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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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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군 위치

서흥군(瑞興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 중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서흥군의 면적은 566.14km²이며 인구는 100,887명(2008)이다. 북쪽은 연탄군수안군, 서쪽은 봉산군, 남쪽은 린산군평산군, 동쪽은 신계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남쪽 봉산군과의 경계에는 서흥호가 있다. 동서(대평리~백암리) 간의 길이는 21km이고, 북남(운천리~양암리) 간의 길이는 34km이며, 도 전체면적의 5.98%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20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서흥읍이다.

고려 초에 평주(平州)의 속현(屬縣)으로 편입되어 있었는데, 1270년(원종 11년) 고려왕의 태를 이곳에 묻어 상서롭고 흥할 징조로 하여 서흥현(瑞興縣)으로 승격되었다.

한서 기온차가 심하기 때문에 사과가 많이 생산되다. 거창군 농어촌버스 회사 서흥여객 회사명의 어원이 이 지역인데, 창업주의 고향이 서흥군이라고 한다.[3]

자연환경[편집]

서흥군의 북부는 정방산줄기(正方山-)에 의해 막혀 있고 동부경계를 따라서는 멸악산줄기(滅惡山-)가 뻗어 있으며 남부와 서남부로 가면서 정방산줄기와 멸악산줄기에서 뻗어내린 지맥들이 점차 낮아지면서 물결모양을 이루고 있다.

남부에 카르스트지형이 인산군과의 경계까지 발달되어 있다. 북부에는 나장산(羅帳山, 701m), 전주산(錢鑄山, 652m), 감박산(甘朴山, 626m), 부인당산(夫人堂山, 659m), 동부에는 복희산(福喜山, 576m), 약대산(藥-山, 507m) 등의 들이 솟아 있다. 해발 100~200m의 구릉이 33%를 차지하고, 200m 이상 지역이 60% 이상을 차지한다. 지형은 북부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면서 구릉과 벌이 교차되고 있다. 서흥강 연안에 화곡벌(花谷-)과 청산동벌(靑山洞-)이 전개되어 있다.

서흥군에는 상부원생대 상원계퇴적층과 중생대 산성 및 염기성 관입체암들이 분포되어 있다. 서흥군의 대부분 지역은 상부원생대 상원계의 암석들이 혈암, 규암, 석회암, 점판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암리 일대에는 중생대의 화강암이 분포되어 있다. 서흥군에는 납, 아연, 몰리브덴을 비롯한 유색금속자원, 석회석, 인회석을 비롯한 비금속자원, 초무연탄, 이탄 등 자원이 묻혀 있다. 토양은 갈색산림토양, 충적토, 논토양이 분포되어 있다. 갈색산림토양은 남한리 · 고성리 · 백암리 · 송월리 · 신당리 일대에, 충적토는 범안리 · 화곡리 일대에, 논토양은 범안리 · 청포리 · 화곡리 일대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연평균기온은 9.2℃, 1월 평균기온은 -7.6℃, 8월 평균기온은 23.9℃, 월 평균최고기온은 15.4℃, 월 평균최저기온은 3.7℃이다. 10℃이상 적산온도는 3,491℃이며 첫서리는 10월 13일, 마감서리는 4월 28일에 내린다. 연평균강수량은 1,091.7mm이며 그 60~70%가 여름에 내린다. 여름에는 서풍, 겨울에는 동풍이 우세한다.

하천은 5km 이상의 하천이 16개나 유입되어 있는데, 대부분 하천들은 정방산줄기와 멸악산줄기를 분수령으로 하여 남, 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황주천(黃州川), 서흥강(瑞興江)과 예성강의 지류인 남천(南川) 등이 있다. 장촌천(張村川), 천곡천(泉谷川), 남한천(南漢川), 용출천(龍出川)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지류들을 가지고 있는 서흥강은 상류에서 급한 물매를 가지나 하류는 점차 느린 물매를 이루면서 봉산군에 있는 서흥호(瑞興湖)에 흘러든다. 서흥군 영역으로 흐르는 서흥강의 길이는 약 40km이다.

