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아넬리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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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활동==
 
==주요 활동==
 
===피아트 3 1/2hp===
 
===피아트 3 1/2hp===
[[파일:피아트 첫 번째 자동차.jpg|썸네일|300픽셀|'''피아트 첫 번째 자동차 피아트 3 1/2hp''']]
 
 
피아트의 첫 차로 알려진 3 1/2hp(또는 4hp)는 원래 체이라노(Ceirano) 형제의 회사에서 만들었다. 조반니(Giovanni), 에르네스토(Ernesto), 마테오(Matteo) 체이라노 형제는 19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웰아이즈(Welleyes)라는 브랜드로 자전거를 만들어 판매해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자전거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동차 개발에 나섰다. 설계는 웰아이즈의 엔지니어인 아리스티데 파치올리(Aristide Faccioli)가 맡았다. 웰아이즈가 만든 첫 차는 1899년에 첫 선을 보였다. 형태는 마차와 비슷해서 앞뒤 좌석에 각각 두 명씩 마주 보고 앉는 비자비(vis-a-vis) 형태였다. 뒤를 보고 앉게 되어 있는 앞 좌석은 뒤 좌석보다 크기가 작았고 초기 모델은 앞바퀴보다 뒷바퀴 지름이 더 컸다. 차체 앞에는 커다란 역삼각형 철제 보호구에 가죽 흙받이를 달았고 일부 모델에는 나무로 된 것도 있었으며 뒷좌석 뒤에는 접고 펼 수 있는 지붕이 있었다. 프레임은 각목을 철제 부자재로 보강해 만들었고 차체도 나무로 만들었다. 당시 벤츠 차를 닮은 모습의 차체는 코치빌더 마르첼로 알레시오(Marcello Alessio)에서 만들었다. 마르첼로 알레시오는 토리노의 유명한 차체 전문 제작자로 이탈리아 카로체리아의 선구적 업체 중 하나다. 엔진은 4행정 수평대향 2기통 679cc로 차체 뒤쪽 아래에 놓여 뒷바퀴를 굴렸다. 차체 크기에 비하면 엔진은 무척 작은 편이었지만 그만큼 연료 소비량은 적었다. 당시에 연료 8L로 100km를 달릴 수 있는 효율은 비교적 우수한 것이었다. 흡기와 배기 밸브는 실린더 헤드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태로 실린더가 누워 있어 각각 위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압축비는 4:1 이었다. 최고출력은 400rpm에서 약 4.5마력이었는데 출력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 때문에 차 이름은 과세 마력인 3.5마력으로 지었다. 나중에 생산된 차에는 배기량이 837cc로 커진 5.5마력 엔진이 올라가기도 했다. 엔진 크랭크케이스에는 크랭크샤프트에 윤활유를 주입할 수 있도록 열린 부분이 있었다. 냉각은 수랭식으로 이루어졌고 첫 차는 시트 아래에 있는 라디에이터가 냉각수를 식혔다. 라디에이터는 나중에 차체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엔진 동력은 원뿔형 가죽 클러치와 후진 기어 없는 3단 수동변속기를 거쳐 디퍼렌셜 기어에 끼워진 피니언으로 체인이 물린 링 기어를 돌려 뒷바퀴로 전달했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바퀴와 차축에 이중으로 작용했다. 조향기구는 차체 오른쪽에 달려 있었고 앞바퀴에 기계 구조로 연결되어 있는 자전거 핸들 모양 막대를 좌우로 돌리는 식으로 방향을 바꿨다. 휠은 목재로 된 것과 자전거처럼 금속 와이어 스포크로 만든 것이 있었고 서스펜션은 앞쪽에 이중 타원형 뒤쪽에 타원형 판 스프링이 쓰였다. 전비중량은 약 450kg으로 최고 속도는 35km/h 정도였다. 3 1/2hp 생산이 시작된 뒤 오래지 않아 체이라노 형제는 새로 만들어진 회사인 피아트에 공장과 특허를 매각했다. 1899년에 만들어진 3 1/2hp는 8대였고, 1900년에 후속 모델인 6hp가 나올 때까지 모두 24대가 만들어져 대당 4,200리라에 팔렸다. 거의 수제작된 탓에 차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졌다.<ref>류청희, 〈[http://www.autoherald.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650 브랜드 역사의 시작 #5 체이라노 형제의 '피아트 3 1/2hp']〉, 《오토헤럴드》, 2019-01-08</ref>
 
