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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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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

마리우폴(우크라이나어: Маріуполь, 러시아어: Мариуполь, 그리스어: Μαριούπολη, 영어: Mariupol, 문화어: 마리우뽈)은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마리우풀이라고도 쓴다. 마리우폴은 흑해 북부에 있는 아조프해의 북안(北岸)이자 칼미우스강구(江口)에 위치한다. 마리우폴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주에 속하며 인구는 425,681명(2022년 기준)이다. 도네츠크주에서 두 번째, 우크라이나에서는 열 번째로 큰 도시이다. 1948년 구소련 시대에는 이곳 태생의 정치가 안드레이 즈다노프가 죽자 그를 기념하여 도시 이름을 '즈다노프'(Жданов)로 고쳤다가 1989년에 이전의 이름을 되찾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기에 마리우폴은 매우 격렬한 교전이 진행되었다.[1]

개요[편집]

마리우폴은 도네츠크주 남쪽의 아조프해 연안, 칼미우스강 하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우크라이나 흑해 저지대의 연장선인 아조프 저지대로 동쪽으로는 러시아 연방과의 국경까지 스텝 지대가 이어진다. 도시의 기원은 카자크의 칼미우스 요새가 세워진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미우스 요새는 칼미우스 팔란카(palanka; 우크라이나어 паланка, 원시적 국가의 형태를 띤 자포리지야 카자크의 정치, 군사 공동체인 자포리지야 시치의 행정 구역 단위)의 중심지였다. 1775년 이곳을 합병한 러시아는 팔란카를 러시아 제국의 행정구역 단위인 군(郡; 러시아어 уезд)으로 재편하였다. 또한, 1780년 크림반도로부터 많은 그리스인을 강제 이주시켜 이곳에 정착시키고, 마을 이름도 마리아노폴(Marianopol)로 개명하였다. 19세기 후반 마리우폴은 도네츠 분지(Donets Basin)의 지하자원을 실어나르기 위한 선적(船積) 항구로 개발되었다. 1882년 도네츠크와 철도로 연결되었고, 1888~1889년에는 항구가 건설되었다. 주된 선적 품목은 석탄과 곡물이었다. 도시는 중공업으로 급격히 발전했다. 1920년대 후반 도네츠 분지의 자원 채굴량이 늘면서 마리우폴의 항구도 확장됐다. 구소련에서 가장 큰 제철공장 중 하나였던 마리우폴 아조브스탈(Azovstal) 제련공장이 세워진 것도 이 무렵이다. 마리우폴 지역은 돈바스와 드니프로 공업지구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세 번째로 큰 중공업 지대가 됐다. 아조프해와 모스크바, 카스피해를 잇는 볼가-돈(Volga-Don)운하가 완공되면서 대형 선적지로서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우크라이나에서 열 번째로 큰 도시로 제련산업 등 중공업이 발달한 항구도시이다.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하는 지역이지만, 주민은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이 절반씩이며, 도시 건립 초창기부터 정착한 소수의 그리스인들이 있다. 마리우폴에는 많은 제련공장과 중장비 제조공장, 코크스 정제 공장, 대형 식품 공장 등이 있다. 마리우폴 항구는 오데사에 버금간다. 쇄빙기의 사용 덕분에 항구는 1년 내내 개방할 수 있게 됐다. '돈바스의 바다 관문'으로 알려진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가 석탄, 금속, 곡물, 소금, 기계를 수출하고 철광석, 망간 광석, 시멘트를 수입하는 데 이용된다. 마리우폴은 여름엔 무덥고 겨울엔 추운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기후적으로는 해바라기, 멜론, 포도 등 생육기가 긴 고온성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그러나 수자원 부족으로 인해 호수와 그 유역의 물은 주민과 산업적 수요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2]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에 위치한 도시로, 러시아의 지지를 받는 미승인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2022년 3월 2일 도시를 완전히 포위했고, 이후 점차 도시를 장악했다. 적십자는 이 상황을 "아포칼립스"라고 표현했고,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가 도시에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시 관계자들은 약 21,0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또한 교전 기간 동안 적어도 도시의 95%가 러시아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고 보고했다. 4월 중순에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제외한 마리우폴 시가지가 러시아군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군에 완전히 점령되었으며, 5월 중순 아조우스탈에서 마지막으로 버티던 우크라이나군이 항복하면서 이 전투는 러시아군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군의 승리로 끝났다.[3]

역사[편집]

