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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지질 구조는 선캄브리아대에 형성된 변성암 지반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보기 드문 화강암 산체인 거대한 스칸디나비아 산맥이 전국을 종단하고 있다. [[철]]이 풍부한 편으로 주요 수출국이나, 석탄은 부족하여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스웨덴의 지질 구조는 선캄브리아대에 형성된 변성암 지반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보기 드문 화강암 산체인 거대한 스칸디나비아 산맥이 전국을 종단하고 있다. [[철]]이 풍부한 편으로 주요 수출국이나, 석탄은 부족하여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23년 2월 20일 (월) 12:39 판

스웨덴 위치
감라스탄
바사 박물관

스웨덴(스웨덴어: Sverige 스베리예, 문화어: 스웨리예)은 북유럽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반부를 차지하는 입헌 군주국이며 수도는 스톡홀름이다. A.D.10세기에 최초의 통일 왕국이 성립된 이후 1397년부터 126년 간 덴마크, 노르웨이와 함께 칼마르(Kalmar) 동맹국을 결성, 주도권 다툼에 나서기도 했고 1849년부터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다.

개요

스웨덴은 북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역사적으로도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는 등 전통적으로 북유럽을 주도하는 국가다. 북유럽과 관련된 분석도 일반적으로 스웨덴을 가장 자세히 하는 편이다. 덴마크, 노르웨이와 함께 바이킹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에 접어들어 유럽에서는 스위스, 포르투갈, 아이슬란드와 같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행운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정식명칭은 스웨덴왕국[Kingdom of Sweden(영), Konungariket Sverige(스)]이다. 서쪽으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등뼈에 해당하는 스칸디나비아 산맥을 국경선으로 하여 노르웨이와, 북동쪽으로는 보트니아만으로 흘러드는 토르네(Torne) 강을 경계로 핀란드와 접한다. 동쪽으로 보트니아만(灣) 및 발트해(海)를 너머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마주하며, 남쪽은 카테가트(Kattegat) 해협과 외레순(Øresund) 해협을 사이에 두고 덴마크와 마주한다. 안정적이고 높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생활·문화 수준이 매우 높으며, 세계의 모범이 되어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다. 행정구역은 21개 주(lan)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 상징

국호

자국어 국호는 스베리예(Sverige)다.

오랜 과거에는 Sver(i)ghe, Sverike, Sværike 등으로 불렸는데, 스베아의(Svea) 나라(rike)라는 뜻이다. 즉 현재 국호를 해석해보면 스베아국 왕국이라는, 일종의 겹말. 스베아라는 말은 옛 게르만어로 '우리의 부족'을 뜻하는 Swihoniz라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흔히 알려져 있는 '스웨덴'이란 말은 네덜란드어 '즈베던'(Zweden)을 영어화한 것으로 스위든(ˈswiː.dən)이라고 발음한다. 한때 영어에서는 스웨드란드(Swedeland)라는 표현도 썼다. 독일어로는 슈베덴(Schweden)이라고 한다.

핀란드어로는 루오치(Ruotsi)라고 한다. 루스에서 온 말로 러시아 국명의 기원인 루스와 같다. 스웨덴 웁살라 주 일대에 루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보니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문으로는 음차하여 서전(瑞典)이라 부르며, 앞글자를 따서 서(瑞), 또는 서전국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외래어 표기가 정착된 현대의 한국에선 잘 쓰이지 않는다.

국기

스웨덴 국기
스웨덴 국장

스웨덴 국기(Sveriges flagga)는 1906년 6월 22일에 제정되었다.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스칸디나비아 십자가 그려져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국기 모양은 다른 북유럽 국가들의 국기와 유사하며, 이는 북유럽에서 가장 먼저 제작된 국기인 덴마크 국기(Dannebrogen)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1157년, 국왕 에리크 9세가 핀란드 십자군을 위해 출병할 때 푸른 하늘에서 금빛의 십자를 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했으며,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후 구스타브 1세 바사에 의해 국기로 채택되었다. 파란 바탕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스웨덴의 푸른 하늘과 영해(領海)를, 노란 십자는 루터교회를 상징한다. 이케아의 로고 디자인과 매장 건물 외관에 사용된 파란색과 노란색도 스웨덴 국기의 배색에서 유래했다. 북한에서는 1965년까지는 서전이라고 쓰다가 이후로는 원어식대로 '스웨리예'라고 쓰고 있다.

국장

스웨덴의 국장은 1448년에 제정되었으며 현재의 국장은 1905년 11월 17일에 수정되었다.

