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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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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茶房

다방(茶房)은 커피 ·홍차 ·우유 및 청량음료와 케이크 ·과일 ·아이스크림 ·아침 식사 또는 샌드위치 같은 가벼운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다.

찻잎이나 다구를 파는 가게가 아니다. 이름에 차 다가 들어갔지만 다방의 가장 주력 상품은 차보다 커피. 그래서 한국은 차보다 커피 문화가 더 익숙하게 되었다. 커피 이외에도 생강차, 쌍화차, 율무차, 생과일 주스 등 여러 종류의 음료를 판매한다. 그러나 음료의 전문성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 녹차 뿐 아니라 다른 차들의 경우 티백 또는 파우더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스도 그냥 PET 병에 있는 거나 요구르트 같은 거 컵에 따라주는 정도다.

개요[편집]

커피숍(coffee shop)·커피 하우스(coffee house)·커피 살롱(coffee salon)·티살롱(tea salon)·티룸(tea room)·다실이라고도 한다. 1551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카페라는 이름으로 열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1652년 영국 런던, 1654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개점되었고, 미국에서는 1668년 유럽에서 커피를 수입함으로써 다음해 뉴욕에서 '런던 커피 하우스'가 개점되었다.

유럽에서는 점차 카바레의 성격을 띠어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으나, 오늘날 순수한 다방은 드러그 스토어(drug store)·호텔에 부속되어 있다. 중앙 아시아 실크로드 주변에 차이하네·차이하나라고 하는 다방이 있었는데, 이것은 중국의 chá(茶)에 연유한 말로 생각된다.

한국에는 8세기경 선덕왕때 처음 당(唐)으로부터 가져온 차나무 씨앗을 심게 하였는데, 차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제물의 하나로 사용되었다. 고려 때 차는 팔관제(八關齊) ·공덕제(功德齊) 등 불교의식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궁중에 다방이라는 관청을 두고 연회 때 진다(進茶)를 맡아보았고, 사원에서는 다촌(茶村)을 두고 다수(茶樹) 재배를 맡아보았다.

한국에서 차에 대한 관심도가 제일 컸던 것은 고려시대였고, 조선시대에는 점차 쇠퇴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중국 ·일본 사람들이 차를 내어 손님을 접대하듯 한국에서는 차보다 술을 더 일반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다방 대신 주점이 발달하였다.

19세기 중엽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던 유대계 독일인 상인인 E.오페르트가 쓴 《조선기행》을 보면, 조선 사람들은 차를 마시지 않는 것이 중국 사람과 다른 점이라는 기록이 있다. 1895년에 발간된 《서유견문》에 의하면 1890년경 커피·홍차가 중국을 통하여 소개되었고, 서양 사람들은 주스·커피 마시기를 한국 사람이 숭늉·냉수를 마시듯이 한다고 했다.

일반인에게 보급된 것은 역시 현대식 다방의 시작과 때를 같이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선 후기 고종 때 러시아 공관에 손택(孫澤)이라는 독일계 여인이 있어 고종을 받들었다. 그 뒤 고종은 손택을 위하여 호텔을 열도록 해주었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팔았다. 이것이 한국 커피 다방의 시초가 되었다. 그후 3·1운동이 지나고 일본인들이 명동에 '멕시코'라는 다방을 열었는데, 이것이 단독으로 다방을 개점하여 문화인들이 차를 마시며 환담하는 장소로 발전하게 된 시초이다.

변천[편집]

다이나 다방.jpg

다방이 등장하게 된 근본이유는 다도(茶道)문화를 들 수 있는데, 대체로 동양 3국에서는 8∼9세기에 본격적인 다도문화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한국은 원래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동양문화권에 비하여 다도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아 서민 차원의 다방은 없었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다도에 대한 제도적 배려가 있었다.

문헌에 의하면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다연원(茶淵院)이라 하여 차 마시는 장소가 있었으며, 고려시대는 다방(茶房)이라는 용어도 등장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다방은 차와 술 · 과일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국가기관이었으며, 조선시대는 이것이 이조(吏曹)에 속하는 관사로서 차례(茶禮)라는 명목으로 외국사신들의 접대를 맡아 보았다.

