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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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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국기
만주국 국장

만주국(Manchukuo, 중국어 정체자: 滿洲國, 병음: Mǎnzhōu Guó 만저우궈[*], 일본어: 満州国 만슈코쿠[*])은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 직후 동삼성(東三省)을 강제로 점령하여 만주 지역에 세운 괴뢰국이자 식민지이다.

개요

  • 수도: 신징(新京)
  • 면적: 1,133,437km²
  • 인구: 36,933,206명(1937년)
  • 공용어: 중국어, 일본어
  • 정치체제: 입헌군주제(명목상), 군부 독재(사실상)
  • 황제: 아이신 교로 푸이

역사

국호

만주국 외에 대만주국(大滿洲國), 만주제국, 대만주제국(大滿洲帝國) 등으로 만주국의 공문서에서도 일정하게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공식 국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주국'이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에서는 만주국이 일본 제국의 괴뢰정부였다는 뜻에서 위만주국(僞滿洲國), 약칭 위만(僞滿)이라고 낮추어 부르기도 한다.

건국과 멸망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1932년 1월에 장쉐량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진저우를 점령한 후 만주국 구상을 계획했다. 국제 연맹에서는 중화민국리튼 조사단을 파견하였으나 리튼 조사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만주국의 수도는 지금의 창춘신징을, 연호는 대동이라 했으며, 황제는 이전 청나라의 황제였던 푸이로 옹립했다. 1932년 9월에 일만의정서를 조인해 일본이 만주국을 정식으로 승인했으며, 이어 독일, 이탈리아, 교황청, 스페인, 헝가리 등 8개국이 정식으로 만주국을 승인했다. 1934년 9월 제정 수립으로 연호를 강덕으로 고쳤다. 만주국의 실세는 관동군 사령관, 경제는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맡았다. 만주국에는 군대도 있었으나 할힌골 전투 등에서 소련군에게 패하는 등 무능력했다. 만주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만주국 황제는 꼭두각시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명맥을 유지하다가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이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지역을 공격(만주 전략공세작전)함으로써 8월 18일 망하였고, 만주 지역을 점령한 소련은 같은 해 11월 해당 지역을 중화민국에 반환하였다.

건국의 배경

20세기 초 일본에서는 만주를 영향력 하에 두려는 제정 러시아의 남하정책이 일본의 국가 안전보장의 최대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1900년 러시아는 요시카즈단 사변으로 만주를 점령하고, 권익을 독점했다. 이것에 대항하여 일본은 미국 등과 함께 만주를 각국에 개방할 것을 주장하며,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영일 동맹). 마침내 일본은 1904년부터 그 이듬해에 걸쳐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패권을 놓고 러시아와 싸워 승리하였고(러일전쟁), 포츠머스 조약으로 한반도에 고 요동반도와 동청철도 남부의 조차권을 확보했다. 그 후 일본은 종래의 입장과 달리 러시아와 공동으로 만주에 대한 이익 확보에 나서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반발을 불렀다. 일본군과 조선군이 건국에 관여했으며 만주족의 수장이던 청나라 황제 푸이와 만주족에게 치욕스런 건국이였다.[3]

지리

남쪽은 튀르키예, 서쪽은 흑해(黑海)와 접하며, 소캅카스산맥의 지맥이 동서로 횡단하여 서부 연안부와 동부 산악지로 나뉘어진다.

북부 해안지대를 제외한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이며 가장 높은 산은 3,000m 이상이다. 대체적으로 습윤 아열대성 기후지역이며 1월평균 기온은 5℃~8℃, 8월 평균기온은 21℃~ 23℃이다. 고도가 높아질 수록 기온이 낮아지는데 특히 1,800m 이상인 지대에는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 저지대에는 아열대성 식생이 우세하는 반면 고산지대에는 침엽수림이 발달해 있다. 아자리야는 북반구에서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 중의 하나로 꼽는데 특히 해안 저지대의 강수량이 매우 많다. 또한 9월에서 10월 사이에 비가 많이 내린다.

정치

아자리야 자치공화국의 정부는 조지아(그루지야)의 헌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지방 입법부인 아자리야의 의회는 30명으로 구성되며 임기 4년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행정부의 장은 조지아의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며 그는 조지아 헌법에 위배되는 문제 사항을 해소하며 정부와 의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권한을 행사한다. 2006년 아자리야 대표자는 레반 바샬로미즈(Levan Varshalomidze)이다. 아자리야는 6개의 행정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수도인 바투미 이외에 지방의 케다( Keda), 코부레티(Kobuleti), 켈바차우리(Khelvachauri),슈아케비(Shuakhevi), 쿨로(khulo) 등이 있다.

경제

아자리야는 차, 담배, 오동·포도·감귤류·커피 등의 주산지이다. 커피는 조지아(그루지야)의 유일한 제조 원료이며, 감귤류가 전체 농업 생산의 절반을 차지한다. 소·양 등 목축업 또한 중요하다. 주요 제조업으로 과일 통조림, 생선 통조림, 그리고 선박산업 등이 있다. 구리·복합금속·내화점토가 산출되며, 바투미에서는 바쿠산(産) 석유의 가공업과 기계·선박·화학·약품(알칼로이드 등)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수도인 바투미는 물건을 운송하는 주요 통로로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로 교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카자흐스탄으로부터의 원유 수입과 투르크메니스탄에의 원유 수출기지이다. 아열대 혹은 난대 기후로 인해 휴양·관광지가 발달해있다. 대규모 열대식물원이 있다.

주민

인구통계상으로 주민의 대부분은 민족적으로 조지아인이지만, 이 지방의 조지아인은 조지아어의 아자르 방언을 사용하는 아자르인으로 불리며 종교적으로도 이슬람교 비율이 높아 문화적으로 구분되는 하위집단이기 때문에, 조지아 영내에서 자치공화국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 아자르인 중엔 무슬림이 많았지만 독립 이후 이슬람에서 정교회로의 개종, 유소년의 정교회 입교가 확산되어 2014년 센서스 기준 54,5%는 정교회를, 39,8%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아슬란 아바시제 또한 정교회로 개종한 사람이었다.

문화

아자리야의 전통문화와 관습은 조지아(그루지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아자리야인의 전통의복은 서부 조지아인의 의복과 거의 흡사하다. 이 지역의 민속축제로 8월 첫째주의 슈암토바(Shuamtoba), 8월 중순경의 콜코바(Colkhoba), 9월 말의 트벨로바(Tbeloba)가 유명하다. 다양한 관광코스 개발에 힘입어 관광객의 주목을 끌고 있다.

지도

틀:아자리야 행정 지도

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

캅카스 같이 보기

남캅카스 국가
북캅카스 지역
캅카스 도시
캅카스 지리
캅카스 문화
캅카스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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