왕관이 올려진 망토 가운데에는 방패가 그려져 있다. 방패 왼쪽 상단과 오른쪽 하단에는 스웨덴의 소형 국장이 그려져 있으며 방패 위에는 왕관이 올려져 있다. 방패 양쪽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그려져 있으며 방패 가운데에는 스웨덴 왕실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

국가

국가는 'Du gamla, Du fria(그대의 조상, 그대의 자유)'라고 하며, 리샤르드 뒤베크가 작사하였다. 왕실 국가로는 '왕의 노래(Kungssången, 쿵송엔)'라는 '스웨덴인의 마음 깊은 곳에서(Ur svenska hjärtans djup en gång, 우르 스벤스카 예르탄스 유프 엔 공)'를 사용하며 오토 린드블라드가 작사하였고 칼 빌헬름 아우구스트 스트란드베리가 작곡하였다.

지리

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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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과 지질

스웨덴의 지질 구조는 선캄브리아대에 형성된 변성암 지반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보기 드문 화강암 산체인 거대한 스칸디나비아 산맥이 전국을 종단하고 있다. 이 풍부한 편으로 주요 수출국이나, 석탄은 부족하여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스웨덴 최남단의 스코네는 덴마크와 흡사한 낮은 지형으로 중생대층(中生代層)으로 되어 있으며, 빙기(氷期)의 퇴적층이 이를 뒤덮고 있다. 넓은 평야 사이에 돔 모양의 구릉이 나타나며 높이는 200m를 넘지 않는다. 북쪽의 스몰란드는 그보다 약간 높으며, 그 속에서 옛 산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최고점은 343m이다. 하천은 여기에서부터 방사상으로 흘러, 동·남·서쪽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로 유입된다.

스몰란드의 북쪽은 스웨덴을 동서로 횡단하는 저지가 되고 이 저지는 구조성(構造性)의 것으로 요르디아기(期)에는 해진(海進)을 받았다. 제4기의 퇴적물로 덮여 있으며, 비옥하여 농업 생산력이 높은 지역이다. 이 저지에는 베네른호(5,585㎢)·베테른호(1,912㎢)·옐마렌호(480㎢)·멜라렌호(1,150㎢) 등 4개의 큰 호수가 있으며, 베네른호에서 유출하는 예타강과 베네른호·베테른호를 잇는 예타운하가 스톡홀름의 남쪽 130km 지점에 있는 쇠데르셰핑에까지 통한다. 두 수로(약 400km)에 의해 카테가트해와 발트해가 통하며, 이에 따라 스톡홀름과 예테보리가 서로 연결된다. 이 저지의 북쪽은 달라르나지방으로 삼림이 많고 철광석을 비롯하여 광물자원의 산출이 많다.

발트해에 면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해안평야는 후빙기(後氷期)에 융기한 지역으로 해성층(海成層)에 덮여 있으며, 농업지대로서의 가치가 크다. 스톡홀름 부근은 약 1,200개의 섬들이 미로와 같은 수로를 만들어 스웨덴식 다도해 경관을 보여준다. 발트해에 있는 고틀란드섬은 실루리아기(紀)의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서해안은 절벽을 이루나 모래사장으로 된 북쪽 해안은 사구(砂丘)가 발달해 있다. 고틀란드섬과 해안 가까이의 욀란드섬은 농목지로 이용된다.

스웨덴의 북부는 스칸디나비아산맥에 의한 서고동저형의 완만한 경사지이다. 스칸디나비아 산맥은 최고봉 셰브네카이세산(2,111m)을 비롯하여 2,000m 정도의 산이 몇 개 있을 뿐, 대체로 기복이 적은 산지로 칼레도니아조산운동이 있은 후 평탄해졌다가 융기한 것이다. 셰브네카이세산에는 권곡(圈谷)빙하가 현존하며, 빙기의 빙하지형이 산지 전체에 남아 있다. 하천은 산정상부에서 남동으로 흘러 보트니아만에 들어가지만, 스칸디나비아 빙상(氷床)이 후퇴할 때 남긴 퇴석으로 막힌 빙하호가 있다. 이 하천이 흐르는 방향은 지질시대 빙상·빙하의 유동방향을 나타내는데 급류로 된 부분도 많으며, 이 중 룰레강의 하르스프롱 폭포가 유명하다. 삼림한계선 너머에 산악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중간부는 빽빽한 삼림지대이다. 하천은 발전 및 목재 수송에 이용된다.

