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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테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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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테보리
예테보리 위치

예테보리(스웨덴어: Göteborg, 영어: Gothenburg)는 스웨덴에 있는 도시베스트라예탈란드주주도이다. 인구는 약 59만 명으로 수도 스톡홀름에 이어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북유럽 국가에서는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시 이름은 스웨덴어로 "고트인의 도시"를 뜻한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가장 큰 배수 유역인 예타강 하구에 있는 핵심 요충지로서 북유럽 국가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1]

개요[편집]

  • 행정 단위: 스웨덴 베스트라예탈란드주 주도
  • 면적: 447.76 km²
  • 지역어: 스웨덴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goteborg.se/

예테보리는 덴마크 코펜하겐노르웨이 오슬로 사이 중간쯤인 스웨덴 남서부 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 북해로 흘러드는 예타강 하구 카테갓에 있는 지리적 위치는 이 도시가 무역도시로 번성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예타강의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로, 예타강과 예타 운하를 비롯한 여러 개의 운하로 동부의 스톡홀름과 연결된다. 인근의 13개 자치구(municipalities)를 포함하면 최대 110만여 명이 거주하여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도시들 중 다섯 번째로 인구밀집 지역이다. 예테보리 역시 스톡홀름과 유사하게 이민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시 거주인구 중 23%는 스웨덴 밖에서 출생한 사람들이이다. 이민자를 이루는 다수는 이란, 이라크, 핀란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폴란드, 소말리아, 중국, 노르웨이 출신으로 인근 스칸디나비아 국가와 제3 세계까지 매우 다양하다. 예테보리는 1621년 구스타프 2세 아돌프(Gustav II Adolf) 국왕에 의해 도시가 조성되어 이후 15세 말엽에 스웨덴의 주요한 무역도시로 성장하였다. 18세기 전반에 걸쳐 예테보리시가 외각으로 확장되면서 히싱엔(Hisingen) 섬은 시의 중심부로 자리 잡고 20세기 들어 시의 랜드마크가 된 여러 박물관공원이 조성되었다. 예테보리는 스웨덴의 최대 항구도시로 스웨덴 대외교역의 약 30%는 예테보리항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테보리는 또한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노르웨이 오슬로 사이에 위치하여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산업 생산의 약 70%가 예테보리시의 반경 500km 이내에서 이루어질 정도로 산업도시로의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 예테보리시 전역에 걸쳐 자동차, 정보통신, 물류, 의료, 해양 및 환경 등 첨단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되어 스웨덴 대표기업들의 본사가 다수 위치한다. 예테보리는 자동차기업인 볼보그룹이 시작된 도시로 볼보그룹에서 분리된 볼보자동차 본사 역시 예테보리에 위치하고 SKF와 아스트라 제네카(Astra Zeneca) 등 세계적 기업의 본사도 예테보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산업도시로의 입지로 예테보리는 전통적으로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높은 지지를 얻는 지역이다. 예테보리는 산업도시이면서 예테보리대학교(University of Gothenburg)와 샬머스공과대학(Chalmers University of Technology) 등 학문적 명성이 높은 대학이 위치한 교육문화도시로, 시 전체에 약 50,000여 명의 대학생이 거주하는 젊고 역동적인 도시이다. 시에서는 1979년부터 예테보리 필름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는데 매년 약 150,000여 명이 찾을 정도로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영화축제이다. 여름에는 여러 음악제가 개최되며 2007년부터 시작된 ‘Way Out West Festival’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 행사이다. 예테보리의 주요 관광지로는 예테보리 해상 박물관, 놀이공원 리세베리(Liseberg) 등이 있다. 아베뉜(Avenyn)은 가게와 식당들로 이루어진 인기 있는 거리이다. 아베뉜 남부에 있는 미술관 앞에는 스웨덴 출신 조각가 칼 밀레스가 지은 포세이돈의 상이 있다.[2]

기후[편집]

예테보리는 습한 대륙성 기후이지만 해양성 기후에 가깝다. 위도가 북쪽이지만 기온은 일 년 내내 꽤 온화하며, 비슷한 위도에 있는 스톡홀름이나 더 아래 남쪽에 있는 곳보다 따뜻하다. 이는 멕시코만류의 영향 때문이다.

여름에는 일광시간이 18시간 5분까지 늘어나지만 12월 하순에는 6시간 32분에 그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기온은 상당히 온화해졌다. 7월 기온이 스톡홀름의 1961~1990년의 평균 기온보다 낮았지만 그 기준치보다 더 따뜻해졌다.

