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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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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
서초 행정구역

서초(瑞草)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남부에 있는 구이다. 동쪽으로 강남구, 서쪽으로는 동작구·관악구, 북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용산구, 남쪽으로는 우면산·청계산·인릉산을 경계로 경기도 과천시·성남시와 접한다. 면적은 약 47km2로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넓다. 대법원대검찰청이 소재한다.[1][2]

개요[편집]

서초(瑞草)라는 말은 "서리풀"에서 나온 말로서 "상초(箱草)"라고도 불렀다. 고구려 때에는 쌀을 "서화(瑞禾)"라 하는데, 옛날부터 이곳 서초동에서 나는 쌀을 임금님께 바쳤다는 기록을 보아 "서초"란 좋은 일이 일어날 예감을 주는 풀, 즉 "벼"를 뜻한다. 서초구라는 이름을 처음 갖게 된 것은 1988년 1월 1일 강남구에서 서초구가 나누어지면서부터이다. 서초구는 한강을 북으로 끼고 우면, 청계, 구룡산과 더불어 양재, 반포, 사당천 사이로 펼쳐진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강남구, 서쪽으로 관악. 동작구, 남쪽으로는 과천, 성남시 북쪽으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용산구와 마주하고 있다.[3]

역사[편집]

이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신석기 시대 유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이 한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고, 한강 유역의 하남시 미사리 유적이나 강동구 암사동 유적에서 선사시대 인류가 살았던 흔적, 강남구 역삼동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선사유물, 서초구 원지동의 지석묘군 등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도 일찍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활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국가로서 마한이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나 서기전 18년 부여계 고구려 유이민인 온조(溫祚)가 남하하여 한강 유역에 백제국(伯濟國)을 건국하고 점차 마한 제국을 병합하여 삼국 중 하나인 백제로 성장하였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475년 고구려의 남하로 수도를 공주로 옮길 때까지 500여 년간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강 유역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쟁패가 계속 이어졌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때 남하정책을 펴면서 한강 유역을 공략하여 석현성과 관미성 등 10여 성을 함락하고 이어 백제 서해안을 공격하여 58개 성을 취하였다. 이어 장수왕 때는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여 개로왕을 살해함으로써 백제를 한강 유역에서 완전히 몰아내면서 장악하였고, 이 일대에 북한산군(北漢山郡)을 설치하여 80여 년간 다스렸다.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체결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동맹을 파기하고 이 일대를 독차지하여 북한산주(北漢山州) 혹은 신주(新州)를 두어 관리하였다.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당나라와 직접적인 교섭을 통해 고구려·백제에 대항하였다. 그리하여 동아시아 세력이 고구려와 백제를 잇는 수직라인과 신라와 당을 연결하는 수평라인이 서로 대립하였고, 당나라 세력을 이용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통일을 달성한 신라는 전국을 9주로 나누면서 한강 유역을 한산주(漢山州) 또는 한주(漢州)로 개칭하였으며, 서초구 지역은 고구려 때 율목군(栗木郡)에 속했다가 통일신라 이후에는 율진현(栗津縣)이 되었다. 후삼국시대 서초 지역은 양길의 부하였던 궁예(弓裔)가 895년 한산주 관내의 10여 성을 복속시킴에 따라 궁예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왕건(王建)이 건국한 고려에 귀속되었다. 고려 건국 초기에는 각 지역에 호족세력들이 건재하였는데 한강 유역 일대에는 왕규(王規)의 세력이 가장 강대하였고, 강감찬(姜邯贊)의 후손인 금주강씨(衿州姜氏 혹은 衿川姜氏) 세력과 풍덕유씨(豊德柳氏) 세력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왕규는 경기도 광주 일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고, 금주강씨는 금천구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풍덕유씨 세력들은 한강 하류의 마포 서쪽지역 일대에 웅거하고 있었다.고려 건국 후 한주를 광주(廣州)로 바꾸고, 율진현은 과주(果州)로 바뀌었다.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함에 따라 광주목이 되었고, 995년에 고려의 행정구역을 5도로 나누면서 광주에는 절도사를 두어 그 군대를 봉국군(奉國軍)이라 이름 짓고 관내도(關內道)에 예속시켰다.

1018년(현종 9)에 다시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광주목이 되었고, 과주는 광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과주는 달리 부안(富安)·부림(富林)이라고도 불렸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경에서 수도를 한강 북쪽의 한양으로 옮기고 행정제도를 개편하였다. 1394년(태조 3)에 먼저 경기도를 좌·우도로, 양광도를 충청도로, 강릉교주도를 강원도로, 서해도를 풍해 도로 바꾸었는데, 이때 서초구는 경기좌도 과천군(果川郡)에 소속되었다. 1413년에는 과천현이 되어 현감(縣監)이 두어졌다. 이후 이 지역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동면(東面)·상북면(上北面) 지역과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彦州面) 지역에 해당되었다. 즉 서초동·양재동·원지동·우면동은 과천군 동면에, 잠원동·반포동·방배동은 과천군 상북면에, 염곡동·내곡동·신원동은 광주군 언주면에 각각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가 개편되어 전국이 23개 부 337개 군으로 바뀔 때 과천군은 인천부(仁川府)에, 광주군은 한성부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23부제가 폐지됨에 따라 광주군은 경기도 제1등 광주부로, 과천군은 경기도의 제4등 군으로 변경되었으며, 1906년에는 광주부가 광주군이 되었다.

