7세가 베르니니를 시켜 그 의자 위를 무게가 약 75,000kg에 달하는 청동으로 입히고 장식을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의자의 네 다리를 무게 39,000 kg, 높이 4~5m의 청동상들이 잡고 있는데, 앞의 두 명은 서방 교회의 교부들인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우구스티노이며, 뒤쪽으로는 동방 교회의 교부들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성 아타나시오이다. 의자를 받치는 네 인물 형상들은 망토를 펄럭이며 경배와 환희의 감정을 표현하는 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의자 위쪽을 보면 천연대리석을 얇게 깎아 유리처럼 보이는 타원형의 창 안에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하늘에서 비치는 빛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비둘기 날개의 폭은 1.75m에 달한다. 그리고 이 창을 잘 살펴보면 열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를 뜻한다. 그리고 타원형의 둥근 모양이 세 부분으로 구성된 까닭은 삼위일체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비둘기 주위는 구름에 둘러싸인 천사들이 에워싸고 있다. 초로의 화가인 안드레아 사키는 베르니니가 이 형상들을 크게 만들도록 설득했으며, 그리하여 네이브의 중앙 입구로 들어섰을 때 이 작품들이 뚜렷하게 보이게 되었다. 베드로의 의자는 1666년 1월 16일 성대한 의식을 통해 대성전에 안치되었다.
 
베드로의 의자(Cathedra Petri)는 중앙 제대 뒤쪽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 베드로가 로마에서 선교 활동을 할 때 앉았던 나무 의자의 조각들을 모아 5세기경 상아로 장식된 의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교황 알렉산데르 7세가 베르니니를 시켜 그 의자 위를 무게가 약 75,000kg에 달하는 청동으로 입히고 장식을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의자의 네 다리를 무게 39,000 kg, 높이 4~5m의 청동상들이 잡고 있는데, 앞의 두 명은 서방 교회의 교부들인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우구스티노이며, 뒤쪽으로는 동방 교회의 교부들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성 아타나시오이다. 의자를 받치는 네 인물 형상들은 망토를 펄럭이며 경배와 환희의 감정을 표현하는 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의자 위쪽을 보면 천연대리석을 얇게 깎아 유리처럼 보이는 타원형의 창 안에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하늘에서 비치는 빛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비둘기 날개의 폭은 1.75m에 달한다. 그리고 이 창을 잘 살펴보면 열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를 뜻한다. 그리고 타원형의 둥근 모양이 세 부분으로 구성된 까닭은 삼위일체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비둘기 주위는 구름에 둘러싸인 천사들이 에워싸고 있다. 초로의 화가인 안드레아 사키는 베르니니가 이 형상들을 크게 만들도록 설득했으며, 그리하여 네이브의 중앙 입구로 들어섰을 때 이 작품들이 뚜렷하게 보이게 되었다. 베드로의 의자는 1666년 1월 16일 성대한 의식을 통해 대성전에 안치되었다.
  
149번째 줄: 135번째 줄:
  
 
한편, 오른쪽 회랑 너머에는 교황의 거처인 사도 궁전과 바티칸 미술관 등 바티칸 시국의 실체가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이 끝나는 곳에 가면 산탄젤로 성과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긴 도로에 들어선다. 이 도로의 명칭은 “화해의 길”이라는 뜻의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이다. 1929년에 바티칸과 이탈리아가 체결한 라테란 조약을 기념하고자 1937년 착공하여 1950년 성년을 맞아 개통되었다.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 양편에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나지막하게 줄지어 있다.
 
한편, 오른쪽 회랑 너머에는 교황의 거처인 사도 궁전과 바티칸 미술관 등 바티칸 시국의 실체가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이 끝나는 곳에 가면 산탄젤로 성과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긴 도로에 들어선다. 이 도로의 명칭은 “화해의 길”이라는 뜻의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이다. 1929년에 바티칸과 이탈리아가 체결한 라테란 조약을 기념하고자 1937년 착공하여 1950년 성년을 맞아 개통되었다.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 양편에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나지막하게 줄지어 있다.
[[파일: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에서 바라본 로마.jpg|썸네일|800픽셀|가운데|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에서 바라본 로마]]
+
 
 
== 명화·명조각 ==
 
== 명화·명조각 ==
 
=== 무덤 ===
 
=== 무덤 ===
[[파일:제1대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jpg|썸네일|300픽셀|left|제1대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
 
 
대성당 내부에는 백 개가 넘는 무덤들이 있는데, 대부분 대성당 바로 밑 지하 동굴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성 베드로를 시작으로 역대 교황의 대부분을 비롯하여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2세 황제, 작곡가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도 매장되어 있다. 본국에서 추방당해 교황 클레멘스 11세에게 망명을 신청해 의탁한 영국의 가톨릭교도 왕족인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와 그의 두 아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그리고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도 이곳에 묻혀 있다. 또한,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아내인 마리아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와 왕위를 포기하고 가톨릭 신앙으로 회심한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도 이곳에 묻혀 있다.
 
