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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담긴 불국사의 다보탑도 종교적인 목적(불교)으로 건축된 것이다.
고려시대 세워진 의성 석탑리 방단형적석탑
대표적인 인도의 불탑인 산치 대탑 중 제 1탑
일본 소재 토탑의 모습. 다만 이는 후대에 복원된 것이며, 이 복원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도 정확한 복원이 아니라는 비판이 있다.
요양백탑(遼陽白塔), 전형적인 밀첨식 양식의 불탑

(塔, tower)는 여러 층으로 또는 높고 뾰족하게 세운 건축물로, 종교 · 기념 · 군사 등의 목적 외에 전망 · 관광 · 관측 · 방송 · 통신 등의 목적으로 건축되는데, 그 재료로는 돌 · 나무 · 콘크리트 · 철강 등이 사용된다. 기념비적인 것이나 종교적인 의도에 연유한 것이 많다.

일반적으로 높은 건조물을 통틀어 탑이라고 하는 수도 있으나 북아메리카·캐나다 등에서 볼 수 있는 원주민의 토템을 새긴 기둥이나 이집트·튀르키예 등의 오벨리스크 등 단층 축조물, 그리고 수십 층의 고층빌딩 등은 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고대의 탑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된 바빌론의 이슈탈문이 있고, 종교적인 것으로는 바벨탑이나 피라미드 등을 볼 수 있으며, 그리스·로마 시대에 와서 군사용으로 성벽에 각탑(角塔)을 설치하게 되었다. 중세에는 위엄의 상징으로 교회 건축물에 덧붙여 높은 종탑이나 첨탑을 설치하는 일이 성행하였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독립적인 형식의 것이 많으며 피사의 사탑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십자군 원정 후에는 군사용 탑이 현저하게 발달하였고 방어시설로서 석조 수비탑이 나타났으며, 이런 종류의 것으로는 런던탑이 유명하다. 14세기에는 나무에 납을 입혀서 만든 탑도 나타났으며 19세기에는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철강으로 에펠탑이 건조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라디오·텔레비전의 보급과 더불어 철강조의 텔레비전 탑이 많이 건조되었다.

이 밖에 이색적인 탑으로는 촉매분해장치의 정유탑(精油塔)이 있고, 또한 해협 횡단의 송전 철탑이 있다. 한국에서는 N서울타워(자체 높이:236.7m)가 유명하다.

개요[편집]

탑은 일반적으로 폭ㆍ깊이에 비해서 현저하게 높은 건조물이라고 정의된다.

탑은 형태에 따라 복발형탑(覆鉢形塔), 감탑(龕塔), 주탑(柱塔), 안탑(雁塔), 라마탑(喇嘛塔), 다보탑(多寶塔), 보협인탑(寶篋印塔), 오륜탑(五輪塔) 등으로 나누어지며, 재료에 따라 목탑(木塔), 전탑(塼塔), 모전석탑(模塼石塔), 석탑(石塔), 니탑(泥塔), 청동탑(靑銅塔), 금동탑(金銅塔) 등이 있다. 인도에서는 스투파라 하여 복발형으로 마치 분묘와 같은 형태의 탑이 유행하였는데, 시대가 지나오면서 점차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탑형식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전탑과 목탑, 한국에서는 석탑, 일본에서는 목탑이 주류를 이루면서 발달하였다. 한국에서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4세기 후반부터 세워지기 시작하여 인도,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형식의 탑파가 만들어졌다. 목탑은 나무로 만든 탑으로 인도에서는 보기 드문 편이나 중국에서는 성행하였다. 한국에서는 중국의 고루형(高樓形) 목탑형식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다층의 누각형(樓閣形) 목탑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만 대표적인 목탑으로 신라의 <황룡사지皇龍寺址 9층 목탑>과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쌍탑雙塔>을 들 수 있다.

