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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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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그림 '주사거배'. 간송미술관 소장
일본의 타치노미

선술집은 쉽게 말하면 서서 마시는 술집을 뜻한다. 술청, 즉 바(bar)에 서서 술을 마시는 집. 작정하고 앉아서 떡이 되도록 마시는 집이라기 보다는 잠깐 간단히 한잔 하고 가는 술집이라고 보면 적절하다. 목로주점이라고도 한다. 술만 마시거나 간단한 스낵 안주 정도를 앞에 놓고 마시는 게 보통이다.

선술집은 원래 우리 술 문화 중의 하나였다. 주로 거친 일에 종사하는 막노동자들의 주점으로 선술집이 있었다. 일하다가 탁주 한 잔 마실 수 있었다. 왕대포라는 말이 원래 커다란 바가지라는 뜻이다. 장터나 도시 뒷골목에서 서서 먹는 집이 많았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더 퍼져나갔다. 일본에서 다치노미야, 즉 ‘서서 마시는 술집’ 문화도 함께 상륙했기 때문이다. 선술집은 유럽에도 아주 흔하다. 동네 ‘바’에서는 대낮부터 서서 와인이나 독한 술 한 잔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스탠드바라는 술집의 원형이 바로 이것이다. 문자 그대로 스탠드, 서서 마시는 것이다.

상세[편집]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에 백성부터 관리까지 즐겨 이용했던 술집의 한 유형으로, 반드시 서서 마셔야 했으며 앉아서 마시면 건방지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조선의 선술집은 술값만 받고 안주값은 따로 받지 않았으며 안주를 손님이 마음대로 집어먹을 수 있도록 했다.

신윤복의 <주사거배>는 이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주사거배(酒肆擧盃)'란 '술집에서 술잔을 들다'는 뜻으로, 솥이 있는 아궁이를 바 삼아서 술잔을 놓고 서 있는 손님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술 한 잔을 팔면 안주가 딸려나오는 식으로 영업을 했다.

서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사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선술집 형태의 포장마차가 많았다. 분식 포장마차처럼 의자 자체가 없는 형태로, 소주를 잔 당으로 파는 '잔술'은 당시 선술집의 특색이다. 퇴근길 소주 두세 잔에 안주를 집어 먹으며 몸을 녹이는 일용노동자들이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 고객이었다.

이런 역사적인 부분을 미처 모르고 의자조차 없이 술을 마시는 술집은 없으니 어원이 잘못되었다며 지적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 비슷한 이치로 현대에는 이러한 술집이 없다는 부분이 후술할 오역의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일본 기타큐슈는 규슈의 최북동단에 있는 도시다. 부산에서 아주 가깝다. 전형적인 공업도시다. 주머니 가벼운 노동자들이 많이 산다. 이들이 고된 노동을 씻어내고 한잔 가볍게 할 수 있는 술집이 번성했다. 정식 술집도 있지만, 주류판매상 한쪽에서 가볍게 서서 마시는 문화로 발전했다. 이를 ‘가쿠우치’라고 부른다. 현재 인구 100만명의 이 도시에서 가쿠우치라고 부르는 집이 150곳이 넘는다고 한다. 술이 아주 싸고 안주도 대개 낱개로 포장된 싸구려 건어물이나 땅콩, 여러 가지 통조림을 그대로 따서 먹는다. 일본은 이런 문화를 잘 포장하고 열심히 홍보한다. 선술집 문화를 그리워하는 한국인 관광객에게도 크게 어필하고 있다고 한다.

선술집[편집]

선술집이 허름한 것이 특징이지만, 허름한 술집 모두가 선술집은 아니다. 반드시 서서 마셔야 선술집이다.