대성당 내부에는 백 개가 넘는 무덤들이 있는데, 대부분 대성당 바로 밑 지하 동굴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성 베드로를 시작으로 역대 교황의 대부분을 비롯하여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2세 황제, 작곡가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도 매장되어 있다. 본국에서 추방당해 교황 클레멘스 11세에게 망명을 신청해 의탁한 영국의 가톨릭교도 왕족인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와 그의 두 아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그리고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도 이곳에 묻혀 있다. 또한,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아내인 마리아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와 왕위를 포기하고 가톨릭 신앙으로 회심한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도 이곳에 묻혀 있다.
 
=== 수공예품 ===
 
=== 수공예품 ===
 
==== 종탑과 나르텍스 ====
 
==== 종탑과 나르텍스 ====
[[파일:성년에만 열리는 성년의 문..jpg|썸네일|300픽셀|성년에만 열리는 성년의 문.]]
 
 
대성당 정면 양 측면에는 두 개의 시계가 있는 종탑들이 있다. 왼쪽에 있는 시계는 1931년 이후 전기로 작동하고 있다. 대성당의 종은 1288년대에 제작하였다. 중앙 입구 위에 있는 모자이크 그림은 대성당의 가장 소중한 보물 가운데 하나이다. "나비첼라(Navicella)"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조토가 설계를 기반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하는 배를 표현하였다. 건물 앞에 서 있는 본당으로 들어가려면 입구의 회랑을 통과해야 한다. 길이 71m, 폭 13m, 높이 20m의 장엄한 회랑이다. 바닥에는 교황 요한 23세의 문장이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대리석상이 오른쪽에 있다. 이 석상은 베르니니가 1670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 반대편에는 1725년에 아고스티노 코르나키니가 만든 샤를마뉴의 대리석상이 있다.
 
대성당 정면 양 측면에는 두 개의 시계가 있는 종탑들이 있다. 왼쪽에 있는 시계는 1931년 이후 전기로 작동하고 있다. 대성당의 종은 1288년대에 제작하였다. 중앙 입구 위에 있는 모자이크 그림은 대성당의 가장 소중한 보물 가운데 하나이다. "나비첼라(Navicella)"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조토가 설계를 기반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하는 배를 표현하였다. 건물 앞에 서 있는 본당으로 들어가려면 입구의 회랑을 통과해야 한다. 길이 71m, 폭 13m, 높이 20m의 장엄한 회랑이다. 바닥에는 교황 요한 23세의 문장이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대리석상이 오른쪽에 있다. 이 석상은 베르니니가 1670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 반대편에는 1725년에 아고스티노 코르나키니가 만든 샤를마뉴의 대리석상이 있다.
  
163번째 줄: 147번째 줄:
 
전통적으로 성년의 문은 50년 주기로 성년이 되는 해에 1년 동안 열리는데, 오직 교황만이 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지금의 문은 1950년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비코 콘소르티가 설계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성년의 문은 50년 주기로 성년이 되는 해에 1년 동안 열리는데, 오직 교황만이 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지금의 문은 1950년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비코 콘소르티가 설계한 것이다.
 
==== 중랑 ====
 
==== 중랑 ====
[[파일:대성당 안에 있는 성 베드로 청동상.jpg|썸네일|300픽셀|대성당 안에 있는 성 베드로 청동상]]
 
 
* 청동 문을 통해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에 반암을 박아 표시해 놓은 원형의 붉은 대리석을 밟게 된다. 서기 800년 성탄 자정 미사 때 바로 이 자리에서 샤를마뉴가 무릎을 꿇고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왕관을 받았다. 이 원을 지나면 반암으로 만든 커룹 한 쌍이 지키는 2m 높이의 성수대 두 개가 나온다.[35]
 
* 청동 문을 통해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에 반암을 박아 표시해 놓은 원형의 붉은 대리석을 밟게 된다. 서기 800년 성탄 자정 미사 때 바로 이 자리에서 샤를마뉴가 무릎을 꿇고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왕관을 받았다. 이 원을 지나면 반암으로 만든 커룹 한 쌍이 지키는 2m 높이의 성수대 두 개가 나온다.[35]
 
* 중랑에서부터 각종 천연대리석을 사용해 아름답게 깔아 놓은 바닥이 있다. 이 바닥 위에는 전 세계의 이름난 성당들과 성 베드로 대성당의 크기를 비교해 놓은 수치가 새겨 있다.
 