석탑은 부처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하여 돌을 쌓아서 만든 탑으로 분탑(墳塔) 또는 묘탑(墓塔)이라고도 한다. 중국 서진(西秦)시대에 석탑 건립에 관한 문헌이 보이며 현존하는 예로는 5세기경에 만들어진 운강석굴 안에 있는 4각5층석탑이 있다. 한국에는 1,000여기 이상의 탑이 현존하는데 이 중에서 석탑은 재료의 견고성과 내구성으로 인해 오늘날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석탑은 7세기경 백제와 신라에서 이전의 목탑구조를 모방하여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삼국시대 석탑의 특징은 목탑의 구조를 최대한 재현하였다는 점으로, 백제의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石塔>에서 가구수법(架構手法), 배흘림 기둥 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에는 <감은사지感恩寺址 삼층 석탑三層石塔>에서 볼 수 있듯이, 상하 2층의 기단(基壇)과 우주(隅柱)가 있는 옥신(屋身), 5단의 옥개(屋蓋)받침, 추녀 끝이 약간 들리는 특징 등 석탑양식의 전형이 성립된다. 8세기에 이르면 하층 기단의 탱주가 둘로 줄고 탑신과 옥개석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지는 등 축소현상이 나타난다. 8세기 말부터는 규모도 더욱 작아지고 간략화되는 반면 조각솜씨가 정교해져 표면에 불, 보살 등의 장식문양이 조각된다. 9세기경에는 조각장식이 더욱 유행, 불국사 다보탑과 같은 이형(異形)양식의 석탑이 조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석탑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각 지방의 색채가 가미되면서 다양한 변화를 보인다. 경상도 지역은 신라석탑의 전통을 계승하였고, 백제지역에서는 목조가구(架構)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새로운 유형의 석탑으로 <월정사月精寺 팔각구층석탑八角九層石塔> <경천사지敬天寺址 십층석탑十層石塔> 등이 있는데, 방형중층(方形重層)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석탑은 초기에는 방형중층이 일반화되다가, 후기에 전란 등으로 석탑 건립이 단절되다시피 하였다.

전탑은 벽돌로 만든 탑으로서 중국에서는 남북조(南北朝)시대부터 목조건축의 처마와 두공(枓栱)을 모방한 전탑이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숭악사嵩岳寺 12각 15층 전탑>(523)이 가장 오래된 예이다. 이러한 형식은 당, 송대(唐宋代)에 이르기까지 많이 건립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미 삼국시대에 건립되었으나 화강암을 사용하고 옥신석에 감실(龕室)을 설치한 것 등은 중국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에서는 석재로써 전탑을 모방하여 만든 모전석탑이 전탑보다 유행하였는데 그 형태는 석재를 벽돌과 같이 잘라서 전탑 모양으로 축조한 것과 석탑의 기본형식을 따르면서 표면을 전탑과 같이 가공하여 축조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후자의 모전석탑형식은 통일신라시대에 많이 건립되었다. 그 밖에 과거불의 하나인 다보불(多寶佛)을 모신 탑을 다보탑,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을 넣은 보협인탑, 사리탑 등이 있다.

불교의 탑[편집]

불교에서 부처의 사리, 경전 등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탑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그 사리를 담은 기념물에서 출발하였다. 초창기 인도 불교 신자들은 석가모니를 기억하고 신심을 북돋고자 사리를 담은 탑을 자주 찾았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다비할 적에, 그 사리를 받고자 인근 8개 왕국이 사람을 보내어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이때 한 바라문이 나서서 중재하고 사리를 8등분하여 각 나라에 전해주었고, 사리를 받은 나라/부족은 각자 기념물을 세워 기념했다. 8개 나라/부족이 받았으므로 당연히 사리탑도 모두 8기라 '근본8탑'이라고 부른다.

석가모니가 열반하고 수백 년이 지나 아쇼카 왕이 인도를 통일하고 불교에 귀의하면서 탑을 여럿 만들고자 했다. 아쇼카 왕은 근본8탑 중 단 한 기만 제외하고 나머지 7기의 내부에 모신 사리를 꺼내어 덜어낸 뒤, 인도의 각 지방으로 보내어 불사리탑을 짓도록 명령했다. 불교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아쇼카 왕이 인도 전역에 불사리탑 8만 4천 기를 세웠다고 하는데, 불교에서 '8만 4천'이란 숫자는 '극히 많음'을 가리키는 상투적인 표현이므로 정말로 8만 4천 기는 아닐 것이다.

