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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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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전경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국립경주박물관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국립 박물관이다. 경주 및 경상북도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며, 위치가 위치인 만큼 주로 신라 시대의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박물관 중에서 국립중앙박물관 다음으로 크고 유물이 많다. 경주는 수도였던 시대가 너무 오래전이라 건축물 등은 거의 소실됐기 때문에 유적지는 많아도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을 화려한 볼거리가 좀 적은 편인데, 금관 같은 화려한 세공 유물의 대부분이 박물관에 있어서 관광객들이 경주를 찾으면 으레 찾는 관광 코스 중 하나이다.

개요[편집]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압축된 신라 천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경주 여행을 할 때에 첫 번째 행선지로 들러 미리 공부한 뒤 곳곳의 문화유산을 만나면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박물관은 대표전시관인 신라역사관을 비롯해 신라미술관, 월지관 등의 상설전시관 3관과 기획전시가 열리는 특별전시관으로 크게 구성된다.

신라역사관에는 신라의 건국부터 멸망까지 일련의 역사를 4실로 나누어 전시했다. 수준 높은 신라 불교 미술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신라미술관으로 향하자. 월지관은 동궁과월지의 발굴조사를 토대로 출토 유물을 정리해둔 전시관이다. 동궁과 월지 복원모형을 비롯해 월지에서 출토된 나무배, 금동판삼존불좌상과 같은 귀한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상설전시관 세 곳에서는 정해진 시간마다 전시해설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니 박물관 관람 전 시간표를 확인하고 해설을 들으며 전시관 관람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국립전시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 하나가 더 있다. 국보급 문화재가 박물관 마당에 있다. 야외전시장을 둘러보며 성덕대왕 신종과 고선사지삼층석탑 등 귀한 유물을 챙겨 보자.

국립경주박물관 바로 옆에 올해(2019) 5월, 영남권 수장고가 문을 열었다. 이곳은 영남지역에서 발굴한 매장문화재 60여만 점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고자 건립한 수장고이다. 신라 토기와 기와 등 주요 유적 출토품 3,000여점을 전시한 전시수장고와 문화재발굴과 보존, 복원 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로비전시실을 관람할 수 있다.

연혁[편집]

일제강점기 당시, 경주고적보존회라는 단체가 1913년 동부동에 있는 조선시대 경주부의 관아 건물을 이용하여 진열관을 열었다. 이후 진열관은 1926년 6월 20일 조선총독부박물관의 경주분관으로 바뀌었으며,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7일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출범하였다.

1961년에는 신관을 건립하였으며, 1968년 12월에는 인왕동에 신박물관(본관, 제1별관)을 신축하였다. 1975년 5월 27일에는 현재 위치인 인왕동에 건물을 새로 짓고 박물관 전체를 옮겼다. 당시 동부동에서 인왕동으로의 박물관 이전은 경주에서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는데, 특히 성덕대왕신종의 이전은 많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행사로 유명하다. 1975년 당시에는 본관(지금의 신라역사관)과 별관(지금의 특별전시관) 그리고 성덕대왕신종을 위한 종각이 지어졌다. 설계자는 이희태(1925 ~ 1981)이다. 외부에 기둥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운 누각 형태의 본관은 경복궁의 경회루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20일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되었다.

1982년 7월 19일에는 김수근(1931 ~ 1986)의 설계에 따라 안압지 출토품을 전시하기 위한 제2별관(지금의 월지관)을 지었다. 벽돌과 나무로 된 벽에 기와를 올린 단순한 외관은 전통적인 창고에서 이미지를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 5월 11일에는 국은기념실을 개설하였으며, 2002년 5월 22일에는 미술관을 신축하였다. 대표 설계자는 이상은(1954 ~ )이다. 전시와 더불어 박물관 교육과 연구 관리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2004년 11월 30일에는 수묵당을 신축하였으며, 다음해 1월 31일에는 어린이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13년 11월 12일에는 신라역사관의 내진 보강 및 재개관이 이루어졌으며, 2015년 6월 7일에는 특별전시관을 개·보수하였다.

