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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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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위치
볼로냐

볼로냐(이탈리아어: Bologna)는 남유럽, 지중해에 위치한 이탈리아 북부 내륙에 있는 도시에밀리아-로마냐주의 주도(州都)이다. 면적은 140.86km², 인구는 약 40만 명이다. 볼로냐를 중심으로 한 볼로냐 광역도시권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광역시 지역의 면적은 3,702km², 인구는 약 100만 명이며 이탈리아에서 7번째로 인구가 많다. 볼로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로 알려진 볼로냐대학이 있고 이탈리아 도시 중 역사적 유적지의 규모가 가장 크고 잘 보존된 곳으로도 꼽힌다.[1]

개요[편집]

볼로냐는 아펜니노산맥(이탈리아어: Appennini) 기슭의 포(Po) 평원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레노강과 사베나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고대 말기부터 만(蠻)족이 침략하였고, 7세기에는 란고바르드인이 정복하였다. 12세기에는 롬바르디아 동맹에 들고 16세기 초부터 18세기 말까지는 교황령이었다. 중세 이후의 건축이 수없이 많이 남아 있고, 야코포 델라 퀘르치아의 조각으로 장식한 고딕 양식의 산 페트로니오 성당, 안토니오 디 비첸초가 설계한 산타 마리아 디 세르비 성당(치마부에의 벽화가 있다), 니콜라 피사노 작의 성 도메니코(도미니쿠스)의 묘가 있는 산 도메니코 성당, 산 프란체스코 성당 등이 있다. 도시의 평균 고도는 해발 66m이며 습한 아열대 기후로 연평균 강수량은 774mm, 연평균 기온은 14.0 ℃다. 에트루리아 문명에서 비롯된 이 도시에는 유서 깊은 탑과 교회가 많으며 1970년대 말 시작된 복원, 보존 정책으로 역사적 명소들이 잘 보존돼 있다. 1088년 설립된 볼로냐 대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꼽힌다. 볼로냐는 지난 2000년엔 유럽의 ‘문화 수도’로, 2006년엔 유네스코 ‘음악의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대규모 기계, 전자, 식품 회사들의 본사가 소재하고 있고 유럽 최대의 상설무역박람회가 열리는 농업, 산업, 금융, 교통의 중심지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삶의 질이 높은 도시 중 하나다.[2]

역사[편집]

볼로냐 지역에서 인간의 거주 흔적이 발견된 시기는 기원전 3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트루리아 문명의 영향력이 이곳에 전해진 건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 무렵이다. 기원전 6세기 말 에트루리아인들이 현재의 볼로냐가 있는 자리에 펠시나(Felsina)라는 도시를 세웠다. 도시는 기원전 196년 로마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면서 보노니아(Bononia)라는 이름의 자치도시가 됐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비잔틴제국 라벤나(Ravenna) 관할구의 국경 전초기지였던 볼로냐는 고트족에게 여러 차례 약탈당했다. 고대 연대기에 따르면 이 시기에 전설적인 페트로니오(San Petronio) 주교가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고 산토 스테파노(Santo Stefano) 성당을 세웠다. 성페트로니오는 오늘날까지도 볼로냐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다.

1088년에 설립된 것으로 알려진 볼로냐 대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꼽힌다. 이 대학은 이르네리우스(Irnerius) 등 저명한 법학자들의 주도로 중세 로마법 연구의 중심지가 됐다. 단테(Dante)와 보카치오(Boccaccio), 페트라르크(Petrarch)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인과 학자들이 이 대학에서 공부했다.[3]

1176년 신성로마제국과 롬바르디아 도시동맹 간에 벌어진 레냐노(Legnano) 전투에서 제국군이 패한 후 볼로냐는 1183년 콘스탄츠 강화조약으로 자치권을 획득했다. 이후 이 도시는 급속히 팽창하기 시작했고 바지선과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운하 시스템 덕분에 북부 이탈리아의 주요 상업·무역 중심지 중 하나가 됐다. 1200년에 이르러 볼로냐는 약 1만 명의 인구를 거느린 상업과 공예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볼로냐는 또 이탈리아 도시 중 최초로 시 의회가 설립됐으며 1256년 리베르 파라디수스(Liber Paradisus) 법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노예제를 폐지한 도시 중 하나다.

