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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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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구청

부평구(富平區)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의 동부 및 중동부에 있는 자치구이다. 조선 시대에는 계양구와 함께 부평도호부였고, 원적산, 광학산, 철마산, 거마산 등을 경계로 인천 도심과는 별개의 시가지를 형성한다.[1]

개요[편집]

인천광역시의 중동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6° 41' 05"~126° 46' 13",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27' 17"~37° 31' 45"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경기도 부천시, 서쪽으로는 인천시 서구, 남쪽으로는 남동구, 북쪽으로는 계양구와 접한다. 구의 동쪽과 남쪽 끝은 구산동, 서쪽 끝은 청천동, 북쪽 끝은 삼산동이며, 동서 간 거리는 7.47㎞, 남북 간 거리는 6.6㎞이다. 면적은 32.0㎢로 인천광역시 전체 면적의 약 3%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동구·미추홀구 다음으로 작다. 행정구역은 22개 행정동(9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신동이 전체 면적의 13.4%를 차지하여 가장 크고 갈산 2동이 전체 면적의 2.1%로 가장 작다. 인구는 2018년을 기준하여 53만 8137명으로 인천시 전체 인구의 17.8%를 차지하여 서구·남동구 다음으로 많다.

구를 상징하는 꽃은 국화,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비둘기, 동물은 백마이다. 구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부평을 대표하는 풍물축제의 전통 복장에 무선 헤드셋을 착용한 한 쌍의 소년·소녀를 친근한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축제의 도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표현한 '부디(Buddy)'와 '부니(Bunny)'이다. 구청 소재지는 부평동이다.

부평구와 계양구 시가지는 원인 천이라고 불리는 인천 남부 지역과 분리되어 있으며, 오히려 부천시와 시가지가 연계되어 있다. 부천시 서부와 부평구 동부가 개발되며 연담 화된 2010년대 이후부터는 인천 북부 지역 주민들은 인천 남부 지역과의 왕래가 비교적 적다. 특히 부평구 남동부(일신동, 구산동, 부개 1-2 동, 부평 6동)이거나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지나는 삼산동, 부개 3동, 청천 2동(부평구청 역 역세권인 남동부 지역 한정), 갈산 2동, 부평 4동 지역의 경우 인천 남부 지역보다 부천 중/상동에서 약속을 잡는 경우도 많다. 반면 부평구 서남부인 십정동, 부평 3동, 산곡동의 경우는 부천 중/상동보다는 인천 남부 지역과의 교류가 훨씬 많은 편이다. [2][3]

자연환경[편집]

서쪽이 원적산, 호봉산, 남쪽은 만월산, 철마산 등으로 막혀 있고, 그 산지에서 발원한 굴포천, 청천천 등이 동쪽으로 흐르며 평야 지대를 이룬다. 과거 벼농사로 이름 높았던 부평 평야는 현재 공장 지역과 시가지 및 주택지로 조성되어 있다. 부평 분지의 남쪽을 차지하고 있으며 구의 서쪽은 부평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지 능선 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 발원하는 크고 작은 하천들은 부평 분지 동쪽의 굴포천으로 모인다. 대부분의 하천은 산과 산이 만나는 고개 주변의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분지의 내부로 흐르면서 경사가 완만해지다가 부평 분지의 동쪽 끝인 삼산동 목수통에 이르면 마치 우산살이 모여들 듯 한 데 모이며, 서쪽 산지에서는 동으로, 남쪽 산지에서는 북으로 각각 흐르다가 굴포천에 모여 넓은 유역 평야를 형성한다.

주요 하천으로는 굴포천, 청천 천이 있고, 산곡동과 서구 석남동 사이에는 천마산, 공원묘지와 남동구 간석동 사이에는 만월산이 위치해 있으며, 산곡동과 서구 석남동 사이에는 원적산이 있다. 연평균 기온은 12.9℃, 연평균 강수량은 1307.5㎜이다.

