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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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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청

부여군(扶餘郡)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으로 논산시, 서쪽으로 보령시서천군, 북쪽으로 청양군공주시, 남쪽으로 전라북도 익산시, 군산시와 접한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금강이 흐르며, 비옥한 충적 평야를 형성한다. 부여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백제 문화의 유물·유적이 산재해 있는 문화 관광지이다.[1]

개요[편집]

충청남도의 남서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6° 44′∼127° 03′, 위도상으로는 북위 36° 04′∼ 36° 23′에 위치한다. 군의 동쪽 끝은 초촌면 송정리, 서쪽 끝은 외산면 만수리, 남쪽 끝은 양화면 시음리, 북쪽 끝은 은산면 용두리이다. 동서 길이는 34.3㎞, 남북 길이는 33.6㎞이며, 면적은 624.5㎢로 충청남도 전체 면적의 7.6%를 차지하여 도내 15개 시·군 가운데 공주시·서산시·당진시·천안시 다음으로 넓다. 행정구역은 1 15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역별 면적은 은산면이 가장 넓고 남면이 가장 좁다.

군을 상징하는 꽃은 연꽃,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비둘기이다. 군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는 백제 금속공예의 최고 걸작품으로 꼽히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287)를 모티브로 하여, 백제문화의 우수성과 군민에 대한 봉사 행정의 의미를 담아 어린이의 모습으로 친근하게 의인화한 '금동이'이다. 군청 소재지는 부여읍 동남리이다.

백제 시대 부여의 명칭은 사비이며, 백제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538년)로 바꾸고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이후 538년부터 660년까지 백제 수도였다. '부여'라는 이름은 통일신라 때부터 이어온 지명이며, 백제 시대에는 사비, 소부리, 소우리 등으로 불렸다. 부여는 만주 지방에 있던 고대 국가라 상관없을 거 같지만,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부여 왕족이었고, 백제 왕들의 성씨도 부여씨였으며 백제 성왕이 국명을 남부 여로 바꿨을 정도였다. 이 지역을 부여로 명명한 통일신라도 그 역사적 관련성을 인정한 것이다. 공주시와 함께 백제문화제를 개회식과 폐막식을 번갈아가면서 진행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세계 대백제전을 개최했다.[2][3]

자연환경[편집]

서북쪽은 차령산맥의 여맥이 지나 산지를 이루며 남동쪽은 차차 높이가 낮아져 금강 유역에서는 평야가 발달되었다.

북서쪽에 성대산(星臺山, 631m)·아미산(峨嵋山, 577m)·월명산(月明山, 544m) 등의 산이 솟아 있고, 중남부에 성흥산(聖興山, 268m)과 서부에 만수산·노고산·석천산 등이 연이어 있다.

금강이 군의 동부에서 곡류하여 남쪽으로 흐른다. 금강 유역에는 넓은 범람원이 발달되어 있다. 특히 금강의 서쪽에 있는 구룡 평야는 땅이 기름지고 관개시설도 잘 되어 있어 군내 최대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이 밖에 금천(金川)·구룡천(九龍川)·은산천(恩山川)·석성천(石城川) 일대에도 비옥한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논의 토양은 남부금강저지계(南部錦江低地系)에 속하는 부여통(扶餘統)이고, 밭의 토양은 충남하성토지계(忠南河成土地系)에 속하는 금강갈색토통(錦江褐色土統)으로 사양토와 사토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세미사(細微砂)가 많이 포함되어 있고, 부식(腐植)과 질소가 약간 부족하며 산도(酸度)가 약한 편이다. 암석은 주로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서해안이 인접한 관계로 해풍의 영향을 받아 대륙성기후의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연평균 기온은 12.9℃, 1월 평균기온 -0.2℃, 8월 평균기온 25.5, 연 강수량은 1,420㎜이다. 평균초빙일은 11월 11일경, 평균 해빙일은 3월 28일경으로 서울에 비해 약 2주일의 차이를 보일 만큼 따뜻한 곳이다.[4]

역사[편집]

