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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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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군 위치

신계군(新溪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 중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신계군의 면적은 721.80km²이며 인구는 78,573명(2008)이다. 북쪽은 수안군곡산군, 서쪽은 서흥군평산군, 남쪽은 금천군토산군이다. 동쪽으로는 남북 방향으로 뻗은 마식령산맥을 경계로 강원도 (북)와 접한다. 동남~서북(중산리~대정리) 간의 길이는 39km이고, 남서~북동(침교리~태을리) 간의 길이는 26km이며, 도 전체면적의 7.63%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27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신계읍이다.

1396년에 고려시기의 편성된 신은현과 협계현을 통합하여 새롭게 개편되면서 신은현(新恩縣)에서 신자를 따고 협계현(俠溪縣)에서 계자를 따서 신계현(新溪縣)이라 하였다. 신은현은 백제 때부터 있던 사소올(沙所兀)이란 고을을 신라시기에 신은현으로 편성하였고, 협계현은 고구려 때 수곡성(水谷城)이란 고을을 고려시기에 협계현으로 개칭하였다.

남북분단 이후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행정구역이 거의 원래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나, 사지면 북반부는 수안군에, 촌면은 곡산군에 넘어갔다. 한편 신계는 기상청이 현재 북한지역 기상예보 서비스를 하고 있는 27곳(황해도에서는 4곳) 의 지점중 한 곳이다.

궁암리에는 고려 명종 때 조영한 북소궁터가 있다.[3]

자연환경[편집]

신계군의 동쪽에는 아호비령산줄기(阿虎飛嶺山-)가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고 서쪽에는 정방산줄기(正方山-)의 동쪽끝부분과 멸악산줄기(滅惡山-)가 북남방향으로 놓여 있다. 전반적 지역은 현무암대지와 물결모양의 낮은 구릉성산지로 되어 있는데, 신계군의 거의 중심부에 예성강(禮成江) 골짜기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멸악산줄기에는 오봉산(五峯山, 643m), 복희산(福喜山, 576m)이 솟아 있고 아호비령산줄기에는 태을산(太乙山, 682m), 고주애산(高柱崖山, 754m), 각후봉(角後峯, 569m)이 강원도와의 경계를 이룬다. 북부에는 해발 200~300m의 넓고 평탄한 신계곡산벌(新溪谷山- · 미루벌)이 전개되어 있는데, 그 면적은 420km2이며 대부분이 신계군에 속하여 있다. 이밖에 마산벌(馬山-) 등 작은 벌들이 있다.

신계군은 사리원-서흥요함대의 동쪽끝부분과 이천돌출대의 서쪽끝부분을 포괄하고 있으며 중심부위를 예성강단열대가 통과하고 있으므로 지질구조가 비교적 복잡하다. 침교리, 능수리, 지석리, 원교리, 정봉리, 태을리 일대를 포괄하는 미루벌의 넓은 지역은 보천통현무암층에 덮여 있다. 신계군에는 몰리브덴, 동, 납, 아연, 철, 티탄, 석면, 초무연탄, 이탄 등 지하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기후는 대륙성기후를 보이고 있다. 연평균기온은 9.5℃, 1월 평균기온은 -7.3℃, 8월 평균기온은 23.9℃, 10℃이상 적산온도는 3,598℃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225mm이다. 7월과 8월 두 달 사이에 내리는 강수량은 668.1mm로서 연강수량의 54.5%이다. 첫서리는 10월 8~10일에, 마감서리는 4월 26~28일에 내린다. 기본 바람은 북서풍이고 연평균풍속은 2.2m/s이다.

영역 내로는 예성강과 그 지류들인 대평천(大坪川), 지석천(支石川), 신계천(新溪川), 고신은천(古新恩川)이 유입되어 있는데, 길이가 5km 이상인 하천이 18개이다. 신계군 영역의 32.8km 구간에서 예성강이 흐르고 있고 신곡저수지(新谷貯水池)를 비롯하여 10여 개의 저수지가 있다. 침교리에는 위병에 효과가 좋은 침교약수(砧橋藥水)가 있다.