여름은 평균 고온이 19~20°C, 최저 기온 10~12°C로 따뜻하고 쾌적하며, 25~30°C를 기록하는 날도 많다. 겨울은 춥고 바람이 많이 불며 기온은 -3~3°C 정도로 -20°C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수량은 규칙적이고, 대체로 일 년 내내 적당하다. 눈은 주로 12월부터 3월까지 내리지만 11월과 4월에도 드물지 않고 10월과 5월, 심하면 9월에 오기도 한다.[3]

역사[편집]

예테보리의 전신은 14세기경 건설된 마을인 뢰되세(Lödöse)이다. 예타강 하구에 자리잡은 지금의 예테보리와 달리 뢰되세는 예테보리로부터 약 40km 떨어진 내륙에 자리잡고 있었다. 뢰되세는 대서양으로 통하는 스웨덴의 창구이자 무역 중심지로 기능했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보후스 성에 주둔 중인 덴마크군과 노르웨이군이 뢰되세를 봉쇄할 수 있다는 위험성으로 1473년 지금의 예테보리가 위치한 앨프스보리 성 근처에 새로운 마을을 건설해 니야뢰되세(Nya Lödöse, 새로운 뢰되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럼에도 이 마을은 여전히 적의 공격에 취약했다.

스웨덴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이후 구스타브 1세 바사가 앨프스보리(Älvsborg) 성 바로 옆에 마을을 새로이 세우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스웨덴의 독립 이후 스웨덴과 덴마크는 완전한 라이벌이 되었고 덴마크는 스웨덴의 유일한 대서양 창구인 니야뢰되세를 차지해 덴마크 본토와 노르웨이를 연결하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스웨덴은 북방 7년 전쟁을 치루었으며 1570년에 체결된 슈테틴 조약에서 스웨덴은 이미 죄다 불타버리고 허물어진 성과 예테보리 일대의 지배권을 돌려받기 위해서 150,000 릭스달러(Riksdaler)를 덴마크에게 배상했는데 이는 스웨덴 전체 국력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이를 완전히 지불했다.

1603년, 구스타브 1세의 아들 칼 9세가 불타버린 니야뢰되세와 앨프스보리 성을 대신해 예타강 기슭 북쪽과 건너편 섬에 마을을 하나 세웠다. 그는 새로 세운 마을이 예타강 바로 옆에 지어졌다는 뜻에서 새로 세운 마을의 이름을 '예타 강의 도시'라는 뜻의 '예테보리'라고 명명했다. 예테보리에는 주로 네덜란드 출신의 상인들과 이민자들이 들어와 살았는데 당시 네덜란드는 해운 강국으로 전성기에 접어든 참이었고 네덜란드의 기술력을 탐낸 칼 9세는 여러가지 조건을 제시해 네덜란드인들을 끌어들였다. 종교의 자유는 기본이며 20년 간 세금 면제에 관세 인하, 심지어 의회에 대표를 파견할 수 있는 권리와 금은화 주조권까지 인정받았다. 이런 조건을 제시한 대가로 스웨덴은 네덜란드인의 기술력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짧은 전성기를 누린 예테보리였으나 여전히 적의 공격에 취약한건 매한가지였다. 예테보리 건설과 동시에 앨프스보리 성도 재건했지만 1611년, 칼마르 전쟁 당시 예테보리는 덴마크군에 의해 다시 전소되었고 1613년에 스웨덴은 크네레드(Knäred) 조약을 통해 이 도시를 다시 돌려받기 위해 무려 국력의 30%를 덴마크에 지불해야 했다.

1621년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불타버린 예테보리를 재건할 것을 명해 오늘날의 예테보리가 세워졌다. 재건된 예테보리는 스웨덴의 서방 창구이자 네덜란드, 독일, 스코틀랜드유럽 각국 출신의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번영하였다. 이후 스웨덴이 유럽 열강 중 하나로 성장하면서 숙적 덴마크를 두들겨 패고 예테보리를 위협하던 직접적 원인인 보후슬랜과 할란드를 할양 받으면서 도시를 향한 위협은 대폭 낮아졌다. 도시의 안전이 보장되면서 예테보리는 스웨덴의 중요 항구로 성장하였고 그 중요성은 스웨덴의 도시 중 유이하게 외국 상인과 교역할 수 있는 도시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1641년 시의회는 스웨덴인 4명, 네덜란드인 3명, 독일인 3명, 스코틀랜드인 2명으로 구성되었다. 네덜란드어, 스코틀랜드어, 영어, 독일어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무역과 해양 중심의 이 도시에 대해 모두 'Gothenburg'라는 이름을 썼다.