역사[편집]

부평 지역에 관한 현존하는 옛 문헌이나 기록이 거의 없고, 아직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나 면밀한 지표조사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1950년대에 청동기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화강석의 돌도끼 3점이 발견되었고, 인근 인천 지역에서도 돌도끼 10여 점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족장급 무덤이라 볼 수 있는 고인돌 여러 기(基)가 발견되었다. 이 같은 유물과 유적의 발견으로 미루어 부평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이 청동기 문화를 남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 부평 지역은 삼국의 각축이 진행되는 동안 그 성쇠에 따라 귀속을 달리하였다. 특히 부평은 한반도의 중심부를 흐르는 한강에 인접해 있어 삼국 간 한강 유역 쟁탈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즉 백제가 한강 유역을 지배하고 있을 때(초기부터 근초 고왕 이후)에는 백제에 귀속되었고,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유하고 있을 때(광개토 대왕과 장수왕 이후)에는 고구려에,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유하고 있을 때(진흥왕대 이후)에는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王建)은 후삼국을 통일하고 서기 940년(태조 23)에 지방제도를 갖추어 각 주부군현(州府郡縣)의 명호(名號)를 개정하면서, 신라 때 부평군을 지칭하던 장제군(長堤郡)이라는 지명을 수주(樹州)로 고쳤다. 그 후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鍊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 이를 혁파하였다.

1150년(의종 4) 수주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승격되었는데, 안남(安南)은 계양산(桂陽山)의 다른 이름인 안남산에서 따온 것으로, 이때부터 한동안 부평의 지명이 안남으로 불려졌다. 1215년(고종 2) 안남도호부는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개칭되었는데, 계양은 계양산의 이름을 딴 것이라 볼 수 있다. 1308년(충렬왕 34)에는 계양도호부가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되었으나, 2년 뒤인 110년(충선왕 2) 여러 목(牧)이 폐지될 때함께 강등되어 부평부(富平府)가 되었다. 이때부터 부평이라는 지명이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금주(衿州: 시흥군), 동성(童城: 김포군), 통진(通津: 김포군), 공암(孔巖: 김포군), 김포(金浦: 김포군), 수안(守安: 김포군) 등 여섯 현(縣)이 속현으로 소속되었다.

조선 태종 때 8도 제가 실시되면서 1413년(태종 13) 부평도호부가 되었고, 세종 때 일시적으로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8년 뒤 다시 도호부로 회복되었다. 세조 때에는 군제(軍制) 개편으로 부평도호부에 중익진이 설치되어 부사(府使)가 병마첨절제사를 겸임하게 되었으나, 실효성 부족으로 2년 만에 폐지되었고, 그 후 진관(鎭管) 체제 하에서 수원진(水原鎭)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왕실의 존엄과 관련된 사건으로 인하여 지방 행정기구의 변천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부평도호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1438년(세종 20) 부평 주민들이 온천을 은폐하였다고 하여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8년 뒤 다시 도호부로 복구되었고, 1505년(연산군 11)과 1698년(숙종 24) 등 세 번에 걸쳐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도호부로 복구되는 곡절을 겪었다.

1883년 인천 개항으로 인천 지역사회가 급격히 변모하는 가운데, 1895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지방 제도가 재편되었다. 이 때 인천의 행정과 사법 업무를 관장하던 인천 감리서가 폐지되었으며, 부평도호부 역시 폐지되어 부평군이 되었다. 부평군은 인천부 소속 12군 중의 하나가 되어 인천부의 지휘 감독을 받게 되었다. 1896년에는 지방제도가 재개정되었는데, 이 때에 인천부는 인천군이 되었고, 부평군과 함께 경기도에 소속된 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공포된 1913년의 부령 제11호에 따라, 인천 부의 관할 구역은 개항장으로 축소되었고, 나머지 구역은 신설된 부천군에 속하게 되었다. 신설된 부천군은 기존의 부평 군 전체와 인천 군의 일부, 강화군의 일부 도서, 그리고 남양 군의 대부면, 영흥면 등을 포함하는 대규모 영역이었으며, 부천이라는 지명도 부평의 부(富)와 인천의 천(川)을 조합한 명칭이었다.

이로써 부평군은 새롭게 설치된 부천군의 등장에 따라 사라지게 되었다. 이때 부평군 관내 각 면(面)의 통폐합이 있었는데, 군내면, 서면, 마장면, 동소정면은 부내 면으로, 석곶 면과 모월곶 면은 서곶 면으로, 동면, 당산면, 황어면은 계양 면으로, 석천면, 옥산면, 수탄 면은 계남면으로, 그리고 상어정 면, 하오정 면, 주화곶면은 오정 면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인천부는 일제에 의해 지리적 중요성이 부각 되면서 두 차례에 걸친 부역(府域) 확장을 이루었다. 특히 제2차 부역확장 때 편입된 부내 면과 서곶면은 옛 부평군 관할 지역으로서 현재의 부평구를 포함하였다. 그리고 부평구에는 인천 부 산하 부평 출창소가 설치되었다.