기후와 식생

스웨덴의 기후는 해양성기후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가까운 보트니아만(灣)과 발트해(海)뿐만 아니라 먼 대서양의 영향도 강하게 받고 있다. 위도에 비하여 기온은 높으며, 기온의 연간 변화도 적다. 겨울은 길고 일조시간이 짧으며 추운 편이고, 여름은 짧고 일조시간이 길며 시원한 편이다. 여름의 평균기온은 남부 18℃, 북부 15℃이며, 겨울은 남부 -3℃, 북부 -10℃ 정도이다. 겨울의 온난하고 습한 서풍이 스칸디나비아산맥의 낮은 부분인 노르웨이 트론헤임을 넘어서면 북쪽은 춥고 남쪽은 따뜻하여 한역(寒域)이 갈라진다. 스톡홀름의 평균기온은 여름 15~17℃, 겨울 -1~-4℃이다. 강수량은 남부 600mm, 북부 300mm 정도이지만, 기온이 낮기 때문에 건조기후는 아니고 강수량은 여름에 많다. 고위도이기 때문에 여름의 일조시간이 길고, 최북단에서는 백야(白夜)가 나타난다.

식물의 생육기간은 남부에서 330일, 북부에서 130일 가량이다. 기후대를 나누면 남쪽에서부터 너도밤나무, 떡갈나무, 자작나무 순으로 식생지대가 전개되며, 고산지는 툰드라 기후지대이다. 북위 60° 이북은 전나무·소나무 등의 침엽수림이며, 이남은 이들과 함께 떡갈나무·너도밤나무가 섞이는 혼합림이다. 숲 속에는 늑대가 많았으나 19세기 개척시대에 산지로 쫓겨나고 그 대신 사슴이 우점종이 되었다.

역사

스웨덴의 역사는 1397년 형성된 칼마르 동맹에서의 탈퇴와 16세기 구스타브 1세 바사 왕에 의한 통일로 요약된다. 17세기에 스웨덴은 영토를 넓혀가며 스웨덴 제국을 형성했다. 이 시기에 점령했던 대부분의 영토는 18세기에 잃게 된다. 19세기 초에 핀란드와 스칸디나비아반도 밖에 있던 영토를 상실하였다. 1814년에 있던 마지막 전쟁 후로 스웨덴은 1905년까지 노르웨이와 동군연합을 결성한다. 1814년부터 스웨덴은 평화시에는 비동맹주의를 유지하고 전시에는 중립을 지키는 정책으로 평화를 유지하였다.

선사시대와 초기 스웨덴

이웃 나라 노르웨이처럼 스웨덴도 전 국토에 걸쳐 많은 암각화(스웨덴어로는 ristningar 또는 hällristningar라고 한다)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보후스랜(Bohuslän)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데, 가장 오래된 그림은 기원전 500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옘틀란드(Jämtland)의 그림이다. 그 그림들은 순록, 사슴, 곰, 물개와 같은 야생 동물을 나타내고 있다. 기원전 2300년부터 500년까지 가장 많은 그림들이 그려졌는데, 농사, 전쟁, 교역, 가축에 관한 그림들이 주로 그려졌다. 기원전 800년부터 500년까지는 성적 본능에 관한 그림이 보후스랜에서 발견되었다.

스웨덴이 국가로서 정확히 몇 년에 세워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스웨덴은 고대 웁살라(Uppsala)에 있던 가장 강했던 스베아 왕국(Svea Rike; 스베아 리케)이 발전되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스베아 왕국의 존재는 100년경에 타키투스에 의해 이미 알려졌다. 서쪽과 동쪽에 있던 예아트스(Geats)도 또한 국가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1000년경에 처음으로 스베아와 예타 왕국(Göta Riken; 예타 리켄)에 기록된 왕인 올오프 회트코눙(Olof Skötkonung)이 등장하지만 재위 기간과 권력의 실재여부가 불명확하다. 12세기에 스웨덴은 여전히 에릭가(Erik clan)과 스베르케르가(Sverker clan)사이에 왕위 다툼을 하고 있었다.

결국에 그 왕위 다툼은 제3의 세력이 에릭가와 결혼하여 폴쿵 왕가(Folkunga dynasty)를 세우면서 마무리 되었다. 이 왕가는 칼마르 동맹이 결성되기 전까지 실질적인 국가로 존재하였고, 흑사병이 퍼지면서 결정적으로 쇠퇴하게 된다. 비가톨릭국가에서 가톨릭국가로의 전환은 복잡하고 점진적이고 때때로는 폭력적인 과정이었다.

