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초 페라리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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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초 페라리'''(Enzo Ferrari)는 이탈리아 명품 자동차 브랜드이자 고성능 스포츠카 제조 업체인 '''[[페라리]]'''(Ferrari)의 창시자이며 유명한 레이싱 선수이자 F1 자동차 경주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창설자이다.<ref>"[https://en.wikipedia.org/wiki/Enzo_Ferrari Enzo Ferrari]", "wikipedia"</ref> |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는 이탈리아 명품 자동차 브랜드이자 고성능 스포츠카 제조 업체인 '''[[페라리]]'''(Ferrari)의 창시자이며 유명한 레이싱 선수이자 F1 자동차 경주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창설자이다.<ref>"[https://en.wikipedia.org/wiki/Enzo_Ferrari Enzo Ferrari]", "wikipedia"</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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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알파 로메오와 결별하고 자신이 직접 경주차를 만들어 출전하기 위해 회사를 차린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계획은 미뤄졌고 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다시 자동차 개발에 나선 그는 1947년 알파 로메오와의 결별 직후 설립한 아우토아비오 코스트루치오니에서 만들었던 AAC 815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에 나섰다. 우선 엔진 기술자로 이름난 조아키노 콜롬보(Gioacchino Colombo)를 영입해 새 차의 엔진 개발을 맡겼다. 전쟁 전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한 아우토 우니온과 콜롬보가 설계한 엔진을 쓴 알파 로메오 경주차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페라리는 자신의 차에도 그 차들처럼 V12 엔진을 올리기로 결심한다. 아울러 당시 구체화되고 있던 포뮬러 원(F1) 경주를 염두에 두고 F1 규정에 맞춘 엔진을 만드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두 개의 실린더 블록을 60도 각도로 연결한 V12 1,497cc 엔진이 완성되었다. 실린더는 보어 55mm, 스트로크 52.5mm로 아주 작았고 SOHC 2밸브 구성에 세 개의 웨버 카뷰레터로 연료를 공급했다. 최고출력은 6,800rpm에서 118마력을 냈다. 이후 개선과 확대를 거듭하며 명차로 꼽히는 250시리즈 등 여러 페라리에 두루 쓰인 이른바 콜롬보 엔진의 시작이 된다. 차체 구조는 철제 파이프를 용접해 만들었고 서스펜션은 앞쪽이 판 스프링을 가로로 배치한 더블 위시본, 뒤쪽이 라이브 액슬 구조였다. 변속기는 당대 많은 경주차에 쓰인 4단 수동 대신 페라리의 제안으로 엔진의 고회전 특성을 고려해 특별히 만든 5단 수동을 썼다. 브레이크는 앞뒤 모두 유압식 드럼을 썼다. 첫 시험주행은 1947년 3월 12일에 있었다. 엔초 페라리는 차체를 씌우지 않은 롤링 섀시(rolling chassis) 상태인 차를 직접 몰고 마라넬로 거리를 달렸다. V12 엔진의 실린더당 배기량이 125cc였기 때문에 차 이름은 125 S(Sport)로 정해졌다. 이 이름 짓기 방식은 그 뒤로 나온 페라리 V12 엔진 모델들에도 꾸준히 이어진다. 125 S는 두 대가 만들어졌는데 차체 형태가 크게 다르다. 처음 만들어진 섀시 번호 01C의 차체는 모데나의 코치빌더인 주세페 페이레티(Guiseppe Peiretti)가 만들었다. 차체 앞에는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커다랗게 자리를 잡았고 차체가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보트테일 형태면서도 뒤 펜더가 차체와 매끈하게 이어져 뒷바퀴를 품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뒷바퀴 위쪽에는 차체와 같은 평면을 이루는 덮개를 달았다. 독특한 차체 뒷모습 때문에 이 차에는 알라 스페사(Ala spessa, 두터운 펜더)라는 별명이 붙었다. 실내는 경주차로 만들어진 만큼 요즘 페라리의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시보드는 단순한 패널에 대형 엔진 회전계, 다섯 개의 계기, 몇 개의 스위치가 있었다. 좌석은 헤드레스트나 안전벨트는 없었지만 몸을 감싸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앞 유리는 운전석과 동반석에 한 쌍이 달렸다. 또한 도어가 동반석쪽(왼쪽)에만 있고, 운전석 쪽은 운전자가 뛰어올라 탈 수 있도록 위쪽을 약간 파놓기만 했다. 두 번째로 만들어진 섀시 번호 02C는 2인승 시가형 차체에 바퀴가 노출되어 있었고 섀시 번호 01C와 같은 V12 엔진의 출력을 120마력으로 높여 올렸다. 이 차는 나중에 페라리 첫 F1 경주차인 125 F1로 개조된다. 125 S는 1947년 5월 11일에 있었던 데뷔 경주에서는 완주하지 못했지만 2주 뒤에 열린 로마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그 해 13차례 경주에 출전해 여섯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페라리의 이름을 알렸다. 