저수지로는 전후에 건설한 천곡저수지(泉谷貯水池), 화곡저수지(花谷貯水池), 양암저수지(陽岩貯水池), 봉하저수지(鳳下貯水池), 용흥저수지(龍興貯水池), 조정저수지(朝廷貯水池) 등이 있다. 산림은 서흥군군 전체면적의 약 63%를 차지하고 있는데 주요 수종은 소나무, 참나무, 노간주나무, 물푸레나무, 고로쇠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박달나무, 오리나무, 창성잎갈나무, 가래나무 등이 있으며 그 아래로 돌배, 머루, 다래, 고사리, 원추리, 족도리풀, 천남성, 삼지구엽초 등 경제식물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4]

역사[편집]

서흥군 지역의 남한리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유물들이 발굴된 것은 적어도 이 시기부터 서흥군 지역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삼국시대에 서흥군 지역은 고구려의 영역에 속해 있으면서 우차탄홀(于次呑忽), 오곡성(五谷城)이라 불리웠으며 통일신라 때에는 오관(五關)이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동주(洞州)라 개칭하였다. 1270년 (원종 11년)에 왕실의 태를 이곳에 묻었다 하여 서흥현(瑞興縣)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선 후 1413년에 서흥군으로 되었고 1424년(세종 6년)에 서흥도호부(瑞興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896년에 황해도 서흥군으로 개편되면서 중부방(中部坊), 동부방(東部坊), 매양방(梅陽坊), 화회방(禾回坊), 전막방(田莫坊), 소기방(蘇己坊), 평리방(坪里坊), 소사방(所沙坊), 세평방(細坪坊), 도의방(道義坊), 구정방(九井坊), 목감방(木甘坊), 율리방(栗里坊) 등을 구정면(九井面), 현포면(峴圃面), 도하면(道下面), 도상면(道上面), 용연면(龍淵面), 평리면(坪里面), 내기면(內己面), 상덕면(象德面), 동부면(東部面), 목감면(木甘面), 매양면(梅陽面), 중부면(中部面), 화회면(禾回面), 율리면(栗里面), 세평면(細坪面), 소사면(所沙面) 등 16개 면으로 개편하여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구정면과 현포면을 병합하여 구포면(九圃面)으로, 도상면과 도하면을 병합하여 도면(道面)으로, 평리면과 용연면을 병합하여 용평면(龍坪面)으로, 상덕면과 내기면을 병합하여 내덕면(內德面)으로 각각 개편하였다. 1929년에 중부면을 서흥면(瑞興面)으로 개칭하였고, 광복 직후 동부면과 화회면을 병합하여 신막면(新幕面)으로 개편하였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내덕면은 인산군(麟山郡)에, 도면 · 세평면 · 소사면은 연탄군(燕灘郡)에, 목감면의 4개 리는 봉산군(鳳山郡)에, 구포면의 1개 리는 수안군(遂安郡)에 각각 편입하고, 나머지 신막면 · 매양면 · 용평면 · 율리면 · 서흥면의 전체 리와 목감면의 6개 리, 구포면의 5개 리를 병합하여 서흥군을 새로 구성하였는데, 이때 서흥면의 화곡리 · 와류리 · 예운리 · 명의리 · 잠두리 · 영파리를 병합하여 서흥읍(瑞興邑)으로, 율리면의 봉암리 · 칠송리와 구포면의 신당리를 병합하여 신당리(新塘里)로, 신막면의 가창리와 이괴리를 병합하여 가창리(加倉里)로, 매양면의 청포리 · 양사리 · 매정리와 신막면의 시담리를 병합하여 청포리(靑浦里)로, 매양면의 대평리 · 녹안리 · 월농리를 병합하여 대평리(大坪里)로, 서흥면의 고성리 · 오운리 · 작문리 · 주산리를 병합하여 고성리(古城里)로, 율리면의 오동리 · 송월리 · 신방리 · 서달리를 병합하여 송월리(松月里)로, 매양면의 서봉리 · 백화리 · 덕암리를 병합하여 화봉리(花峯里)로, 목감면의 백암리 · 향교리 · 복대리를 병합하여 백암리(白岩里)로, 서흥면의 구암리와 용평면의 범안리를 병합하여 범안리(泛雁里)로, 용평면의 봉하리 · 월탄리 · 금천리 · 용연리를 병합하여 봉하리(鳳下里)로, 구포면의 자작리와 오암리를 병합하여 자작리(自作里)로, 용평면의 금릉리와 서곡리를 병합하여 금릉리(金陵里)로, 율리면의 상률리와 구포면의 정문리 · 운천리를 병합하여 운천리(雲川里)로, 목감면의 당현리와 창촌리를 병합하여 당현리(唐峴里)로, 서흥면의 덕어리와 신막면의 거문리를 병합하여 거문리(巨門里)로, 신막면의 천곡리와 와야리를 병합하여 천곡리(泉谷理)로, 신막면의 부흥리(富興里) · 만세리(萬歲里) · 대성리 · 신흥리 · 동거리를 병합하여 대성리(大成里)로, 신막면의 남한리와 은현리를 병합하여 남한리(南漢里)로, 용평면의 삼천리와 상평리를 병합하여 삼천리(三川里)로, 용평면의 문무리와 월은리를 병합하여 문무리(文武里)로, 신막면의 팔선리 · 송현리 · 주교리 · 경송리 · 연지리 · 철수리 · 신막리를 병합하여 신막리(新幕里)로, 신막면의 석락리와 증락리를 병합하여 낙촌리(洛村里)로, 목감면의 수곡리를 서흥군 수곡리(水曲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3리를 관할하였다.