특히 고려시대는 팔관재(八關齋)나 공덕재(功德齋) 등의 불교의식과 관련하여 차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사찰에서는 차촌(茶村)을 두어 차를 재배하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차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일반적으로 손님 접대용으로 차보다 술을 많이 사용한 까닭에 다방 대신 술집이 발달하였다. 결국 전통시대는 다방이나 다도문화가 일부 계층의 향유물 또는 지방적 · 종교적 특성에 입각한 것으로 일반 민중에게 대중화되지는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말에 이르러 개화의 물결을 타고 커피와 홍차 등이 보급되면서 우리의 다도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커피는 가배차 · 가비차(加比茶) 또는 양탕(洋湯)이라고 불렸는데, 이와 더불어 홍차도 수입, 보급됨에 따라 근대 형태의 다방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근대적인 기능과 형태를 갖춘 다방이 등장한 것은 3 · 1운동 직후부터지만, 개항 직후 외국인에 의하여 인천에 세워진 대불호텔과 슈트워드호텔의 부속다방이 우리 나라 다방의 선구가 되었다.

1902년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孫澤, Antoinette Sontag)이 정동에 지은 손탁호텔에는 서울 최초의 호텔식 다방을 두었다. 일제 강점 직후에는 일본인들이 명동의 진고개에 깃사텐(끽다점, 喫茶店)을 지어 놓고 커피 장사를 시작하였다. 일본인이 경영하던 ‘청목당(靑木堂)’이라는 2층의 살롱이 서울에 생겨났고, 1914년 조선호텔이 지어져 일제강점기의 최고급 호텔 겸 다방의 기능을 하였다.

이때쯤 이미 서양문물이 많이 보급되었고, 일본이나 서구로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들이 나름의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다방이 본격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조건이 무르익었다. 1923년을 전후하여 근대적 의미의 다방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는데, 명동의 '후타미(二見)'와 충무로의 '금강산'이라는 일본인 소유의 다방이 그 최초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후타미는 식당과 겸업이 아닌 다방을 전업으로 하는 근대적 다방의 원조였다. 그 뒤 1927년 이경손(李慶孫)이 관훈동 입구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개업하였는데, 이경손은 우리 나라 최초의 영화감독으로 「춘희」 · 「장한몽」 등의 영화를 제작하였고 그가 직접 차를 끓여 더욱 유명하였다. 카카듀는 우리나라 사람이 경영한 최초의 다방으로 볼 수 있다.

1929년 종로2가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 회관 근처에 '멕시코다방'이 개업했는데, 주인은 배우 김용규(金龍圭)와 심영(沈影)이었다. 의자와 테이블 등 실내장식을 화가 · 사진작가 · 무대장치가 등이 합작함으로써 문화인들의 종합작품과 같은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1930년대에는 소공동에 '낙랑파라'가 등장하면서 초기 동호인의 문화애호가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영리면에도 신경을 쓰는 본격적 다방의 면모를 갖추었다.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李箱)도 다방사업에 많이 관여하였는데, 실내시공만 하였다가 팔아넘긴 '식스나인(6 · 9)', 1933년 종로에서 부인과 함께 개업한 '제비', 인사동의 '쓰루(鶴)', 1935년 직접 설계하여 개업 직전에 양도한 '무기(麥)' 등이 그것이다. 한편 1933년 '제비' 개업을 전후하여 영화연극인 · 화가 · 음악가 · 문인 등에 의하여 다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들은 각자 특색을 자랑하며 종로 · 충무로 · 명동 · 소공동 등에 다방문화를 활짝 꽃피웠다.