네덜란드 시대에는 네덜란드 도시법을 따랐으며 네덜란드어를 공용어로 제안하기도 했다. 튼튼한 도시 성벽은 17세기에 지어졌는데, 1807년 성벽의 대부분을 철거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1810년에 시작된 작업은 보후스(Bohus) 연대 소속 병사 150명이 수행했다.

1841년에는 스코틀랜드인 알렉산더 킬러(Alexander Keiller)가 예타베르켄(Götaverken) 조선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는 1989년까지 운영되었다. 1906년 그의 아들 제임스 킬러는 킬러 공원을 시에 기증했다.

18세기에는 스웨덴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어 아시아 국가와의 교역으로 번성하였으며 19세기에는 산업 혁명의 여파로 상업 도시에서 공업 도시로 전환하여 스웨덴 제2의 도시라는 지위를 굳혔다. SKF나 볼보 등 스웨덴 유수의 기업이 처음 생겨난 곳도 바로 이 예테보리였다.[4]

경제[편집]

스칸디나비아의 중심부에 있는 예테보리는 유리한 위치 때문에 무역과 해상 운송은 도시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제 예테보리는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항구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예테보리는 18세기 스웨덴 동인도 회사의 본거지였다. 도시 건설 이래 1970년대 후반까지 선두주자로 세계 조선업을 이끌어왔다.

조선과 무역 다음으로 예테보리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은 전통적으로 제조업과 공업이다. 이 지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주요 기업으로는 SKF, 볼보, 에릭슨 등이 있다. 볼보자동차는 도시에서 가장 큰 고용주이다. 오랫동안 도시를 지배해 온 블루칼라 산업은 여전히 경제에 중요하지만, 점차 첨단산업으로 대체되고 있다.

예테보리는 북해 유전에서 스웨덴으로 천연가스를 가져오는 발데마르-예테보리(Valdemar-Göteborg) 가스관의 종착지점이다. 예테보리는 GaWC에 의해 글로벌 도시로 분류되었으며, 2013년에는 포브스에 의해 세계에서 12번째 창의적인 도시로 선정되었다.

경관[편집]

군대 건물과 왕족의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무로 지어졌기 때문에, 도시가 세워진 17세기 때 집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예외로 스칸센 크로난(Skansen Kronan)을 들 수 있다. 건축학적으로 흥미를 끄는 첫 시기는 동인도 회사가 예테보리를 중요 무역 도시로 만든 18세기였다. 운하 주변에 인상적인 돌집들이 네오클래식 스타일로 세워졌다. 이때 지은 동인도 회사 건물은 오늘날 예테보리 시립 박물관이 수용했다.

19세기에 부유한 부르주아들은 도시를 보호했던 성벽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택한 스타일은 절충적이고 학구적이긴 했으나 중산층이 선호하던 다소 장식이 지나친 것이었다. 서민들은 과밀 지역인 하가(Haga)의 목조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19세기에는 도시가 생긴 뒤 처음으로 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중심가 쿵스포르츠사벤옌(Kungsportsavenyen)이 건설되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란드쇠빙게후센(Landshövdingehusen)은 19세기 말에 지어졌는데 전체 3층에서 1층은 돌, 나머지 2층은 나무로 되어 있다.

낭만적 민족주의가 강했던 20세기 초에는 건축적 업적이 풍성했다. 마스트후그(Masthugg) 교회는 이 시대 대표적인 건물이며, 1920년대 초에는 도시의 300주년 기념일에 네오클라식 양식으로 예타플라첸(Götaplatsen) 광장을 조성했다. 그 뒤 기능주의가 지배하면서 베스트라 프뢸룬다(Västra Frölunda)와 베리스욘(Bergsjön) 같은 교외 지역이 등장하게 되었다. 1950년대에 스웨덴이 1958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할 때 대형 경기장 울레비(Ullevi)가 건설되었다.

현대 건축은 198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시작한 게르트 윙고르드(Gert Wingårdh)와 같은 건축가들이 이끌었다. 구스타프 아돌프스 광장(Gustaf Adolfs Square)은 예테보리 중심에 있는 광장으로 예테보리 시청(옛 증권거래소, 1849년 개장)과 노르만 고전 양식의 법원이 있다.