피아트의 첫 차로 알려진 3 1/2hp(또는 4hp)는 원래 체이라노(Ceirano) 형제의 회사에서 만들었다. 조반니(Giovanni), 에르네스토(Ernesto), 마테오(Matteo) 체이라노 형제는 19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웰아이즈(Welleyes)라는 브랜드로 자전거를 만들어 판매해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자전거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동차 개발에 나섰다. 설계는 웰아이즈의 엔지니어인 아리스티데 파치올리(Aristide Faccioli)가 맡았다. 웰아이즈가 만든 첫 차는 1899년에 첫 선을 보였다. 형태는 마차와 비슷해서 앞뒤 좌석에 각각 두 명씩 마주 보고 앉는 비자비(vis-a-vis) 형태였다. 뒤를 보고 앉게 되어 있는 앞 좌석은 뒤 좌석보다 크기가 작았고 초기 모델은 앞바퀴보다 뒷바퀴 지름이 더 컸다. 차체 앞에는 커다란 역삼각형 철제 보호구에 가죽 흙받이를 달았고 일부 모델에는 나무로 된 것도 있었으며 뒷좌석 뒤에는 접고 펼 수 있는 지붕이 있었다. 프레임은 각목을 철제 부자재로 보강해 만들었고 차체도 나무로 만들었다. 당시 벤츠 차를 닮은 모습의 차체는 코치빌더 마르첼로 알레시오(Marcello Alessio)에서 만들었다. 마르첼로 알레시오는 토리노의 유명한 차체 전문 제작자로 이탈리아 카로체리아의 선구적 업체 중 하나다. 엔진은 4행정 수평대향 2기통 679cc로 차체 뒤쪽 아래에 놓여 뒷바퀴를 굴렸다. 차체 크기에 비하면 엔진은 무척 작은 편이었지만 그만큼 연료 소비량은 적었다. 당시에 연료 8L로 100km를 달릴 수 있는 효율은 비교적 우수한 것이었다. 흡기와 배기 밸브는 실린더 헤드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태로 실린더가 누워 있어 각각 위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압축비는 4:1 이었다. 최고출력은 400rpm에서 약 4.5마력이었는데 출력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 때문에 차 이름은 과세 마력인 3.5마력으로 지었다. 나중에 생산된 차에는 배기량이 837cc로 커진 5.5마력 엔진이 올라가기도 했다. 엔진 크랭크케이스에는 크랭크샤프트에 윤활유를 주입할 수 있도록 열린 부분이 있었다. 냉각은 수랭식으로 이루어졌고 첫 차는 시트 아래에 있는 라디에이터가 냉각수를 식혔다. 라디에이터는 나중에 차체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엔진 동력은 원뿔형 가죽 클러치와 후진 기어 없는 3단 수동변속기를 거쳐 디퍼렌셜 기어에 끼워진 피니언으로 체인이 물린 링 기어를 돌려 뒷바퀴로 전달했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바퀴와 차축에 이중으로 작용했다. 조향기구는 차체 오른쪽에 달려 있었고 앞바퀴에 기계 구조로 연결되어 있는 자전거 핸들 모양 막대를 좌우로 돌리는 식으로 방향을 바꿨다. 휠은 목재로 된 것과 자전거처럼 금속 와이어 스포크로 만든 것이 있었고 서스펜션은 앞쪽에 이중 타원형 뒤쪽에 타원형 판 스프링이 쓰였다. 전비중량은 약 450kg으로 최고 속도는 35km/h 정도였다. 3 1/2hp 생산이 시작된 뒤 오래지 않아 체이라노 형제는 새로 만들어진 회사인 피아트에 공장과 특허를 매각했다. 1899년에 만들어진 3 1/2hp는 8대였고, 1900년에 후속 모델인 6hp가 나올 때까지 모두 24대가 만들어져 대당 4,200리라에 팔렸다. 거의 수제작된 탓에 차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졌다.<ref>류청희, 〈[http://www.autoherald.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650 브랜드 역사의 시작 #5 체이라노 형제의 '피아트 3 1/2hp']〉, 《오토헤럴드》, 2019-01-0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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