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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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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
대구근대역사관
웅진백제역사관
영종역사관
소래역사관
발해역사관
단종역사관
지리산역사관
몽촌역사관
홍주성역사관(홍성)
안양역사관
포스코역사관
북촌한옥역사관
인천도시역사관
목포 근대역사관
부산근대역사관

역사관(歷史館, History Gallery)은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 자연 현상이 변하여 온 자취, 기록을 전시한 전시관이다.

한국 주요 역사관[편집]

서대문형무소역사관[편집]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특수박물관.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와 선열들의 자주독립정신을 배울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1995년 공사를 시작하여 1998년 11월 개관하였다.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있으며 3·1운동 직후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어 숨을 거둔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옥사 7개동, 역사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관사와 고문실로 쓰이던 역사전시관에는 영상자료실,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재현한 매직비전, 형무소역사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벽관·독방 등의 옥중생활실 등이 있다. 이밖에 사형장 옆에 시신을 몰래 버리기 위해 만든 시구문이 복원되어 있다.

대구근대역사관[편집]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위치한 대구근대역사관은 1932년 건립된 옛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설립한 서양풍의 건물로 일제강점기때 조선에 대한 금융지배와 식민지 수탈의 상징으로 악명이 높았던 건물이 좋은 일을 하는 곳으로 지난 1월 24일 개관했다. 지금은 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역사관은 규모(연면적 1971㎡)이며 1층 상설전시실과 2층 기획전시실, 체험학습실, 문화강좌실 등을 갖추고 있다. 역사관은 19세기 후반~20세기초 대구의 생활, 풍습, 교육, 문화 등을 모형과 전시물, 영상 등으로 실감나게 전해준다.

웅진백제역사관[편집]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역사박물관이다. 2013년에 개관한 역사박물관으로 백제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공간으로 꾸며진 곳이다. 백제의 웅진천도에서부터 백제의 문화를 첨단기술을 통한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다. 웅진백제역사관은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1~2전시실은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여 번성하는 백제의 모습과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3전시실에서는 백제가 활발하게 교류했던 중국와 일본 등 해상교통로를 소개하고 있으며 특히 무령왕과 무령왕릉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하고 있다.

강화 역사관[편집]

강화 역사관은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에 자리한다. 강화도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는 역사관으로 1988년 개관했지만 현재는 폐관돼 '갑곶돈대'로 명칭이 변경됐다. 4개의 전시실을 갖췄던 이곳은 보물 제 11호인 <강화동종>을 비롯해 1849년 조선 헌종 때의 <왕실행렬도>,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의 토기 및 청동검 등 169점의 유물을 소장했다. 하지만 2010년 강화읍에 강화 역사 박물관이 건립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강화 역사관은 폐관되면서 갑곶돈대로 이름이 바뀌었고, 유물들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679년에 만들어진 갑곶돈대는 몽고와의 줄기찬 항전과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수도의 관문인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사적 제306호다.

수몰역사관[편집]

수몰역사관은 제천 청풍면에 있는 전시시설이다. 충주댐 건설배경과 그로 인한 수몰지역의 역사 자료를 보존하고 당시의 주민들 생활상을 담은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충주, 제천, 단양의 11개면 101개 리,동, 7,105가구 38,663명의 인구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총수몰면적 약 50%가 제천지역을 차지한다. 댐이 생기면서 고향을 떠나기 전, 강가에 나와서 안타까운 마을잔치를 벌이는 한수면 주민들의 모습, 청풍면 읍리의 유일한 의료지원시설인 근춘약방, 수동 펌프 등 옛 추억과 향수가 묻어나는 다양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옛 청풍면의 삶을 담고 있는 사진 속에서 어쩔 수없이 고향을 떠나야했던 사람들의 애환이 잘 묻어난다.

영종역사관[편집]

영종역사관은 긴 세월동안 유구한 역사와 문화, 세상과 통하는 중간거점으로 그 가치를 재조명 받고 있는 영종도를 알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오랜 삶의 터전으로서의 영종도와 각종개발로 인하여 급격하게 변화된 근현대 영종도의 생활문화를 담고 있는 영종도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다.

