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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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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구청

연수구(延壽區)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남부에 위치한 구이다. 동쪽은 남동구, 북쪽은 미추홀구에 접하고, 서쪽과 남쪽은 황해에 면한다. 북쪽에 문학산이 솟아 있고, 동쪽 경계를 따라 승기 천이 남류 하여 황해로 유입된다.[1]

개요[편집]

인천광역시의 남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6˚ 34' 58.7"~126˚ 42' 23.9",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20' 30.4"~37˚ 26' 21.9"에 위치한다. 구의 동쪽과 북쭉 끝은 선학동, 서쪽과 남쪽 끝은 송도동이며, 동서 간 거리는 14.04㎞, 남북 간 거리는 15.33㎞, 바다에 면한 해안선 길이는 39.82㎞이다. 면적은 54.95㎢로 인천시 전체 면적의 5.2%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6번째에 해당한다. 행정구역은 15개 행정동(6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송도 3동이 전체 면적의 19.5%를 차지하여 가장 크고 동춘3 동이 전체 면적의 1.3%로 가장 작다. 인구는 2018년을 기준하여 35만 7362명으로 인천시 전체 인구의 11.8%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5번째로 많다.

구를 상징하는 꽃은 진달래, 나무는 느티나무, 새는 학이다. 구를 상징하는 캐릭터는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인 구조(區鳥) 학을 모티브로 하여 세계로 뻗어 가는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표현하고, 청초한 모습과 고고한 자태를 통하여 살기 좋고 활기찬 연수구의 이미지를 표현한 '구기'이다. 구청 소재지는 동춘동이다.

인천광역시 부촌의 상징이자 중부지방해양경찰청 학원가와 송도 학군으로 대표되는 높은 교육 열의 상징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2012년 발매된 강남 스타일(Gangnam Style) 곡에 등장하면서 인기로 많이 알려졌다. 원래 이 지역은 농촌 및 갯벌 지대였다.

연수구는 구 송도(옥련-청학, 유원지와 구도심), 연수지구(연수-동춘, 90년대 신도시), 송도 국제도시가 또렷한 경계를 두고 한데 모여 하나의 구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각 지역 간의 경관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연수구청과 BYC를 먹고 있는 연수지구를 중심으로 한 권역이 연수구에서 가장 중심지이다. 구 송도-연수지구-송도국제도시 순으로 개발되었다.

인천시 내에서 생활 수준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연수구가 조성되기 시작한 90년대 초반부터 형성된 인천의 강남 이미지가 2000년대 중반에 송도 국제도시가 개발되면서 그 이미지가 굳혀졌다. 그래서 선거철 때 언론에서 소개되는 연수구의 별명은 인천의 강남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부자 동네 하면 두말할 것 없이 강남이기 때문에 빗대어 표현한 것. 중산층과 상류 층이 두껍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도시 계획부터 도로나 교통 정비도 잘 되어 있다. 송도국제도시의 활성화로 인해 외국인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2][3]

자연환경[편집]

지형은 남구와의 경계를 이루는 문학산 줄기가 구의 북쪽을 동서로 달리고, 그 한 줄기인 청량산이 남쪽으로 이어져 이 지역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형상으로 주변 일대에는 선학, 청학, 학익동 등 관련 지명이 다수 분포한다.

동쪽에는 승기 천이 남동구와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데, 이곳은 과거에 큰 갯골이어서 주안 지역까지 바닷물이 들어갔다. 그러나 현재는 주변 일대가 모두 간척되어 연수구 쪽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청량산의 서쪽 과거 송도 유원지 일대도 대부분 간척에 의해 형성된 땅이다. 본래 이 지역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에 벼, 보리, 콩 등 곡물이 많이 재배되던 곳이었으며, 청량산 서쪽 옥련·동춘동의 해안가는 수산물이 많이 생산되었고,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패류의 보고였다. 현재는 대부분이 아파트 단지로 변했으며, 해안지역은 간척 사업으로 인해 간척지가 계속 확장되어 송도 신도시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오늘날 토지이용은 농경지가 12.9%, 대지 및 공장용지가 26.1%, 임야가 25.8%, 교통용지가 13.5%를 차지한다.