1910년 조선의 국권을 강제 침탈한 일본은 조선의 전통적인 지방제도와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 행정 구역의 개편을 시도하여 1914년에 지방제도를 12부 317군에서 12부 220군으로 폐지 혹은 통합하였다. 이때 과천군 상북면과 동면 지역은 시흥군(始興郡) 신동면으로 개편되었으며, 나머지 지역은 광주군 언주면에 속하였다. 당시 시흥군 신동면의 하위 행정 구역인 7개 리는 서초리, 잠실리, 반포리, 양재리, 우면리, 신원리, 방배리 등이며, 언주면에는 염곡리, 내곡리, 신원리의 행정구역이 있었는데 이들 지명은 현재까지도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이 지역은 광복 이후에도 경기도 시흥군과 광주군에 분할, 소속되어 있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시로 편입되었다. 이때 서울시의 영역을 대규모로 확대하면서 10개 출장소를 설치하였는데 광주군 언주면 지역에는 성동구 언주출장소가, 시흥군 신동면 지역에는 영등포구 신동출장소가 설치되었다. 그리하여 탑곡동, 양재동, 남성동, 서초동, 잠포동의 5개 동사무소를 두어 행정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1975년 성동구 영동출장소와 천호 출장소 관할구역의 48개 동을 독립시켜 서초구의 모체인 강남구를 신설하였으며, 1980년 관악구 관할구역 가운데 방배동 일원과 동작동·사당동 일부가 강남구로 편입되었다. 1988년에는 강남구의 11개 법정동인 서초동, 잠원동, 반포동, 방배동, 도곡동, 양재동, 우면동, 내곡동, 원지동, 염곡동, 신원동을 분리하여 서초구를 신설하였다. 1989년에는 강남구 포이동 일부를 서초구 양재동에 편입시키고, 서초구 도곡동을 강남구에 편입시켜 서초구는 10개 법정동을 가지고 있다.서초구 지역이 현대 도시로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서울특별시 기본계획에서 부도심으로의 개발이 결정되어 1968년 영동 제1차 토지구획 정리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이다. 그 후 연차적인 토지구획 정리사업에 의해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4]

지역 특성[편집]

서초는 청계산과 우면산, 한강으로 둘러쌓여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구 전체 면적 중 60%가 녹색지역인 쾌적한 도시환경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도시기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대단위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밀집한 중산층 거주 지역이다. 산과 하천이 어우러진 늘 푸른 생활환경 속에 노인들이 타 지역보다 많이 살고 있다. 생활환경이 편리해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관내에 현재 4,300여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으며, 특히 프랑스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프랑스 타운은 '서초 안의 작은 프랑스'라 할 정도로 잘 가꾸어져 있다. 서초는 대법원이 들어서 있는 법조타운, 외교단지 등이 위치한 법조행정의 중심지역이자, 고속버스터미널, 남부시외버스터미널, 화물터미널 등이 자리잡은 물류 유통의 중심지다. 예술의 전당, 국립국악원, 대한민국예술원 등이 자리한 문화예술의 메카로 살기 좋은 도시다.[3]

