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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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레코드.jpg|썸네일|300픽셀|'''로얄'''(Roy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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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옛 대우그룹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출범한 대우자동차는 수많은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그 배후에는 대우그룹의 총수였던 김우중 회장이 있었는데, 효율적인 경영을 중시하는 김우중 회장은 페이스리프트를 대우자동차의 초기 전략으로 세웠다. 최소 6~7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신차 세대교체보다는 추가적인 상품성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신선함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결국 대우자동차는 성공적인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제품 이미지를 개선하고 판매량을 크게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대우자동차로 하여금 전성기를 맞이하게 한 첫 번째 차량은 GM 산하의 오펠 차량을 베이스로 개발된 대우 로얄(Royale)이다. 로얄 시리즈는 1980년대 대한민국의 대표 고급차로 인식되어 당시 경쟁 차종이었던 현대자동차의 코티나, 그나라다 등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후 로얄 시리즈는 파생 모델을 다수 낳으며 1980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의 상징으로 불리며 중형 시장을 평정했다. 고급차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대우자동차는 1980년대 중반에 들어 비교적 약세를 보였던 소형차 시장에서 도약을 준비했다. 이 시기의 대한민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자동차 산업이 성숙되던 시기였고, 자연스럽게 마이카 열풍이 불었다. 생애 첫 차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면서도 부족하지 않은 동력 성능, 그리고 실용성을 갖춘 소형차의 선호도가 높아 말 그대로 소형차의 전성시대가 찾아왔다. 파생 모델 중 레코드로얄(Record royal)은 80년대 고급 중형차 시장을 장악한 로얄 시리즈의 시조이다. 레코드의 이름이 남아있었지만 새한은 로얄을 더 크게 강조했다. 당시 출시 가격은 535만 원이었으며, 1.9리터 4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02마력, 최대토크 16.2kg.m, 최소시속 160km를 발휘했다. 이듬해에는 3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로얄 오토매틱' 출시를 시작으로 다양한 로얄 시리즈가 라인업에 더해진다. 특히 1980년에는 한국 최초의 디젤 승용차 '로얄 디젤'이 출시됐다. 최고출력 65마력, 최대 토크 12.3kg.m의 2.0리터 디젤 엔진을 탑재한 로얄 디젤은 15.4km/L의 고속도로 연비를 달성했으며, 이는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5천 원에 불과한 주유비로 갈 수 있는 연료 효율성이었다. 1981년에는 상위 모델인 '로얄 살롱'이 추가된다. 로얄 살롱은 레코드의 상위 모델인 '세나토'의 외관 디자인을 적용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화했고, 2.0리터 4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19마력, 최고시속 178km를 기록했다.<ref>카이즈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139537&memberNo=37290264&searchKeyword=%EC%83%88%ED%95%9C%EC%9E%90%EB%8F%99%EC%B0%A8%20%EB%A0%88%EC%BD%94%EB%93%9C%20%EB%A1%9C%EC%96%84&searchRank=2 추억의 올드카, 1978 대우 로얄]〉, 《네이버 포스트》, 2017-10-21</ref><ref>이지아, 〈[http://tago.kr/story/daewoo.htm 한국GM의 전신, 대우자동차]〉, 《타고》, 2020-12-0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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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옛 대우그룹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출범한 대우자동차는 수많은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그 배후에는 대우그룹의 총수였던 김우중 회장이 있었는데, 효율적인 경영을 중시하는 김우중 회장은 페이스리프트를 대우자동차의 초기 전략으로 세웠다. 최소 6~7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신차 세대교체보다는 추가적인 상품성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신선함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결국 대우자동차는 성공적인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제품 이미지를 개선하고 판매량을 크게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대우자동차로 하여금 전성기를 맞이하게 한 첫 번째 차량은 GM 산하의 오펠 차량을 베이스로 개발된 대우 로얄(Royale)이다. 로얄 시리즈는 1980년대 대한민국의 대표 고급차로 인식되어 당시 경쟁 차종이었던 현대자동차의 코티나, 그나라다 등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후 로얄 시리즈는 파생 모델을 다수 낳으며 1980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의 상징으로 불리며 중형 시장을 평정했다. 고급차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대우자동차는 1980년대 중반에 들어 비교적 약세를 보였던 소형차 시장에서 도약을 준비했다. 이 시기의 대한민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자동차 산업이 성숙되던 시기였고, 자연스럽게 마이카 열풍이 불었다. 생애 첫 차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면서도 부족하지 않은 동력 성능, 그리고 실용성을 갖춘 소형차의 선호도가 높아 말 그대로 소형차의 전성시대가 찾아왔다. 파생 모델 중 레코드로얄(Record royal)은 80년대 고급 중형차 시장을 장악한 로얄 시리즈의 시조이다. 레코드의 이름이 남아있었지만 새한은 로얄을 더 크게 강조했다. 당시 출시 가격은 535만 원이었으며, 1.9리터 4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02마력, 최대토크 16.2kg.m, 최소시속 160km를 발휘했다. 이듬해에는 3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로얄 오토매틱' 출시를 시작으로 다양한 로얄 시리즈가 라인업에 더해진다. 특히 1980년에는 한국 최초의 디젤 승용차 '로얄 디젤'이 출시됐다. 최고출력 65마력, 최대 토크 12.3kg.m의 2.0리터 디젤 엔진을 탑재한 로얄 디젤은 15.4km/L의 고속도로 연비를 달성했으며, 이는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5천 원에 불과한 주유비로 갈 수 있는 연료 효율성이었다. 1981년에는 상위 모델인 '로얄 살롱'이 추가된다. 로얄 살롱은 레코드의 상위 모델인 '세나토'의 외관 디자인을 적용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화했고, 2.0리터 4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19마력, 최고시속 178km를 기록했다.<ref>카이즈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139537&memberNo=37290264&searchKeyword=%EC%83%88%ED%95%9C%EC%9E%90%EB%8F%99%EC%B0%A8%20%EB%A0%88%EC%BD%94%EB%93%9C%20%EB%A1%9C%EC%96%84&searchRank=2 추억의 올드카, 1978 대우 로얄]〉, 《네이버 포스트》, 2017-10-21</ref><ref name="이지아">이지아, 〈[http://tago.kr/story/daewoo.htm 한국GM의 전신, 대우자동차]〉, 《타고》, 2020-12-0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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