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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공업==
 
==조선시대 수공업==
조선 후기에는 상품 화폐 경제가 진전되면서 시장 판매를 위한 수공업 제품의 생산이 활발해졌다. 이 시기는 도시의 인구가 급증하여 제품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고 대동법의 실시로 관수품의 수요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간 수공업자인 사장(私匠)들은 장인세만 부담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생산 활동에 종사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제품은 품질과 가격 면에서 관영 수공업장에서 만든 제품에 비해 경쟁력도 높았다. 민간 수공업자의 작업장은 흔히 점(店)으로 불리어 철기 수공업체는 철점, 사기 수공업체는 사기점이라 하였다. 민간 수공업자들은 대체로 작업장과 자본의 규모가 소규모여서 원료의 구입과 제품의 처분에서 상업 자본의 지배를 받았다. 대부분 공인이나 상인에게 주문을 받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금과 원료를 미리 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선대제가 성행하였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수공업자 가운데서도 독자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직접 판매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농촌의 수공업은 지금까지 자급자족을 위한 부업의 형태로 제조하였으나 점차 소득을 올리기 위하여 상품으로 생산하는 경우가 늘었고 더 나아가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농가도 나타났다. 농촌에서는 주로 옷감과 그릇 종류가 생산되었다.<ref>〈[http://contents.history.go.kr/mobile/ta/view.do?levelId=ta_h71_0050_0040_0020_0030 민영수공업의 발달]〉, 《우리역사넷》</ref>
 
  
 
==근대 이후 수공업==
 
==근대 이후 수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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