* 중랑에서부터 각종 천연대리석을 사용해 아름답게 깔아 놓은 바닥이 있다. 이 바닥 위에는 전 세계의 이름난 성당들과 성 베드로 대성당의 크기를 비교해 놓은 수치가 새겨 있다.
173번째 줄: 156번째 줄:
 
* 돔을 받치는 네 모서리 벽 안의 벽감에는 대성당의 성유물들과 함께 석상들을 배치하였다: 예수의 십자가를 든 성녀 헬레나(안드레아 볼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을 쥔 성 론지노(베르니니); 성 안드레아 십자와 성 안드레아(프랑수아 뒤케스노이); 예수의 얼굴이 찍힌 수건을 든 성녀 베로니카(프란체스코 모키).
 
* 돔을 받치는 네 모서리 벽 안의 벽감에는 대성당의 성유물들과 함께 석상들을 배치하였다: 예수의 십자가를 든 성녀 헬레나(안드레아 볼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을 쥔 성 론지노(베르니니); 성 안드레아 십자와 성 안드레아(프랑수아 뒤케스노이); 예수의 얼굴이 찍힌 수건을 든 성녀 베로니카(프란체스코 모키).
 
==== 북쪽 측랑 ====
 
==== 북쪽 측랑 ====
[[파일: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jpg|썸네일|300픽셀|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
 
[[파일:베르니니의 《진실》, 그녀의 발아래에 잉글랜드가 놓여 있다..jpg|썸네일|300픽셀|베르니니의 《진실》, 그녀의 발 아래에 잉글랜드가 놓여 있다.]]
 
 
* 북쪽 측랑의 제1경당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있다. 당시 로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랑그로사이오 추기경의 의뢰를 받아들여 겨우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완성한 이 조각상은 다비드상과 모세상과 더불어 그의 3대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자신의 작품에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남긴 서명된 작품이 바로 이 피에타상이다.
 
* 북쪽 측랑의 제1경당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있다. 당시 로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랑그로사이오 추기경의 의뢰를 받아들여 겨우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완성한 이 조각상은 다비드상과 모세상과 더불어 그의 3대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자신의 작품에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남긴 서명된 작품이 바로 이 피에타상이다.
 
* 오른쪽 측랑의 첫 번째 피어에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기념비가 있다. 그녀는 가톨릭 신앙으로 회심하려고 1654년 왕위까지 포기했던 사람이다.
 
* 오른쪽 측랑의 첫 번째 피어에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기념비가 있다. 그녀는 가톨릭 신앙으로 회심하려고 1654년 왕위까지 포기했던 사람이다.
217번째 줄: 198번째 줄:
  
 
== 참고자료 ==
 
== 참고자료 ==
* 성 베드로 대성전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vatican.va/various/basiliche/san_pietro/index_it.htm
+
 
* 〈[https://namu.wiki/w/%EC%84%B1%20%EB%B2%A0%EB%93%9C%EB%A1%9C%20%EB%8C%80%EC%84%B1%EB%8B%B9 성 베드로 대성당]〉, 《나무위키》
 
* 〈[https://ko.wikipedia.org/wiki/%EC%84%B1_%EB%B2%A0%EB%93%9C%EB%A1%9C_%EB%8C%80%EC%84%B1%EC%A0%84# 성 베드로 대성전]〉, 《위키백과》
 
* 〈[https://overseas.mofa.go.kr/va-ko/wpge/m_6955/contents.do 성베드로대성당]〉,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23451&cid=69168&categoryId=50768 성 베드로 대성전]〉,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 자료집》
 
* WorldToday,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718857&memberNo=54115499 세계의 랜드마크 가톨릭의 심장,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네이버 포스트》, 2021-11-09
 
* 정웅모 신부, 〈[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276794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5) 바티칸 시국 ‘성 베드로 대성당’]〉, 《카톨릭신문》, 2017-02-05
 
  
 
== 같이 보기 ==
 
== 같이 보기 ==

해시넷에서의 모든 기여는 다른 기여자가 편집, 수정, 삭제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해시넷:저작권 문서를 보세요).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