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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크루즈 (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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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크루즈
산타크루즈 위치

산타크루즈(스페인어: Santa Cruz)는 볼리비아 동부 산타크루스주에 있는 주도이다. 공식 명칭은 산타크루즈 데 라 시에라(스페인어: Santa Cruz de la Sierra)이며 인구는 약 187만 명으로 볼리비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산타크루즈 메트로폴리탄 지역은 볼리비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집적지로 인구는 약 240만 명이다.[1]

개요[편집]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 국토의 중앙부의 해발고도 400m 지점, 아마존강 수계에 속하는 피라이강 연안에 위치한다. 수크레에서 북동쪽으로 290km 떨어져 있으며 볼리비아 국내 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경제 중심지이다. 시 전체는 23개의 구(distrito)로 구획되어 있으며 각 구는 1~23까지의 번호가 붙어 있다. 전형적인 열대 기후 지대에 속하며, 하절기에는 비가 많고 무더우나, 동절기(6월~8월)에는 기온이 약간 내려가고 건조하여 쾌적하다. 1561년 스페인의 식민 도시로 건설되었고, 오랫동안 볼리비아 동부의 열대 저지대 지방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 부근에서 생산되는 열대 작물의 집산지이며, 서부의 고원 지대에 비해 고립된 위치에 있으면서 주민은 본래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여 볼리비아 서부와는 사회, 경제적인 상황이 다소 다르다. 브라질로 통하는 교통로가 개발되고, 부근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이 도시는 더욱 크게 발전하였으며 서부의 원주민이나 메스티소도 많이 이주해 오면서 최근 수도 라파스를 제치고 볼리비아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서부 고원 지대에 비해 발달한 이곳은 최근 서부 고원 지대에 반발하여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주변 농업 지대에서 산출되는 사탕수수, 쌀, 커피의 집산지로 발달하다가, 1954년 브라질의 코룸바까지 철도가 통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주민은 대부분 백인이며, 볼리비아에서 메스티소(혼혈)가 가장 적은 도시이다. 근교에서 유전이 개발되었으며, 제당 ·정유 등의 공업도 행하여진다. 볼리비아의 허브 공항인 비루비루 국제공항이 위치하고 있다. 주요 교육 기관으로는 1880년 설립된 공립 대학인 가브리엘르네모레노 자치대학교(Universidad Autónoma Gabriel René Moreno)를 비롯해 여러 개의 대학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산타크루즈는 내륙 국가인 볼리비아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지점에 위치한다. 안데스 산지의 동쪽 사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평균 고도는 해발 416m이다. 시의 서부는 안데스 산지의 동쪽 사면에 해당하며 북부와 동부는 그란차코(Gran Chaco)라 부르는 열대 저지대이다. 서쪽으로 피라이(Pirai) 강이 지나며, 동쪽 외곽에는 그란데(Grande) 강이 흐르고 있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산타크루스는 열대 사바나 기후(Aw)이다. 연평균 기온은 23℃이며, 최난월 기온은 26~28℃에 이르고, 최한월 기온도 20℃ 안팎으로 연중 온난하다. 겨울철에는 남쪽의 팜파스 지대(주로 아르헨티나 영토)에서 수라소스(Surazos)라는 찬바람이 불어오기도 한다. 열대 우림 기후에 비해 강수량이 적어 연평균 강수량은 912㎜이며, 강수는 여름철에 집중되고 겨울철에는 강수량이 적다.

역사[편집]

산타크루즈는 본래 원주민이 그리고타(Grigotá)라고 부르던 곳이었다.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인 1561년 에스파냐 군인 출신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 식민 통치에 공을 세운 군인이나 탐험가에게 하사한 작위) 뉴플로 데 차베스(Ñuflo de Cháves, 1518~1568)가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고, 자신의 고향 지명을 따서 산타크루스데라시에라(Santa Cruz de la Sierra, ‘언덕의 성스러운 십자가’라는 뜻)라고 이름 붙였다. 1573년에 에스파냐의 식민지 관련 법규인 인도 법령(Leyes de Indias)에 따라 광장을 중심으로 한 격자형 시가지가 건설되었다.

볼리비아는 크게 알티플라노(Altiplano) 고원을 포함하는 서부와 열대 저지대인 그란차코(Gran Chaco)를 포함하는 동부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지형이나 기후뿐만 아니라 자원과 경제활동, 인구 등에서도 차이를 가져왔으며, 나아가 볼리비아의 역사 및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해발 2,000~4,000m에 달하는 서부의 고산 지대는 은, 주석 등의 광산 자원이 풍부한 데다 온화한 기후로 생활하기에 유리하였다. 때문에 일찍부터 에스파냐 인들이 라파스, 수크레 등의 전통적인 도시들을 서부 고원 지대에 세웠으며, 이들 도시에서 광산 등을 관리하며 생활했다. 반면에 산타크루즈가 위치한 동부는 안데스 산지의 동쪽 사면이나 열대 저지대로 농업이 중심 산업이었고 도시의 발달이 미약하였다.