볼로냐의 교황 통치 기간(1506~1796)은 일반적으로 심각한 쇠퇴기로 평가된다. 교황의 정책은 무거운 관세 부과로 무역을 저해하고 몇몇 제조업체에 독과점 면허를 몰아줌으로써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부패를 부추겼다. 볼로냐는1796년 나폴레옹의 정복과 1815년 교황령 부활을 거쳐 1860년 새로 출범한 이탈리아 왕국에 합류했다. 19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볼로냐는 다시 한번 경제·사회적으로 번성했다. 1864년 이 도시는 철도로 피렌체(Firenze)와 연결됐다.

볼로냐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다. 1943년~1945년 동안 나치 독일이 도시를 점령했으며, 연합군의 폭격에 시달렸다.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를 연결하는 산업·철도의 거점이라는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연합군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성벽 안쪽의 역사 유적지는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오늘날 볼로냐는 이탈리아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로 다양한 무역박람회 개최지로도 인기가 높다.[4]

교통[편집]

볼로냐에는 굴리엘모 마르코니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다. 공항은 이탈리아에서 7번째로 이용객이 많은 공항이며 2004년에 새로운 활주로를 추가하여 좀 더 대형 항공기를이 이착륙 할 수 있게 되었다. 볼로냐 중앙역은 볼로냐 시의 전략적 위치로 인해, 이탈리아 북부지역 기차 선로에서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한다. 이탈리아 중북부 철도 및 교통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탈리아 철도의 대동맥인 토리노-나폴리 고속선이 지나며 베로나베네치아에서 이탈리아 남부로 가는 노선들도 볼로냐에서 합류한다. 이에 걸맞게 중앙역인 볼로냐 중앙역은 이탈리아에서 로마 테르미니역 다음으로 많은 플랫폼을 가지고 있으며 연간 이용객은 이탈리아에서 5번째로 많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주요 도시로는 환승 없이 철도로 오갈 수 있고,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으로 이어지는 EC 및 EN 열차도 활발히 지나다닌다. 볼로냐역은 1980년 8월에 85명의 사망자가 생긴 초대형 폭탄 테러를 겪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볼로냐역은 대형 테러 공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시금석이 된 역이다. 1980년의 이 테러 공격은 이탈리아의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볼로냐 대학살(Strage di Bologna)로 흔히 불린다. 이 테러 공격은 이탈리아의 네오 파시스트활동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다.

경제[편집]

볼로냐는 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한 농업과 전자, 기계, 섬유, 식품, 의료기기, 세라믹 산업을 기반으로 한 상공업이 발달해있다. 두카티가 이 도시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페라리람보르기니, 마세라티, 파가니 등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들이 같은 에밀리아-로마냐주에 위치해 있다. 볼로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역경제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들이다. 실제로 볼로냐는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 평균보다 양호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볼로냐의 시민들은 대부분 한 곳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있으며, 협동조합의 종류도 산업별로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이들 협동조합들은 위기상황에서 서로 힘을 합치기도 하는데 대침체나 2011년 그리스발 경제위기 때는 단위 협동조합이 파산하거나 어려워질 때 다수 협동조합들이 ‘조합기금’을 투자해서 실업자를 다른 협동조합에 취직시켜주거나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등의 조치로 실업자들을 구제하기도 했다.[5]

문화[편집]