페라리의 첫차가 경주차였다는 사실은 모터스포츠를 중시하는 페라리의 중요한 자산일 뿐 아니라 누구나 페라리를 정상의 스포츠카 브랜드로 인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48년 당시 유일한 V12 엔진으로 화제를 모았던 125의 엔진은 나중엔 166시리즈로 계승되었으며 2,000cc, V형 12기통의 강력한 심장을 가진 166 스파이더 코사(Spider Corsas)와 166 스포츠(Sports)를 제작했다.<ref>오토헤럴드,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718040&memberNo=963 브랜드 역사의 시작 #20. V12 슈퍼카의 전설 '페라리 125 S']〉, 《네이버 포스트》, 2019-01-29</ref><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77139&cid=43168&categoryId=43168&anchorTarget=TABLE_OF_CONTENT10#TABLE_OF_CONTENT10 페라리]〉, 《네이버 지식백과》</ref> | 1939년에 알파 로메오와 결별하고 자신이 직접 경주차를 만들어 출전하기 위해 회사를 차린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계획은 미뤄졌고 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다시 자동차 개발에 나선 그는 1947년 알파 로메오와의 결별 직후 설립한 아우토아비오 코스트루치오니에서 만들었던 AAC 815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에 나섰다. 우선 엔진 기술자로 이름난 조아키노 콜롬보(Gioacchino Colombo)를 영입해 새 차의 엔진 개발을 맡겼다. 전쟁 전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한 아우토 우니온과 콜롬보가 설계한 엔진을 쓴 알파 로메오 경주차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페라리는 자신의 차에도 그 차들처럼 V12 엔진을 올리기로 결심한다. 아울러 당시 구체화되고 있던 포뮬러 원(F1) 경주를 염두에 두고 F1 규정에 맞춘 엔진을 만드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두 개의 실린더 블록을 60도 각도로 연결한 V12 1,497cc 엔진이 완성되었다. 실린더는 보어 55mm, 스트로크 52.5mm로 아주 작았고 SOHC 2밸브 구성에 세 개의 웨버 카뷰레터로 연료를 공급했다. 최고출력은 6,800rpm에서 118마력을 냈다. 이후 개선과 확대를 거듭하며 명차로 꼽히는 250시리즈 등 여러 페라리에 두루 쓰인 이른바 콜롬보 엔진의 시작이 된다. 차체 구조는 철제 파이프를 용접해 만들었고 서스펜션은 앞쪽이 판 스프링을 가로로 배치한 더블 위시본, 뒤쪽이 라이브 액슬 구조였다. 변속기는 당대 많은 경주차에 쓰인 4단 수동 대신 페라리의 제안으로 엔진의 고회전 특성을 고려해 특별히 만든 5단 수동을 썼다. 브레이크는 앞뒤 모두 유압식 드럼을 썼다. 첫 시험주행은 1947년 3월 12일에 있었다. 엔초 페라리는 차체를 씌우지 않은 롤링 섀시(rolling chassis) 상태인 차를 직접 몰고 마라넬로 거리를 달렸다. V12 엔진의 실린더당 배기량이 125cc였기 때문에 차 이름은 125 S(Sport)로 정해졌다. 이 이름 짓기 방식은 그 뒤로 나온 페라리 V12 엔진 모델들에도 꾸준히 이어진다. 125 S는 두 대가 만들어졌는데 차체 형태가 크게 다르다. 처음 만들어진 섀시 번호 01C의 차체는 모데나의 코치빌더인 주세페 페이레티(Guiseppe Peiretti)가 만들었다. 차체 앞에는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커다랗게 자리를 잡았고 차체가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보트테일 형태면서도 뒤 펜더가 차체와 매끈하게 이어져 뒷바퀴를 품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뒷바퀴 위쪽에는 차체와 같은 평면을 이루는 덮개를 달았다. 독특한 차체 뒷모습 때문에 이 차에는 알라 스페사(Ala spessa, 두터운 펜더)라는 별명이 붙었다. 실내는 경주차로 만들어진 만큼 요즘 페라리의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시보드는 단순한 패널에 대형 엔진 회전계, 다섯 개의 계기, 몇 개의 스위치가 있었다. 좌석은 헤드레스트나 안전벨트는 없었지만 몸을 감싸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앞 유리는 운전석과 동반석에 한 쌍이 달렸다. 또한 도어가 동반석쪽(왼쪽)에만 있고, 운전석 쪽은 운전자가 뛰어올라 탈 수 있도록 위쪽을 약간 파놓기만 했다. 두 번째로 만들어진 섀시 번호 02C는 2인승 시가형 차체에 바퀴가 노출되어 있었고 섀시 번호 01C와 같은 V12 엔진의 출력을 120마력으로 높여 올렸다. 이 차는 나중에 페라리 첫 F1 경주차인 125 F1로 개조된다. 125 S는 1947년 5월 11일에 있었던 데뷔 경주에서는 완주하지 못했지만 2주 뒤에 열린 로마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그 해 13차례 경주에 출전해 여섯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페라리의 이름을 알렸다. 페라리의 첫차가 경주차였다는 사실은 모터스포츠를 중시하는 페라리의 중요한 자산일 뿐 아니라 누구나 페라리를 정상의 스포츠카 브랜드로 인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48년 당시 유일한 V12 엔진으로 화제를 모았던 125의 엔진은 나중엔 166시리즈로 계승되었으며 2,000cc, V형 12기통의 강력한 심장을 가진 166 스파이더 코사(Spider Corsas)와 166 스포츠(Sports)를 제작했다.