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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9일 (화) 10:27 판

완주 화암사(花岩寺)
보물 제622호 완주 화암사 우화루
국보 제316호 완주 화암사 극락전
화암사 푯말과 계단
우화루에 매달려 있는 목어
우화루 기둥에 걸린 괘불도 사진
승려들의 생활 공간인 적묵당
설명

화암사(花岩寺)는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위치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소속 사찰이다.

창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현재 남아있는 <화암사중창비>에 의하면 통일신라 때 원효와 의상대사가 이 절에 머물며 수행하였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완주 화암사 중창비는 1425년(세종 7)에 성달생(成達生)이 절을 중창하고 기념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 때 3칸의 불전을 매우 장려하게 짓고 차례로 승당(僧堂), 조성전(祖聖殿)등 여러 건물들을 완성하였는데 당시 지은 3칸 불전이 극락전인 것으로 전해진다.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정유재란 때 피해를 입고 1605년에 중건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서 현존하는 유일한 하앙식 건물로 유명하다.

개요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로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에 딸린 절이다.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화암사는 우화루와 극락전이 남북으로, 불명당과 적묵당이 동서로 마주 바라보고 서 있는 입구(口)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극락전 왼쪽에는 입을 놀리는 것을 삼가라는 철영제가 있고 적묵당 뒷편에는 산신각 우화루 옆에 명부전이 자리잡고 있다.

옛모습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는 화암사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기록이 뚜렷한 곳으로 자연적인 지형을 최대로 이용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한 건축양식이 선인들의 슬기를 새삼 느끼게하는 곳이기도 하다.이밖에도 화암사에는 지방문화재인 동종과 후불, 고승 산신정화가 있으면 4기의 부도도 있다. 도심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심산유곡의 화암사는 원형이 손상되지 않은 건물로, 개발되지 않은 천혜의 모습 그대로여서 도시민의 휴양장소로 알맞은 곳이다.

소장 문화재

  • 완주 화암사 극락전 - 대한민국 국보 제316호
  • 완주 화암사 우화루 - 대한민국 보물 제662호
  • 완주 화암사 동종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0호
  • 완주 화암사 중창비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4호

관광

차량 진입 금지 푯말이 화암사로 향하는 첫 관문이다. 여느 사찰과 달리 화암사로 가는 길에는 별다른 입구가 없다. 산속 걸음이 그대로 속세와의 단절을 말해줄 뿐이다. 인위적 장치 없는 등산로를 걷는 것과 같이, 작은 절 하나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다.

흙길을 지나 돌길을 걸어 계곡을 건너야 끝나지 않을 듯한 길이 끝나고, 철계단을 올라야 화암사 근처에 겨우 도달한다.

계단 뒤로 보잘것없지만 강한 소리를 내는 폭포수가 시원하게 떨어진다. 단아한 꽃모양 장식들이 계단 난간에 매달려 소소한 멋을 낸다.

계단을 오르고 다시 한 차례 길을 돌아야 절의 처마끝이 드디어 고개를 내민다. 이곳까지 걷는 데 20여 분이 필요하다.

화암사에서 처음 마주하는 건물은 보물 제662호로 지정된 우화루다. '꽃비 흩날리는 누각'이라는 뜻의 우화루는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세워진 누각이다. 절에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통 때는 개방하지 않는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모습은 기둥으로 받친 2층 높이의 건물이다. 우화루 옆으로 일반 가정집에서나 놓는 문간채가 들어서 있다. 3칸으로 이루어진 문간채의 마지막 칸이 화암사 중앙으로 향하는 대문이다. 일주문 같은 별도의 입구가 없는 것도 그렇지만, 보통의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입구의 형태도 특이하다. 문간채가 누각 옆에 세워진 이유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경내 중앙이다. 대문 옆 건물 외벽에 낙서인 듯 보이는 글씨들이 어지러이 씌어 있다. 사찰 대문을 처음 세울 때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다. 밖에서 보였던 우화루 내부 왼편에 목어가 묵직하게 걸려 있다.