도심에 있는 예테보리 중앙역은 1858년 10월 문을 연 이래 수차례 건물을 보수, 확장하였다. 2003년에 19세기 건물을 21세기에 끌어오는 대규모 재건축을 완료함으로써 열차, 여행자, 쇼핑 등 수용력을 늘렸다. 역 가까운 곳에 있는 22층짜리 스칸스카스크라판(Skanskaskrapan)은 높이 86m에 붉은색 줄무늬가 있어 흔히 '립스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빌딩은 랄프 에르스킨(Ralph Erskine)이 설계했으며, 1980년대 말에 스칸스카가 본사로 건설했다.

예타강 하구 릴라 보멘에는 1994년에 완성된 예테보리 오페라 극장이 있다. 페스케쾨르카(Feskekörka 또는 Fiskhallen)은 예테보리 중심에 있는 실내 어시장으로 1874년 11월 1일에 문을 열었다. 예테보리 시청은 보자르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브루다레모센(Brudaremossen) TV탑은 세계에서 받침줄을 부분 설치한 몇 안 되는 타워 중 하나이다.

중앙대로인 쿵스포르츠사벤엔은 약 1km로 예타플라센 광장에서 시작하여 예테보리의 옛 도심에 있는 쿵스포르츠플라첸까지 운하와 작은 공원을 가로지르며 뻗어 있다. 이 거리는 1860년대와 1870년대 광범위한 도시 계획과 리모델링 시대에 국제 건축 공모를 통해 조성했다. 가장 큰 쇼핑센터인 노르드스탄(Nordstan)이 예테보리 도심에 있다.

하가 지구는 그림 같은 나무집과 계피로 만든 유명한 하가 불을 파는 카페가 유명하다. 해마다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데이인 11월 6일에는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페이스트리를 먹는데, 이 도시를 세운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왕을 기리는 것이다.

관광[편집]

예테보리에는 다양한 박물관들이 있다. 뢰흐스카(Röhsska)박물관을 비롯해 2004년 문을 연 세계문화박물관과 예테보리 미술관과 바다와 항해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과학박물관, 동인도 회사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이 있다.

예테보리 시티 공항과 가까운 에어로세움(Aeroseum)에는 옛 지하 공군기지에 항공기 박물관이 있다. 볼보 박물관은 1927년부터 현재까지 볼보의 역사와 발전상을 보여주고 자동차, 트럭, 선박 엔진, 버스 등 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유니베르세움(Unverseum)은 2001년 문을 연 공공과학센터로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크다. 실험 워크숍과 파충류, 물고기, 곤충 구역 등 6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때때로 스웨덴 중학생들이 노벨상 수상자나 다른 학자들과 토론대회를 열기도 한다.

예테보리에는 다양한 음악 단체들이 있다. 예테보리 교향악단은 클래식 음악 단체로 가장 유명하다. 또 스웨덴 작곡가 쿠르트 아테르베리(Kurt Atterberg)가 태어난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스웨덴 기악 록 그룹인 스팟닉스(The Spotnicks)가 예테보리 출신이다. TSOOL(The Soundtrack of Our Lives)과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 같은 밴드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팝 그룹들이다. 1970년대에 예테보리는 스웨덴의 프로그레시브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매년 음악 축제도 많이 열린다. 2004년부터 시작된 메탈타운 페스티벌은 프리함넨(Frihamnen) 공연장에서 이틀간 헤비메탈 음악 밴드들의 연주가 이어진다. 그 밖에 록, 전자, 힙합 장르에 더 중점을 두는 웨이 아웃 웨스트 축제가 있다.

도심에 있는 놀이공원 리세베리(Liseberg)는 스칸디나비아에서 놀이기구 수가 가장 많은 곳으로 2005년에 포브스가 뽑은 세계 10대 놀이공원에 선정되었다. 매년 방문자 수 300만 명 이상으로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매년 열리는 예테보리 영화제는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영화제다. 9월에 열리는 예테보리 도서 박람회는 스칸디나비아 최대의 문학 축제로 유럽에서 둘째로 큰 규모의 도서전이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예테보리〉, 《위키백과》
  2. 예테보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예테보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4. 고테버그〉, 《요다위키》
  5. 예테보리〉,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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