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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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국기.png|썸네일|300픽셀|오른쪽|'''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국기]]
 
[[파일: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국기.png|썸네일|300픽셀|오른쪽|'''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국기]]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영어: 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 문화어: 쎈트빈쎈트그레너딘즈)은 [[북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이다. [[동카리브해]]의 [[소앤틸리스제도]] 남방에 떠 있는 약 600여 개의 섬으로, 이 중 [[세인트빈센트섬]]이 중심이다. 1979년 영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 정식으로 독립했다. 경제는 전통적으로 농업이 중심으로 전체 노동력의 80%가 농업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산물로는 [[바나나]]와 [[땅콩]] 및 산림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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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영어: 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 문화어: 쎈트빈쎈트그레너딘즈)은 [[북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이다. [[동카리브해]]의 [[소앤틸리스 제도]] 남방에 떠 있는 약 600여 개의 섬으로, 이 중 [[세인트빈센트 섬]]이 중심이다. 1979년 영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 정식으로 독립했다. 경제는 전통적으로 농업이 중심으로 전체 노동력의 80%가 농업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산물로는 [[바나나]]와 [[땅콩]] 및 산림자원이다.  
  
 
== 개요 ==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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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1498년 1월 22일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지역을 발견하였으며 1627년 찰스 1세가 칼라일 백작에게 양도하였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의 초기 명칭은 원주민 [[카리브족]]이 지은 축복받은 섬이라는 뜻의 하이로우나(Hairouna)였다. [[카리브족]]은 18세기까지 적극적으로 [[유럽인]]의 정착을 막았었다. 당시에 난파당했거나 [[바베이도스]], [[세인트루시아]], [[그레나다]]로부터 탈출했던 노예상태의 [[아프리카인]]들이 세인트빈센트 본토로 도피하여 카리브족과 결혼하면서 [[가리푸나]] 혹은 검은 카리브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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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년 1월 22일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지역을 발견하였으며 1627년 찰스 1세가 칼라일 백작에게 양도하였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의 초기 명칭은 원주민 [[카리브족]]이 지은 축복받은 섬이라는 뜻의 하이로우나 (Hairouna)였다. 카리브족은 18세기까지 적극적으로 [[유럽인]]의 정착을 막았었다. 당시에 난파당했거나 [[바베이도스]], [[세인트 루시아]], [[그레나다]]로부터 탈출했던 노예상태의 [[아프리카인]]들이 세인트빈센트 본토로 도피하여 카리브족과 결혼하면서 [[가리푸나]] 혹은 검은 카리브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719년 초기, [[프랑스]]의 정착민들은 섬의 통제권을 얻으면서 플랜테이션 상에 [[커피]], [[담배]], [[인디고]], [[목화]], [[설탕]]등을 기르기 시작했으며 이 플랜테이션들은 노예상태의 아프리카인들이 경작했다. 1763년에 프랑스는 세인트빈센트의 통제권을 [[영국]]에 양도했으나, 1779년에 프랑스는 섬을 다시 침략했다. 프랑스는 [[뒤베르네트 요새]] 근처 [[칼리아쿠아]]에 상륙한 후 통제권을 다시 얻었다. 영국은 마침내 1783년 [[베르사유 조약]]하에 세인트빈센트를 되찾았다. 영국인은 플랜테이션에서 노예 노동으로 떼돈을 벌었지만 [[라 수프리에르]](La Soufrière) 산이 폭발해 큰 피해를 입었다. 1834년 노예제가 폐지되고 설탕 가격까지 감소하면서 영국계 백인들은 몰락했고 그후 [[마데이라 제도]]에서 온 포르투갈인들이 차지하였다.
 
1719년 초기, [[프랑스]]의 정착민들은 섬의 통제권을 얻으면서 플랜테이션 상에 [[커피]], [[담배]], [[인디고]], [[목화]], [[설탕]]등을 기르기 시작했으며 이 플랜테이션들은 노예상태의 아프리카인들이 경작했다. 1763년에 프랑스는 세인트빈센트의 통제권을 [[영국]]에 양도했으나, 1779년에 프랑스는 섬을 다시 침략했다. 프랑스는 [[뒤베르네트 요새]] 근처 [[칼리아쿠아]]에 상륙한 후 통제권을 다시 얻었다. 영국은 마침내 1783년 [[베르사유 조약]]하에 세인트빈센트를 되찾았다. 영국인은 플랜테이션에서 노예 노동으로 떼돈을 벌었지만 [[라 수프리에르]](La Soufrière) 산이 폭발해 큰 피해를 입었다. 1834년 노예제가 폐지되고 설탕 가격까지 감소하면서 영국계 백인들은 몰락했고 그후 [[마데이라 제도]]에서 온 포르투갈인들이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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