초기에는 스칸디나비아와 색슨족 사이의 데인법에 의해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수도승이 와서 포교 활동을 하였다. 독일의 영향력은 안스가르에 의한 포교 시도 때문에 초기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특히 노르만 정복 이후로, 스웨덴 지역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스웨덴과 루스 귀족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동방 정교회의 영향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거의 없었다.

구스타브 1세 바사.

이렇게 통합된 기간 동안 스웨덴은 현재 핀란드의 중심인 타바스틀란드(Tavastland)로의 초기 십자군 정복에 의해 이미 핀란드를 포함하고 있었다.

흑사병과 스웨덴 내부 권력 분쟁 후에 덴마크의 여왕 마르그레테 1세가 북유럽의 국가들을 1397년에 스웨덴 귀족들의 동의 하에 칼마르 동맹이란 이름 하에 통합한다. 하지만 통합으로 인한 계속되는 국가와 동맹 사이의 경제 압박은 결국 15세기에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에 분쟁으로 연결되게 된다. 결국 동맹은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의 긴 분쟁 속에서 16세기에 해체되게 된다.

1523년 스웨덴은 덴마크와의 스웨덴 해방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칼마르 동맹에서 독립했다. 이를 계기로 칼마르 동맹은 해체되었다. 구스타브 1세 바사 국왕은 스웨덴의 독립과 칼마르 동맹을 재구성하는 세력들을 부수기 위해 싸웠고 근대 스웨덴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동시에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를 끊고 종교 개혁을 받아들여 루터교를 국교로 정한다.

근대 스웨덴

17세기에 덴마크, 모스크바 그리고 폴란드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한 스웨덴은 겨우 100만의 인구에도 불과하고 강대국으로 떠오른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종교적 이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그리고 유럽의 균형을 위해 30년 전쟁에 참전한다.

1645년의 브룀세브로(Brömsebro) 조약과 1658년의 로스킬데(Roskilde) 조약에 의해 스웨덴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중요한 지역을 획득한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스웨덴은 후에 에스토니아, 리보니아, 그리고 북부 독일이 되게 되는 잉그리아,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배하게 된다.

모스크바, 작센-폴란드, 덴마크-노르웨이는 1700년에 동맹을 맺고 스웨덴 제국을 공격하였다. 스웨덴의 칼 12세는 비록 어렸지만 대북방 전쟁 초기에 나르바 전투에서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다. 모스크바를 공격하여 모스크바를 제압하는 계획은 그가 너무 야심찼다는 것을 증명한다. 폴타바 전투에서는 모스크바에 큰 패배를 당한 칼 12세는 1718년 노르웨이의 프레데릭스텐(Frederiksten) 요새 공성전 도중 총에 맞아 죽는다. 후에 맺어진 평화조약에서 프로이센과 잉글랜드-하노버가 합세한 동맹군은 스웨덴의 힘에 의한 지배를 종식시켰고 제한된 왕권과 의회 정치시대를 열게하였다.

의회 정치는 200년동안 유지되었다. 구스타브 3세에 의한 무혈 쿠데타는 스웨덴을 절대 왕정으로 복귀시켰다. 이런 지배는 나폴레옹 전쟁에 말려들 때까지 지속되었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스웨덴은 1809년에 핀란드를 러시아에 넘겨주게 된다.

노르웨이와의 통합과 스웨덴의 산업화

그 후에 프랑스 출신 장군 장바티스트 베르나도트(Jean-Baptiste Bernadotte)가 의회(Riksdag)에서 왕세자로 선출되어 스웨덴의 왕으로 즉위한다. 1813년 그의 군대는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연합군에 합류하여 본회베드(Bornhöved)에서 덴마크군을 격파한다. 키엘 조약에서 덴마크-노르웨이의 왕은 노르웨이 본토를 스웨덴 왕에게 넘겨주게된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독립을 선언하며 새로운 왕을 선출한다. 스웨덴은 키엘 조약을 따를 것을 주장하며 노르웨이를 침공한다. 짧은 전쟁 후에 모스 조약은 두 나라 사이의 동군연합을 승인한다. 이 연합은 1905년 노르웨이의 요구에 의해 평화롭게 해제된다. 칼 14세 요한의 즉위기간(1818-1844) 동안 부드럽지만 효율적인 산업화가 시작된다. 이 첫 발걸음은 시골의 대장간과 초기 섬유산업과 제재소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산업 혁명 기간 동안 스웨덴의 주요 농업활동은 차차 마을단위에서 개인 농장활동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경제와 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그러한 성장을 보여주지 못한다. 대략 100만명의 스웨덴 사람들이 1850년과 1890년 사이에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한다. 19세기는 많은 반대 언론의 등장, 자유 기업에 의한 거래와 생산에서 길드 독점의 폐지, 조세제도와 선거제도의 개편, 국가 상비군의 설치, 그리고 3개의 주요 정당 - 민주당, 자유당, 보수당의 등장으로 대표된다.