주요 산으로는 선학동과 남구 문학동 사이에 있는 문학산(213m), 동춘동과 청학동에 걸쳐있는 학익 산이 있다. 연평균 기온은 12.9℃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1,307.5mm이다.

역사[편집]

연수구는 문학산의 남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황해와 맞닿아 있다. 문학산은 비류(沸流) 백제의 전설이 말해 주듯이 인천의 기원과 관련된 산이다. 이 산을 중심으로 바닷가에까지 이르는 지금의 연수구 일대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문학산 주변인 청학동 인근에서는 돌도끼와 돌칼, 돌 화살촉 같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었고, 특히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도 나왔다. 또 문학산 남쪽의 연수동과 청학동의 경계 지역에서는 조개무지도 발견되고 있어, 신석기시대 이 지역에는 상당히 발달된 마을공동체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연수구는 백제가 한강 하류까지 세력을 크게 확장하고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외교정책을 추진하던 시기에, 두 나라 사이의 바닷길을 연결해 주던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그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견이 있지만, 지금 공원으로 복원되어 있는 능허대(凌虛臺) 일대가 바로 당시 백제의 사신들이 중국으로 떠나던 곳이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곳의 나루터와 백사장은 우리말로 한나루, 한자로는 대진(大津) 또는 한진(漢津)이라 불리었다. 백제가 중국과 교류를 시작한 것은 372년(근초고왕 27)으로 그 뒤 백제가 멸망할 때가지 계속되었는데, 이중 능허대를 통해 사신을 파견한 기간은 근초고왕 때부터 개로왕 때까지 100여 년 동안이다. 사신들은 이곳까지 오기 위해 수도인 위례성을 떠나 지금의 남동구 만수동 일대의 별리현(別離峴)을 넘은 뒤, 문학산의 사모지고개(현 삼호현)를 거쳐 능허대로 왔다고 한다.

인천 지방의 대표적인 호족인 인천 이씨는 대대로 문학산 주변인 지금의 연수동, 선학동 주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이 집안의 선조는 원래 가야국 수로왕의 둘째 아들이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이전까지는 어머니의 성을 따서 대대로 허(許) 씨 성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이 같은 이야기보다 고려 인종 때 문정공 이지저(李之氐)가 지은 「이공수묘지명(李公壽墓誌銘)」 등의 기록에 따라 이 집안의 선조를 황해도 신천(信川) 지역에 살던 기평(奇平)이라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그가 8세기 전기에 소성(邵城: 지금의 인천) 태수로 부임한 뒤부터 연수구 지역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천이씨가 가장 흥성한 것은 고려 문종 때부터 예종대를 거쳐 인종대에 이르는 80여 년 간이었다. 이들 7대의 임금을 거치는 동안 인천은 왕가의 외향이거나 왕비의 내향이었기 때문에 당시 ‘7대 어향’(七代御鄕)으로도 불리었다.