외산면 반교리와 홍산면 좌홍리 등지의 구석기시대 유물 산포지, 초촌면 송국리의 청동기시대 취락지 등 선사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된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으며, 삼국시대에 백제의 영토가 되어 소부리군(所夫里郡) 또는 사비(泗沘)라 불렀다. 538년(성왕 16)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 국호를 남부여(南夫餘)라 개칭하였는데, 지금의 부여군은 당시의 소부리군과 대산군(大山郡, 지금의 홍산면), 가림군(加林郡, 지금의 임천면), 진악산현(珍惡山縣, 지금의 석성면)에 해당한다. 백제가 멸망한 뒤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으며, 672년(문무왕 12) 당나라의 웅진도독부를 대체하는 총관(摠管)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 주·군·현을 정비하여 소부리군이 부여군으로 개칭되었고, 진악산현은 석산현(石山縣)으로 개칭되어 부여군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가림군(加林郡)은 가림군(嘉林郡)으로 개칭되었고, 대산군은 한산현(翰山縣)으로 개칭되어 가림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가 개국한 뒤, 940년(태조 23) 석산현이 석성현(石城縣)으로 개칭되었고, 983년(성종 2) 전국 행정구역이 12목(牧)으로 정비되면서 부여군과 석성현이 공주목(公州牧)에 속하였다. 995년(성종 14) 가림군은 임주(林州)로 개편되어 자사(刺史)를 두었다. 1018년(현종 9) 전국이 5도양계(五道兩界)로 재편되면서 부여군·석성현은 양광도(楊廣道)의 공주에 속하였으며, 임주는 다시 가림현으로 개칭되어 서림현(西林縣, 지금의 서천군)·비인현(지금의 서천군 비인면)·한산현(韓山縣)·남포현(지금의 보령시 남포면)·홍산현(鴻山縣)을 속현으로 두었다. 1172년(명종 2) 석성현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1175년(명종 5) 홍산현을 한산현에 예속시켜 감무를 두었다. 1315년(충숙왕 2) 가림현이 원나라 평장사 아발해(阿孛海)의 처 조씨(趙氏)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다시 임주로 승격시켰으며, 1376년(우왕 2)에는 최영(崔瑩)이 홍산에서 준동하는 왜구를 크게 무찌른 홍산대첩이 일어났다.

조선이 개국한 뒤, 1394년(태조 3) 명나라에 가서 환관이 된 진한룡(陳漢龍)이 사신으로 와서 임주가 자신의 고향이라 하여 부(府)로 승격시켰다가 1401년(태종 1) 임주로 복구하였다. 1413년(태종 13) 전국 행정구역이 8도로 개편되어 양광도에 속하였던 부여 지역이 충청도로 이속되었다. 임주는 임천군으로 개칭되어 부여현·석성현과 함께 공주목에 속하였고, 홍산현은 홍주목(지금의 홍성군)에 속하였다. 1414년(태종 14) 석성현을 이산현((尼山縣)과 합쳐 이성현(尼城縣)이라 부르다가 이듬해에 석성현으로 환원하였다. 세조 때 진관제(鎭官制)가 수립되어 임천군·부여현·석성현은 공주진(公州鎭)에, 홍산현은 홍주진(洪州鎭)에 각각 속하였다. 임진왜란 중인 1596년(선조 29)에는 홍산 지역을 중심으로 이몽학의 난이 발생하였다가 평정되었다. 이후 기존의 체제가 유지되다가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 행정구역이 23부(府)로 재편되면서 부여현·석성현·홍산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부여군·석성군은 공주부(公州府)에, 임천군·홍산군은 홍주부(洪州府)에 각각 속하였다. 이듬해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시행되어 충청도충청남도충청북도로 분리되면서 부여군·석성군·임천군·홍산군이 모두 충청남도에 속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임천군·홍산군 전역과 석성군·공주군의 일부가 부여군에 병합되어 현내면·임천면·석성면·홍산면을 비롯한 16개 면을 관할에 두었으며, 1917년 현내면이 부여면으로 개칭되었다. 8·15광복 후, 1960년 부여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지금의 1읍 15면 체제를 갖추었으며, 1973년 석성면 현북리가 부여읍에, 장암면 사산리가 세도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2018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부여읍) 15(규암면·은산면·외산면·내산면·구룡면·홍산면·옥산면·남면·충화면·양화면·임천면·장암면·세도면·석성면·초촌면) 437행정리 191법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농림어업 취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절반에 가까울 만큼 1차 산업 의존도가 높다. 상업 활동은 예로부터 5일 장으로 열리는 정기시장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 모시 거래를 주로 하던 임천장을 비롯하여 홍산장·부여장·은산장·논티장 등이 상거래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규암면의 규암장은 일제강점기에 군내 물산의 집합지로 번성하였다. 정기시장은 1970년대까지 지역 상거래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유통구조의 변화 등으로 쇠락하여 일부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부여읍 구아리의 부여중앙시장과 부여시장이 상설시장으로 열리고, 부여시장은 매달 끝자리가 5일과 10일인 날에 5일장을 병행한다. 이 밖에 매달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날에 열리는 홍산면 남촌리의 홍산장을 비롯하여 외산면 만수리의 외산장(4일·9일), 은산면 신대리의 은산장(1일·6일) 등 5일 장이 선다.