스웨덴이 중립을 지켰던 제1차 세계 대전 기간과 전후에 스웨덴은 전 세계에 걸친 철, 볼 베어링, 펄프, 성냥 수요로 인해 큰 이익을 본다. 전후의 번영은 현대 스웨덴의 주체성과도 같은 사회보장기금 마련에 큰 보탬이 된다. 1930년대의 소비에트와 독일의 확장주의에서 중립을 지키는 외교정책은 북유럽 공동 방어전선의 형성을 실패하게 했다. 스웨덴은 제2차 세계 대전동안에도 중립을 지켰고 현재까지도 비동맹주의를 유지하고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이웃나라가 차츰 전쟁에 말려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중립을 유지하였다. 스웨덴은 전쟁을 하는 양 쪽 모두를 지원하였다.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는 수많은 헝가리의 유대인들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스웨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NATO, WTO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국의 지위를 고수하며 북유럽 국가들의 중립 정책, 노르딕 밸런스(Nordic Balance)를 선도했다. 하지만 친미국적 정책을 취해 소련으로부터 서방 세계의 북방 측 방벽 역할을 하였다. 나중에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비난하는 등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지만 최근 비밀 해제된 외교 문서들을 보면 NATO와 WP 간 전쟁이 일어나면 NATO측으로 참전하기로 미국과 합의하기는 했다. 스페츠나츠의 주요 실전 훈련용 침투 루트가 아프가니스탄, 체첸과 더불어 스웨덴 방면이었으며, 이 때문에 스웨덴 군의 평시 스페츠나츠와의 교전 비율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심지어는 스페츠나츠가 하수구를 통해 스웨덴 왕궁 정문 앞까지 침투했다가 경비대에 발각되어 총격전 끝에 도주하기도 했을 정도다.

스웨덴은 복지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여러 선진적인 정책을 시행해서 매우 살만했고,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세금 부담이 과중해지면서 점차 장기집권하던 사민당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었고 1970년대 초반에 원자력 발전 건설 논란도 일어났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경제가 다소 침체되었고, 이것의 영향으로 잠깐 보수 3당의 연합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래도 이 시절에도 사회민주당은 원내 1당이었다. 사실 이 때의 스웨덴은 이미 소득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삶의 질도 상위권을 유지했기에 이전에 비해 비교적 안 좋은 상황이었지,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기존 정권의 지지가 높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오일 쇼크의 후유증을 차츰 극복하였고 자산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성장했다. 1990년대 초반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다시 침체를 겪었지만 침체가 장기화되지는 않았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다.

공산권 붕괴 후에는 중립 정책을 사실상 포기하였고, 1995년 유럽연합에 가맹하였으나 NATO에는 가입하지 않고 유로화 사용도 거부하는 등 아직도 독자적인 정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단행된 러시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5월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을 타진하는 중이다.

2010년대 들어서는 세계 금융위기같은 글로벌 경제 위기와 중동발 난민 급증으로 인한 불만이 복지국가로 유명한 스웨덴에서조차 극단 세력의 선거 약진을 불러왔다. 다만 상대적으로 부상했다는거지 절대치론 여전히 집권하긴 좀 무리고, 스웨덴 자체가 극우에 반감이 제법 많은 나라다 보니 그렇게 부상했던 정당은 이미지 실추를 걱정해서 내부적인 자정을 해 현재는 다른 국가의 극단 세력에 비하면 비교적 평범한 정당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쓸려 나간 극단 세력의 인사들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서 이전보다 더 노골적인 극단성을 띄는 중이다. 다만 단독 집권은 요원해보인다.

2021년 6월 21일에 스웨덴 의회가 뢰벤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하면서 연립정부가 무너졌다.

스웨덴 동부 노르셰핑에서 극우단체의 이슬람 경전 꾸란 소각으로 폭동이 일어난지 4일만에 스웨덴 남부에서도 극우단체의 폭동이 이어져 40명이 부상했다.

정치

경제

인문사회

문화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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