조선 시대의 인천은 처음에 인주(仁州)라는 지명이었으며, 1413년(태종 13) 지금의 이름인 인천으로 개칭되었다. 1460년(세조 6)에는 인천도호부로 승격되는데 도호부 청사가 남구 관교동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연수구 지역에서는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 다만 조선시대 초기부터 지금의 연수구 곳곳에 많은 집안들이 이주해 와 자리를 잡고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중 가장 큰 집안이 동춘동 일대에 자리 잡은 연일정씨(延日鄭氏)였다. 이 가문이 인천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인 명종, 선조대에 효릉(孝陵) 참봉을 지낸 정제(鄭濟)라는 인물이 이곳에 내려온 뒤부터라고 한다. 그 뒤 이 가문에서는 영조 때 우의정을 지낸 정우량(鄭羽良)과 그의 동생 정휘량(鄭翬良)을 비롯해 많은 판서와 정승들이 나오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이 밖에도 동춘동의 곡부공씨, 청학동의 경주최씨, 반남박씨, 진주김씨, 옥련동의 전주이씨와 덕수이씨, 선학동의 부평이씨 등이 종족촌락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에 인천도호부가 관할한 지역은 모두 10개 면이었는데, 지금의 연수구 지역은 대부분 먼우금면에 속했다. 지금의 청학동, 옥련동, 동춘동, 연수동 등이 모두 먼우금면에 속해 있었고, 문학산 동쪽인 선학동 지역만 도호부에서 직접 관할하는 부내면에 들어갔다. 당시의 먼우금면은 옹암리, 먹암리, 망해리, 동막리, 척전리, 한진리, 함박리, 대아 도리, 소아 도리, 야동, 옥동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중 동막이나 척전, 함박 등은 지금의 땅이름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먼우금은 먼너금, 먼오금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원우금(遠又今) 또는 원우이(遠又爾)라 적는다.

조선왕조가 을사 보호조약 체결로 국권의 대부분을 잃은 뒤 1906년 인천 지역에서도 일본인들에 의한 행정조직 개편 작업이 벌어졌다. 이때 먼우금면은 서면(西面)으로 개칭되었는데, 이곳이 인천 구읍(舊邑)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에는 전국적인 지방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지금의 자유공원 일대(개항장 일대)만이 인천부로 남고 나머지 인천과 부평 지역은 새로 만든 부천군에 편입되었다. 이때 연수구 전 지역은 부천군 문학면 관할로 들어갔는데, 당시 이곳은 옥련리, 도장리, 연수리, 청학리, 동춘리로 나뉘어져 있었다.

1936년 10월에는 일제가 인천부의 행정구역을 확장하며 문학면의 일부였던 옥련면을 인천부에 편입시키고 이름도 송도정(松都町)이라는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송도는 일본인들이 즐겨 쓰는 이름으로,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만도 국내 50여 곳에 동일한 지명이 확인된다. 이 무렵 일본인들은 이곳 옥련동 해변에 송도유원지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한 평에 5전 했던 이 일대의 지가가 단숨에 5~10원까지 오르는 등 투기가 크게 유행하였다고 한다. 이어 1937년 수원~인천 간을 운행하는 수인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유원지를 오가는 정거장의 이름도 송도역이라고 붙여졌다. 이 송도유원지와 송도역이라는 지명 때문에 지금까지 옥련동 일대는 송도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고 있다.

1943년에 인천부 문학 출장소가 새로 설치되었으며 연수구는 문학 출장소의 관할로 들어갔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는 송도정을 옥련동으로 바꾸는 등 그동안 일본식으로 되어 있던 마을 이름들을 상당 부분 우리말로 고쳤기 때문에 오늘날의 지명을 갖게 되었다. 1968년에는 인천시의 구제(區制) 실시로 연수구 지역은 인천시 남구에 속하였고, 1980년대 후반까지는 커다란 변화가 없이 한적한 시골의 풍경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1987년 정부가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주택 대량 보급과 계획적인 도시 개발을 내세우며 연수동, 청학동, 동춘동, 선학동 일대의 185만 6000여 평에 택지 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연수구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16만 6000명의 인구를 수용한다는 목표로 토지개발공사가 시행한 이 연수 택지 개발 지구 사업에 따라 조용한 농촌 지역이 불과 몇 년 만에 대단위 아파트촌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인구도 빠르게 증가하여 택지 개발사업이 마무리된 1994년에는 이곳을 포함한 남구의 인구가 58만 명에 육박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해 7월 남구 조례에 따라 연수동은 연수 1동, 연수 2동, 청학동 등 3개 동으로 나뉘어졌다. 하지만 몇 개 동의 분동(分洞) 정도로는 급속히 증가하는 인구와 그에 따른 행정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연수구는 1995년 3월 1일로 남구에서 분구(分區) 되었다. 분구 당시 연수구는 옥련동, 선학동, 연수동, 청학동, 동춘동 등 5개의 법정동과 옥련 1동, 선학동, 연수 1동, 연수 2동, 연수 3동, 청학동, 동촌 1동, 동춘 2동 등 8개의 행정동을 관할 구역으로 하고 있었다. 그 뒤로도 인구는 계속 늘어나 분구 이듬해인 1996년 1월 구 조례에 따라 동춘 2동이 동춘 2동과 청량동으로 나누어졌으며, 2003년에는 옥련동이 옥련 1동과 옥련 2동으로 나누어졌다. 2007년 1월 1일 동춘 2동에서 송도동이 분리됨에 따라 오늘날 연수구는 모두 11개의 행정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2021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5행정동(송도 1~5동·동 춘1~3동·옥련 1~2동·청학동·연수 1~3동·선학동) 6개 법정동(송도동·동춘동·옥련동·청학동·연수동·선학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4]