연표
  • 1913년 : 경주고적보존회에서 옛 경주부 관아에 진열관을 설치해 유물전시 개시
  • 1923년 10월 : 경주유물진열관 건립
  • 1926년 :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개칭, 광복까지 유지.
  • 1945년 : 8.15 광복 후 국립박물관 경주 분관으로 개칭
  • 1954년 10월 10일 : 어린이박물관학교 개교
  • 1975년 07월 02일 : 현재의 박물관(인왕동)으로 신축 이전 개관[2]
  • 1982년 07월 19일 : 안압지관(월지관) 신축 개관
  • 2004년 11월 30일 : 수묵당 신축 개관
  • 2005년 01월 31일 : 어린이박물관 개관
  • 2008년 12월 24일 : 서별관 개보수
  • 2010년 05월 08일 : 관람객 5천만명 돌파(1975년 이래)
  • 2019년 05월 23일 : 영남권 수장고 개관

시설[편집]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특별전시관
옥외전시장
종각 (성덕대왕신종)
수묵당과 고청지

국립경주박물관에는 크게 신라역사관과 신라미술관, 월지관(구 안압지관)과 옥외전시장으로 나뉘어 있다. 소장된 유물은 8만여 점으로 그중 3천여 점 상설 전시 중. 유물들은 대부분 공사 도중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 공사가 중단되기 때문에, 옛날에는 집 짓다가 유물이 나오면 곱게 묻는 건 양반이고,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과거에는 원활한 공사 진행을 위해 깨부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21세기 현재는 사람들의 인식이 성장해 그런 일은 거의 없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무튼 그 탓에 경주 지역은 공사를 해도 몇 년은 넉넉하게 잡고 하는 편이다. 먼저 공사 부지를 파면서 뭐가 파묻혀 있는지 조사하고, 그런 게 없거나 있어도 가치가 없는 것들이면 공사 진행, 흔한 토기 파편 같은 게 아니라 옛날 수레 같은 중요한 게 나오면 공사가 취소된다. 이 때문에 경주에선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아래 신라미술관의 사례를 보면 완전 뻥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국립경주박물관의 경우조차 박물관 건설 당시 중요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남궁지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곳을 남궁이 있던 자리라고 추정하고 있는 마당인데, 경주는 신라의 1000년 수도였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신라역사관[편집]

舊 고고관. 경주박물관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메인 건물이다. 전통 방식 건축으로 지었지만 매우 전통적이지 않은 건물이다. 1975년에 완공된 건물로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다른 지역의 국립박물관들에 비해 규모도 작고 건물도 낡은 편이다. 이 때문에 현재의 박물관 건물은 역사 도시 경주의 위상과 소장하는 유물의 격에 맞는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오는 중. 지붕 장식의 경우 황룡사 9층 목탑의 추정 상륜부에서 따왔다는 말이 있다.

4개의 전시실이 있고, 선사시대의 도구부터 신라 시대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또한 국은 이양선 선생의 기증 문화재를 볼 수 있다. 전시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어진.

특히 역사관에는 국보 제 188호 천마총 금관과 대릉원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 등의 신라 시대 예술품들이 인상적이며, 신라의 국제 관계를 암시하는 계림로 황금보검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서역풍 유리잔 등이 같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어린이박물관[편집]

놀이와 체험을 통해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체험식 전시실과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신라미술관[편집]

2002년에 신축한 비교적 새 건물이다. 1층에 불교미술 1실과 2실이 있고, 2층에 국은기념실(국은 이양선 선생의 기증 문화재 전시)와 황룡사실이 있다. 약 400점의 문화재가 있으며, 보물 제 336호 감은사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등이 있다. 공사 당시 신라 시대 도로 유적이 발견되어서 그 위를 아크릴로 덮고 빙 둘러 건물을 올렸다. 1층으로 들어가면 바로 바닥에서 관람할 수 있다(수레바퀴 자국).