산타크루즈는 또한 20세기 전반까지는 농업이 주로 이루어지던 내륙 저지대의 고립된 소도시에 불과하였다. 사탕수수, 쌀, 목재 등 동부의 열대 저지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임산물의 집산지 기능을 하기는 했지만, 라파스, 수크레 등 볼리비아의 전통적 대도시에 비교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1950년까지만 하더라도 산타크루즈의 1인당 GDP는 볼리비아 전국 평균치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고원에 위치한 몇몇 대도시의 지배층이 주도하던 봉건적 사회의 성격이 강했던 볼리비아에서 산타크루즈와 같은 저지대 지역은 차별 대상이었다.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 혁명으로 봉건사회의 잔재가 대부분 해체되는 1950년대 이후부터 급격히 성장하였다. 1940년대 3만 명을 조금 밑돌던 인구가 1950년대에는 5만 명 전후로 성장하였고,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성장하여 1990년대 초에는 약 70만 명, 2010년에는 165만여 명을 기록하였다.

산타크루즈의 급격한 성장의 시발점이 된 1952년 볼리비아 혁명은 전근대적인 지주 제도와 주석 산업의 독과점이라는 볼리비아의 폐단을 종식시키고, 볼리비아 사회의 민주화와 현대화 및 지방 자치제 도입을 촉발시킨 계기를 마련했으며, 이를 통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볼리비아 국내에서 차별받던 저지대의 개발이 본격화될 수 있었다. 혁명 이후 볼리비아 정부는 당시까지 낙후되고 차별받던 동부 저지대의 개발과 현대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 사업에 착수했다. 이는 산타크루즈가 낙후된 촌락에서 대도시로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50~1960년대에 걸쳐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성장해 가던 산타크루즈는 1970년대 수아레스(Hugo Banzer Suárez)의 집권과 더불어 급속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군사 정권의 수반이었던 수아레스는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저지대 도시 계획을 측근의 손에 맡기는 한편 지역 엘리트들을 포섭했고, 이 과정에서 산타크루즈는 도시 계획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빠르게 성장하였다. 이에 따라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 농산물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각종 산업 시설 및 도시 기반도 구축되었다.

1980년대 이후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 경제, 특히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의 견인차와 같은 역할을 한 도시로 평가되고 있다. 1990년대 그란차코 지역에서 천연가스 매장지가 발견되면서 도시의 발전이 한층 가속화되었으며, 오늘날에는 명실상부한 볼리비아 제1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3]

경제[편집]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 국내 총생산(GDP)의 30%를 담당하는 경제의 중심지이다. 1인당 총생산이 볼리비아 전체의 평균치보다 23%나 높다.

1990년대에 산타크루즈 인근에서 발견된 대규모의 천연가스 매장지는 산타크루즈의 경제적 성장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함께 발견된 볼리비아 남부의 타리하(Tarija)에 있는 매장지와 규모를 합치면, 매장량이 남아메리카 2위를 기록할 정도이다. 이후 천연가스는 산타크루즈의 주력 산업이 되었고, 외국인 투자도 대거 유치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 경제의 중심지로 급속히 성장하였다.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 농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20세기 중엽 이후 볼리비아의 저지대에서 농지 개발과 농업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산타크루즈에서도 농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를 거치면서 산타크루즈와 인근 지역에서는 농지 개간이 활발하였고, 이는 인구 유입이 일어나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도시의 성장에 기여했다. 오늘날 산타크루즈는 볼리비아의 농산물 유통과 농업 관련 산업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산타크루즈의 상업적 농업 생산량은 볼리비아 전체 생산량의 42%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높다.[4]

교통[편집]

볼리비아의 허브 공항인 비루비루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Viru Viru)이 있다. 라파스와 수크레 모두 해발 3,000와 4,000m나 되는 고산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항공기가 이·착륙하기에 불리한 여건이기 때문에 수도는 아니지만 해발고도가 낮은 비루비루 국제공항이 국가의 허브 공항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비루비루’가 토착어인 과라니(Guaraní) 어로 ‘평지’라는 뜻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볼리비아에서 차지하는 이 공항의 위상과 지리적 특성 사이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시내에서는 버스택시를 이용할 수 있으며, 철도도 부설되어 있다. 지하철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관광[편집]

산타크루즈 중심부의 ‘9월 24일 광장(Plaza Metropolitana 24 de septiembre)’은 산타크루즈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광장 옆에는 시 청사, 대성당, 관광문화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대성당은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성당이지만, 오늘날의 건물은 19세기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하여 개축한 건물이다.

시내에 위치한 도심공원(Parque Urbano)은 산타크루즈의 대표적인 공원이며, 공룡 모양의 조형물로 장식되어 있다. 시 북부의 리베로 주교 거리(Avenida Monseñor Rivero)는 산타크루스의 대표적인 번화가이다. 노엘켐프메르카도 남아메리카 야생동물원(Zoológico de Fauna Sudamericana Noel Kempff Mercado)에서는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야생 동물을 볼 수 있으며, 이 동물들은 야생과 최대한 유사하게 조성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시내에서는 매년 12월마다 축제가 열린다.

산타크루즈를 흐르는 피라이강 또한 휴양지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여름이 되면 강변에서 물놀이, 캠핑 등을 즐기려는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산타크루스데라시에라〉, 《위키백과》
  2. 산타크루스(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산타크루즈데라시에라〉, 《요다위키》
  4. "Santa Cruz de la Sierra", Wikipedia
  5. 산타크루스의 주요 관광 자원〉,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국가
남아메리카 도시
남아메리카 지리
남아메리카 섬
남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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