교육 문화[편집]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는 24개교, 중학교는 15개교, 고등학교는 11개교, 특수학교 1개교, 대학교는 서울교육대학교와 카톨릭대학교가 있다. 이 지역의 종합적인 문화시설로는 1982년 한국 전통 문화 예술을 계승하여 창작활성화에 기여하고 국제 교류 증진과 국민문화복지 향상을 위해 건립한 예술의 전당이 있다. 우면산 기슭의 남부순환로변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은 대지 16만 6009㎡, 건물 12만 352㎡에 오페라하우스, 음악당, 미술관, 서예관, 디자인미술관, 야외극장 등이 있다. 중심이 되는 오페라하우스는 한국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선비정신을 본 뜬 갓 모양의 원형건물이고 음악당은 부채모양으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예술의전당은 인근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국악원과 함께 복합문화 예술센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일반 공연장으로는 서초동의 한전아트센터와 블루노트서울, 양재동의 서울교육문화회관대극장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양재시민의 숲 남쪽에 1988년 건립한 윤봉길 의사기념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의 규모로 유물전시실, 독립운동 사진전시실, 세미나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서초구민회관 지하에는 서초문화센터를 만들어 요리, 미용 등 지역민의 취미, 여가 활동 및 취업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으로는 서초동에 외교 자료 140여 점을 전시한 외교 박물관, 한국전력공사에서 운영하는 전기 박물관(電氣博物館), 서울교육대학교 박물관, 서예 박물관, 염곡동의 한국사진박물관, 방배동의 서울디자인박물관, 우면동의 분재박물관 등이 있다. 미술관은 예술의전당 서예관·디자인관·미술관에서 족자 사진 한국화, 서양화 등을 전시하고 있고, 우면동의 치우금속공예관에서는 금속 유리 도자기 등 11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국립중앙도서관이 반포동에 자리잡고 있다. 1988년 남산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국립 중앙도서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의 건물로 국보와 보물 등 귀중본을 포함하여 모두 391만여 점의 각종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모든 자료가 전산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그 외에 크고 작은 전시관으로는 우면동의 치우금속공예관에서는 금속 유리 도자기 등 110여 점을 전시하고 있고, 양재시민의 숲 남쪽에 1988년 건립한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유물전시실, 독립운동 사진전시실, 세미나장 등을 갖추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으로는 서초동에 외교자료 140여 점을 전시한 외교박물관, 한국전력공사에서 운영하는 전기박물관(電氣博物館), 서울교육대학교박물관, 서예박물관, 염곡동의 한국사진박물관, 방배동의 서울디자인박물관, 우면동의 분재박물관 등이 있다.

반포동 반포 유수지 내에 있는 반포종합운동장에는 축구장, 농구장, 배드민턴장, 테니스장, 풋살장,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트랙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시설의 사용은 접수를 받아 대여하고 있다.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에는 총 8만 8000평의 부지에 6만 6500평의 잔디와 12만 2800주의 수목, 1,280평의 꽃단지를 확보해서 시원스런 한강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시민공원이 5,4㎞의 길이로 되어 있다. 강남 제일의 번화가인 압구정동, 신사동, 잠원동이 인접하여 있으며, 축구장, 배구장, 농구장, 테니스장, 체력단련장, 육상경기 연습장, 자전거 도로, 야외수영장, 보트장, 윈드써핑장, 자연학습장, 만남의 광장, 낚시터 등이 갖추어져 있어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반포동에 있는 서초구민체육센터는 서울 YMCA가 서초구청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곳으로 수영장, 농구장, 헬스장, 축구장 등의 시설을 갖추어 놓고 사회체육활동은 물론 평생교육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각 동 별로 스포츠클럽이나 공원의 생활체육 시설이 많아 자유롭게 여가를 이용하여 체육활동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갖추어 놓고 있다.[4]

산업 교통[편집]

토지의 38.5%가 임야이고 경지는 전체 토지의 8.7%이다. 대지 27.3%, 학교용지 1.9%, 도로 13.2%로 전체 토지에서 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산업 인구 가운데 제조업 종사자는 7.7%, 건설업 11.3%, 도소매업이 21.5%, 숙박 및 음식업이 8.1%, 운수업 3%, 금융 및 보험업 4%, 부동산 및 임대업 4%, 사업서비스업 24%, 교육서비스업이 3.4% 등의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전체 사업체 수 가운데 1~4명의 종사자를 가지고 있는 사업체가 전체의 69%의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1,000명 이상의 사업체도 12개 업체에 달한다. 예로부터 한강을 끼고 있어 수운을 통해 이 지역으로의 접근이 가능하였고, 도성에서 한강 이남으로 이동할 때는 한강 나루와 동작 나루를 건너 판교·용인·충주나 수원 등지로 왕래하였다. 조선시대 도성에서 한강을 건너 남태령을 지나 수원으로 이동할 때 동작나루를 건너 이동하였다. 특히 정조는 동작 나루에 배다리를 놓고 3일간의 일정으로 수원 화성을 다녀오곤 하였다. 1970년 한남대교와 연결되는 경부고속도로가 서초동 일대를 관통하면서 급격한 발전을 도모하였고, 고속버스터미널과 남부화물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인적 물적 이동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남부순환도로가 서초구 남쪽지역을 관통하고 있고, 반포인터체인지·서초인터체인지·양재인터체인지 등 도로의 교차지점이 서초구와 연결되어 있어 도로교통이 매우 편리하다.또한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서초구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고, 지하철 7호선이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지하철 4호선은 서초구와 동작구·관악구 사이를 지나고 있다.