산림은 신계군 전체면적의 60%를 차지하고 있는데 소나무, 창성잎갈나무, 잣나무, 리기다소나무, 잎갈나무, 전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자작나무, 박달나무, 사시나무, 사스래나무, 물푸레나무, 고로쇠단풍나무, 오리나무, 피나무, 진달래, 철쭉, 산초나무, 생강나무, 개암나무 등이 분포되어 있다. 은점리 일대에는 희귀한 식물인 일본목련군락(黃木蓮群落)이 있다.[4]

역사[편집]

신계군 지역에서 아직까지 원시시대의 유적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들이 다량으로 발굴된 것으로 보아 신계군 지역에서도 인류가 생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으로 되어 사소올(沙所兀)과 매차홀(買且忽)로 불렸다. 후에 고구려의 판도로 되어 매차홀은 수곡성(水谷城)으로 개칭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사소올은 신은현(新恩縣)으로 되었고, 수곡성도 현으로 되었다. 고려시대에 수곡성은 협계현(俠溪縣)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선 후 1396년에 신은현과 협계현을 통합하면서 신은현에서 ‘신’자를 따고 협계현에서 ‘계’자를 따서 신계현이라 하였다.

1895년에 23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개성부(開城府) 신계군으로 되어 중부방(中部坊), 동리방(東里坊), 고도산방(孤道山坊), 수회방(水回坊), 다원방(多院坊), 율탄방(栗灘坊), 서리방(西里坊), 마지곡방(麻之谷坊), 여배이방(余背耳坊), 적암방(赤岩坊), 사이곡방(沙伊谷坊), 지파막방(芝坡幕坊), 채촌방(菜村坊) 등 13개 방을 두었고 1896년에 다시 13도제(道制)를 실시하면서 황해도 신계군으로 되어 방을 폐지하고 중면(中面), 동면(東面), 적면(赤面), 여면(余面), 수면(水面), 마면(麻面), 서면(西面), 사면(沙面), 지면(芝面), 고면(古面), 다면(多面), 촌면(村面), 율면(栗面) 등 13개 면을 개편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토산군(兎山郡) 미원면(美原面)을 흡수하고 중면과 동면을 병합하여 중동면(中東面)으로, 적면과 여면을 병합하여 적여면(赤余面)으로, 수면과 미원면을 병합하여 미수면(美水面)으로, 마면과 서면을 병합하여 마서면(麻西面)으로, 사면과 지면을 병합하여 사지면(沙芝面)으로 각각 개편하였다. 1917년에 중동면을 신계면으로 개칭하였고, 1939년에 다면 일부와 율면을 병합하여 다률면(多栗面)으로, 다면의 나머지 일부와 미수면을 병합하여 다미면(多美面)으로 각각 개편하였다.

1952년 12월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사지면의 4개 리를 수안군에, 촌면을 곡산군에 각각 편입하고, 신계군의 고면, 다미면, 다률면, 마서면, 적여면의 전체 리와 사지면의 6개 리를 병합하여 황해도 신계군을 새로 구성하였는데, 이때 신계면의 향교리 · 회동리 · 성북리를 병합하여 신계읍(新溪邑)으로, 신계면의 마산리 · 석정리와 고면 직동리를 병합하여 마산리(馬山里)로, 신계면의 능수리와 사지면 태봉리를 병합하여 능수리(陵水里)로, 고면의 태을리와 입암리를 병합하여 태을리(太乙里)로, 고면의 천개리와 무고리를 병합하여 천개리(天開里)로, 고면의 정봉리와 화개리를 병합하여 정봉리(丁峯里)로, 고면의 왕당리 · 화천리 · 성내리를 병합하여 왕당리(汪塘里)로, 다미면의 중산리와 효자리를 병합하여 중산리(中山里)로, 다미면의 금성리와 백오리를 병합하여 금성리(金城里)로, 다미면의 추천리 · 무시랑리 · 백암리를 병합하여 추천리(楸川里)로, 다미면의 신성리 · 강성리 · 지리를 병합하여 신성리(新星里)로, 다미면의 부용리와 사암리를 병합하여 부용리(芙蓉里)로, 다미면의 가무리와 다률면 삼미리를 병합하여 가무리(歌舞里)로, 다률면의 백곡리 · 죽루리 · 송릉리를 병합하여 백곡리(白谷里)로, 다률면의 침교리 · 구만리 · 반시리를 병합하여 침교리(砧橋里)로, 마서면의 구락리 · 초탄리 · 증영리를 병합하여 구락리(龜洛里)로, 마서면의 번지리와 삼거리를 병합하여 지석리(支石里)로, 마서면의 은점리와 갈현리를 병합하여 은점리(銀店里)로, 마서면의 천곡리와 신촌리를 병합하여 천곡리(泉谷里)로, 적여면의 대정리 · 목전리 · 삼합리를 병합하여 대정리(大井里)로, 적여면의 화야리와 우암리를 병합하여 화야리(花野里)로, 적여면의 사정리와 신대리를 병합하여 사정리(沙井里)로, 적여면의 대평리 · 승평리 · 흑천리를 병합하여 대평리(大坪里)로, 사지면의 화성리 · 주답리 · 막대리를 병합하여 화성리(花城里)로, 사지면의 굴원리와 원교리를 병합하여 원교리(院橋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4리를 관할하였다.