명동의 러시아식 다방 '트로이카', 음악감상 전문의 '에리사', 프랑스풍의 '미모사', 독일풍의 '윈', 매주 정규음악회를 열어 유명하였던 '휘가로', 서울역 앞 이별의 장소로 애용되던 '돌체' 등이 다방문화의 선도자였다. 이후 다방은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설탕, 커피 등의 수입이 막히면서 쇠퇴 일로를 걸어 2차대전 말기에는 거의 폐업 상태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8 · 15광복과 6 · 25전쟁의 혼란기를 겪으면서 앞서의 멋은 점차 사라지고 상업다방으로 변화하는데, 6 · 25전쟁 직후 전쟁으로 문화시설이 부족해지자 다방이 차를 마시고 쉬는 장소에서 더 나아가 종합예술의 장소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문화활동은 다양하여 그림 전시회 · 문학의 밤 · 영화의 밤 · 출판기념회 · 환영회 · 송별회 · 추모회 · 동창회 · 강습회 등이 다방에서 열렸다. 1950년대의 다방은 당시 사회문제였던 고등실업자, 즉 룸펜의 온상구실을 하여 사회적 지탄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기개 높은 예술가들이 즐겨 찾아 낭만의 거리가 되었던 명동거리는 당시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이 때 명동의 대표적인 다방으로는 봉선화 · 리버티 · 삼일 · 에덴 · 마돈나 · 미네르바 · 오아시스 · 낙랑 · 비엔나 · 고향 · 휘가로 · 돌체 · 금붕어 · 동방싸롱 · 신한 · 올림피아 등이 있었다. 종로거리는 보수성이 강한 상업지역으로 카카듀 이래 한가람 · 아세아 · 경성 · 남궁 · 신사 · 국제 · 제일 · 단성사 · 학림 등 많은 다방이 있었으며, 명동과 마찬가지로 문화다방에서 상업다방으로의 변천과정을 밟았다. 1960년대 이후 다방은 그 전과 달리 지식인계층의 남자 주인 대신에 여자 주인이 얼굴마담과 레지 · 카운터 · 주방장 등을 데리고 경영하는 체제로 변모하였으며, 이전보다 규모가 커졌다.

1970년대 이후 다방이 화려하게 실내장식을 하면서 손님도 분위기나 차 맛보다는 상거래를 비롯한 교제의 편의성 때문에 자주 다방을 찾게 되었다. 심지어 사무실과 사원이 없는 업주가 다방전화를 이용하고 레지를 비서삼아 사업을 하는 예도 나타났다. 특히 1970년 동서식품의 인스턴트 커피 생산으로 집에서도 커피를 마시게 되면서 다방은 점점 디럭스화, 전문화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는 젊은층 위주의 DJ가 있는 음악 전문 다방이 꽃을 피운 시기이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는 차 값의 자율화와 함께 차 종류가 다양해지고 값도 비싸졌으며 분위기 좋은 실내장식을 갖춘 다방이 많이 등장하였다. '난다랑(蘭茶廊)'을 필두로 체인점을 갖춘 다방이 등장하는가 하면 '○○화랑'이라는 상호명이 유행하게 되었으며, 야간 통행금지제도가 폐지되자 심야다방이 대도시에 많이 나타났다.

1990년대에 다방은 커피자판기의 보급, 음료의 고급화, 고급스러운 분위기 커피전문점 증가 등으로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1997년 2월 '대한다방업중앙회'는 '대한휴게실업중앙회'로 명칭을 변경함으로써, 커피가 개화기 외교사절을 통해 유행되기 시작한 지 약 1세기 만에 한국만의 독특한 영업형태로 자리 잡은 '다방'이라는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일부 다방들은 '다방'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출장 매춘 등을 일삼는 소위 '티켓다방'이 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하면서부터는 다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덧입혀졌다.

현재의 다방[편집]

광복 이후 매년 늘어나던 다방수는 1975년 허가지역제한이 풀린 이후 급증했으나 1992년 4만 5,000여 개를 고비로 계속 줄어들기 시작하여 1997년 외환위기 전에는 3만 3,000여 개가 남았다가, IMF 사태로 9,000개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IMF 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된 후에 다방이 다소 늘었지만, 과거의 형태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전혀 새로운 유형의 커피 전문점들이 생겨난 것이다. 최근에는 다방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카페나 국내외 브랜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017년 6월 IBK투자증권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커피 전문점의 수효는 2014년 5만 4416개에서 2017년 9만 2201개로 70%나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만큼 커피 전문점은 사교공간뿐만 아니라 문화공간으로서 대중들에게 애용되고 있는 사회 현상을 반영해준다.

전형적인 다방. 매장은 지하에 있다.

오늘날 '다방'이라고 하면 오른쪽 그림과 같은 티켓다방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80년대 후반부터 서구식 카페의 등장과 함께 위기 의식을 느낀 일부 다방이 변칙 영업을 실시한 것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이후 건전한 다방들은 모두 커피전문점에 밀려 대부분 도태되었고, 퇴폐적인 티켓다방만 살아남았다.

