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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7일 (목) 10:02 판

매튜 맬론(Matthew Taylor Mellon II, 1964-01-28 ~ 2018-04-16)은 뉴욕 공화당 국가위원회 재정위원회 위원장 직임했었으며, 리플 고문이자 사업가였다.[1]

생애

매튜 멜론은 뉴욕에서 칼 네글리 멜론과 앤 스톡스 브라이트 사이에서 났다. 팜 비치, 필로리다, 메인 주 북동부 향에서 자랐고, 그는 펜실베니아 주 말번의 소년 기숙학교인 펠프스 학교에 다녔으며 이어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1] 어렸을 적 매튜 멜론은 자기가 멜론 가문의 상속자인 것을 모르고 살았는데 이유는 아버지인 칼 네글리 멜론과 어머니인 앤 스톡스 브라이트가 이혼을 했고, 어머니는 시댁이였던 멜론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평범한 소년으로 키우고 싶어했기 때문이였다. 그렇게 평범한 소년으로 지낸 멜론은 18세 때 펜실베니아 대학 재학 중 친가인 멜론가로부터 자기 앞으로 2천5백만불의 '트러스펀드'를 상속받으라는 통보를 받으면서 자기가 재벌2세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매튜 멜론은 '첫 번째'트러스트 펀드를 받고 그 앞으로 아직 12개 정도 더 상속받을 펀드가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 매튜 멜론은 상속을 받자마자 다니던 펜실베니아 대학교 앞에 대저택을 시작으로 많은 집을 구매하고, 많은 돈을 주위 사람들에게 썼으며, 파티와 약물에 취한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또한 매튜 멜론은 1번의 이혼과 총 2번의 결혼을 하게되고 총 3명의 자식을 갖게되었다. 첫 번째 부인이였던 타마라 이어다이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뛰어난 사업적 수완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했고, 반면에 매튜 멜론은 파티와 마약에 찌들어 살다가 부인의 부탁으로 인해 남성용 신발 사업을 시작했지만 1년 만에 망하게 된다. 그 후 몇 년을 더 마약 중독으로 살다가 참다 못 한 첫 번째 부인인 타마라 멜론이랑 이혼을 하게 되었고, 이혼 후에는 마약 재활원을 다니며 생활하는 중에 상속받은 250억원을 마약과 파티로 탕진하고 타마라에게 회사의 지분을 나눠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었다.[2] 하지만 그 후에는 노엘 레노라는 여성 사업가와 약혼을 하고 그와 함께 캐시미어 니트 라인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패션, 통신, 금융 분야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매튜 멜론은 2010년에 약혼녀인 노엘 레노가 아닌 니콜 핸리 멜론과 결혼하게 되었고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더 낳게 되었지만 2015년에 이혼하게 된다.[1] 그 무렵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게된 매튜 멜론은 주변인들의 얘기를 듣고 비트코인에 투자를 하여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렇게 매튜 멜론은 암호화폐의 가치를 일찍 알아보고 투자를 하여 많은 부를 얻게 되어 리플의 고문까지 될 수 있었지만, 평생 마약으로 인해 고생을 받았고 주위 사람을 고생 시킨 매튜 멜론은 54세라는 젊은 나이에 맥시코 칸쿤(Cancun)의 재활 시설에 들어가기로 되어있었지만, 환각성 음료인 아야와스카를 복용한 뒤 심장미비로 그 날 아침에 사망하게 되었다.[3]

학력

  • 1985 ~ 1989 :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스쿨 학사.[1]

약력

  • 2011-05 : 뉴욕 공화당 주 의회 금융위원회 위원장
  • 2014년 : MellonDrexel 설립.[4]

평가

매튜의 성(性)과 마약에 관련되어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비춰지지만, 이혼 후에도 전 부인들과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자식들에게도 차별없이 잘 대해주었다. 하지만 마약과 파티를 일삼았던 그는 안 좋은 재벌2세의 모습으로 자주 비춰지고 있다.[4] 또한 나쁜 모습뿐만이 아니라 재무위원장을 했던 시절이나 암호화폐라는 기술을 알게되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바로 준비를 하는 철저함과 멜론가라는 명성이 있었기에 쌓은 인맥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확신이 있는 것에 적극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그를 투자자로써의 면모를 더 돋보이게 하였다. 방탄한 삶과 철저한 삶을 가진 그는 비판도 많지만 그가 200만달러로 10억달러를 벌어들인 대단한 투자자인건 다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다들 비판을 하기보다는 그의 능력을 높게 사고있다고 생각하며, 매튜 멜론의 삶을 그린 영화가 제작중이라고 하니 비판만 받는 삶은 아니었다.[5]

활동 내역

  • 2011-05 : 뉴욕 공화당 재무위원회 위원장 역임
  • 2012년 : 비트코인을 인수
  • 2014년 : MellonDrexel 설립[4]

각주

  1. 1.0 1.1 1.2 1.3 매튜 멜론〉, 《위키백과》
  2. 미디어칸 손봉석기자, 〈이재용과 매튜 멜론의 '재벌 2세 삶'〉 , 《경향신문》, 2005-10-05
  3. Nathan Vardi, 〈The Last Days Of Banking Heir Matthew Mellon〉, 《Forbes》, 2019-04-19
  4. 4.0 4.1 4.2 Katherine Rosman and Jonah Engel Bromwich, 〈What Happened to Matthew Mellon〉, 《NewYorkTimes》, 2019-04-20
  5. 미디어칸 손봉석기자, 〈암호화폐 억만장자 '메튜 멜론' 일대기 영화화〉 , 《코인프레스》, 201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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