도시의 이름에서 따낸 '볼로냐'라는 햄의 원산지이며 라비올리를 주로 많이 먹는다. 볼로냐는 기름진 음식 때문에 '뚱보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미트소스'로 알려진 라구 소스가 볼로냐에서 유래하여 볼로네제 소스 등의 이름으로 통한다. 원래는 스파게티가 아닌 탈리아텔레나 라자냐 등 넓적한 파스타에 곁들인다. '볼로냐 소시지' 중에서 모르타델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근교 도시인 파르마의 치즈와 프로슈토가 유명하다. 잠포네라고 하는 에밀리아-로마냐식 돼지족 훈제요리는 한국의 족발과 흡사하다. 와인으로는 람부르스코, 알바나 디 로마냐 등의 와인이 유명하지만, 토스카나와 피에몬테의 와인들에 묻히는 감이 있다. 이외 시네마테크계에서 유명한 치네테카 디 볼로냐도 여기 있다.

관광[편집]

볼로냐는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이 시행된 19세기 후반까지 유럽의 몇 안 되는 성벽이 있는 대도시 중 하나였다. 1944년 상당한 폭격 피해를 입었음에도 오늘날까지 볼로냐의 역사적인 유적지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며,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예술적 기념물이 많이 남아 있다.

볼로냐 도심의 거리들은 로마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격자형으로 설계됐으며 오늘날에는 주로 보행자 전용 도로로 운영된다. 12~13세기에 건설된 180개 도시 방어탑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20개 남짓이다. 볼로냐의 탑 중 가장 유명한 두에 토리(Due Torri)는 한 쌍의 기울어진 탑인데 그 독특한 기울기가 이 도시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볼로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우아한 포르티코(portico: 대형 건물 입구에 기둥을 받쳐 만든 현관 지붕)들이 도시 경관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볼로냐의 역사 중심지에는 총 38km의 회랑인 포르티코가 이어져 날씨와 상관 없이 먼 거리를 걸을 수 있다.

포르티코 디 산 루카(Portico di San Luca)는 세계에서 가장 긴 포르티코로 알려졌다. 666개의 아치형 지붕이 있는 약 4km의 회랑이 산 루카 성당(Santuario della Beata Vergine di San Luca)으로부터 도시 중심부까지 이어진다.

1388~1479년 지어진 산 페트로니오 성당(Basilica di San Petronio)은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교회다. 길이가 132m, 폭이 66m에 이르며, 아치형 지붕의 높이는 안쪽이 45m, 바깥쪽이 51m에 달한다. 벽돌로 지어진 교회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산도메니코 성당(Basilica di San Domenico)은 13세기 로마 건축 양식을 보여주며, 산 프란체스코 성당(Basilica San Francesco)과 산 자코모 마조레 성당(Basilica San Giacomo Maggiore)도 13~14세기 건축의 대표적인 예다. 산 자코모 마조레 성당에서는 로렌초 코스타의 ‘벤티볼리오 가문 제단화(Bentivoglio Altarpiece)’ 등 르네상스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교육[편집]

볼로냐 대학은 1088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이다. 중세 유럽 지적 생활의 중심지로서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의 학자들을 끌어들였다. 나폴레옹 시대에 대학 본부가 도심 북동부 지역의 참보니 거리(Via Zamboni)에 있는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볼로냐에는 또 1804년 설립된 음악학교 콘세르바토리오 조반니 바티스타 마르티니(Conservatorio Giovanni Battista Martini)와 1802년 설립된 미술학교 아카데미아 디 벨레 아르티 디 볼로냐(Accademia di Belle Arti di Bologna)가 있다. 두 기관 모두 나폴레옹이 도입한 개혁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현재 볼로냐에는 존스홉킨스대학, 디킨슨 칼리지, 인디애나대학, 브라운대학, 캘리포니아대학 등 외국 대학의 캠퍼스가 많이 들어섰다. 이들 대학에서 공부하려고 이탈리아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드는 젊은이들은 이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지도[편집]

서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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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볼로냐〉, 《위키백과》
  2. 볼로냐(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볼로냐〉, 《요다위키》
  4. 볼로냐(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5. 볼로냐〉,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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