특히 일제가 조선을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가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부평 지역에는 대규모 공업지대가 조성되었다. 이 지역에 공업지대가 조성된 배경은 북부 지역의 풍부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는 점, 인력 자원이 풍족했다는 점, 육상 교통의 요지에 있었다는 점 등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부평에 입지한 것이 육군 조병창이다. 육군 조병창에서는 인천 지역 중화학 기계 공장의 지원으로 주로 소총, 탄약, 소구경 포탄, 총검, 수류탄, 경차량 등을 제작하였다. 그리하여 일제 말기에 조병창은 부평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1967년 인천시는 시 기구의 확대와 시 구역의 확장 그리고 도시계획 등의 발전적 확대과정을 거치면서 구제(區制)를 실시하게 되었다. 1968년 1월 1일자로 시행된 인천시구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천시 관내의 모든 출장소가 폐지되고 중구, 남구, 동구, 북구 등 4개 구가 신설되었다. 이때 부평 지역은 인천시 북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7년에 이르면 인천은 서해안 시대의 주역을 자처하며 국제항으로 발전하였다. 이때 북구는 대통령령으로 북구와 서구로 분구되었다. 이 조치에 따라 북구의 관할 구역은 1출장소, 29개 법정동에서 옛 부평출장소 지역이었던 19개 법정동만을 관할하도록 축소되었다. 1989년에는 옛 부평 지역이었던 경기도 김포 군 계양면이 북구로 편입되었으며, 구조례(區條例)에 따라 계양동이 설치되어 부평지역은 재차 확장되었다.

1988년에는 북구 조례에 따라 계양 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그 이후 계양 출장소를 중심으로 관할 동이 증설되어 1992년까지 모두 29개 행정동과 32개 법정동을 갖추게 되었다.

1995년에는 법률 제4789호에 의거 인천직할시가 강화군과 옹진군을 포함하고, 인천광역시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일 인천광역시 북구는 경인고속도로를 기준으로 그 남쪽의 부평구와 북쪽의 계양구로 행정구역이 분할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22개 행정동(갈산 1~2동·부개 1~3동·부평 1~6동·산곡 1~4동·삼산 1~2동·십정 1~2동·일신동·청천 1~2동) 9개 법정동(갈산동·구산동·부개동·부평동·산곡동·삼산동·십정동·일신동·청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4]

산업[편집]

산업구조의 비중은 서비스업을 기반으로 하는 3차 산업이 가장 크고, 제조업의 비중도 크다. 지역 내 총생산(GRDP)은 2018년을 기준하여 10조 4954억 원으로 인천시 전체 GRDP의 11.8%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5번째로 비중이 크다. 경제활동별 부가가치의 비중은 제조업(2조 9550억 원)이 31.1%로 가장 크고, 이 밖에 부동산업(13.2%), 금융·보험업(9.4%),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7.6%), 도소매업(7.0%), 교육서비스업(6.9%) 등의 순이다. 금융·보험업과 정보통신업의 부가가치는 10개 군·구 가운데 가장 크고, 제조업·부동산업·교육서비스업의 비중은 3번째로 크다. 전통시장은 부평동에 진흥종합시장·부평깡 시장·부평종합시장, 일신동에 일신 시장(구 부일 시장), 십정동에 열우물 전통시장(구 십정 종합시장), 삼산동에 삼산 시장, 갈산동에 갈산시장, 산곡동에 산곡시장·도깨비시장 등이 상설시장으로 운영된다.