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신반포역·고속버스터미널역·사평역 4개의 역이 서초구 내를 지나고 있으며, 2011년에 광역철도노선인 신분당선이 개통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서초구의 남북으로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고, 반포대교나 동작대교·한남대교를 이용하여 강북의 도심지로 진입이 손쉽다. 특히 2층으로 되어 있는 반포대교는 서초지역의 중심을 강남·강북을 연결해 도심과의 시간을 단축시켰으며, 이 지역의 개발을 촉진하는 구실을 담당하였다. 반포동에 강남종합고속버스터미널이 설치됨에 따라 우리나라 최대의 교통처리를 담당하고 있다.도로의 크기에 따라 광로(廣路)·중로(中路)·소로(小路)를 모두 합하면 총연장은 347㎞에 달하며,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폭 40m 이상의 넓은 도로는 한강변의 올림픽대로와 남부순환도로가 서초구의 남쪽과 북쪽에서 동서를 가로지르며, 반포대교와 연결되는 반포로, 동작대교와 연결되는 동작대로가 서초구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중심도로이다. 이 외의 간선도로로 사당로, 강남대로, 사평로, 잠원로, 우면로, 신반포로, 방배로, 효령로, 헌릉로, 서초로, 사임당길 등의 도로가 있어 동서남북 사통팔달로 이어진다.

지하철 2호선은 서울 강남과 강북의 도심권 43개 역을 순환하는 노선으로 1978년 3월에 착공하여 1984년 5월 완공되었다. 서초구를 지나는 2호선 구간은 강남역, 교대역, 서초역, 방배역, 사당역이며 교대역에서 3호선을, 사당역에서 4호선을 갈아탈 수 있다. 지하철 3호선은 수서에서 대화까지 39개 역을 운행하는 전철로 1980년 착공, 부분적으로 개통을 시작하여 1985년 10월에 완전 개통되었으며, 양재역에서 수서까지의 연장구간은 1993년 10월에 개통되었다. 서초구를 지나는 3호선 구간은 신사역, 잠원역, 고속터미널역, 교대역, 남부터미널역, 양재역이 있으며 고속터미널역에서는 7호선을, 교대역에서는 2호선을 각각 갈아탈 수 있다. 지하철 4호선은 당고개역에서 오이도까지 48개 역을 운행하는 전철로 1980년 착공하여 1985년 개통되었으며, 서초구를 지나는 역은 동작역, 총신대 입구역, 사당역, 남태령역이며, 총신대역에서는 7호선을, 사당역에서는 2호선을 각각 갈아탈 수 있다.지하철 7호선은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에서 구로구 온수역까지 42개 역을 운행하는 전철로 1990년 착공하여 2000년 8월 완전히 개통되었으며, 이 중 서초구 지역은 2000년 7월에 공사가 완료되었다. 서초 지역을 지나는 7호선은 논현역, 반포역, 고속터미널역, 내방역, 총신대입구역이며, 고속터미널역에서는 3호선을, 총신대입구역에서는 4호선을 각각 갈아탈 수 있다.[4]

관광[편집]

이 지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예술의 전당, 양재 시민의 숲, 서울교육문화회관, 양재 문화 예술공원, 헌인릉, 우면산 일대,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 등이다. 예술의 전당은 종합예술공간으로서 각종 공연은 물론 전시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양재 시민의 숲과 서울교육문화회관, 그리고 양재 문화 예술공원은 양재동에 모두 몰려 있어 많은 시민이 모이는 곳이다. 양재 시민의 숲에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어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의 규모로 유물전시실, 독립운동 사진전시실, 세미나장 등을 갖추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공원은 총면적 7만 4385㎡의 부지에 많은 수목과 화초들이 잘 가꾸어져 있다. 특히 조각공원(彫刻公園), 야외공연장, 각종 기획전시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과 만남의 광장, 롤러스케이트장 등 청소년 놀이공간을 설치하여 수준 높은 지역 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하는 서초구의 대표적인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교육문화회관도 문화관과 스포츠센터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고, 잔디광장과 분수광장 등의 놀이 공간도 있다. 또한 우면산은 서초구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등산로를 따라 인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2004년에 개원한 우면산 자연생태공원은 우면산의 양호한 자연생태와 참나무 군락지를 활용하여 나비관찰원 등 관찰원 15개소, 자연해설판 14개소, 자연탐방로 1,320m, 야외강의장, 목교, 저수지 등의 시설을 만들어 놓아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도 압구정동, 신사동, 잠원동과 손쉽게 연결되며, 각종 체육시설과 볼거리를 만들어 놓고 있어 생활체육을 즐기는 동호인들과 일반 시민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1995년부터 서초구민의 화합과 서초구의 문화발전을 위해 학생, 교사, 학부모, 주민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종합학예발표회와 가족노래자랑, 작품전시회, 기념음악회 등을 주요 행사종목으로 하여 11월 초 서초구청의 주관하에 서초문화제를 개최한다.[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서초구〉, 《위키백과》
  2. 서초구〉, 《나무위키》
  3. 3.0 3.1 서초구〉, 《서초구청》
  4. 4.0 4.1 4.2 4.3 서초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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