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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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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후스
오르후스 위치

오르후스(덴마크어: Århus/Aarhus)는 덴마크윌란반도(유틀란트반도) 미튈란 지방에 위치한 덴마크 제2의 도시이자 주요 항구도시이다. 오르후스는 윌란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오르후스 자치체의 행정 중심지로 '윌란반도의 수도'라고 비공식적으로 언급된다. 2017년 오르후스는 사이프러스(Cyprus)의 도시 파포스(Paphos)와 함께 유럽의 문화 수도로 선정되었다.[1]

개요[편집]

오르후스는 덴마크의 유틀란트반도 동부에 있는 오르후스주의 주도이며 수도 코펜하겐에 버금가는 대도시이다. 코펜하겐에서 북서쪽으로 187km, 독일 함부르크에서 북쪽으로 289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덴마크의 지리적 중심인 유틀란트반도의 동쪽 해안 오르후스강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오르후스는 비즈니스지역 오르후스와 동부 유틀란트 수도권 지역의 중심 도시다. 오르후스의 역사는 8세기에 바이킹 정착지로, 적어도 948년부터 주교가 기록한 최초의 서면 기록에서 나타났다. 이 도시는 천연 항구의 피오르드 북쪽 해안에 세워졌고, 수세기 동안 농산물의 해상 무역으로 성장해왔다. 1441년에 시장 도시의 특권이 부여되었지만, 17세기 스웨덴 전쟁 당시 도시가 봉쇄와 폭격을 겪으면서 성장이 정체되었다. 19세기에 오르후스는 슐레스비히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독일군에 의해 두 번 점령되었지만 파괴는 면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덴마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오르후스는 항구로서의 지리적 입지 덕분에 무역 및 운송업이 발달했으며, 현재는 지식 및 서비스 산업이 두드러지게 발전하였다. 오르후스는 덴마크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갖고 있는 오르후스 대성당으로 유명하며 그 외에 오르후스 대학교를 비롯한 각종 대학들이 몰려 있어 교육도시로도 유명하다. 2017년에는 1971년 퇴출된 노면전차도 다시 개통되었는데, 오르후스뿐 아니라 덴마크에서 다시 노면전차가 운행되는 기록을 세웠다.[2]

명칭[편집]

오르후스라는 명칭은 오르후스강 하구에 있는 도시의 위치에서 유래한다. 오르후스(Aarhus)의 철자는 1406년에 처음 만들어져 17세기가 되면서 표준이 되었다. 발데마르(Valdemar)왕의 인구조사서(1231년)에서는 오루스(Arus)라고 불렸고, 아이슬란드어로는 오로스(Aros)라고 불렸으며, 이후에 오르스(Aars)라고 쓰여졌다.

지리[편집]

오르후스만은 해안에서 꽤 가까운 10m 깊이의 천연 항구를 제공한다. 오르후스는 피오르의 입구에 세워졌지만, 자연적인 침전물 때문에 현재의 오르후스강과 브라브란(Brabrand)호로 점차 좁혀지면서 기존의 피오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르후스 주변의 땅은 한때 숲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중 남아 있는 것은 남쪽의 마르셀리스보르(Marselisborg)숲과 북쪽의 리스코(Riis Skov)의 일부에 존재한다. 오르후스에서 가장 높은 곳은 호이비에르(Højbjerg) 남부 지역에 위치한 해발 128m의 엘시오이(Jelshøj)다. 그 언덕 꼭대기에는 지역의 신화와 전설로 뒤덮인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편집]

오르후스의 역사는 오르후스강 입구에서 시작되었다. 무역에 있어서의 엄청난 잠재력과 뛰어난 위치로 인해 바이킹은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강의 입구'는 그 당시 덴마크어로 오로스(AROS)였고 현재의 오르후스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바이킹시대 동안 강을 따라 북쪽으로는 임메르바(Immervad)까지, 그리고 아래로는 멜가데(Mejlgade)거리까지 집을 무리 지어 지었으며 이는 흙으로 지은 성벽과 해자로 둘러쌓인 작은 도시 사회가 되었다.

1201년에는 대성당의 초석이 놓였고 도시는 원래 지역 바깥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1546년 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세 시대에는 대성당 주변의 도시 생활이 마을의 중심 요소였다. 개혁이 일어난 후 큰 상인들의 집은 점차 마을의 생활과 무역의 중심축이 되기 시작했고,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오르후스의 규모로 커지기 시작했다.

1847년 항구의 대규모 확장이 시작되었다. 작업은 1861년 완료되었으며, 이는 마침 1862년 유틀란트 반도와 라네르스(Randers) 마을을 잇는 철도 노선 중 첫 구간이 뚫리는 시기와 일치하였다. 따라서 오르후스는 상품과 운송을 위한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는 오르후스가 두 번째로 큰 항구를 가진, 덴마크의 제2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1940년 4월 9일 나치 독일은 덴마크를 침공하고 10일 오르후스를 점령하였다. 1945년 5월 5일 덴마크에 주둔한 독일군은 항복하고 5월 8일 영국군이 오르후스에 진입하였다.[3]

기후[편집]

오르후스는 온대 해양성 기후다. 대서양과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높은 고도로 비교적 습도가 높다. 연평균 강수량은 722mm에 이른다. 오르후스의 일반적인 날씨는 덴마크의 다른 지역과 비슷하다. 단, 이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과 내륙의 호수-강으로 인해 봄이 좀 더 일찍 찾아온다. 봄의 주간 평균 기온은 3월 10 °C, 5월 15 °C이고 밤에는 7 °C까지 떨어진다. 여름에는 비가 꽤 내리며 강수량이 점차 증가한다. 주간 평균 기온은 15~17 °C이며, 때때로 23 °C까지 오르기도 한다. 여름철 일광시간은 하루 최대 17.5시간이다.

