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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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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위치
중앙연방관구 위치
오룔주 위치

오룔주(러시아어: Орло́вская о́бласть)는 러시아 중앙연방관구에 속해있는 주이다. [1][2]

개요[편집]

오룔주의 면적은 24,652㎢이며 인구는 725,725명(2021)이다.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3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지리상 유럽 러시아 지역에 포함되며, 러시아중앙연방지구(Центральный федеральный округ)의 중앙경제지구(Центральны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район)에 속하는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리페츠크주(Липецкая область), 서쪽으로는 브랸스크주(Брянская область), 남쪽으로는 쿠르스크주(Курская область), 북쪽으로는 툴라주(Тульская область), 북서쪽으로는 칼루가주(Калужская область)를 접하고 있다. 주도는 오룔(Орёл, Oryol)이며, 오룔은 러시아어로 독수리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수자원이 풍부하여 수력 발전과 저수 기술이 발달했다.

러시아 연방 공산당 당수인 겐나디 주가노프와 러시아의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Иван Тургенев, 1818~1883)가 오룔주 출신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현재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지지율이 높은 곳 중 한 곳이다.

1931년에 개교한 오룔대학교(Орл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имени И.С.Тургенева)가 지역의 최고등 교육기관으로 자리하고 있다.[3]

자연환경[편집]

여름은 따뜻하고 겨울은 약간 추운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연평균 기온은 5.5℃이며, 겨울철인 1월의 평균 기온은 -10℃, 여름철인 7월의 평균 기온은 19℃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610mm이다. 다양한 종류의 토양이 발달해 있으며, 그중 체르노좀이 12.8%, 포드졸이 8.1%를 차지한다.

역사[편집]

12세기 무렵 오카강과 오를리크강 사이에 목조 요새가 건설되면서 도시가 발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지역은 체르니히우 공국에 속해 있었다. 13세기 경에는 카라체프 공국의 즈베니고로트(Звенигород)에 편입되었다가 15세기 초 리투아니아 공국에 병합되었다. 1566년 모스크바대공국의 이반 뇌제(Иван Грозный, 1530~1584) 통치 시기에는 현재의 오룔 지역에 방어를 위한 요새가 건설되었으나, 1611년과 1615년 두 차례에 걸친 폴란드 군의 침입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1636년에 이르러서야 복구되었으며, 18세기 이후로는 대규모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공업 지대까지 형성되면서 산업 도시로 크게 성장하였으며, 소비에트 연방 시기인 1937년 오룔은 독자적 행정 주 지위를 획득하였다.

산업[편집]

오룔주의 주요 산업은 식품업, 경공업, 엔지니어링, 금속가공, 금속공학이다. 공작기계와 전자회사는 최첨단 기술과 숙련된 전문가들과 함께 높은 과학적 기술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180만 톤에 달하는 시멘트 생산량으로 벽돌 등 각종 자재들을 활발하게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 차원에서 축산업, 낙농업, 농업 분야에 집중하여 투자했으며, 그 결과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가을밀과 호밀을 중심으로 메밀, 귀리, 보리, 감자 등을 재배한다. 가축에게 먹이기 위한 곡물 재배지가 늘고 있다.

관광[편집]

오룔 지역 박물관(Музеи Орловской области)을 포함한 다수의 박물관이 운영 중이다. 2006년 개장한 그린백화점(Гринн)은 호텔과 컨벤션 센터, 공연장, 영화관 등이 한데 모여 있는 새로운 명소로 매장 면적만 7만㎡에 달한다.

주요도시[편집]

오룔[편집]

오룔은 러시아 중서부 끝에 자리 잡은 오룔주의 주도다. 모스크바에서 서남쪽으로 약 368km 떨어져 있으며 중앙연방관구와 중앙 경제권에 속해 있다. 오룔은 동유럽 평원의 중앙 러시아 고지대에 있는 오카강과 그 지류인 오를리크강 연안에 형성된 도시다. 오룔은 습한 대륙성 기후다. 겨울은 적당히 춥고 변화무쌍하며 여름은 따뜻하다. 비가 많이 오는 해와 가뭄이 심한 해가 번갈아 찾아온다. 오룔(Oryol) 또는 오렐(Orel)로 불리는 도시명은 '독수리' 혹은 '독수리좌'라는 뜻이다. 오룔은 시의회의 결의로 2012년 2월 시장 직선제를 폐지하였으나 2013년 12월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71%의 지지로 직선제로 복귀하였다. 러시아 연방통계청의 2018년 센서스에서 오룔은 러시아 1,117개 도시 가운데 65위에 올랐다. 오룔 출신인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집이 시내에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오룔은 1636년에 재건되었고, 17세기 중반까지. 타타르족의 습격으로부터 러시아 국경을 지키는 주요 요새로 남아 있었다. 국경이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서 군사기지로서의 중요성이 점차 상실되었다. 오룔은 이에 따라 1702년 요새가 해체되면서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오룔은 18세기 중반에 곡물 생산과 교역의 주요 거점으로 성장하였다. 오카강이 1860년대에 철도로 대체될 때까지 주요 교역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데다 모스크바와 거리도 가깝다는 요인이 크게 작용하였다. 1708년 키예프주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1719년 키예프주 내에서 오룔현(縣)이 신설되었다. 이 현은 1727년에 새로 설립된 벨고로드주로 이관되었다. 보로네즈주와 벨고로드주의 영토를 일부씩 떼어내 오룔 총독부를 창설하였다. 오룔시는 1779년 새로운 계획에 따라 거의 완전하게 다시 세워졌고, 오룔강은 ‘작은 독수리’라는 뜻의 오를릭강으로 개명되었다.

