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로마냐주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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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 역사 == | ||
− | 고대 [[로마]] 이전에는 켈트인들과 에트루리아인들이 살고 있었고, | + | 고대 [[로마]] 이전에는 켈트인들과 에트루리아인들이 살고 있었고, 로마 제국 이후에는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받아 수도원들이 많았다. |
− | 로마냐 지방은 '로마인들의 땅(로마니아)'이라는 뜻으로, 과거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이런 지명이 붙었다. 로마 시와는 멀리 떨어진 곳인데다가 | + | 로마냐 지방은 '로마인들의 땅(로마니아)'이라는 뜻으로, 과거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이런 지명이 붙었다. 로마 시와는 멀리 떨어진 곳인데다가 이탈리아 반도 전체가 로마 제국의 영토였음에도 불구하고 하필 여기에만 이러한 이름이 붙은 건 로마냐의 도시 라벤나에 라벤나 총독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이민족들의 알박기가 횡행하던 이탈리아 반도에서 이 지역만큼은 벨리사리우스의 수복 이후 로마인들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던 곳이었기에 대내외적으로 '로마인들의 땅'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
1088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볼로냐 대학교가 볼로냐에 개교했다. 르네상스 당시에는 많은 자잘한 공국이나 공화국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대부분이 한 가문이 지배하는 도시국가들이었다. | 1088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볼로냐 대학교가 볼로냐에 개교했다. 르네상스 당시에는 많은 자잘한 공국이나 공화국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대부분이 한 가문이 지배하는 도시국가들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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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 체사레 보르지아는 1499년부터 1502년에 걸쳐 로마냐와 우르비노 등 수많은 지방을 정복해 로마냐 공국을 세워 통치했었다. 물론 두 부자의 사망과 교황 율리오 2세의 즉위로 도로 교황령으로 돌아갔다. |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 체사레 보르지아는 1499년부터 1502년에 걸쳐 로마냐와 우르비노 등 수많은 지방을 정복해 로마냐 공국을 세워 통치했었다. 물론 두 부자의 사망과 교황 율리오 2세의 즉위로 도로 교황령으로 돌아갔다. | ||
− | 16세기에는 모데나, 파르마 등의 도시국가만 살아남고(모데나 공국, 파르마 피아첸차 공국) 이 주의 거의 전체가 크기가 컸던 당시 | + | 16세기에는 모데나, 파르마 등의 도시국가만 살아남고(모데나 공국, 파르마 피아첸차 공국) 이 주의 거의 전체가 크기가 컸던 당시 로마 교황령에 귀속되게 된다. 이후 19세기에 벌어진 통일 이탈리아 운동으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어 통일 이탈리아의 일원이 되었다. 이탈리아 공화국 수립 이후부터 이탈리아 공산당과 그 후신 좌익 정당들이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2012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이 지역이 많은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이후 2020년에도 코로나19로 볼로냐를 위시한 주 전체가 대차게 타격을 당하였다. |
== 산업 == | == 산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