간판에 커피숍(간혹 커피숖)이라 씌어 있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딱 보면 다방임을 알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커피 체인점과 착각하면 애먼 일이 일어날수도...

경기도 북부의 군부대 밀집지역에는 외출 외박을 나온 군인들을 상대하는 다방이 상당수 있었는데(2005년 당시), 이 다방들은 티켓다방이라기보다는 카페의 낙후된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군부대를 살펴보면 다방 레지와 연애를 하는 병장 한둘쯤은 있다.

서울특별시에도 변두리 지역에는 다방이 몇 군데 남아 있다. 물론 변두리 지역에서도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곳에만 남아있거나 그냥 없어져서 간판만 남은 경우도 있다. 90% 이상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고, 가끔 건물 2층에 있는 곳도 눈에 띄지만, 일반 커피숍과 같이 1층에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건물에 아예 지하가 없는 경우 1층에 위치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가리봉 시장 일대에서는 지하, 1층, 2층의 모든 패턴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저런 다방을 많이 경험해본 자에 의하면, 보통 2층에 있는 경우는 일반적인 동네 사랑방 격의 다방이 많으며, 지하 1층에 위치한 경우 종업원과의 음란행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수라고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없지 않다. 다방마다 서비스가 천차만별이라 오래된 경험자만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카더라.

손님의 말상대를 주 업무로 하는 다방에서 일하는 여종업원을 "레지"라고 하는데, 보통 커피 1잔을 시키면 "레지"의 것까지 2잔이 나온다고 한다. 웹툰 트라우마에서 자판기용 다방커피로 적절히 표현했다.다방커피 요새는 일손이 부족해서 오너 혼자서 마담 겸 레지 노릇을 도맡는 경우도 꽤 있는 듯하다. 레지가 따로 있는 경우는 높은 확률로 노래방에 가자고 하거나 술을 사달라고 유혹한다.

서울의 구로나 대림 인근에는 중국인 레지가 많이 있다. 한국어를 못하는 경우도 많으니 자칫하면 말 한 마디 못하고 멀뚱멀뚱 앉아 있어야만 할 수도 있다. 수원역 인근의 다방도 절반 가량은 중국인 레지를 고용하고 있다. 특히 신장개업이라 써붙인 경우는 가능성이 높다.

농담삼아 어항이 있으면 다방, 어항이 없으면 카페라고 한다. 다방 어항에는 잉어나 청거북이가 적절하다. 어항말고도 동양화 액자나 붓글씨 액자가 있는 경우도 있다.

어째서인지 출입구가 2곳 있는 가게가 많이 있다. 이 경우 간판도 물론 출입구마다 하나씩 2개를 달아놓는데, 한쪽은 커피숍이라 씌어 있고 다른 쪽은 다방이라 씌어 있는 경우가 왕왕 보인다. 굳이 따질 이유는 없지만.

참고로 이곳에서 타주는 커피는 다방커피라고 일컫는다. 특유의 향과 맛을 지녔으며, 한번 맛보면 빠져드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 맛의 비밀은 2:2:2비율과 인삼가루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커피를 주문하지 않고 머뭇거리면 커피보다는 다른 차류, 특히 쌍화차 같은 것들이 강추 들어온다. 이 쪽이 커피보다 비싸기 때문. 요즘은 바로 술로 가자는 경우도 많아진 듯. 다만 술이라고 해도 한두 병 정도 곁들이로 판다는 차원이고, 본격적인 주점에는 못미친다.

무려 커피나 기타 다류(茶類)의 배달이 가능하며, 혼자서 시키더라도 "레지"의 몫까지 2잔을 시키는 것이 예의다.

지방 모텔이나 여관 등지에서 남자 혼자 숙박할 경우, 자정 넘어서 다방에 커피 배달을 시키면 높은 확률로 "티켓"을 끊을 건지 제안해 온다. 물론 말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고, 실제로 표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다방에서 종업원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서 '시간당 얼마'의 렌탈비를 내는 것을 티켓을 끊는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변형 매춘인 것이다. 물론 렌탈비 이외에도 모텔비나 팁 등의 추가적인 부대 비용이 들어간다.