인구는 19세기 중반에 3만2000여 명을 헤아렸고, 1920년에는 6만3800여 명으로 늘어났다. 1881년 전화가 도입되었고, 1898년에는 전차가 운행을 개시하였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볼셰비키가 오룔을 지배하였다. 1919년 10월 중순의 일주일 동안만 백군의 손에 있었다. 오룔은 1920~30년대에도 관할이 여러 번 바뀌었다. 1928년까지는 오룔주, 1934년까지는 중앙 흑토지구, 이후에는 쿠르스크주에 각각 편입되었다가 마침내 1937년 9월 오룔주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오룔 교도소는 정치범과 제2차 세계대전 전쟁포로들에게 잊지 못할 장소다. 크리스찬 라코프스키, 마리아 스피리도노바, 올가 카메바 등 저명한 정치범 160여 명이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의 명령으로 1941년 9월 11일 오룔 외곽의 메드베데프 숲에서 한꺼번에 총살되는 대학살 사건의 희생자가 되었다. 오룔은 독-소 전쟁 초기인 1941년 10월 3일 독일 기갑부대에 의해 점령되었다. 오룔은 1943년 8월 5일 거의 완전히 파괴된 채로 해방되었다. 오룔은 나치 침략자들로부터 해방된 날을 도시의 날로 기념한다.[4]

리브니[편집]

리브니(러시아어: Ливны)는 러시아 오룔주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52,841명(2002년 기준)이며 오룔(오룔 주의 주도)에서 남동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586년 우스트리브니(Ust-Livny)라는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전하지만 1177년 몽골족의 러시아 침공 이전에 건설되었다는 설도 있다.

므첸스크[편집]

므첸스크(러시아어: Мценск)는 러시아의 오룔주에 위치해 있고 주샤강(오카 강의 지류)에 접해 있다. 오룔에서 북동쪽으로 49km지점에 위치해 있고, 모스크바 - 심페로폴 고속도로 지점에 위치해 있다. 1147년에 므첸스크는 체르니히우 공국의 일부에 속해 있다. 원래는 미첸스크(Мьченск)였다. 1320년에는 리투아니아의 영토로 들어가다가 16세기부터는 러시아의 영토로 들어갔다. 1778년에는 도시로 등록되었다. 므첸스크는 북쪽으로 10km지점에 가면, 이반 투르게네프가 살았던 집이 전시되어 있다.

볼호프[편집]

볼호프(러시아어: Болхов)는 러시아 오룔주 북부에 있는 도시로, 누그르강과 접한다. 인구는 12,148명(2002년 기준)이며 오룔(오룔 주의 주도)에서 동쪽으로 5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3세기 몽골 제국의 러시아 침공 이후부터 작은 공국의 수도가 되었고 16세기 모스크바 공국의 요새가 건설되면서 남쪽에 있는 타타르족으로부터 모스크바를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1608년 바실리 4세가 이끄는 군대가 가짜 드미트리 2세를 물리쳤다. 18세기에 건설된 교회 4개가 남아 있으며 5개의 돔을 가진 삼위일체 대성당(1688년부터 1706년까지 건설됨)과 인근에 있는 가장 큰 성당인 구세주 현영 대성당(1841년부터 1851년까지 건설됨)이 있다.

말로아르한겔스크[편집]

말로아르한겔스크(러시아어: Малоарха́нгельск)는 러시아 오룔주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오룔(오룔주의 주도)에서 남쪽으로 8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7세기 아르한겔스코예(Арх́ангельское)라는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778년 시로 승격될 때 아르한겔스크와 구분하기 위해 말리아르한겔스키(Ма́лый Арха́нгельский, "작은 아르한겔스크"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나중에 말로아르한겔스크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른다.

지도[편집]

러시아유럽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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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오룔주〉, 《위키백과》
  2. 오룔〉, 《나무위키》
  3. 오룔주〉, 《네이버 지식백과》
  4. 유럽지명사전 : 러시아 오룔〉,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러시아유럽 같이 보기[편집]

러시아유럽 행정구역
러시아유럽 도시
러시아유럽 바다
러시아유럽 지리
러시아유럽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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