1954년 10월에 황해북도 신계군으로 개편되면서 마산리 일부가 왕당리와 백곡리에, 왕당리 일부가 마산리에, 금성리 일부가 중산리에 각각 편입되었고, 1961년 3월 원교리 일부가 능수리에, 침교리 일부가 구락리에 각각 흡수되었다. 1963년 11월에 화성리 일부와 원교리 일부를 분리하여 대성리(大成里)를 신설하였다. 1965년 1월에 대성리 일부가 곡산군 해포리에 편입되고 7월에 곡산군 해포리가 신계군으로 이관되었다. 1967년 10월 대성리 일부로 신흥리(新興里)를 신설하고 능수리 일부가 신계읍, 마산리, 지석리에 각각 편입되었다.

2002년 10월 현재 행정구역은 1읍(신계읍), 27리(가무리, 구락리, 금성리, 대성리, 대정리, 대평리, 능수리, 마산리, 백곡리, 부용리, 사정리, 신성리, 신흥리, 왕당리, 원교리, 은점리, 정봉리, 중산리, 지석리, 천개리, 천곡리, 추천리, 침교리, 태을리, 해포리, 화성리, 화야리)로 구성되어 있다. 신계군 소재지는 신계읍이다.[5]

산업[편집]

신계군의 경제는 중앙공업과 지방공업, 농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업에서는 채굴공업과 지방원료원천에 기초한 지방공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중앙공업에서 채굴공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방공업은 식료품, 일용품, 화학, 피복, 직물, 편직, 제약, 도자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공업생산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식료품공업으로서 간장, 된장, 기름, 과일가공품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방직 및 피복 공업은 식료품공업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용품공업에서는 철제일용품, 수지일용품, 목재일용품, 초물일용품, 문화용품이 산출되고 있다. 신계군에서 생산하는 왕골주단, 초물방석, 돗자리 등은 질이 좋아 널리 알려져 있다.

신계군은 황해북도 내에서 곡물 생산비중이 높으며 특히 옥수수가 많이 생산되는 군의 하나이다. 미루벌에서만도 전후에 3,600여 정보의 농경지를 개간하였으며 남강-미루벌물길공사가 완공됨으로써 미루벌 안의 2만 여 정보의 농경지에 관개용수를 충분히 보장하게 되었다. 농경지에서 논이 24%, 밭이 66%, 과수밭이 6%, 뽕밭이 2%를 차지하는데 주요 농산물은 벼, 옥수수, 콩, 수수, 팥, 메밀, 감자 등이 있다.

과수업에서 사과(64%), 배(21%)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 복숭아, 포도, 자두, 살구, 대추도 일정한 비중을 차지한다. 축산업은 군의 농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해포리와 백곡리의 규모가 큰 목장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목장이 있는데 주로 소, 돼지, 양, 염소 등 가축을 사육하고 있다.

이 밖에 양봉업도 발달되어 있다. 신계군은 신곡저수지(新谷貯水池), 해포저수지(海浦貯水池), 왕당저수지(汪塘貯水池)를 비롯한 저수지와 양어장들을 이용하여 잉어, 붕어, 빙어, 기념어(백련) 등을 많이 양식하고 있다.[6]

교통[편집]

청년이천선(靑年伊川線)이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신계, 침교, 정봉 등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망은 평산, 토산, 곡산, 수안, 서흥, 이천(강원도)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다. 신계~수안, 신계~서흥, 신계~평산, 신계~토산, 신계~곡산, 신계~판교(강원도) 간 그리고 신계읍과 구락, 천곡, 은점, 지석, 대평, 화야, 사정을 비롯한 신계군안의 여러 지역 간의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황해북도 소재지인 사리원시까지는 60.8km이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신계군〉, 《위키백과》
  2. 신계군〉,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신계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신계군 자연 〉,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신계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신계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7.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북도 신계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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