소래역사관[편집]

2012년 개관한 소래역사관은 급속한 신도시 개발과 도시화로 사라져가는 소래의 역사와 문화 아름다운 옛 모습을 느껴보고자 건립된 인천광역시 남동구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다. 소래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소래갯벌, 소래포구, 소래염전, 수인선 협궤열차 등 4개의 재미있는 전시테마를 구성하였고, BF(Barrier Free: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인증을 통한 시설관리로 누구라도 쉽게 역사관을 방문하여 불편없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발해역사관[편집]

속초시 노학동 시립박물관 옆에 있는 발해역사관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동성국' 발해를 재조명하는 곳이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2층 규모로 전시실과 야외 조경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발해 문화를 진흥하고 발해의 역사를 통해 민족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드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지상 1층에는 발해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시청각 자료와 함께 2006년에서 2007년 방영된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 사용한 각종 소품과 의상 등을 전시, 소개하고 있다. 지하 1층은 1980년 지린성 허륭현에서 발견된 발해 제3대 문왕의 넷째 딸인 정효공주의 고분을 소개하고 고분에서 확인되는 인물상과 복식 등을 재현했다. 발해인의 복색을 입어보고 각종 발해문양을 스탬프로 찍어 볼 수 있는 발해체험실도 있어 흥미롭다.

조기역사관[편집]

당섬선착장에서 연육교를 지나 왼편으로 올라가다보면 산 정상에 궁궐 같은 건물과 함께 조기배가 둥둥 떠 있다. 조기역사관은 선착장 근처에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조기 잡는 배를 왜 바다 근처가 아니라 산꼭대기에다 만들어 놓았을까? 조기역사관에 들어가 전시물을 살펴보면 연평도에 조기가 밀려오던 시절의 영화(榮華)를 알게 된다.

조기는 연평도에 황금시대를 열어 주었다. 1957년에 연평도 전경을 찍은 사진을 보면 진짜 이곳이 연평도인가 의심할 정도로 번화하다. 조기를 잡는 기간은 4월 중순부터 6월 상순까지 약 50일이었는데 전국의 어선들이 연평도로 모여 3천여 척의 배에 선원 수만도 수 만 명이 오고 갔으며 연평도에서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니니 연평도에 가면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조기파시는 일제 말기 최고 절정을 이루어 큰돈이 몰렸고 돈을 따라 술집과 잡화점이 즐비했다.

1950년대까지 흥청거리던 연평파시는 태풍 사라호가 지나간 이후 조기가 급격히 사라지면서 막을 내렸고 지금은 연평 파출소 옆에서 시작되는 조기파시 탐방로를 걸으며 지나간 과거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전시관 2층으로 올라가면 사방이 툭 트인 누마루 형태의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는 1 · 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던 장소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해질 무렵이면 멀리 북녘 땅을 바라보며 바다로 사라지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일몰 포인트이다.

조기역사관 뒤편으로 가면 추락주의라고 쓰인 푯말 왼쪽으로 빠삐용절벽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이 ‘이 절벽은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뛰어내린 절벽과 닮았다’고 해서 자연스레 빠삐용절벽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빠삐용절벽 아래로 푸른 바다와 하얀 백사장이 어우러져 있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바다에 빠질 것 같은 아찔함이 있다.

연평도 등대공원은 평화공원 맞은편에 있다. 해방 전후부터 1968년까지 황금의 조기파시를 이루었던 연평도 앞바다에서, 전국에서 모여든 어선의 길잡이로 1960년 3월 첫 점등을 시작으로 찬란한 황금어장을 굽어 비추어 왔다. 1974년 7월 국가안보의 목적으로 일시 소등하게 되었고 1987년 4월 등대로서의 기능이 없어지면서 이제는 조용히 지난 과거를 기억하며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단종역사관[편집]

단종역사관은 단종문화관광벨트화 계획의 핵심사업의 하나로 추진돼 영월읍 장릉에 설립되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端宗 재위 1452∼1455)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재조명하기 위해 건립한 전시관으로, 단종의 묘인 장릉(莊陵, 사적 제196호) 경내에 있다.

460평 부지에 총 18억 원을 들여 완공된 단종역사관은 건축총면적 535㎡의 지하 1층·지상 1층 규모에 영상실과 자료전시실, 학습실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단종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재조명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리산역사관[편집]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로 향하면 어느 시점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권역에 들어서게 된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벽소령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바로 그 곳에 지리산역사관이 있다. 지리산역사관은 비교적 단출하게 꾸며져 있다. 1층짜리 건물 입구에 지리산 공비 토벌 루트가 안내도로 자세하게 그려져 있고, 안에는 빨치산의 역사와 토벌 과정이 전시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안내도 한쪽의 글은 지리산이 우리 민족의 기상과 혼, 애환이 담긴 명산이지만 해방 이후 현대사의 아픔도 간직하고 있음을 밝히며, 빨치산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토벌대와의 투쟁 현장을 함께 찾자고 권한다.

한국전쟁이 끝났음에도 투항하지 않고 토벌대에 의해 최후를 맞은 빨치산. 지리산역사관은 이들의 처음과 끝을 당시 사용됐던 총기류 등을 전시하며 설명한다.