2018년 사업체 수는 3만 2636개로 인천시 전체 사업체의 16.1%를 차지하여 남동구·서구 다음으로 많다. 사업체별로는 도소매 업체(7875개)가 24.1%로 가장 많고, 이 밖에 숙박·음식점 업체(16.9%), 운수·창고업체(13.0%), 협회·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 업체(11.3%), 제조업체(10.2%) 등의 순이다. 사업체 종사자는 15만 7261명으로 시 전체 종사자의 14.7%를 차지하여 남동구·서구 다음으로 많으며, 업종별로는 제조업체 종사자가 가장 많은 22%를 차지한다. 제조업은 금속가공 제품을 비롯하여 기타 기계·장비, 전기 장비, 식료품,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등의 비중이 크다. 산업단지로는 부평구의 청천동과 서구·미추홀구에 걸쳐 부평 주안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주요 기업으로는 한국지엠(주)·동서식품(주)·자일 자동차(주) 등이 있다.

교통[편집]

도로 교통은 한국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 고속도로(고속국도 120호선)가 서구 가정동을 기점으로 하여 부평구의 청천동·갈산동·삼산동을 거쳐 서울시 양천구까지 이어지고, 성남시의 판교 분기점을 기점과 종점으로 하여 수도권 지역을 순환하는 수도권 제1순환 고속도로(고속국도 100호선, 구 서울 외곽 순환도로)가 부평구의 삼산동·일신동·구산동을 경유한다. 서운 분기점에서 경인고속도로와 수도권 제1순환 고속도로가 접속한다. 이 밖에 국도 46호선이 중구 북성동을 기점으로 하여 부평구의 십정동~구산동을 거쳐 강원도 고성군까지 이어진다.

철도 교통은 1899년 인천역~노량진역 간을 운행하는 경인선이 개통하여 부평 지역의 부평역을 경유하였다. 경인선은 2000년 수도권 전철 1호선에 편입하여 부평구의 부개역~부평역~백운역~동암역을 거쳐 간다. 1999년에는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여 부평구의 갈산역~부평구청 역~부평 시장 역~부평역~동수역~부평삼거리역을 운행한다. 이 밖에 의정부시 장암역에서 인천시 석남역까지 운행하는 서울 지하철 7호선이 부평구의 삼산체육관 역~굴포천역~부평구청 역~산곡 역을 거쳐 간다.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이 부평구청 역에서 서울 지하철 7호선과, 부평 역에서 수도권 전철 1호선과 각각 접속한다.

관광[편집]

부평역 주변에 조성된 부평문화의 거리는 차 없는 거리에 상점·음식점·영화관 등이 모여 있고 길거리 공연과 문화 행사, 주말 프리마켓, 인접한 해물탕 거리와 전통시장 등 볼거리·먹거리·즐길 거리가 풍성하여 다양한 연령층이 즐겨 찾는 부평의 대표적 명소로 꼽힌다. 생태관광 명소로는 청천동에 나비를 테마로 하여 나비생태관·자연교육 센터·흙의 정원·들꽃 동산·수생식물원 등의 도심 생태 학습장으로 조성된 인천나비공원, 갈산동에 다양한 전시·체험 등을 통하여 지구온난화 현상과 각종 환경문제를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는 부평굴포누리 기후변화체험관이 조성되어 있다. 산곡동과 청천동에 걸쳐 있는 원적산공원은 생태습지와 놀이터, 체육시설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과 은행나무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어 도심의 휴식처로 인기가 높다. 이 밖에 갈산동에 굴포 먹거리타운이 조성되어 있으며, 걷기 길로는 원적산 둘레길과 함봉산 둘레길이 있다

생활 문화[편집]

예로부터 부평 평야를 기반으로 농업이 활발하여 풍물이 발달한 지역으로서 1997년부터 매년 가을에 부평풍물 대축제가 열려 구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고유제를 시작으로 사흘에 걸쳐 창작 풍물 페스티벌과 부평 두레놀이 등의 공연, 시민축제와 풍물 난장·대동놀이 등의 거리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인천을 대표하는 축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민속놀이로는 과거에 농사일을 하면서 신명을 돋우던 두레 농악이 삼산동 일원에서 전승하여 부평 두레놀이라는 명칭으로 인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문화재[편집]

국가 지정 문화재로는 보물 1점(이성윤 위성 공신교서 및 관련 유물)이 있다. 시 지정 문화재로는 인천 무형문화재 2점(자수장·부평 두레놀이)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부평구〉, 《위키백과》
  2. 부평구〉, 《네이버 지식백과》
  3. 부평구〉, 《나무위키》
  4. 부평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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