구룡 평야를 비롯한 비옥한 토양과 농사에 적합한 기후를 기반으로 하여 농업이 활발한 전형적인 농업 지역이다. 채소류는 도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며, 과채류의 수박·오이·딸기·토마토·멜론 등이 특산물로 꼽힌다.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초지 등 자연조건이 좋아 축산업이 활발하며, 소규모 축산 농가는 줄어들고 사육 마릿수는 늘어나는 규모화와 전업화의 경향을 보인다.

임업은 도내에서 가장 활발하다. 2017년을 기준하여 산림면적은 3만 4041ha로 군 전체 면적의 54.5%에 해당하며, 충청남도 전체 산림면적의 약 8%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국유림은 2847ha, 공유림은 1065ha이며, 사유림이 88%를 웃도는 3만 129ha를 차지한다. 임상(林相) 별로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입목지가 2만 8140ha로 산림면적의 약 83%를 차지하고, 이 가운데 활엽수림이 가장 많은 1만 1564ha, 침엽수림이 7954ha,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뒤섞여 자라는 혼효림이 8442ha, 죽림이 189ha를 차지한다.

광업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금광이 개발되어 임천 광산이 가행 되었으며, 1930년대에 지금의 보령시·예산군·홍성군·청양군·부여군·서천군 등지에 분포하는 충남 탄전이 개발되어 석탄 채굴이 시작되었다. 탄광은 1970년대까지 외산면 만수리의 대보 탄광 등이 호황을 누렸고, 1980년대 중반까지 60여 개소의 석탄 광구와 30여 개소의 금광구가 등록되었다. 그러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탄광은 1995년에 모두 폐광되었고, 다른 광구들도 쇠락하여 소수의 비금속광만 남게 되었다.

공업은 전반적으로 도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취약하며, 비금속광물제품 제조업과 식료품 제조업을 위주로 한다.

산업단지로는 은산면 은산리 일원의 은산 1산업단지와 가중리 일원의 은산 2산업단지, 임천면 칠산리 일원의 임천 산업단지, 장암면 합곡리 일원의 장암 산업단지, 홍산면 홍양리 일원의 홍산 산업단지가 있다. 농공단지로는 은산면 은산리 일원의 은산 패션 전문농공단지가 있다. 2018년을 기준하여 6개 단지에 총 39개 업체가 입주하여 43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교통[편집]

도로 교통서해안고속도로의 지선인 서천 공주 고속도로(고속국도 151호선)가 서천군을 기점으로 하여 부여군의 옥산면~남면~홍산면~내산면~구룡면~은산면~규암면 지역을 거쳐 공주시 우성면의 서부여 분기점까지 이어져 당진 영덕 고속도로(고속국도 30호선)와 연결된다. 또 초촌면의 외곽을 거쳐가는 논산 천안 고속도로(고속국도 25호선)가 공주 분기점에서 당진 영덕 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일반국도는 전북 군산시 옥도면에서 부여군을 거쳐 경북 경주시 감포읍까지 이어지는 4호선을 비롯하여 29호선(전남 보성군 미력면~부여군~서산시 대산읍), 39호선(부여군 부여읍~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40호선(당진시 합덕읍~부여군~공주시 신관동) 등이 지나간다. 국도 4호선이 서부여 나들목에서, 국도 25호선과 39호선이 부여 나들목에서 각각 서천 공주 고속도로와 접속한다.