한편, 역사관은 지리산을 주 무대로 살아가던 화전민들의 생활상과 하동 특산물을 전시하고 있다. 눈 위를 걷기 위해 신던 설피, 나무절구, 나무김칫독 등 쉽게 접하기 힘든 당시 생활 도구들이 눈길을 끈다.

몽촌역사관[편집]

올림픽공원 북2문에서 몽촌토성 쪽으로 조금 걸어 올라간 위치에 자리한 몽촌역사관은 백제문화의 대표적인 유물과 유적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몽촌토성은 한성시대 백제의 주요 거성 중 하나로 지난 83년부터 89년까지 6차례의 정밀조사를 거쳐 움집터와 저장구덩이,토기 등 어마어마한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이때 모습을 드러낸 조상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곳이 바로 몽촌역사관이다. 발을 들여놓으면 암사동과 명일동, 역삼동 등 한강유역을 주름잡았던 한성백제시대의 움집자리와 고분모형이 눈길을 끄는데 어디선가 풍겨나오는 듯한 백제의 향기를 따라 저절로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몽촌토성 유물관. 중앙에는 몽촌토성 모형이 떡하니 버티고 있고 빙 둘러 갖가지 토기와 숫돌, 그물추 등이 당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비록 모형이기는 하지만 공주와 부여에서 출토된 돌짐승과 각종 장신구, 금동신발 그리고 미륵반가사유상,칠지도 등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유물까지 샅샅이 살펴볼 수 있다.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백제시대 옛 주거지를 그대로 보존해 놓은 백제집자리전시관은 건물 외관부터 움집터를 본 떠 만들어 입구에 들어서면 갑자기 선사시대로 돌아간 느낌을 갖게된다. 백제 유적지인 몽촌토성과 석촌고분, 그리고 여기에서 나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몽촌 역사관은 한강유역을 포함한 백제문화의 대표적인 유적 및 유물을 한곳에 모아 전시함으로써 서울이 2천년 고도(古都)의 역사적 중심지였음을 조명하고자 1992.1월 개관하였다. 이 역사관에는 옛 주거지, 고분군, 몽촌토성의 유적모형과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몽촌토성은 초기 백제의 도성인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유적으로 이곳에 역사관이 위치함은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서의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홍주성역사관[편집]

홍주성역사관은 2011년 5월 6일에 개관, 홍성 홍주읍성(사적 231호)내 위치하고 있으며 전면적 7,199.17㎡, 연면적 1,669㎡ 로 구성되어 있다. 홍성과 충남 내포지역의 특색있는 역사와 문화, 관련 유적 및 유물을 소재로 전시를 하고 있다. 박물관이 홍주읍성 내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 옛 홍주목 관련 흔적들이 남아 있어 전시와 연계한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안양역사관[편집]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갈산동에 있는 역사박물관. 평촌아트홀 내에 있다. 2004년 6월 30일 착공하여 같은 해 9월 22일 개관하였다. 안양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선사시대 고고유물부터 현대의 생활용품까지 총 630여 점의 자료를 소장, 전시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은 향토사료실1·2, 안양영화사료실, 전통공예실,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장고와 자료실, 영상실, 유물관리실 등을 갖추고 있다.

향토사료실1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연대표로 보는 안양 고고유물, 불교문화와 불교유물, 전통가옥, 항일애국지사와 국채보상운동 관련 자료, 민속생활용구류, 도자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향토사료실2에서는 안양의 자연환경을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영화사료실에서는 한국영화의 변천사와 안양영화촬영소, 신필름예술센터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전통공예실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생칠장의 옻칠공예와 악기장의 북공예품 등 다양한 전통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안양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체험하는 현장학습도 운영한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학산역사관[편집]

문학산역사관은 미추홀 2,000여 년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문학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문학산 문화유산의 보존과 지역 정체성을 발현하기 위해 관할 군부대의 승인을 받아 군사시설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했다. 문학산 역사관은 문학산의 가치와 문학산성의 현황에 대한 축소 디오라마와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제1전시실,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학산의 시대별 역사와 문화유산을 주제별로 살펴볼 수 있는 제2전시실, 인천 향토사 선구자들이 남긴 옛 사진들과 근∙현대 문학산의 변모를 살필 수 있는 지도 등이 전시된 열린 역사길로 구성되어 있다.

포스코역사관[편집]

1968년 포항제철공업소의 건설은 대한민국의 초고속 성장을 이끌어나가고 세계 철강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포스코홍보관을 찾아 제철소의 역사를 살펴보자. 산뜻한 디자인으로 구성된 홍보관 내부는 세계 최대 규모와 최고의 시설에서 생산되는 철강의 모습과 더욱 약진하는 미래를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공장 건설 초기 지휘본부로 사용되었던 판잣집에 가까운 건물로 원형 그대로 이전하여 설치해 놓았다.