산업[편집]

산업구조의 비중은 서비스업을 기반으로 하는 3차 산업이 가장 크다. 지역 내 총생산(GRDP)은 2018년을 기준하여 11조 3007억 원으로 인천시 전체 GRDP의 12.7%를 차지하여 서구·남동구·중구 다음으로 비중이 크다. 경제 활동 별 부가가치의 비중은 제조업(1조 8531억 원)이 17.8%로 가장 크고, 이 밖에 사업서비스업(15.7%), 도소매업(15.6%), 건설업(14.9%), 부동산업(9.9%) 등의 순이다. 사업서비스업과 도소매업, 건설업의 부가가치는 10개 군·구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크다. 전통시장은 옥련동의 옥련시장과 송도역전시장이 상설시장으로 운영된다.

2018년을 기준하여 사업체 수는 1만 9191개로 시 전체 사업체의 9.5%, 사업체 종사자는 11만 5358명으로 시 전체 종사자의 10.8%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5번째로 비중이 크다. 사업체별로는 도소매 업체(4728개)가 24.6%로 가장 많고, 이 밖에 숙박·음식점 업체(19.4%), 운수업체(10.5%), 협회·단체 수리 및 기타 서비스 업체(10.0%), 교육서비스 업체(7.1%), 부동산업·임대업체(5.8%), 제조업체(4.7%) 등의 순이다. 지역별로는 전체 사업체의 절반가량이 송도 1~5동과 옥련 1동에 분포한다. 제조업은 기타 기계·장비를 비롯하여 식료품, 전기 장비,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의료·정밀·광학기기 및 시계 부문의 비중이 크다.

송도동 일원에 바이오산업과 교육·연구 클러스터, 문화·관광 및 MICE(Meeting · Incentive Travel · Convention · Exhibition) 산업을 아우르는 첨단 지식서비스산업의 거점으로서 송도 국제도시를 조성하여 청라 국제도시·영종 국제도시와 함께 인천경제자유구역을 구성한다. 산업단지로는 송도국제도시 내에 송도지식정보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교통[편집]

도로 교통은 인천대교가 연수구와 중구의 영종도를 연결하여 영종도의 운서동을 기점으로 하는 제2경인고속도로(고속국도 110호선)가 연수구의 송도동·옥련동과 선학동을 거쳐 경기도 성남시까지 이어진다. 일반국도는 77호선이 부산시 중구에서 경남·전남·전북·충남·경기도와 연수구의 동춘동·옥련동을 거쳐 경기도 파주시까지 이어지고, 국가지원 지방도(국지도)는 84호선(강화군~강원도 원주시)과 경기·인천 지역을 순환하는 98호선이 연수구를 거쳐 간다. 송도 나들목과 옥련 나들목에서 국도 77호선이 제2경인고속도로와 접속한다.