본디 서울에는 선술집이 없었지만, 18세기 초 청나라의 영향으로 생겨났다는 설, 내외주점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설, 일제강점기에 나타났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모두 정확하지 않다. 선술집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선술집이 일제강점기에 '경성의 명물'인 것만은 틀림없다. 1929년 무렵만 해도 개성이나 수원, 인천, 춘천 같은 몇몇 도시에만 선술집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유일한 연회장이며 사교장"이 바로 선술집이다. "체면은 걷어치우고 별의별 놈팡이들이 뒤섞여 왁자지껄 떠들 수 있어서" 인기가 높았다. 선술집은 한 잔 술에 안주 하나를 곁들여 5전씩 받았다. 5전이라고 하면 종로에서 남대문까지 가는 전차 삯이었고, 가난한 사람이 피우던 '마코' 담배 한 갑 가격이었으며, 우동 한 그릇 값이었다. 안주를 거저 준다고 해서 얕잡아 보면 큰코다친다. 선술집 안주와 음식은 뭇사람에게 호평을 받았다.

"음식집치고는 가장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으며, 안주를 소담스럽게 괴어놓은 것은 누구나 비위가 동하고 좋게 보았다." 목로술집, 즉 선술집을 즐겨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안주 때문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너비아니와 갈비까지 있었다. 큰 솥에서는 추어탕, 선짓국, 갈빗국 등이 펄펄 끓었다. 선술집은 술을 팔되 안주만으로도 간이 음식점 역할을 하고도 남았다. 선술집은 여러 가지 안주를 갖추었지만, 특색 있는 안주만 전문으로 하는 집도 있었다. 보기를 들어 빈대떡이 주요 메뉴라면 아예 선술집 이름을 '빈대떡집'이라고 짓기도 했다. 선술집은 저마다 특색이 있어서 한 번에 네댓 군데를 돌아다니며 마시기도 했다.

현재[편집]

일본에서는 간사이 지방에 선술집 문화가 아직 남아 있으며, 간토 지방을 비롯한 타 지방에도 센베로(1000엔 이하로 간단히 마실 수 있는 형태의 음주)가 중심이 되는 술집에는 선술집 문화가 남아 있다. 이들은 '타치노미(たちのみ, 立ち飲み 또는 立ち呑み)' 또는 '카쿠우치(角打ち)'라고 불리는데, 일반적으로 술집이라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주점 방식의 선술집은 타치노미라 하며, 술을 사갈 수 있는 주류 매장 안에 한 켠에 서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은 카쿠우치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중년층 이상의 샐러리맨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주머니 가벼운 샐러리맨들이나 관광객들이 와서 한 잔 하고 가기도 한다.

우리도 선술집 문화가 아직은 남아 있다. 광주 양동시장 함평왕대포라는 막걸리집에서 서서 마시는 노인들이 보였다. 여수에도 교동시장 한쪽에 남면집이라는 선술집이 있었다. 안주를 안 시켜도 그만, 시키면 손맛 살아 있는 수수한 요리가 나온다. 구례에는 동아식당이라고 전설적인 선술집이 있다. 외지인들이 많이 오지만, 여전히 현지 노동자들이 선 채로 막걸리 한 잔에 공짜로 주는 김치와 두부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난한 이들의 보금자리 같은 선술집 문화, 올라가는 가겟세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서울 같은 대도시가 서글퍼질 뿐이다. 주말에 또 대형 촛불집회가 열린다. 잠시 짬을 내어 종묘 순라길 쪽으로 가보시라. 노인들이 주 손님을 이루는 선술집이 서넛 있다. 아마도 서울의 마지막 선술집 타운이 아닐까 싶다.

대폿집[편집]

요즈음 옛 정취를 지닌 간이주점을 흔히 대폿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본디 대폿집이란 '서서 먹는 선술집' 가운데 안주가 없는 술집이었다. 포(匏)란 표주박이다. 따라서 대폿집이라고 하면 큰 그릇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벌컥벌컥 마시는 술집이다. 안주도 주지 않는데 왜 대폿집을 갔을까? 대폿집은 안주가 없는 대신 술을 갑절이나 더 주었고 술맛도 좋았다. "5전 한 푼 던지고 막걸리 한 잔 먹고 김치한 쪽 씹으며 나가서 지게 품을 파는 패들이 들끓는 곳", 바로 그곳이 대폿집이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한다 하는 술꾼은 대폿집에 가서 열 잔 스무 잔씩 마시기도 했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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