불교미술 2실에는 일명 '삼화령 애기부처'로 알려진 삼존불이 있다. 정식 명칭은 장창골미륵삼존불(長倉골彌勒三尊佛). '삼화령'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생의(生義)라는 승려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지명으로, 생의가 땅에서 파낸 미륵상을 삼화령 고개에 모셨는데 그 미륵상이 이 삼존불이라는 주장에서 나온 표현이다. 이 삼존불은 관람객들이 하도 발을 만져서 발 부분이 까맣게 때가 묻어 있다. 하지만 이 불상이 나온 북쪽 고개가 아닌, 현재의 영화대좌 터가 삼화령이라는 의견 또한 지배적이다.

현재 내부 공사로 2022년 12월 11일 이후에 다시 공개가 될 예정이다.

월지관 (구 안압지관)[편집]

1982년에 김수근이 지은 건물로, 동궁과 월지(구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9] 그는 이 건물을 전통 창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들어가보면 상당히 특이한 구조인데. 입구에서 약간 내려간 곳이 1층이고,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2층이다. 여담으로 월지에서 출토된 신라 시대의 성인용품이 여기에 전시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설명이 쓰여 있지 않았다 하나 2015년 현재는 '나무남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으며 박물관 측에선 대놓고 써놓긴 민망했는지 나무 인형과 함께 제기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특별전시관[편집]

비정기적 특별전시를 하는 곳이다.

지하에는 어린이박물관이 있으며, 지하층 입구가 위 사진의 왼쪽 방향에 따로 있어서 거기로 들어가면 된다. 어린이박물관 관람에는 각종 체험활동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한다.

신라천년보고[편집]

갈수록 늘어나는 영남권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문화재 수장고이다. 경주 뿐만 아니라 영남 지역의 문화재들을 보관한다. 일반 관람객들도 구경할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만들었다. 각종 유물들을 보관하며, 데이터베이스 및 아카이브에 등록하는 작업, 그리고 간단한 유물 복원 작업(토기, 도자기 조각 찾아 맞추기 등등)을 하기도 한다.

박물관 가장 안쪽 구석에 있어 기타 전시관에 비해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주요 건물인데, 수장고를 지은 부지 자체도 '인왕동 왕경 유적'이라 해서 동서-남북 도로로 구획된 방(坊) 유적이 확인된 곳이다. 건축 당시의 이름은 영남권 수장고였으나, 명칭 공모를 거쳐 건물명을 신라천년보고로 확정하였다.

옥외전시장[편집]

범종,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형과 고선사 터 삼층석탑(국보 제38호), 경주 전역에서 출토된 조각이나 건축 부재, 흥선 대원군 시대의 척화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어떤 견공 자제분께서 모형에 파란 페인트칠을 해서 훼손된 적도 있다. 지금도 얼룩이 남아 있는지 모형 탑에 푸르스름한 빛깔이 보인다. 목이 잘린 불상이 많이 있고, 기증자들에게 받은 문화재가 많다.

종각 (성덕대왕신종)[편집]

이 종은 신라 제35대 왕인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대왕을 위하여 만들기 시작하여 그 아들인 혜공왕에 의해 771년에 완성되었다. 종의 꼭대기에는 용뉴(龍뉴)와 음통(音筒)이, 몸에는 위로부터 보상당초무늬를 새긴 문양띠, 그 아래는 4개의 유곽(乳廓), 4구의 비천상, 2곳의 당좌(撞座), 맨 아래에는 보상당초와 연꽃 문양띠가 양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형태와 화려한 장식,아름답고 여운이 긴 종소리 등 우리나라의 종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이다.