우화루와 함께 보물로 지정된 적묵당이 마당 왼편에 자리한다. 적묵당은 승려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독특한 기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휘어진 나무에 틈을 내어 작은 나뭇조각을 끼워 곧추세웠다. 소박하지만 섬세한 당대의 지혜다.

사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중앙에 있는 노쇠한 건물이다. 바로 국보 제316호로 지정된 극락전이다.

국보는 국가 지정 보물들 가운데 그 가치가 좀더 특별하여 국가적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보물에 부여되는 것이다. 숲속에 감춰진 듯 자리하고 있던 화암사가 세상의 이목을 받게 된 것은 극락전이 국보로 지정되면서 부터다. 1970년대 말부터 화암사에 대한 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때 보수공사도 함께 진행했는데, 우화루와 극락전에서 건축 당시 지붕을 올릴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자료를 종합한 결과, 극락전이 지어진 때는 고려 후기인 1297년에서 1307년 사이, 그후 중창된 것은 1425년에서 1440년으로 추정되었다. 또 정유재란 때 극락전이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05년에 재건되고, 1714년에 다시 보수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여러 자료로 미루어, 소실 이전의 모습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현재의 극락전은 조선시대에 지어졌지만 그 이전 백제시대 건축술을 따른다고 한다. 가장 큰 예로, 극락전에 적용된 하앙식 건축술을 들 수 있다. 하앙이란 지붕과 기둥 사이에 끼운 기다란 나무판을 말하는데, 이것은 백제시대 건축술로 알려져 있다. 백제의 장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건축한 것으로 전해지는 몇몇 건물과 탑에서 이 하앙식 구조가 발견되었다. 화암사 극락전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그 흔적이나 문화재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하앙식 구조가 백제를 통하지 않고 중국에서 바로 일본으로 건너온 건축술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극락전에 사용된 하앙식 구조가 국내외에 알려지면서 건축사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앙식 구조가 백제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외에 다른 사례는 발견되지 않아 화암사 극락전이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증거인 셈이다.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식 구조는 특이하게 건물 앞뒤의 모양새가 다르다. 앞부분은 용머리를 조각하여 구조재에 장식을 더한 형태이고, 뒤쪽 하앙은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뾰족하게 다듬었다. 법당 내부 천장인 닫집에는 용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꿈틀거리는 형상을 조각했다. 세월이 흘러 색이 바랬지만, 용의 비늘 하나에도 섬세한 색칠이 엿보인다.

극락전 안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0호인 동종이 있다. 크기가 작은 이 종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조선 광해군 때에 다시 만들어졌다. 밤이 되면 종이 스스로 울려 스님을 깨우고 자신을 지켰다는 전설이 있다.

2014년 11월, 화암사에 있는 탱화 한 점이 문화재로 새롭게 등록되었다. 법당 밖에서 행사를 할 때 걸어놓는 대형 불화인 괘불도이다. 이 괘불도는 불교 용어로 법신(法身, 진리 그 자체)을 뜻하는 비로자나불이 그려진 보기 드문 탱화이다. 채색에 서양화법이 접목된 근대적 불화 기법을 보여준다. 괘불도는 현재 법당 안에 모셔두고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찰 입구 우화루에 특수 촬영한 사진이 걸려 있다. 촬영을 위해 괘불도를 꺼내 펼쳐든 것이 20여 년 만의 일이었다.

화암사는 김제 금산사의 말사이다. 건물 자체가 국보이고 보물이면서 여러 문화재가 있는 만큼 더욱 꼼꼼하고 세심하게 관리된다.

이용안내

개방시간

동절기에는 오후 5시, 하절기에는 오후 5시 30분이면 대문이 잠긴다. 산속은 더욱 빨리 어두워지기 때문에 사찰을 돌아보는 시간을 잘 맞추는 것이 안전하다.

입장료
  • 무료
  • 주차장 : 대형버스 15대 정도 주차요금 무료

교통안내

버스
  • 고산 → 운주 → 화암사 (군내버스 1일5회 운행)
승용차
  • 전주(17번 국도) → 봉동 → 고산 →경천 → 용복주유소(우측길) → 구제마을삼거리(좌측길) → 화암사

지도

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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