1953년에 백암리의 일부가 범안리에 편입되었고, 1954년에 황해북도 서흥군으로 되면서 청포리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양사리(陽射里)를 신설하였다. 1956년에 대성리가 신막리와 거문리에 분리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1958년에 서흥읍을 화곡리로 강등하고, 신막리와 평산군의 물개리 일부를 병합하여 서흥읍으로 개편하였다. 동시에 평산군의 양암리를 흡수하였다. 1963년에 화봉리의 일부가 대평리에 편입되었고, 1967년에 신당리의 일부가 운천리에 흡수되었으며, 1974년에 천곡리가 남한리와 청포리에 분리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1981년에 당현리를 은정리(恩情里)로 개칭하였으며, 1989년에 삼천리가 일부 지역을 문무리에, 수곡리가 일부 지역을 범안리에 각각 편입하고 은정리와 함께 봉산군에 이관되었다. 2002년 10월 현재 행정구역은 1읍(서흥읍), 20리(가창리, 거문리, 고성리, 금릉리, 남한리, 대평리, 낙촌리, 문무리, 백암리, 범안리, 봉하리, 송월리, 신당리, 양사리, 양암리, 운천리, 자작리, 청포리, 화곡리, 화봉리)로 구성되어 있다. 서흥군 소재지는 서흥읍이다.[5]

산업[편집]

서흥군의 경제는 지방공업과 농산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공업은 주로 식료품, 일용품, 종이, 제약 공업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여기에는 전후에 발족한 식료품공장, 토기공장, 철제일용품공장, 종이공장, 제약공장, 화학공장, 기계공장 등이 기본을 이루고 있다. 식료품공업은 지방공업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밖에 약품, 철제일용품, 수지일용품, 목재일용품, 초물일용품, 화학일용품 등 제품이 산출되고 있다.

농경지는 군 전체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는데, 농경지에서 밭이 76%, 이 12%, 과수밭이 8%, 뽕밭이 3%이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벼, 콩, 팥, 담배 등이 있다. 벼는 주로 서흥강 유역의 거문리, 화곡리, 범안리, 문무리 일대에서, 옥수수는 봉하리, 낙촌리, 운천리 일대에서 산출되고 있다.

과수업에서는 사과, 배, 복숭아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 사과가 54%, 배가 18%, 복숭아가 11%를 차지한다. 이밖에 포도, 대추, 살구, 단버찌 등 과일도 산출되고 있다. 특히 집집마다 대추나무를 심어 마을마다 대추동산으로 만들어 황해북도에서 대추나무밭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되었다. 축산업에서는 주로 양, 소, 염소, 돼지, 닭 등을 사육하고 있는데, 그 중 양의 사육량은 황해북도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양봉업도 발달되어 있는데, 송월리, 자작리, 백암리를 비롯한 정방산줄기와 멸악산줄기 일대의 리들에서는 꿀벌을 많이 치고 있다.[6]

교통[편집]

평부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서흥역(瑞興驛), 문무리역(文武里驛), 석현역(石峴驛) 등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망은 평부선과 병행하여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서흥~인산, 서흥~신계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서흥~인산, 서흥~문무, 서흥~화곡, 서흥~수안, 서흥~신계, 서흥~운천 간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황해북도 소재지인 사리원시까지는 철길로 약 46km, 도로로 약 50km이다. 인산까지는 약 16km, 봉산까지는 약 40km이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서흥군〉, 《위키백과》
  2. 서흥군〉,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서흥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서흥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서흥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서흥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7.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서흥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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