수묵당과 고청지[편집]

전통 한옥 건물로 지어진 수묵당(樹墨堂)과, 그윽한 정취를 풍기는 연못인 고청지(古靑池)는 2007년부터 우리 박물관의 교육과 행사 장소로 주로 활용하고 있다. 수묵당과 고청지라는 이름은 수묵(樹墨) 진홍섭 선생(1918~2010)과 고청(古靑) 윤경렬 선생(1916~1999)을 기리기 위해 두 분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진홍섭 선생은 1952년부터 1961년까지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신인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의 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이고, 윤경렬 선생은 평생 동안 경주와 신라 문화를 사랑하고 가꾸었던 자랑스러운 경주인이었다. 이 두 분은 1954년부터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를 만들어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으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묵당과 고청지에는 우리나라 박물관 교육의 선구자였던 이 두 분의 높고 아름다운 뜻이 깃들어 있다.

소장품[편집]

국보[편집]

  • 28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 29호 성덕대왕 신종
  • 38호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 188호 천마총 금관
  • 189호 천마총 관모
  • 190호 천마총 금제 허리띠
  • 191호 황남대총 북분 금관
  • 192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 194호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 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 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 275호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보물[편집]

  • 202호 의성 관덕동 석사자
  • 314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3~4
  • 315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
  • 617호 천마총 금제 관식
  • 618호 천마총 금제 관식
  • 619호 천마총 목걸이
  • 620호 천마총 유리잔
  • 621호 천마총 환두대도
  • 622호 천마총 자루솥
  • 623호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 624호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 625호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 626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
  • 628호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 629호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 630호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
  • 632호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 633호 경주 황남동 금제 드리개
  • 634호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
  • 635호 경주 계림로 보검
  • 636호 서수형토기(미추왕릉지구)
  • 884호 삼안총
  • 1151호 청동 옻칠 발걸이
  • 1152호 경주 죽동리 청동기 일괄
  • 1410호 금동 당간 용두
  • 1411호 임신서기석
  • 1475호 안압지 출토 금동판 불상 일괄

국립경주박물관 명품 10선[편집]

금관 - 신라는 4세기 중반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쓴 지배자를 중심으로 고대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마립간과 그 일족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금, 은, 금동 등의 장신구를 통해 보여주었다. 그중 금관이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이 금관은 신라 금관 중 가장 완성도가 높고 화려하다.  
성덕대왕신종- 박물관 정문을 통과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유물이 성덕대왕신종이다.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구리 12만근으로 큰 종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덕왕의 아들 혜공왕이 재위 7년 만인 771년 12월 14일에 종을 완성했다. 아름다운 곡선, 세밀하게 새겨진 무늬, 심금을 울리는 종소리를 자랑하며 가장 아름다운 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신라 불교의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유서깊은 사찰인 경주 백률사의 불상이다. 높이는 성인 남성의 키와 비슷하며, 주조와 조각 기술이 뛰어나고 전체적인 비례도 우수하다. 두 손은 없어졌지만, 남아있는 팔의 위치로 보아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불로 여겨진다.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3대 금동불상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석조미륵삼존불- 좌우 보살의 자그마한 몸체와 천진난만한 표정 때문에 ‘아기부처’로 많이 알려져 있는 석조미륵삼존불입니다. 가운데 본존불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이러한 자세는 현존하는 삼국시대 불상 가운데 이 작품이 거의 유일합니다. 이 세 구의 불상은 경주 남산 북쪽 봉우리 아래 골짜기인 장창골의 한 석실에 있던 것입니다. 단단한 재질의 화강암을 조각했음에도 마치 살아 숨쉬는 듯 온기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석불입니다.  
사리갖춤 - 감은사는 682년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세운 절이다. 현재 감은사터에는 2기의 석탑이 남아 있다. 두 탑 모두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담는 용기인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 이 사리갖춤은 서탑에서 나온 것으로, 상자 모양의 사리 외함과 전각 모양의 사리 내함, 수정 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얼굴무늬 수막새 - 수막새는 지붕의 기왓골 끝에 사용한 기와이다. 얼굴무늬수막새는 수줍음 가득한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신라의 미소'라고도 불린다. 신라 사람들은 얼굴무늬수막새가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이 수막새는 선덕여왕 대에 세워진 영묘사 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진다. 1972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치미 (망새) - '치미'는 건물의 용마루(건물 지붕 가운데에 위치한 수평으로 된 부분) 양쪽 끝에 올리는 기와로 '망새'라고도 한다. 이 치미는 신라에서 가장 큰 절이었던 황룡사지 강당 부근에서 발견된 조각을 복원한 것입니다. 국내에 남아있는 치미 중 가장 큰 것으로, 황룡사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유물이다.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신라 사람들은 토기에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흙으로 작게 빚은 토우를 붙이거나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겨 장식하였다. 이 항아리의 목과 어깨부분에는 다양한 모양의 장식토우들이 붙어있다. 생동감 넘치는 토우들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조형물로서 신라인의 생활 모습뿐만 아니라 자연과 조화된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장식보검 - 보석과 금빛이 어우러진 화려한 장식보검은 흑해 연안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친 지역에서 만들어져 신라에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장식보검은 카자흐스탄의 보로보예 유적에서 발견된 칼의 파편과 매우 비슷하다. 신라가 머나먼 서쪽 나라들과도 교류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화재이다.  
금동초심지가위- 이 금동가위는 초나 등잔의 심지를 자를 때 쓰던 것으로 신라 동궁 안에 있던 인공 연못인 월지에서 발견되었다. 넝쿨모양을 응용한 유려한 형태와 정교한 새김무늬는 절정의 세련미를 보여준다. 통일신라시대의 화려했던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는 세련된 디자인의 금속공예품이다. 일본 나라의 쇼소인(正倉院)에도 이와 비슷한 가위가 보관되어 있어 당시 신라와 일본 두 나라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관람안내[편집]