가을의 중요한 날씨 변화는 10월에만 일어난다. 낙엽이 지고 낮 평균 기온은 7~12°C 정도다. 11월이 되면 밤에 서리가 잦아져 더욱 추워진다. 게다가 오르후스의 가을은 폭우가 잦은 시기이다. 겨울철 평균 기온은 -2°C~8°C 사이에 있다. 해안에서 습도가 높으면 가끔 안개가 끼거나 눈이 온다. 그러나 오르후스의 눈은 상대적으로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에 빠르게 녹는다. 그리고 거의 끊임없이 구름이 끼어 있다. 날씨 관측에 따르면 겨울의 1/3 정도만 화창하다.

경제[편집]

오르후스의 경제는 주로 지식 및 서비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오르후스 대학교와 대형 의료 산업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서비스 부문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으며 도시가 제조업에서 벗어나면서 성장하고 있다. 큰 항구와 철도망이 있어서 무역과 운송은 아직 중요한 부문으로 남아 있다. 제조업은 1960년대 이후로 느리지만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며, 농업은 오랫동안 자치체 내에서 미미한 분야였다.

시 당국은 17만 5천 개의 일자리의 본거지로서 민간 부문에서 약 10만 개의 일자리가 있고, 나머지는 주, 지역, 지방 자치제로 분산되어 있다. 외곽 지역에 대규모 농장이 많다. 사람들은 라네르스, 실케보르 및 스칸데르보르와 같은 먼 곳에서 오르후스로 통근하며, 오르후스 내에 직장을 두고 있는 사람들 중 거의 3분의 1은 인근 지역에서 이곳으로 통근한다. 오르후스는 북유럽과 발트해 연안의 소매 중심지로, 대형 쇼핑센터, 전국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 거리, 그리고 많은 전문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다.

취업 시장은 지식 및 서비스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큰 고용 분야는 의료 및 사회 서비스, 무역, 교육, 컨설팅, 연구, 산업 및 통신이다. 국가 평균보다 고소득 및 중간소득 일자리가 더 많고 저소득 일자리는 더 적다. 오늘날 오르후스에서 가장 큰 기업의 대다수는 무역, 운송 및 미디어 부문에 있다.

풍력산업은 오르후스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으며, 미트윌란의 더 큰 지역, 그리고 전국적으로는 이 산업의 수익 대부분이 오르후스 지역의 기업들에 의해 창출된다. 풍력 산업은 자치제 내에서 약 천명의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어 지역 경제의 중심 요소다. 주로 연구 및 개발에 주력하는 중소기업이 많은 이 도시에는 생명공학 산업이 잘 자리잡고 있다.

유럽 최대의 낙농그룹 중 하나인 알라 푸드(Arla Foods), 덴마크 최대의 소매업체인 단스크 슈퍼마크드(Dansk Supermarked), 생활용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세계적인 소매업체 유스크(Jysk), 세계 주요 풍력 발전용 터빈 개발업체 중 하나인 베스타스(Vestas), 그리고 몇몇 선도적인 소매 기업 등이 오르후스에 본사를 두고 있다. 덴마크 10대 기업들도 오르후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이래, 더 큰 기업들이 유틀란트 반도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이곳으로 유입되었다.[4]

교육[편집]

오르후스에는 오르후스 대학교, 오르후스 경제대학교, 오르후스 기술대학, 덴마크 언론학교, 왕립음악원, YIA 대학교, 오르후스 건축대학교, 오르후스 기술대학 등 유수의 고등교육기관이 밀집해 있다. 때문에 교육 기회가 매우 많으며 기술공학과 치의학에서부터 언어학과 신학에 이르기까지 접근성도 매우 넓다. 유수의 대학 평가기관 순위 자료에 따르면 오르후스 대학교는 세계 100대 대학교에 포함된다.

오르후스 대학교[편집]

오르후스 대학교(Aarhus University)는 덴마크의 오르후스(Aarhus)에 있는 대학교이며 덴마크에서 두 번째로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대학교이다. 1928년에 64명의 학생과 함께 사립 고등 교육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당시 덴마크의 유일한 종합 대학교는 코펜하겐 대학교뿐이었다. 1933년 9월 11일에 정식으로 개교했다. 1934년에 인문학부가 국가 승인을 얻음과 동시에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되었지만, 이 대학교의 학생들이 학위를 얻기 위해서는 코펜하겐 대학교에 가서 학업을 계속해야 했다. 1933년에 의학과, 1936년에 경영학과와 법학과, 1942년에 신학과, 1954년에 자연과학과, 1958년에 정치학과, 1968년에 심리학과가 개설되었다. 오늘날에는 약 50여 개 전공의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오르후스 시내에 위치한 대학교 캠퍼스는 1930년대 초반에 조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덴마크의 건축가인 카위 피스케르(Kay Fisker)와 묄러(C.F. Møller), 폴 스테그만(Poul Stegmann)이 공동으로 설계를 맡았다. 캠퍼스 북쪽에 있는 대학교 행정실 건물은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했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게슈타포의 사령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르후스 대학교는 코펜하겐과 헤르닝(Herning)에 각각 소규모의 대학교 캠퍼스를 두고 있다. 1997년에 이 대학교 출신이며, 교수인 옌스 스코우(Jens Christian Skou) 박사가 ATP 합성 효소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오르후스〉, 《위키백과》
  2. 오르후스(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오르후스〉, 《요다위키》
  4. 오르후스(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5. 오르후스 대학교(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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