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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즈필드
베이커즈필드 위치

베이커즈필드(Bakersfield)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도시로 컨군의 군청 소재지이다. 인구는 약 40만 명이며 미국에서 48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 캘리포니아에서는 9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지명은 이 지역 개척자인 토마스 베이커(Thomas Baker)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

개요[편집]

베이커즈필드는 캘리포니아주 중남부, 샌와킨계곡(San Joaquin Valley)의 남쪽에 위치하며,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약 180km 떨어져 있다. 캘리포니아분지 남부에 있는 상업도시로, 지명은 개척자인 토머스 베이커(Thomas Baker)에서 유래한다. 1851년 인근의 컨강(Kern River)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몰려든 탐광자들 가운데 한 명인 토머스 베이커는 강 부근의 늪지대를 개간한 후 1869년 로스앤젤레스와 스톡턴 도로변에 도시를 세웠다. 1870년대에는 농업교역의 중심지였으며 1874년 서던퍼시픽철도 1898년 산타페이철도가 들어오면서 시로 승격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자본가들의 투자로 관개공사가 실시된 이후 곡물, 앨팰퍼, 가축 생산의 주요중심지가 되었다. 1899년에는 유전이 개발되면서 석유 도시로 발전하였다. 오늘날에도 주변에서 생산되는 밀, 목화, 포도, 감자 등 농산물의 집산과 가공이 이루어지며 석유정제, 화학공업, 전자부품제조 등이 성하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유전의 하나가 있으며 인근 포도원에서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제조되는 포도주의 약 1/4을 생산한다. 교육기관으로 1913년에 설립된 베이커즈필드대학교가 있다. 1952년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었으나, 이후 급속히 재건되어 인구가 급증하였다. 캘리포니아 내륙의 거점 도시 중 하나로, 미국에서 인구 25만 이상 도시 중에서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이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베이커즈필드는 샌 호아킨 계곡(San Joaquin Valley)의 남쪽 끝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로 동쪽에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Sierra Nevada) 남쪽 끝이 있다. 도시 경계는 그린혼 산맥 기슭과 케른 캐년의 입구에 있는 세쿼이아 국유림 숲까지 확장된다. 남쪽으로는 수직으로 1마일 이상 솟아 있는 테하차피 산맥(Tehachapi Mountains)에 역사적인 테존 목장(Tejon Ranch)이 있다. 서쪽으로는 템블러 산맥(Templor Range)이 있고, 뒤쪽으로는 카리조 평야 국립 기념비와 산 안드레아스 단층부가 있다. 템블러 산맥은 베이커wm필드에서 계곡 바닥을 가로질러 약 56km 떨어져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이 도시는 총면적이 372km²로 이 중 368km²가 육지(98.99%)이고, 3.6km²가 물로 덮여 있다

베이커즈필드의 기후는 쾨펜의 기후 구분상 온난 사막 기후(BWh)로 판정되어 있다. 다만 겨울에 추운 기간이 길어진다고 가정하더라도 일부 고지대에서는 BWk를 띈다. 강수량이 없는 달은 7월이 유일하며, 5월부터 10월 사이의 월평균 강수량은 모두 합쳐도 10mm를 넘지 못한다. 강우량이 많은 기간은 매년 11월부터 익년 4월까지이지만 그래도 강수량은 우기 기준 월간 최대 40mm를 넘지 못하고 있어, 우기를 기준으로 월간 최대 35mm까지 갈 수도 있다.[3]

역사[편집]

고고학적 증거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메리카 원주민 정착지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스페인인의 도착하자 현재의 베이커즈필드에는 요쿠트족인 요울럼네(Yowlumne)가 살고 있었다. 요울럼네의 기록에 의하면 우일루 마을은 현시가지 경계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이 지역의 요쿠트족은 컨강(Kern River) 삼각주 지류를 따라 오두막에 살면서 영양, 툴레 엘크, 사슴, 곰, 물고기, 사냥감 새를 사냥했다.

1776년 스페인 선교사 프란시스코 가르세스(Francisco Garcés)가 이 지역을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가르세스는 5월 1일 현재 베이커즈필드에서 바로 북동쪽으로 위치한 케른강변의 요쿠트 마을에 도착하였다.

이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고 접근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요쿠트족은 멕시코 정착민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멕시코 독립전쟁 이후까지 추가 접촉으로부터 대체로 고립되어 있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된 후, 정착민들은 샌호아킨 계곡으로 몰려들었다. 1851년에는 시에라 네바다 남부의 컨강을 따라 이 발견되었고 1865년에는 계곡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 한때 툴레 갈대로 뒤덮인 습지대 였던 베이커즈필드 지역은 1860년 그곳에 통나무집을 지은 소수의 개척자들 에게 처음으로 컨 아일랜드(Kern Island)로 알려졌다. 이 지역은 현재 도심 지역이며 주기적인 홍수를 겪었고 말라리아 발병을 경험했다.