이후 아쇼카 왕이 퍼트린 불탑의 사리가 다시 이전되고 하면서 여러 가지 탑이 나타났다. 대체로 네모난 기단을 다지고 그 위에 봉분에 해당하는 둥근 구조물을 얹고 다시 그 위에 우산 모양 상륜부를 얹은, 당시 인도의 무덤 형태인 스투파(stūpa, 솔도파, 率堵波)를 따랐다. 이렇게 탑은 본래 부처의 무덤이므로 당연히 사리가 들어가야 하지만, 당연히 부처의 진신사리는 그 수가 한정적이라 불교가 퍼져나가면서 진신사리 대신 경전 및 작은 불상 혹은 보석과 같은 상징물을 법신사리라 부르고 탑 속에 넣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은 따로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지칭하는데 통도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구조는 탑이 중국으로 전파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인도 초창기 불교에서 유래한 토탑(土塔) 혹은 적석탑(積石塔)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일본 등지에도 극소수 남아있다. 이후 중국의 목조건축양식 혹은 벽돌 건축양식과 만나 둥근 구조물과 상륜부는 축소되어 탑의 지붕 위에 장식처럼 얹히게 되었다. 이건 지금의 한국 사찰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는데 탑위의 장식물을 보면 아주 조그마한 둥그런 밥사발을 뒤집어놓은 모양의 장식을 볼 수 있다. 그게 인도 탑의 우산 모양 상륜부의 영향이다!

이후 중국의 벽돌 전탑 양식이 다시 목탑 양식, 그리고 동아시아식 석탑 양식으로 분화한다.

중국에서 벽돌 전탑으로 재정립된 양식이 다시 한반도로 전해져 황룡사, 미륵사에는 목탑이 만들어진다. 한편 한국에서는 벽돌로 만들 흙보다 돌이 더 풍부했기 때문에 전탑 그 자체보다는 분황사처럼 전탑을 본뜬 모전석탑이 만들어지고, 백제 지역에서는 목탑의 영향이 남아있는 석탑이 만들어진다. 이후 이들 양식이 혼합되어 한국 고유의 석탑양식이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인도불탑과 유사한 형태의 토탑/적석탑은 주류에서 사라지고 동아시아에 맞게 변한 탑을 본따 조그맣게 흙으로 빚어 불탑 안에 넣는 공예품을 토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미륵사의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품이며, 통일신라 때에는 3층 석탑이 보편화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감은사지 석탑이나 불국사의 석가탑. 통일신라식 석탑은 한반도 전역에 퍼져나가 경주시부터 황해도, 금강산까지 거의 비슷한 모습의 석탑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런 석탑양식은 고려까지 이어지고 고려 중기 이후 원의 영향으로 경천사 10층 석탑과 원각사탑이 만들어졌다.

일본으로 전파된 탑은 목조건축이 발달한 일본에 맞게 목탑이 주류가 되었다.

불탑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아래쪽 기단부와 탑의 몸체를 이루는 탑신부, 맨 뒤에 있는 상륜부이다. 기단부는 다시 상대기단과 하대 기단으로 나누어지는데 경우에 따라 하대 기단은 생략하기도 한다. 탑신부는 탑의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탑의 층수를 결정한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용주, 보좌 등등 여러 부분으로 세분된다.

