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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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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영웅기념비
발견기념비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
오벨리스크

기념비(紀念碑, monument)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을 말한다. '상징적인', '오래도록 잊지 않을 가치가 있는' 대상을 형용할 때 기념비적이다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다.

고대에서부터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주로 정복, 문화적 발전, 개인의 위대한 업적등을 기념 하였으며, 후대 에게는 역사적 자료의 기능도 하고있다. 동양에서는 위령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위령비는 사고, 전쟁, 재해 등으로 숨진 사람이나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된 기념비의 일종이다. 영혼을 위로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빌거나, 추모하는 의미를 가진다.

  • 위령비 — 사고.전쟁, 재해 등으로 숨진 사람이나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념비
  • 기념비 —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일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세운 비
  • 유허비 —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후세에 알리거나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

개요[편집]

기념비는 기념탑 ·기념문 ·기념상 ·기념관 ·묘당(廟堂) ·봉안당(奉安堂) 등 과거의 사건 ·사업 및 죽은 사람의 유업(遺業)을 기념하거나 고인(故人)의 신령을 제사지내고 그 유품을 진열하기 위하여 세운 건조물을 말한다.

기념비 등은 기념해야 할 사항을 상징하는 조형을 건립하여, 이를 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종류의 감개를 느끼게 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고대 프랑스의 멘히르( menhir:거석기념물 또는 선돌), 이집트의 오벨리스크(obelisk:태양 신앙의 상징적 기념물) 등이 현존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기념물을 남겨놓으려는 의지는 인류가 시작된 이래 존재하였음을 말해준다.

기념물로는 로마나 파리의 개선문이 유명하며, 파리의 에펠탑도 기념 건조물의 하나이다. 묘당이나 납골당의 가장 고대의 것은 고분(古墳)의 형식이었지만, 점차 석조(石造) ·목조(木造)의 복잡한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능묘나 공자묘, 유럽 중세의 교회당, 인도의 스투파(불탑), 멕시코 고원에 있는 피라미드 등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그 당시의 대표적인 건조물이다.

상세[편집]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이념 혹은 정체성 확립에 큰 계기가 된 인물 내지는 사건, 혹은 인류사에서 진보적인 사건을 이뤄낸 인물을 기리기 위해 세운 표식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보면 옛날 백성들의 안위와 생활 향상에 힘쓰고 노력한 지방 관리나 부호들을 위해 세웠던 송덕비도 기념비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공로의 기준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인위적인 잣대가 많이 적용되며, 일부 독재 국가에서도 기념비라고 자칭하는 표식을 건립하는 것이 다반사이기에 해당 정의가 반드시 옳다고 말하긴 힘들 수 있다. 단적인 예를 들어, 열녀문의 경우 당시 시대의 생활상에 입각해 절개를 지킨 여인의 표상으로 세워진 기념비의 일종이긴 해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기념비로 분류하기엔 어폐가 많고 논란도 상당히 많다.

따라서 개인적인 의미에서의 기념비가 세워지는 일은 드물고, 대개 국가나 단체의 존립에 희생적 또는 영웅적인 업적을 이룬 인물에 대한 기념비를 세운 경우가 압도적이다. 영국의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진 넬슨 제독 기념탑이라든지, 워싱턴 D.C.에 건립된 워싱턴 기념탑 같은 경우가 그런데, 둘은 모두 국가 존립에 일조한 인물들이었던 관계로 기념비가 세워진 케이스이다. 아울러 위의 런던 한국전 참전기념비처럼, 민주주의 수호에 희생적인 헌신을 한 인물들을 기리는 의미로 건립된 참전 기념비도 있다. 즉. 기념비는 개인적인 면보다 역사에 있어서 단일 국가의 건국과 정체성 확립 등 공동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건립한 일종의 표식에 가깝다.

단, 기념비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지어져서 강제성이 없어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워싱턴에 건립된 한국전쟁 참전 기념물이 베트남 참전 기념물보다 후에 건립된 이유도 상술한 이유 때문이다. 자신이 자기 기념비를 세운답시고 민중들을 강압적으로 동원하는 것은 조선시대 탐관오리들의 흔한 필수요소로 작용했다.

발견기념비[편집]

발견기념비(포르투갈어: Padrão dos Descobrimentos)는 포르투갈 리스본 산타마리아데벨렝의 타구스 강 연안에 있는 대항해 시대를 기념하는 기념비이다. 길이는 46m, 넓이는 20m, 높이는 52m, 깊이는 20m이다. 1958년 2월 3일에 공사를 시작했으며 1960년 10월 10일에 준공되었다. 기념비의 맨 앞쪽에는 엔히크 왕자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동쪽 부분과 서쪽 부분에도 인물조각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넬슨기념비[편집]

넬슨 기념비(영어: Nelson Pillar, 아일랜드어: Colún Nelson)는 아일랜드 더블린 오코넬 거리에 있던 허레이쇼 넬슨을 기념하기 위한 비이다. 1808년경에 만들어졌으며, 1966년 폭파되어 더블린 첨탑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념비[편집]

제2차 세계 대전 기념비(영어: National World War II Memorial)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징병되고, 전사한 미국 병사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건조된 국립 기념물이다. 미국 워싱턴 D.C.의 중심부에 위치한 내셔널 몰에 건립되어 있다. 이 기념비는 2004년 4월 29일에 공개되었고, 이 해의 전몰자 추도 기념일(5월 마지막 월요일) 이틀에 해당하는 2004년 5월 29일, 미국 제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에 의해 기념비 제막식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이 기념비는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이 관할하는 내셔널 몰과 기념 공원 단체(National Mall and Memorial Parks group)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오벨리스크[편집]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이다.

방첨탑(方尖塔)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며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이다. 태양신 신앙과 관계가 있고, 고왕국(古王國)시대에 아브시르에 있는 제5왕조의 네우세르라 왕묘의 태양피라미드 신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묘의 기념비로 건립되었다. 중(中)왕국시대 이후로는, 국왕의 통치 기념제 때에 신전탑문 앞에 한쌍이 건립되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것은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라는 뜻)에 있는, 제12왕조의 세누세르 1세가 건립한 것으로 높이 20.7 m이다.

제18왕조의 투트모세 1세 이후로 제왕(諸王)이 명문(銘文)을 4면에 새긴, 애스원의 화강석제의 오벨리스크를 카르나크의 아몬 신전 앞에 세웠는데 대부분 유럽에 반출되어, 현재는 투트모세 1세(23.2 m, 143 t)와 하트솁수트 여왕(29.6 m, 325 t)의 것이 하나씩 남아 있을 뿐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 불리는 투트모세 3세의 것은 19세기에 런던과 뉴욕으로 각각 가져갔다. 아스완의 채석장에는 길이 41.7 m의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하나 있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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