철도 교통은 1937년에 수원~인천을 잇는 수인선(水仁線)이 협궤철도로 개통하여 연수 지역의 송도역을 운행하였다. 수인선은 2020년에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에 편입하여 연수구의 원인재역~연수역~송도역을 운행한다. 1999년에는 계양역~송도 달빛축제공원역 간의 30개 역을 운행하는 인천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여 연수구 문학경기장 역~송도 달빛축제 공원 역 간의 13개 역을 운행한다. 원인재역에서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과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이 접속한다. 2018년 지하철 수송 여객은 승차 인원 2183만 5710여 명, 강차 인원 2178만 8230여 명이며, 동춘역 이용객이 가장 많다.

해상 교통은 인천항의 일부인 인천 신항과 국제여객터미널·크루즈 터미널이 행정구역 상 송도동에 위치한다. 인천 신항은 486만 TEU(20ft 짜리 컨테이너 단위)의 하역능력을 갖춘 항만으로 조성되고 있으며,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는 중국의 친황다오항·단둥항 등의 국제 항로를 오가는 외항선을 운항한다.

관광[편집]

송도 국제도시에 송도 센트럴파크가 조성되어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트라이 보울을 비롯한 기학 학적 건물들과 서해 바닷물이 흐르는 해수(海水) 공원이 어우러진 이국적 경관 속에서 카누·패밀리 보트·수상 택시 등 도심의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으며, 인천대교 전망대로 조성된 오션스코프에서는 송도 국제도시의 멋진 스카이라인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인천 대교의 장대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송도 국제도시에는 달빛축제 공원·해돋이공원·미추홀 공원 등이 조성되어 도심의 휴식처가 되었으며, 볼거리·먹거리·즐길 거리가 풍성한 복합문화공간 트리플 스트리트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옛 송도유원지 앞바다의 아암 도는 해안 도로 조성으로 육지화되어 아암도 해안공원이 조성되었다.

옥련동·청학동·동춘동에 걸쳐있는 청량산은 그리 높지 않아 주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의 산으로서 정상에 오르면 송도 국제도시가 한눈에 펼쳐진다. 옥련동에는 백제시대에 사신들이 중국 동진을 왕래하던 등주 항로의 출발지였던 능허대지(인천기념물)가 남아있어 능허대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세계 초콜릿의 발전사를 살펴보고 만들기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는 송도 초콜릿 문화 박물관이 있다. 연수동에는 인천의 세거 성씨로서 이허겸(李許謙)을 중시조로 하는 인천 이씨의 재실(齋室)인 원인재(인천문화재자료)가 있다. 먹거리촌으로는 옥련동의 송도 꽃게거리와 연수동 맛고을 길 등이 있다. 이 밖에 걷기 길로는 승기 천 구간과 청량산·봉재산 구간, 문학산 구간의 3개 구간, 총 17.54㎞에 이르는 연수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생활 문화[편집]

2006년에 시작된 인천 펜타포트 음악 축제(인천 펜타 포트 락 페스티벌)가 매년 여름 송도 국제도시의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려 국내외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과 신인 발굴·육성을 위한 펜타 유스 스타, 라이브 클럽 파티 등이 펼쳐지고, 가을에는 야간 조명으로 송도센트럴파크 일대를 아름다운 야경으로 물들이는 인천 송도 불빛 축제가 열린다. 이 밖에 백제의 사신이 중국을 오가던 능허대 터에 조성된 옥련동의 능허대공원 일원에서는 매년 10월 중에 능허대를 소재로 하는 공연·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능허대 문화축제가 열린다.

문화재[편집]

국가 지정 문화재로는 국보 1점(초조 본 유가사지론 권 53),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 31·식물 본초를 비롯한 보물 14점 등이 있다. 시 지정 문화재로는 원대철제범종·관음좌상·바리야크함 깃발을 비롯한 인천유형문화재 18점, 대 금장을 비롯한 인천 무형문화재 3점, 능허대 지를 비롯한 인천 기념물 3점, 인천 등록문화재 1점(수인선 협궤 객차 18028호), 각국 조계석을 비롯한 인천 문화재자료 5점 등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연수구〉, 《위키백과》
  2. 연수구〉, 《네이버 지식백과》
  3. 연수구〉, 《나무위키》
  4. 연수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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