동아시아에서 불탑의 층수는 기본적으로 홀수다. 홀수는 양의 수, 하늘의 수고 짝수는 음의 수, 땅의 수라는 음양 사상 때문이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백제 석탑은 대체로 5층, 신라 석탑은 3층인 등 시대지역별로 구조에 유행이 있었다. 이런 시대 유행을 벗어난 정혜사지 13층석탑이나 다보탑 같은 탑을 이형석탑이라고 하는데 이런 탑들도 구조적으로 따져보면 거의 홀수다. 다만 경천사지나 원각사지 석탑으로 짝수 10층 석탑도 있긴 있는데, 이런 탑을 두고는 관련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분류[편집]

1.신앙의 매개체로서의 기능

앞서 말했듯이 동양에서 세워진 탑들은 기본적으로 탑의 내부에 사리를 봉안하며 스투파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는데, 이는 석가모니를 기념하고 그를 따르고자하는 사상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 만큼 탑을 건축한다는 것은 불교의 사상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 불교 이외의 종교에서도 탑이 나타나는데 이슬람교의 건축물인 모스크의 옆에 지어지는 미나렛은 이슬람 율법에서 정한 하루 다섯 번의 기도의 시각을 알려주는(아잔이라고 한다.)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서양의 교회 건축에 쓰인 탑 또한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로서 작용하였다.

2.기념물로서의 기능

종교의 색채가 희미해지는 근대에 들어서게 되면 에펠탑과 같이 , 건국 등 다양한 이유에서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탑을 짓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는 랜드마크로서 건축되기도 했다.

3.정보전달로서의 기능

1번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미나렛이나 서양의 탑 에서는 사람의 목소리, 종과 같은 것 등으로 시각을 알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근대에 들어서는 빅 벤과 같은 시계탑 또한 만들어졌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CN 타워와 같이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전파를 중계하기 위한 전파탑이 만들어졌다.

4.감시, 전망으로서의 기능

성과 같은 군사목적의 건물 옆에 지어진 탑들은 적이 성에 접근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지어졌다. 현대에 들어서는 전망을 위해서 높은 탑을 짓는 경우도 생겨났다. 공항의 관제탑 역시 이와 같은 목적으로 지어졌다 할 수 있다.

재료[편집]

탑의 건립 시기와 목적, 장소 설립 주체가 다양한 만큼 탑을 구성하는 재료 또한 다양하다. 고대에는 나무, 구운 벽돌, 돌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돌로 건축할 때 대부분은 화강암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때로는 안산암이나 점판암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대에는 주로 철이나 콘크리트 따위를 이용한다.

오늘날의 탑[편집]

근대에는 tower(타워)의 번역어로 '탑'이 쓰이면서 '타워'의 의미가 다소 섞여들었다.

영단어 tower는 본래 망루에 가까운 의미이지만, 감시하기 좋게 높게 짓는 특성상 "높은 건물"도 tower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디 tower가 갖고 있던 의미인 망루야 동아시아에도 있는 것이고, 위 1번 단락의 불탑 중 황룡사 9층 목탑이나 일본의 도지 목탑 같은 건 서양의 tower 개념에도 부합한다.

그러나 근현대 기준으로 서구의 마천루는 그 전까지 없던 것이었기에 동아시아에는 주로 그 의미의 tower가 유입되었다. 물론 군사적 의미도 유입되어 '감시탑' 같은 말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초기에는 일본 도쿄 아사쿠사의 료운카쿠(凌雲閣)처럼 '樓(루)'나 '閣(각)'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으나 근래에는 '塔(탑)'이 일반적이게 되었다.

타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타워 전체를 관리하는 공무원들이다. 항로표지 관리원이라는 정식 명칭이 있다. 당연히 이들은 특급 보안시설에서 근무하므로 쉽게 만날 수 없다. 타워지기는 등대지기, 빌딩 GOP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타워지기 문서로.

크게 전파나 방송의 송출을 담당하는 전파탑, 대형의 시계를 부착한 시계탑, 고공에서의 전망을 목적으로 하는 전망탑 등으로 나뉜다.

전 세계적으로는 에펠탑, 도쿄 스카이트리, 도쿄 타워, CN 타워 등이 유명하며 우리나라에는 남산서울타워가 유명하다.

랜드마크[편집]

한국[편집]

해외[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 《나무위키》
  • 〉, 《위키백과》
  • 〉, 《세계미술용어사전》
  • 〉, 《두산백과》
  • 〉, 《종교학대사전》
  • 〉, 《대한건축학회 건축용어사전》
  • 우리의 문화유산, 탑〉, 《한국 미의 재발견 - 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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