이 밖에 국가지방지원도(국지도) 68호선이 충남 서천군 장항읍에서 부여군을 거쳐 경북 경주시 용강동까지 이어진다. 일반 지방도는 보령시 웅천읍에서 부여군을 거쳐 청양군 남양면까지 이어지는 606호선을 비롯하여 611호선(서천군 장항읍~부여군 석성면), 613호선(서천군 한산면~부여군 은산면), 625호선(부여군 세도면~공주시 우성면), 645호선(계룡시 엄사면~부여군~아산시 선장면), 723호선(전북 익산시 석왕동~부여군~청양군 장평면), 799호선(전북 완주군 삼례읍~부여군~공주시 탄천면) 등이 지나간다. 지방도 723호선이 부여 나들목에서 서천공주고속도로와 접속한다.

터널은 서천 공주 고속도로상의 부여 1·2터널을 비롯하여 총 8개소, 교량은 부여읍 동남리와 규암면 규암리를 연결하는 백제대교를 비롯하여 백마강교·황산대교·웅포대교·왕진교·부여대교 등 총 179개소가 건설되었다. 부여읍 구아리에 수도권·충청권·호남권 방면으로 운행하는 부여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한편, 군의 남북을 관통하는 금강의 수로는 예로부터 서해와 내륙을 잇는 교통로 역할을 하였다. 1950년대 초까지 정기 여객선이 운항하였으며, 부여읍과 규암면을 연결하던 규암나루에서는 1968년 백제 대교가 준공되기 전까지 선박으로 버스나 화물차를 운송하기도 하였다. 이후 육상교통이 발달하여 1987년 황산대교가 완공된 뒤로는 나루의 도선 기능은 사라지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백마강의 구드래·고란사·수북정 선착장을 오가는 황포돗배 유람선이 운항하고 있다.

관광[편집]

부여군은 538년에 백제가 도읍을 옮겨온 이래 122년간 찬연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곳으로 많은 유물·유적과 경승지가 산재해 있어 고적 답사 및 관광을 위해 많은 내외국인이 찾고 있다.

백제탑의 저녁노을, 수북정에서 바라보는 봄날 백마강가 아지랑이, 고란사의 은은한 풍경소리, 노을진 부소산에 간간이 내리는 부슬비, 낙화암에서 애달프게 우는 소쩍새, 백마강에 고요히 잠긴 달빛, 구룡평야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 규암 나루에 들어오는 돛단배 등을 지칭하는 부여8경은 최근까지 부여를 찾는 관광객들이 즐기던 여덟 가지 풍경이다.

백마강·부소산·낙화암 등은 사철 다른 모습으로 대할 수 있어서 이 지방을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만들고 있다. 연중 일반 관광객과 수학여행단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일본인 탐방객들도 자주 다녀가고 있다.

관광은 대체로 3개 코스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부소산 코스로 삼충사·영일루·군창지 및 궁녀사당·송월대·사비루·백화정·낙화암·고란사·부소산 입구이다. 둘째는 부여읍 관광 코스로 박물관·부소산성·구드레·청산성·쌍북리 도요지·정림사지·나성·궁남지·망해정·부여향교·능산리 고분군·청마산성이다. 셋째는 백마강 코스로 부소산성·조각공원·구드레나루·규암나루이다.

1996년부터 시작된 백제문화권 특정 지역 개발계획에 의해 규암면 합정리 일대 120만 평의 부지에 역사 재현촌, 연구교육촌 등으로 구성된 백제 역사 재현 단지 등이 들어서고 있고, 백제큰길·사비교·백제교·웅포대교 등이 건설되고 있다. 또, 궁남지를 중심으로 인근 군수리 사지와 화지산을 연계 개발하여 8만 평 규모의 종합관광 레저타운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어서, 관광개발에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짝수년에는 부여에서 열리고, 홀수년에는 공주에서 열리는 백제문화제는 국내 3대 문화제의 하나로서 1996년에 제42회 백제문화제가 부여에서 열렸다. 이 문화제에는 백제천도(遷都) 행사 등 36개 종목의 행사가 4일여에 걸쳐 화려하게 펼쳐져서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운집했다.