12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마리우폴과 그 인근 지역은 크림 타타르(Crimean Tatar), 노가이 호르드(Nogai Horde), 리투아니아 대공국(Grand Duchy of Lithuania), 모스크바 대공국(Muscovy) 등 주변 민족 간의 극심한 갈등으로 황폐해지고 인적이 드물던 곳이었다. 영토상으로는 15세기 중반 흑해(Black Sea)와 아조프해 북쪽의 많은 지역이 크림 한국(Crimean Khanate)에 병합되면서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에 종속되었다. 그러나 드니프로(Dnipro)강 좌안(左岸)의 황량한 스텝이 아조프해까지 이어지는 마리우폴 지역은 물이 부족해 사람들이 정착하기 어려웠다.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 이 유라시아의 스텝 지대에 가장 두드러지게 출현한 민족은 카자크였다. 작고 느슨하면서 기동력이 뛰어난 집단이었던 자포리지야 카자크(Zaporozhian Cossacks)는 드니프로 여울(Dnipro Rapids) 아래쪽에서 목축과 유목민 생활을 병행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이 스텝 지대를 지나며 낚시와 사냥, 농사와 목축을 했다. 정부와 토지 소유주로부터 독립적이었던 그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도망친 많은 농민과 농노들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부대원으로 만들었다.

18세기 초 카자크는 스웨덴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 제국에 맞섰다가 오히려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러시아어 Пётр Великий)에 의해 이 지역에서 쫓겨나 한동안 아조프해 연안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오스만제국에 맞설 새로운 군사 작전을 위해 1734년 자포리지야 카자크의 귀환을 허락했다. 카자크는 러시아군을 위해 전쟁에 나서는 대신 그들의 옛땅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옛땅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자포리지야 카자크의 수는 적었다. 그들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하기 위해 팔란카라는 행정 구역제를 도입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제국과 벌인 러시아-투르크 전쟁(1768~1774년)에서 승리하면서 크림반도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이로써 자포리지야(Zaporizhzhia)와 마리우폴 등의 지역에 대한 크림 타타르족의 위협이 제거됐다. 1775년 자포리지야는 러시아의 노보로시야(Novorossia)현(縣)에 합병되었으며 현재의 마리우폴을 포함한 지역은 새로 만들어진 아조프현에 통합되었다. 아조프현의 지사는 1778년 이곳에 파블롭스크라는 뉴타운을 건설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은 1779년 9월 29일 행정적으로 칼미우스군(郡)의 마리우폴, 혹은 마리아노폴(Marianοpol; 그리스어 Μαριανόπολη)이라는 이름의 도시가 되었다. 러시아 당국은 황후인 마리아 표도로브나(Maria Feodorovna; 러시아어 Мария Фёдоровна)의 이름을 따서 지었지만, 사실상 크림반도에 있는 그리스인들의 정착지인 마리암폴(Mariampol)에서 따온 것으로 여겨졌다. 1780년 러시아 당국이 많은 정교회 그리스인들을 크림반도에서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1782년에만 해도 마리우폴은 러시아 제국의 아조프현에 있는 군(郡)의 군청소재지로, 인구는 2948명이었다. 19세기 초 세관, 교회 교구 학교, 항만 건물 등이 생겼다. 1850년대에 인구는 4,600명으로 증가했고, 상점들도 늘었다.

1882년 지금의 도네츠크인 유조프카(Yuzovka)로부터 이어지는 철로가 건설된 후 예카테리노슬라브(Yekaterinoslav)현에서 재배된 밀과 도네츠 분지에서 채굴된 석탄의 상당량이 마리우폴항을 통해 수출되었다. 마리우폴은 당시 러시아 제국 남부에서 오데사 다음으로 큰 항구가 되었다. 이렇게 자금이 돌면서 시내에는 병원과 공공도서관, 발전소, 급수시스템 등이 건설되었다. 지역적 수준의 무역 중심지였던 마리우폴은 1898년 인근에 제철공장이 문을 열면서 한 단계 더 발전했다. 러시아 제국 각지에서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몰려왔다. 마리우폴의 인구는 1892년 1만 7,000명에서 1897년에는 3만 2,000명으로,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주민의 약 절반은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이고 그리스인이 28%, 그리고 유대인이 21%가량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전 11만 명까지 늘었던 마리우폴의 인구는 러시아의 2월 혁명과 내전까지 거치며 급격히 감소했다. 1921년에는 3만 명으로 줄었다. 1933년 칼미우스강을 따라 새로운 제철소(아조브스탈)가 건설되었다. 다시 확장되던 도시의 인구와 산업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941년 10월 8일부터 1943년 9월 10일까지 마리우폴은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다. 도시의 유대인들은 거의 전멸했다. 1948년 마리아노폴은 1896년 그곳에서 태어난 소련의 정치인 안드레이 즈다노프(Andrei Zhdanov; 러시아어 Андрей Жданов)의 이름을 따 즈다노프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면서 1989년 마리우폴로 다시 바뀌었다.