모래바람 가득한 영일만 앞바다를 메우고 기둥을 세웠던 당시 건설 현장의 모습이 마치 전장과도 같아 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전설적인 전차부대 지휘관의 이름을 따 건물의 이름은 롬멜하우스로 지었다. 작고 초라한 이곳에서 지금의 제철공장이 탄생하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외에도 제철기기의 모형과 건설 주역들의 밀랍인형 등 생생한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사전예약을 통해 안내직원들의 해설과 함께 둘러보는 것이 좋다.

국가 기간 산업시설로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는 제철소 시설은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다. 사전에 준비된 동선을 따라 제철소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타오르는 붉은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철강의 모습을 살펴보려면 주말에 진행되는 견학 신청을 하는 것이 좋다. 방문일자 최소 3일 전까지 신청이 요하다.

북촌한옥역사관[편집]

북촌한옥역사관은 종로구 계동 4길 3에 있으며, 한옥을 개조한 공간에서 북촌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다. 1920~1930년대 '조선집'이라 불린 소형 한옥과 이를 공급하면서 당시 '건축왕'이라 불렸던 기농 정세권 선생을 조명한다.

부천 향토문화관[편집]

부천의 향토자료를 모은 역사관으로 화유옹주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과 고강동에서 나온 청동기 유물을 볼 수 있다.

부천 향토문화관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도당공원에 있다. 부천의 향토 역사자료를 수집 정리해 2000년 5월 18일에 개관했다. 이곳의 전시실은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전시실에는 선사시대 유물, 고강동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 영조의 10번째 딸 화유옹주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제2전시실은 부천의 역사 연표, 문화유적 분포지도, 민속 의례, 인물사, 무형문화재 등을 전시하고 있다. 소장 물품은 91점이다. 민속 의례는 중동의 장말도당굿, 농기고두마리, 원미동 조마루 도당굿 등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또한 부천의 무형문화재로는 줄타기 기능보유자 김영철(제58호), 경기도 당굿 기능보유자 조한춘(제98호) 등이 있다.

인천도시역사관[편집]

인천은 1883년 개항 후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 시작하여 13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변화와 확장을 거쳐 지금은 전국 8대 광역시 중 가장 넓은 면적에 300만 인구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도시로 성장해 왔다.

인천도시역사관은 도시 인천의 역사와 변화과정을 다양한 실물자료와 모형을 통해 시민 여러분께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인천’에 대한 역사와 문화 콘텐츠를 시민들이 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목포 근대역사관[편집]

유달산 자락에는 일제 때 지어진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이 건물은 원래 동양척식회사 목포 지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조선의 토지를 근대적으로 측량한다는 명목 하에 토지를 탈취해 간 곳이 바로 동양척식회사로 일제 수탈의 기지라 하겠다. 전국 9개의 지점 건물 중 목포의 이곳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이 건물 내부를 단장하여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역사적 현장이 보존되어 근대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좋은 경우이다.

개항을 시작으로 일제 때 물자 반출의 기지였던 목포의 역사를 알게 하는 많은 사진 자료를 전시하고 있어 글로 된 설명보다 더욱 실감나게 와 닿는다. 당시에 쓰던 금고도 건물 내부에 그대로 남아 있어 볼 수 있는데, 해방 후에는 이 건물이 경찰서로도 사용되면서 금고가 유치장으로도 이용된 적이 있다고 한다.

부산근대역사관[편집]

부산근대역사관은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지어진 건물로 부산지역에 현존하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서양식 건물이다. 처음에는 식민지 수탈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후인 1949년부터는 미국 해외공보처 부산문화원이 되었다. 이후 부산시민들의 끊임없는 반환요구로 미문화원이 철수하고, 1999년 대한민국정부로 반환된 것을 그 해 6월 부산시가 인수하였다. 이 건물이 침략의 상징이었던 만큼 부산시는 시민들에게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근대역사관으로 조성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부산의 중심지 대청동에 동양척식회사 부산지점을 건립하고 금융기관, 병원, 양조장, 가구점, 일본식 과자점, 세탁소 등 이주해 온 일본인들을 위한 근대시설을 건립 했던 모습들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은 전시관이 있고, 일본 거류관련 사진과 자료가 많이 전시되어 있다. 부산 개항기 역사도 잘 설명 되어있고, 현재까지 부산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왔는지 볼 수 있다. 부산근대역사관을 관람 후 부산 전역을 볼 수 있는 용두산공원과 부산타워를 방문하거나, 부산의 삶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국제시장이나 부평깡통시장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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