가끔 "티켓다방은 시골이나 군부대 주변에나 남아있지 않나요?"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주변 환경의 깨끗함에 감사해하자. 시골과 군부대뿐만 아니라 공단 등에서는 출장업소로서 성업 중이며, 어린이들이 살건 말건 무차별적으로 성인 광고를 뿌려대서 잊을 만하면 뉴스에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곳은 주로 본게임을 빌미로 만만하다 싶은 상대를 골라서 돈을 뜯어먹으려 하는 곳이기에, 되도록이면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IMF 쯤 이런 다방에 들어가 친해졌더니 보증 서게 유도한 다음 먹튀하는 수법에 걸려 빚쟁이 된 피해자 이야기가 떠돈다.

2003년에 발간된 일본의 가이드북에서는 부산 일대의 다방에서 매춘 알선을 한다고 소개했는데 진위는 불명. 소개된 내용으로 보면 티켓다방과는 다른 형태인 듯하다.

티켓다방 외에도 서울 영등포, 독산동, 의정부시, 안양시 구도심 일대 등 수도권에서 개발이 더딘 곳은 유사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2~3만원의 가격에 유사성행위를 하는 업종이다. 보통 60대 이상의 다방 주인이 직접 매춘을 하며, 화대를 지불하면 다방에 딸린 뒷방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박카스 할머니와 더불어 성매매 유형 중에서도 가장 끝장에 위치한 업종이다. 보통은 한국인이 아닌 조선족이 종사한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T라는 메뉴도 있었는데, 그것이 알고 보니 25도짜리 싸구려 리큐르였다. 이순원의 소설 '19세'에서 등장인물 '돼지 아빠'라는 사람이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돼지 아빠가 티를 더 가져다 달라고 하자, 주인공은 '그것이 술이란 것은 한창 나중에 알았다'고 독백한다.

카페와의 차이점[편집]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다거나 동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둘을 자세히보면 엄연히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방에서 공급하는 커피의 경우는 대부분 인스턴트 커피가 주재료로 나오는 편이고, 메뉴에 있어서도 밀크커피, 블랙커피, 프림커피 가 주 메뉴에 속하는 편이다. 또한 테이블에 항상 설탕과 성냥이 비치되어 있기도 한다. 물론 일부는 원두커피를 파는 곳도 있다.

이와는 다르게 카페에서 공급하는 커피의 경우는 주로 브라질, 콜롬비아, 자메이카, 인도네시아 등 커피 생산국에서 수입해온 커피 생원두를 카페 본 매장에서 즉석으로 로스팅하는 식으로 커피를 공급하고 있는 편이었고 메뉴도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카페라떼, 에스프레소 등이 주 메뉴에 속하는 편이고, 가게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거나 핸드 드립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대부분이 지상층에 위치해 있거나 번화가 또는 주택가 등지에 위치해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또 다방과는 달리 케이크, 베이글, 쿠키 등 디저트도 한 곳에서 취급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또 이탈리안풍을 본딴 경우도 많고 젊은층의 감각에 맞춰서 컨셉을 정하는 경우도 있으며, 테이크 아웃 전문 기준으로는 테이크 아웃 위주로 커피 주문을 할 수 있다.

다방에서는 커피가 나오기 전 점원이 손님 앞에 와서 생수를 직접 갖다주기도 하고 커피를 직접 갖다주는 편이지만, 카페는 커피가 나오기 전에 점원이 직접 손님 앞에 와서 생수를 갖다주지 않고, 오히려 에비앙이나 페리에 같은 제품을 돈 주고 사서 마셔야 한다. 대신 손님의 추가사항이나 요구사항에 따라 갖다 줄 수 있는 대비를 갖추고 있고, 커피가 나오게 되면 울리게 되는 진동벨을 통해서 손님을 호출하여 커피 메뉴를 직접 가져갈 수 있는 방식으로 되어있는 편이다. 또 커피를 다 마신 후에도 다방은 직원이 직접 치워주는 편이지만, 카페는 손님이 다 먹은 잔반을 직접 카페 카운터나 반납대 등에 반납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편이다. 즉 카페의 경우 손님과 점원이 분리되어 있다면, 다방은 손님과 좀 더 접점이 있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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