<ref>오토헤럴드,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718040&memberNo=963 브랜드 역사의 시작 #20. V12 슈퍼카의 전설 '페라리 125 S']〉, 《네이버 포스트》, 2019-01-29</ref><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77139&cid=43168&categoryId=43168&anchorTarget=TABLE_OF_CONTENT10#TABLE_OF_CONTENT10 페라리]〉, 《네이버 지식백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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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F40=== | ===페라리 F40=== | ||
+ | [[파일:페라리 F40.jpg|썸네일|300픽셀|'''페라리 F40''']] | ||
1987년에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F40을 제작하였다. F40은 엔초 페라리의 유작으로 당시 페라리의 최신 기술이 도입된 동시에 일반 도로에서 주행 가능한 레이싱카를 만들고자 하는 페라리의 초심을 담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308 GTB 와 288 GTO 에볼루치오네를 기반으로 개발된 F40은 디자인과 성능 두 가지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페라리 컬렉션의 명작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페라리 역사상 최고의 슈퍼카로 항상 거론되며 괴물같은 퍼포먼스를 자랑하던 포르쉐 959를 눌렀다고 평가되는 페라리 역사에 가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페라리 F40은 288GTO에 사용했던 티포 120(Tipo 120) 엔진을 개량한 티포 120A 엔진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478마력/7,000rpm의 최고출력과 58.8kg.m/4,0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그리고 여기에 288GTO와 마찬가지로 308/328의 섀시를 토대로 차체 구조를 설계하여 가볍고 빠른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카를 구현해냈다. 페라리 F40은 단 4초 안에 제로백을 넘을 수 있었고 최고 속도는 포르쉐 959보다 빠른 322km/h를 기록했다.<ref>모토야,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900715&memberNo=22197681&vType=VERTICAL 최강의 온로드 머신, 페라리 하이퍼카의 역사]〉, 《네이버 포스트》, 2021-03-09</ref> | 1987년에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F40을 제작하였다. F40은 엔초 페라리의 유작으로 당시 페라리의 최신 기술이 도입된 동시에 일반 도로에서 주행 가능한 레이싱카를 만들고자 하는 페라리의 초심을 담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308 GTB 와 288 GTO 에볼루치오네를 기반으로 개발된 F40은 디자인과 성능 두 가지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페라리 컬렉션의 명작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페라리 역사상 최고의 슈퍼카로 항상 거론되며 괴물같은 퍼포먼스를 자랑하던 포르쉐 959를 눌렀다고 평가되는 페라리 역사에 가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페라리 F40은 288GTO에 사용했던 티포 120(Tipo 120) 엔진을 개량한 티포 120A 엔진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478마력/7,000rpm의 최고출력과 58.8kg.m/4,0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그리고 여기에 288GTO와 마찬가지로 308/328의 섀시를 토대로 차체 구조를 설계하여 가볍고 빠른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카를 구현해냈다. 페라리 F40은 단 4초 안에 제로백을 넘을 수 있었고 최고 속도는 포르쉐 959보다 빠른 322km/h를 기록했다.<ref>모토야,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900715&memberNo=22197681&vType=VERTICAL 최강의 온로드 머신, 페라리 하이퍼카의 역사]〉, 《네이버 포스트》, 2021-03-09</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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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라리 공식 홈페이지 - http://www.ferrari.com | * 페라리 공식 홈페이지 - http://www.ferrari.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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