  • 관람시간 : 10:00~18:00. 토요일 및 공휴일 1시간연장.
  • 입장마감: 관람 종료 30분전 까지
  • 야간연장개관 : 10:00~21:00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3월~12월 매주 토요일
  • 정기휴관일 : 1월1일, 설날, 추석. 임시 휴실일: 4월, 11월 첫 번째 월요일 (기획전시실, 어린이박물관, 정원 및 옥외전시 등은 정상 운영)
  • 입장료 : 무료 상설전시관, 어린이박물관, 특별전시(단, 유료 특별전시는 제외)

교통안내[편집]

시내에선 11번이나 600번대 노선, 불국사 쪽에선 10번을 타면 박물관 바로 앞에서 내려준다.

KTX, SRT나 일반열차를 이용해서 갈 경우 신경주역에서 내려서 700번을 타고 안압지 정류장에서 하차해서 직선으로 9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한다. 50번을 이용했을 경우 신한은행사거리에서 내려서 내린 정류장에서 불국사행 11번 버스로 갈아타고 경주박물관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보문단지 쪽에서 갈 경우 보문단지, 육부촌 정류장에서 700번이나 10번을 타고 안압지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가급적이면 신경주역에서는 50번을 이용하자.

경주역 정류장에서 한 번 환승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그렇지. 11번 버스 타면 바로 박물관 앞에서 내려준다. 교통카드가 없을 경우 그냥 700번을 타고 동궁과 월지 정류장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된다. 버스 기다리기 싫다면 택시를 타자. 요금은 3,400원밖에 안 나오며 시간도 9분밖에 안 걸린다. 불국사 쪽에서 갈 경우 불국사 주차장 앞에서 10번을 타고 국립경주박물관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포석정에서 갈 경우 500번 버스를 타고 경고지하차도 정류장에서 내린 후 건너편 정류장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경주박물관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 철도
  • KTX 신경주역에서 700번 버스이용 -> 동궁과 월지(안압지)앞 하차(소요시간 25분), 도보 3분
  • KTX 신경주역에서 50, 51, 60, 61, 70번 버스이용시 고속터미널(시외)에서 하차후 아래 번호 차량으로 환승하셔야 됩니다.
  • 버스
  • 시외버스·고속버스터미널 또는 경주역에서 11, 600, 601, 603, 604, 605, 607, 608, 609번 버스 이용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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