친(親)러 성향이던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우크라이나어 Ві́ктор Янукович) 대통령의 탄핵 사태로 이어진 2014년 유로마이단(Euromaidan) 혁명은 마리우폴이 위치한 도네츠크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와 가까운 데다 언어도 러시아를 쓰는 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곳곳에서 친러 반(反)혁명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인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DPR) 간의 전쟁으로 전개됐다.

2014년 4월 DPR은 도네츠크를 점령하고 그들의 수도로 선포했다. 5월 마리우폴에서도 양측의 전투가 벌어졌지만 마리우폴은 정부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6월 13일 마리우폴은 도네츠크가 탈환될 때까지 도네츠크주의 임시 주도로 선포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기에 마리우폴은 매우 격렬한 교전이 진행되었다.[4]

주민[편집]

우크라이나인이 주민의 절반 이하로 가장 많다. 두번째로 가장 많은 민족은 러시아인이며, 그 외 주요 소수민족으로는 그리스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벨라루스인이 있다. 독립국가연합 나라들의 도시들 중에서 가장 그리스인이 많은 도시인데, 21,900명이 거주한다. 그리스인 31,400명은 주위의 여섯 마을에 거주하며, 따라서 마리우폴 부근에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그리스인의 60%가 거주하는 것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편집]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기에 마리우폴은 매우 격렬한 교전이 진행되었다. 마리우폴은 크림반도와 친러 반군 세력이 점령한 돈바스(도네츠크ㆍ루한스크) 지역을 연결하는 유일한 육로다.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장악할 경우 돈바스, 더 나아가 러시아 본토와 육지로 연결돼 안정성이 높아지고,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 지역 80% 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 아조프해로 향하는 마리우폴 항구는 철강, 석탄, 곡물 등을 중동에 수출하는 주요 거점이다. 마리우폴이 넘어가면 우크라이나는 주요 수출 항로가 막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12%, 옥수수 16%, 보리 18%를 공급하고 있어 마리우폴 점령은 곧 세계 곡물 시장의 러시아 의존도 심화로 연결된다. 마리우폴에는 유럽 최대 철강 공장 중 하나인 아조우스탈(Azovstal)이 위치해 있다. 우크라이나 아조우스탈이 피해를 입자, 수요에 못 미치는 공급 부족 장기화 우려에 북유럽 열연강판 가격은 하루 새 10% 급등한 t당 1580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의 철강업체들은 주가가 폭등했다. 2월 24일부터 시작된 포위전으로 인해 마리우폴의 건물 95%가 완파되었다. 아조프스탈을 제외한 도시 지역은 4월 중순에 러시아 연방군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군의 통제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한 달이나 아조프스탈에서 농성하던 아조프 부대와 우크라이나군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면서 5월 20일에 마리우폴에서의 전투는 막을 내렸다.

  • 러시아군이 2021년 말부터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 배치를 개시하며 전쟁의 분위기가 고조되자 러시아군이 노릴 초기 목표지점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마리우폴이 크림 반도와 도네츠크를 잇는 회랑으로, 아조프 해안의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 2022년 2월 24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전쟁터가 되었다. 2022년 3월 말 러시아군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군이 마리우폴 북부와 동부를 장악하였고, 잔류 우크라이나군이 서부와 남부에서 계속 저항 중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2022년 4월 3일 기준 마리우폴 탈환을 포기하지 않았음이 확인했다.
  • 2022년 3월 16일, 마리우폴 극장 공습이 일어났다.
  • 2022년 4월 3일 기준, 마리우폴 지역 민간인 피난을 위한 인도적 지원도 계속되고 있다.
  • 2022년 5월 9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측이 마리우폴에서 독소전쟁 승전 77주년 기념 행사를 대규모로 개최했다. 수도 도네츠크는 폭격에 위험이 커 민간 행사 장소로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마리우폴에서 행사를 거행했다고 밝혔다.
  • 2022년 5월 17일, 결국 러시아군에 의해 완전히 함락되었다.
  • 2023년 3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마리우폴을 방문해 직접 차를 운전하며 마리우폴의 복원 상황을 확인하고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 2023년 3월 20일, 데니스 푸실린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임시 수반이 마리우폴 인구 28만 명 돌파를 발표했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마리우폴〉, 《위키백과》
  2. 마리우폴(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3. 마리우폴 포위전〉, 《위키백과》
  4. 마리우폴〉, 《요다위키》
  5. 마리우폴〉,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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