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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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생애==
최준영은 1963년 1월 11일(음력) 태어났으며 서울 성동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90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으며 2009년 12월 [[기아자동차]] 광주지원실장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2010년 12월 이사로 승진했고 2012년 기아차 광주지원실장과 광주 총무 안전실장을 겸임했다. 최준영은 2012년 말 상무로 승진하며 노무지원사업 부장을 맡게 되었으며 2014년 12월 전무로 승진하고, 2018년 3월 기아차 사내이사에 올랐다. 2019년 7월 최준영은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기아차 대표이사로 선임되어 [[박한우]] 사장의 1인 대표 체제에서 박 사장과 최준영의 각자 대표 체제가 되었다. 2020년 3월 송호성 사장이 박한우 전 사장의 후임으로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현재는 송호성, 최준영 2인 대표 체제다. 이전과 동일하게 최준영 부사장은 후방 지원에 집중하고 있으며 2021년 3월 22일 기아 주주총회에서 최준영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였다.<ref>장은파, 〈[http://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204326 최준영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비즈니스포스트》, 2020-11-13</ref>
 
 
최준영 부사장은 대표 취임 후 한 달 만에 노조와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잠정합의안을 도출해 내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전통적으로 강성인 노조와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노련한 협상가이면서 현실적인 타협점을 이끌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아차 노사는 2020년 12월 말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약"조인식을 가졌다. 노사는 8월 상견례 이후 4개월간 협상을 이어갔지만,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았다. 특히 노조가 2011년 이후 9년 연속 파업을 벌이며 약 1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4만 7,000여 대의 생산 차질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고려해 11년 만에 기본급을 동결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로 꼽힌다.<ref>이세정, 〈[http://m.newsway.co.kr/news/view?ud=2021012715031727033 (10대그룹 파워 100인(90))‘노련한 협상가’ 최준영 기아 대표이사 부사장]〉, 《뉴스웨이》, 2021-01-29</ref><ref>데일리카, 〈[https://blog.naver.com/dailycar/221323988168 기아차 최준영 부사장, 대표이사 내정..박한우 사장과 공동대표 체제]〉, 《네이버 블로그》, 2018-07-22</ref><ref>장창민,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9031317871 최준영 기아차 대표 집안 다툼만 벌이단 생존 못해…이번엔 통상임금 논란 끝내자]〉, 《한경닷컴》, 2019-03-13</ref><ref>정성현, 〈[https://www.seoulwire.com/news/articleView.html?idxno=439108 재선임 최준영 기아 부사장…노사문제 해결 해법 찾을까?]〉, 《서울와이어》, 2021-03-22</ref>
 
  
 
==경영활동의 공과==
 
==경영활동의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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