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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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였던 현대자동차는 국내 소형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포니 시리즈의 후속 모델을 선보이며 선두에 서있었다. 이에 대우자동차는 상품으로서 자동차를 개발함에 있어 발생하는 비용과 단가를 낮춰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월드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르망’(Lemans)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르망의 생산은 인건비 측면에서 유리했던 대한민국의 대우자동차에서, 디자인과 설계는 소형차 관련 고급인력이 밀집한 독일 오펠에서, 그리고 판매는 당시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던 GM에서 각각 담당했다. 서로가 특출한 분야를 전담함으로써 그 시너지는 배가되었다. 세 회사의 시너지는 말 그대로 엄청났다. 르망은 출시와 동시에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르망은 당시 경쟁 자동차에서 보기 힘들었던 날렵한 유선형의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으며, 우수한 달리기 성능과 승차감도 겸비해 특히 젊은 운전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르망은 현대 포니, 엑셀의 판매량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대우자동차가 현대자동차와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당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였던 현대자동차는 국내 소형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포니 시리즈의 후속 모델을 선보이며 선두에 서있었다. 이에 대우자동차는 상품으로서 자동차를 개발함에 있어 발생하는 비용과 단가를 낮춰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월드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르망’(Lemans)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르망의 생산은 인건비 측면에서 유리했던 대한민국의 대우자동차에서, 디자인과 설계는 소형차 관련 고급인력이 밀집한 독일 오펠에서, 그리고 판매는 당시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던 GM에서 각각 담당했다. 서로가 특출한 분야를 전담함으로써 그 시너지는 배가되었다. 세 회사의 시너지는 말 그대로 엄청났다. 르망은 출시와 동시에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르망은 당시 경쟁 자동차에서 보기 힘들었던 날렵한 유선형의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으며, 우수한 달리기 성능과 승차감도 겸비해 특히 젊은 운전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르망은 현대 포니, 엑셀의 판매량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대우자동차가 현대자동차와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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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티코.jpg|썸네일|300픽셀|'''티코'''(Tico)]]
 
[[파일:티코.jpg|썸네일|300픽셀|'''티코'''(Tico)]]
  
본격화된 마이카 붐을 이어 가기 위해 한국 정부는 이른바 ‘국민차 사업’을 준비했다. 이에 따라 “작지만 실용적이면서도 저렴하게 보급할 수 있는” 국민차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를 위한 사업자로 대우그룹 산하의 대우국민차(1999년 대우자동차에 통합)가 선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경차가 바로 국민차 티코(Tico)다. 티코는 일본 스즈키(Suzuki)와 기술 제휴를 통해 개발된 경차였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국민차 계획을 바탕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가장 민감하게 다뤄진 부분은 바로 가격이었다. 당시 상공부에서 요구하는 가격대는 200만 원대였는데, 이는 당시 소형 승용차인 현대 엑셀 5도어의 400~500만 원보다 한참 낮은 가격이었다. 가격을 맞추기 위해 대우국민차는 편의사양을 덜어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티코는 빈약한 편의장비에 의심스러운 안전성을 갖춘 차 중 하나가 되었지만, 다행히도 290만원으로 출시 가격을 맞출 수 있었다. 티코의 시장 초기 반응은 미지근한 수준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에 들어 본격화된 세컨드 카에 대한 수요 증가, 그리고 IMF 금융위기에 따른 실속 소비 경향이 나타나면서 인기가 서서히 높아졌고, 1995년에는 승용차 판매의 4%를 티코가 홀로 점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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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화된 마이카 붐을 이어 가기 위해 한국 정부는 이른바 ‘국민차 사업’을 준비했다. 이에 따라 “작지만 실용적이면서도 저렴하게 보급할 수 있는” 국민차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를 위한 사업자로 대우그룹 산하의 대우국민차(1999년 대우자동차에 통합)가 선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경차가 바로 국민차 티코(Tico)다. 티코는 일본 스즈키(Suzuki)와 기술 제휴를 통해 개발된 경차였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국민차 계획을 바탕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가장 민감하게 다뤄진 부분은 바로 가격이었다. 당시 상공부에서 요구하는 가격대는 200만 원대였는데, 이는 당시 소형 승용차인 현대 엑셀 5도어의 400~500만원 보다 한참 낮은 가격이었다. 가격을 맞추기 위해 대우국민차는 편의사양을 덜어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티코는 빈약한 편의장비에 의심스러운 안전성을 갖춘 차 중 하나가 되었지만, 다행히도 290만원으로 출시 가격을 맞출 수 있었다. 티코의 시장 초기 반응은 미지근한 수준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에 들어 본격화된 세컨드 카에 대한 수요 증가, 그리고 IMF 금융위기에 따른 실속 소비 경향이 나타나면서 인기가 서서히 높아졌고, 1995년에는 승용차 판매의 4%를 티코가 홀로 점유하기도 했다.
  
==== 에스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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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에스페로.jpg|썸네일|300픽셀|'''에스페로'''(Espe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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