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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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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
성읍민속마을
남문과마을전경
성읍마을 성곽
정의향교
성읍마을 팽나무
정의읍성 남문 앞 돌하르방. 제주특별자치도의 민속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
제주 성읍마을 고창환 고택
제주 성읍마을 고평오 고택.

성읍민속마을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민속마을이다.

1984년 6월 12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188호 성읍민속마을(城邑 民俗마을)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2월 28일 제주 성읍마을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편집]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위치한 성읍마을은 옛 제주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곳이다. 중산간 도로인 1163호선과 번영로가 마을 안을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로 방문하기 편리하며, 다른 민속촌들과 다르게 마을 내에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 태종 16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된 정의현청이 세종 5년 이곳으로 옮겨진 후, 500여년간 현청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정의현성 안에는 110호에 달하는 가옥이 있고 성 밖으로도 많은 가옥들이 존재한다. 수백 년 동안 도읍지였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있다.

정의향교, 일관헌 등이 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일헌관 주변의 느티나무 한 그루와 팽나무 세 그루는 천연기념물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메기술, 고소리술 등의 도 무형문화재와 국가 무형문화재인 제주 민요를 만나볼 수 있으며, 국가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일훈 가옥, 고평오 가옥, 이영숙 가옥들은 조선시대 도시 주거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 내에 마련되어 있는 전통 민박에서 머물며 문화유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의 삶을 느껴볼 수도 있다.

마을역사[편집]

성읍마을은 조선조 태종 10년(1410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읍치(고을 수령이 사무를 관장하던 관아가 있던 장소)가 조선조 세종 5년(1423년) 이곳으로 옮겨진 이래 500여 년간 정의현의 중심이 되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정의현은 태종 16년(1416년) 안무사 오식의 건의에 따라 성산읍 고성리에 정의성을 축성 하였었으나, 읍치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행정상 불편할 뿐만 아니라 태풍의 피해가 잦고 또한 우도가 가까이 있어 외적으로 부터의 침입이 빈번하였으므로 안무사 전관이 건의하여 세종 5년(1423년), 당시 진사리(현 표선면 성읍리)로 현치(현의 읍치)를 옮기게 되었다 한다.

따라서 일명 진사성이라고도 불리었던 정의성은 축성을 시작한지 5일 만인 세종 5년 정월 13일에 총 둘레 2,986척, 높이 13척의 규모로 완공되었는데 성에는 동서남으로 세 개의 문을 두었고 성안에는 두 곳의 우물이 있었다.

숙종 28년(1702년)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 의하면 정의현의 당시 민가 호수가 1,436호, 전답이 140결, 성수비군이 664명, 말 1,178필, 흑우 228수를 보유할 정도의 상당히 번성하였던 읍성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1423년 이후부터는 약 5세기 동안 정의현의 읍치로 번성하였던 성읍은 1915년 5월 1일부로 제주도제가 시행되면서 표선면 면소재지로 격하되었다. (지금의 표선면은 1935년 동중면이 개칭된 이름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읍마을은 그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어 문화재적 차원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주도 지정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고, 이어 1984년 6월 총 1,425필지 3,191,711㎡의 면적이 중요민속자료 188호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으며, 1987년 9월에는 보호구역이 935필지(790,747㎡)로 축소 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느티나무와 팽나무 군[편집]

느티나무와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며 낙엽이 지는 큰 키나무이다. 느티나무는 제주어로 '굴루기낭'이라고 하며 목재가 단단하고 아름다워서 예로부터 건축재·가구재로 많이 쓰였고, 팽나무는 제주어로 '폭낭'이라고 한다. 현재 느티나무는 키가 30m, 가슴높이의 둘레 5m에 이르러 나무의 나이를 약 1,000년 정도로 보고 있으며, 팽나무는 키가 24~3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2.4~4.5m에 이르고 있어 나무의 나이를 약 600년 정도로 보고 있다.

일관헌[편집]

일관헌(日觀軒)은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청사다. 표선면 성읍리에 위치한 일관헌은 "임금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바른 정사를 행한다"는 뜻으로 편액했다. 기록에는 1903년 목사 홍종우가 일관헌으로 고쳐 편액한 것으로 나와 있다. 1423년(세종 5) 안무사 정간이 현청(縣廳)을 성산읍 고성리에서 현재의 성읍리로 옮겼다. 이후 여러차례 증·개축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관헌은 1898년 군수 김희주가 중수한 후, 1975년에 옛 건물을 헐어 복원했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 2층 기단석 위에 축조됐다. 사방으로 창호문을 갖췄고, 측면을 현무암으로 마감했고 팔작지붕이 특징이다.

오메기술[편집]

제주도는 논이 매우 귀한 섬이라 쌀로 술을 빚지 않으며, 술의 재료는 밭곡식인 '조'다. 제주도는 근래까지도 청주나 소주를 좁쌀로 빚는 것이 정통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좁쌀로 술을 빚어 온 역사는 조의 경작만큼 오래되었다.

제주도에서는 좁쌀로 탁주와 청주 등을 빚어 왔는데 탁주를 두고 '오메기술'이라고 한다. 오메기술은 탁주를 만드는 술떡의 이름인 '오메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떡으로 만든 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오메기술을 만드는 데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보통 40되들이 밑술을 담는데 메좁쌀 12되와 누룩을 만들 밀과 보리 10되어가 든다. 술은 언제라도 빚을 수 있지만 24절기 중 상강(음력 10월 24일)이 지나서 새좁쌀로 빚어야 좋다. 성읍민속마을 오메기술은 기능보유자 김을정씨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초가장[편집]

제주도 초가는 한반도의 民家와는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가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한 전통 초가에 대한 설계와 보수는 한국 본토에 있는 전통초가의 설계 및 보수 업체가 이를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성읍민속마을을 원형보존하기 위한 노력으로 제주도 전통초가 기능 보유단체 및 기능인을 인정하여 사라지는 제주 원형의 초가 복원을 시행하는데 제주 성읍 중심의 원형복원에서 무형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이용안내[편집]

  • 관람시간 : 따로 없음
  • 소요시간 : 1시간
  • 입장료 : 없음
  • 반려견 : 동반입장 가능
  • 무료해설안내 : 2023년 1월말경 재개(매일 10:00, 13:00, 15:00) 문의 : 064-787-7914
체험가옥

옛 조상들이 살았던 정취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6가구를 운영하고 있다.

  • 막은골집 : 80,000원
  • 간올레집 : 70,000원
  • 퐁낭집 : 70,000원
  • 아득골집 : 70,000원
  • 남문집 : 60,000원
  • 서문집 : 50,000원
  • 동문집(한달살기, 29박) : 500,000원
  • 올레집(한달살기, 29박) : 600,000원

자세한 안내는 〈여기클릭

교통안내[편집]

성읍마을은 중산간 도로인 1163호선과 번영로(97호선)가 마을안을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제주시와 표선을 잇는 번영로의 노선은 제주시와 표선리를 기점으로 20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되며, 서귀포 노선은 중산간 노선으로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어 교통편은 매우 편리한 실정이다. 특히, 제주시와 서귀포까지는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지점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고 전통민속의 보고로 알려지면서 연간 300여만명의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자가용 이용시
  • 제주시 출발 (번영로 이용, 약 40분 소요) : 제주국제공항 → 회천교차로 → 대천교차로 → 성읍승마장 → 성읍마을
  • 서귀포시 출발 (일주도로 이용, 약 40분 소요) : 중앙로터리 → 남원 → 표선리 → 하천리방면으로 좌회전 (97번 번영로 이용) → 성읍초교 → 성읍마을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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