1996년에는 백제 역사 재현 단지 내의 역사 교육촌에 문화 체육부 산하(현 문화관광부)의 한국전통문화학교를 건립하기로 결정되어 부여는 백제문화역사관광 외에 전통문화의 교육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문화 예술 행사로는 1955년에 시작된 백제문화제가 대표적이다. 1978년 이후 공주시와 격년으로 개최하다가 2007년부터 통합하여 매년 9~10월에 사비 정도 고유제(泗沘定都告由祭)와 전통 제례 및 불전 의식, 전통문화 예술 공연과 마당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은산면 일원에서는 매년 3월경에 백제부흥군의 원혼을 위로하고 향토신에 마을의 평안을 비는 은산별신제(국가무형문화재 9)가 열리고, 임천면의 가림성(성흥산성)에서는 매년 4월 말에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바친 백제 무명 장졸들의 충혼을 기리는 임천 충혼제가 열린다. 양화면 암수리의 유왕산에서는 매년 음력 8월에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백제 유민들의 넋을 위로하는 유왕산 추모제가 열린다. 이밖에 궁남지 서동공원에서 매년 7월에 열리는 부여서동연꽃축제, 세도면의 특산물을 주제로 한 '부여세도 방울토마토&유채꽃축제',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 일원에서 열리는 부소산 봄나들이 축제 등이 있다.

민속놀이로는 세도면 동사리 마을에서 본격적인 농사철에 맞이하는 공동체 놀이로 전승하는 세도두레풍장(충남무형문화재 28)를 비롯하여 농부들이 모심기나 김매기를 하면서 부르던 산유화가(山有花歌, 충남무형문화재 4), 호상(好喪) 놀이라고도 하는 부여읍 용정리의 상여소리(충남무형문화재 22), 마을 주민들이 협동 단결하여 괴질을 물리치고 마당놀이를 펼치는 은산면 내지리의 단(丹) 잡기 놀이(충남무형문화재 29) 등이 전승한다. 향토음식으로는 백마강에서 많이 잡히는 민물고기를 이용한 민물매운탕과 웅어회(위어회), 연잎밥, 연꽃 빵, 돌쌈 밤밥, 버섯 김밥, 참게매운탕 등이 있다.

문화재[편집]

국가 지정 문화재로는 국보 5점(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백제 금동대향로·부여 능산리 사지 석조 사리 감·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당(唐) 유인원 기공비·보광 사지 대보 광선 사비·무량사 오층 석탑을 비롯한 보물 16점, 청마산성·군수리 사지·청산성을 비롯한 사적 21개소, 명승 1개소(부여 구드래 일원), 천연기념물 2점(주암리 은행나무, 부여·청양 지천 미호종개 서식지), 국가 무형문화재 1점(은산별신제), 보부상 유품을 비롯한 국가 민속문화재 5점 등이 있다. 이 밖에 외산면의 반교마을 옛 담장과 부여읍 동남리의 시인 신동엽 가옥 터, 구(舊) 홍산저포조합 본점 등 3점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시도 지정 문화재로는 무량사 김시습 부도·부여 동헌·홍산 객사를 비롯한 충남유형문화재 23점, 내포제 시조(內浦制時調)를 비롯한 충남무형문화재 5점, 부여 산직리 지석묘·지선리 고분군·구아리 백제유적을 비롯한 충남 기념물 28점, 금암리 오층석탑·천진전 단군화상·저동리 쌀바위를 비롯한 충남 문화재자료 44점 등이 있다. 이 밖에 임천 유태사묘를 비롯한 110여 점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부여군〉, 《위키백과》
  2. 부여군〉, 《네이버 지식백과》
  3. 부여군〉, 《나무위키》
  4. 부여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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