1861년, 참혹한 홍수가 독일 태생인 크리스티안 보나에 의해 1860년에 세워진 원래의 정착지를 휩쓸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에 의해 이 지역에 매료된 사람들 중에는 그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민병대의 변호사였고 전직 대령이었던 토마스 베이커(Thomas Baker)가 있었다. 베이커는 1863년에 컨강 유역으로 이동했는데 그곳은 베이커즈필드(Baker's Field)로 알려졌으며, 이것은 여행객들의 경유지가 되었다. 1870년에 이르러 600명의 인구를 가진 현재 베이커즈필드로 알려진 곳이 컨 카운티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

1873년 베이커즈필드는 공식적으로 도시로 편입되었고 1874년경에는 공식적으로 하빌라 마을을 카운티 소재지로 대체했다. 알렉산더 밀스(Alexander Mills)는 시 보안관으로 고용되었다. 그러나 그는 켄터키 사람이었고 총을 가진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었고 기분이 좋을 때 주도권과 자원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다. 사업가 등은 그들을 대함에 있어서 억척스럽고 고압적인 밀스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를 해고하고 싶었지만 보복이 두려워 그들은 그를 해고할 계획을 세웠고, 사실상 고용주가 없게 되었다. 지역 역사학자 길버트 기아(Gilbert Gia)에 따르면 그 도시는 서비스에 필요한 세금도 징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1876년 도시는 탈퇴 투표를 했다. 그 후 22년 동안, 한 시민 위원회가 그 공동체를 관리했다.

1880년까지 베이커즈필드의 인구는 801명이었고 그 중 250명은 중국계였다. 1890년까지 인구는 2,626명이었다. 텍사스, 루이지애나, 오클라호마시티,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이주하면서 석유 산업에 주로 종사하는 새로운 주민들이 생겨났다. 도시는 1898년 1월 11일에 재통합되었다. 1874년에 남태평양 철도(Southern Pacific Railroad)가 컨 카운티에 처음으로 도착했다. 그러나 기차 창고는 철도와 마을 간의 토지 분쟁으로 인해 베이커즈필드에서 동쪽으로 거의 3마일 떨어진 곳에 배치되었다. 자체 역을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베이커즈필드 주민 및 주 전역의 소규모 투자자들은 베이커즈필드로 가는 두 번째 철도 건설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1895년 1월 17일까지 약 3,500,000달러를 모금했다. 1895년 1월 29일에 샌프란시스코 및 샌호아킨 밸리 철도가 탄생했다. "인민 철도"라고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스페인-미국 전쟁이 한창이던 1898년 5월 27일, 그리고 남태평양 철도가 완공된 지 20년이 지난 1898년 5월 27일 수천 명이 참석한 퍼레이드를 통해 완료되었으며 도시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새 철도와의 경쟁으로 인해 남태평양 철도는 새 철도 요금에 맞춰 요금을 $9.10에서 $6.90로 낮추었다.

1952년 7월 21일 오전 4시 52분에 지진이 발생했다. 순간 규모 7.5로 측정돼 샌프란시스코에서 멕시코 국경까지 감지된 이번 지진으로 인근 테하카피와 아르빈의 공동체가 파괴했다. 지진의 파괴력은 목화밭을 U자형으로 구부리고 테하카피산맥의 갓길이 미끄러져 능선로 4개 차로를 모두 가로지르고, 급수탑을 붕괴시켜 섬광 홍수를 일으키고, 산줄기의 철도 터널을 파괴했다. 베이커즈필드는 인명피해 없이 경미한 건축적 피해를 겪으며 다소 면했다.

7월 29일 큰 여진이 발생하여 약간의 건축적 피해를 입었지만 프라이언트-켄 운하의 흐름이 위험할 정도로 변경되어 도시와 주변 지역에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여진은 다음 달까지 계속되었고, 8월 22일 오후 3시 42분에 5.8로 측정된 또 다른 지진이 남부 산호아킨 계곡의 가장 인구 밀집 지역인 도시 중심부 바로 아래를 강타했다. 여진으로 4명이 사망했으며, 마을의 역사적인 구조물 중 일부는 큰 피해를 입었다.

1970년부터 2010년 사이 베이커즈필드는 7만 명에서 34만7483명으로 400% 성장해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베이커즈필드는 주로 로스앤젤레스 지역과 산 호아킨 계곡 사이의 5번 주간 고속도로의 테존 패스(Tejon Pass)와 근접해 있어 이 도시를 지역 교통 중심지로 만들었다.

1990년 베이커즈필드는 전국시민연맹(National Civic League)으로부터 올아메리카시티상(All-America City Award)을 수상한 미국 내 10개 지역사회 중 하나가 되었다.[4]

지도[편집]

미국 행정 지도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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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베이커즈필드〉, 《위키백과》
  2. 베이커즈필드(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Bakersfield, California", Wikipedia
  4.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 《요다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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